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에바
엄마랑 오랜만에 단둘이 영화를 보러갔다. 언젠가부터 내가 극장과 가까워지면서, 현재 상영작 혹은 개봉 예정작들을 살펴보다 부모님과 함께 볼 수 있는 영화를 발견하면 극장 나들이를 제안하곤 했다. 이번에도 설날 연휴를 맞이하여 슬슬 입소문이 돌기 시작했던 <왕과사는남자>를 보러 가자고 부모님께 제안했지만, 아빠는 급한 약속이 생겨 엄마와 둘이서만 극장을 가게된 것이다. 요즘들어 부쩍 스마트폰과 친해진 엄마는 내 제안을 듣자마자 그래 그거! 장항준 거지? 재밌어 보이더라. 보러가자! 너 단종이 왜 유배를 갔는지 아니~? 라며 역사를 좋아하는 엄마는 눈을 반짝이며 대화를 이어간다. 그녀에 비해 단종에 대한 나의 마음은 지극히 미약하므로 그래, 그렇구나. 대충 말을 주고받으며 극장으로 향했다.
영화에 큰 기대를 하진 않았다. 물론 영화를 보기 전에 기대를 하면 실망이 큰 법이기 때문이기도 한데, 한국 영화는 조금 더 기대를 하지 않는 것 같다. 지금껏 역사 속 인물을 다룬 영화들은 뭔가가 항상 정해진 틀이 있다고 생각해왔고, 더군다나 권력에 눈이 먼 삼촌에게 유배를 당한 조카라는 서사 자체가 강력하기 때문에 그 이상의 무엇인가가 있을까? 싶었다. 살짝 기대하는 바가 있다면 유지태의 한명회 연기가 어떨까? 정도의 궁금증을 가진 채로 상영관 좌석에 앉았다. 아니나다를까, 영월 산 속을 배경으로 난데없이 나타난 호랑이 CG를 흐린 눈을 하며 지켜볼 수 밖에 없었고, 예산이 많이 들어간 ‘대작’ 영화는 아니라는 걸 감안하더라도 엉성한 부분이 눈에 자꾸만 띄였다. 하지만 초반부터 차근차근 쌓아나간 단종과 엄흥도의 관계성에 점점 몰입되기 시작했고, 연출과 시나리오가 구축한 감정선에 완벽히 빠져들 수 있었다. 그리고 후반 클라이막스에서 상영관 곳곳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 역시 눈물을 닦기 시작했고, 엄마도 옆에서 눈물을 훔치는 듯 했다.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고, 엄마에게 슬쩍 티슈를 건네자 엄마는 꾹꾹 참은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으어어엉! 단종이 너무 불쌍해! 물론 나도 감동적이긴 했지만 그정도로 슬펐나 싶어 울 엄마지만 참 감수성이 남다르다는 사실에 살짝 웃음이 나고야 말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잠깐이나마 영화에 흠뻑 빠지게 하는 순간, 그리고 낯선 이들과 이 감정을 공유하는 순간.
이 경험은 ‘극장’만 줄 수 있는 것 아닌가.
엄마가 나를 처음으로 극장에 데려간 건 내가 초등학교를 입학하기 전 쯤이었다. 당시 울산 시내에 극장이 별로 없어서 문화회관 내부에 있던 큰 상영관으로 기억한다. 그날따라 엄마가 옷을 예쁘게 차려입혔고, 그렇게 첫 극장 경험을 했다. 그 때 봤던 영화는 <뮬란>이었다. 비디오 가게에서 영화를 빌려 작은 tv화면으로 보던 것과는 확실히 다른 경험이었다. 극장에서 웅장한 음악과 함께 여성으로 태어나 가족을 지키기 위해 남장을 하고 리더가 되어가는 뮬란의 모습을 바라보는 건, 그 캐릭터에 매료될 수 밖에 없었다. 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엄마와 아빠에게 <뮬란>에 대해 조잘대는 내모습과 다음에 또 극장에 가자고 약속하던 것. 이것이 극장에 대한 내 첫 기억이다.
시간이 흘러 어쩌다보니 나는 영화 관람에 즐거움을 느껴 극장에 자주 다니게 되었지만, 주로 취향이 예술영화, 다양성 영화가 맞아 독립영화관을 주로 드나들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멀티플렉스 극장과는 멀어졌고, 성인이 되면서 부모님과의 관계도 소원해지기 시작하며 오랫동안 가족의 극장 나들이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보헤미안 랩소디>라는 영화를 재밌게 보고 한번 더 보고 싶어서 엄마에게 같이 가자고 제안했다. 집 앞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역시 다시봐도 재밌군, 하며 마지막의 라이브 에이드 콘서트를 벅찬 마음으로 보고 있는데, 옆자리에서 엄마가 눈물을 닦고 있었다.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뜨고 엄마를 쳐다봤는데,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나. 라고 내게 속삭였다. 극장을 나서는 길, 엄마는 영화가 너무 재밌었는지 같이 영화보러가자고 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그리고 잊고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렇지, 엄마는 이렇게나 극장가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지. 하지만 그 이후로 엄마와 단 둘이 극장을 찾는 일은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다. 엄마와 함께 볼만한 영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극장은 결국 사라질까? 극장을 어떻게든 되살리기 위해 메이저 멀티플렉스 극장의 합병, 구독형 서비스 등 여러 대안이 나오고 있지만 콘텐츠가 쏟아져나오는 요즘, 극장의 미래에 대해서 나 또한 비관적이다. 하지만 극장에 간다는 건 우리가 연결되고, 대화를 한다는 것이다. 기억을 만드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엄마와 ‘단종’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대화를 할 수 있게 만든 <왕과 사는 남자>가 나타난 것은 밤가운 일이다. 만듦새를 떠나서 우리가 극장에서 함께 웃고, 울 수 있는 영화. 그런 영화가 지속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면,
그래도 극장의 미래는 덜 비관적이지 않을까?
장항준 감독이 <왕과 사는 남자>에서 그린 단종과 엄흥도의 서사에서 내게 흥미로웠던 부분은 어쩌다 유배당한 단종을 모시게 된 광천골 사람들이다. 정성스레 지은 밥을 단종이 먹었을까 안먹었을까 매일같이 궁금해하던 사람들. 우리도 안부를 물어야한다. 극장이 잘 있는지. 소식을 묻지 않다가 어느 순간 사라져버리기 전에, 한때 우리에게 가장 소중했던 극장에게 안부를 물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