영화 <3670>_미운 오리 새끼

by 피터

by 퀴어씨네클럽

종로와 이태원, 수많은 술집과 클럽들.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수많은 게이들이 그곳에 모여 헤테로들 사이에서 쌓였던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3670>의 배경이 되는 종로3가는 꽤 오랜 시간 동안 게이들의 아지트가 되어준 곳이다. 나도 철준처럼 게이 커뮤니티에 대한 호기심, 환상 그리고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철준의 첫 게이 친구 영준은 철준을 ‘아기 오리’라고 부른다. 알에서 나와 처음 본 대상을 엄마로 생각해 졸졸 따라다니는 오리의 습성처럼 자신의 옷장을 열어준 상대인 자신만을 따라다닌다는 것이다. 아기 오리는 영화에서 꽤 중요한 주제인데, 철준이 자신의 첫 친구이자 사랑인 영준을 떠나 (본인도 또 다른 게이를 이끌어주며) 성장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나는 알을 깨고 나오는데 오래 걸렸다.


종로나 이태원의 게이 공간들도 퀴씨클 멤버들과 가본 것이 처음이었다. 호기심은 물론 있었지만 추진력 없는 회피형 내향인이라 미루고 미루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 도롱과 미니가 데려가 준 그곳은 새로운 세상이었다. 무엇보다 대한민국 서울에 이렇게나 많은 게이들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게이 술집과 클럽에서의 경험은 신기하고 즐거웠지만, 그에 뒤따라오는 묘한 위화감이 있었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해방감과 재미는 느껴졌지만, 이곳에 완전히 섞이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내가 사회성이 부족한 내향인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늙어서…?

36700.jpeg 영화 <3670>에서


헤테로들이 가는 클럽에도 몇 번 간 적이 있다. 남자들이 친구들에게 붙는 것을 떼어내는 것 빼고는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영화에서 철준이 클럽에서 방방 뛰는 것처럼 재미있게 놀았다. 그러나 게이 클럽은 뭔가 부담스러웠다. 남자만 가득한 공간, 서로를 스캔하는 눈빛들, 넘쳐나는 끼들 속에서 온전히 즐기기가 쉽지 않았다. 아마 내가 마음속에 만들어낸 편견 때문도 있었을 것이다.


종태원에 다니는 사람은 만나지 않겠다는 게이들도 꽤 있다. 그들과 이야기해본 적이 없어서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술집, 노래방, 클럽으로 대표되는 종태원에서 유흥을 즐기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나는 술은 잘 못 먹지만,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노래를 듣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은 좋다. 종태원이라는 공간에서 게이들이 함께 모이는 것이, 구린 부분들도 물론 있겠지만,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3670000.jpeg 영화 <3670>에서


고마운 친구들이 나를 그곳에 데려다 주었지만, 아직 나는 온전히 그곳에 속하지는 못했다. 나는 철준처럼 아기 오리 졸업을 못했다. 남들보다 늦게 데뷔 아닌 데뷔를 한 것이 새롭고 재미있으면서도 두렵다. 좀 더 빨리 접했더라면 아무런 편견 없이 즐겼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이대로 고민들과 함께 한 걸음씩 나아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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