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왕과 사는 남자>_지키고 싶은 것을 지켜내는 역사

by 도롱

by 퀴어씨네클럽

<왕과 사는 남자>를 보고 한 사람이 떠올랐다. 노무현 대통령. 영화를 본 관객 수가 1,300만 명이 넘었으니, 웬만한 주변 지인들은 다 봤을 텐데 ‘노무현’이라는 이름을 언급하는 사람은 없었다. 내가 또 영화를 잘못 본 걸까? 인터넷에 관련 글을 검색했다. ‘노무현’과 영화를 연결한 해석이나 인터뷰는 찾을 수 없었다. 그때 몇몇 반가운 글들을 발견했다. 영화와 노무현 대통령과의 연관성을 적어놓은 커뮤니티의 짧은 글이었다. 그 글에서는 단종의 측근이 역모로 몰리고, 단종이 강등되는 과정이 노무현 정부 당시 측근들이 검찰 수사를 받으며 결국 칼끝이 대통령에게 향했던 상황과 닮아있다고 했다. 이후로도 비슷한 글들을 몇 개 더 찾을 수 있었다. 그래, 나만 영화를 보고 그를 떠올린 게 아니었다. 그때 나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글을 써보자고 마음먹었다.

왕사7.jpeg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서


그런데 사실 나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집권 당시 중학생이었고, 정치에는 관심이 없었다. 특히 나의 고향은 보수 성향이 강한 지역이어서 진보 대통령을 비난하는 말들이 넘쳐났고, 그 속에서 나는 더더욱 관심을 두지 않았다. 대통령이 서거한 이후, 한참이 지나서야 시사 프로그램과 다큐멘터리를 통해 그의 삶과 업적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 뿐이다.


그런 내가 왜 그에 대해 쓰려하는 걸까.


대통령의 서거일을 검색해본다. 2009년 5월 23일. 그날을 떠올려 본다. 뉴스는 붉은 헤드라인으로, 봉하마을 부엉이바위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반복해서 전하고 있었다. 이어 장례식 날짜를 검색한다. 2009년 5월 29일. 역대 최대 규모의 국민장. 영구차 행렬을 보며 울부짖던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전’ 노무현 대통령은 ‘고’ 노무현이 되었다.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 그 장면은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마주한 대통령의 죽음이었다.


그 기억들은 <왕과 사는 남자> 속 장면과 겹쳐 보였다. 유배된 단종은, 자신 때문에 측근들이 죽임을 당했다는 죄책감과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시달린다. 코너로 몰린 그는 절벽 위에 올라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다. 낭떠러지로 떨어지려는 순간, 그의 손을 붙잡는 누군가. 마을 촌장 엄흥도에 의해 단종의 목숨은 가까스로 구해진다. 살아남은 단종은 마을 사람들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가기 시작하고, 그 덕에 마을의 삶은 조금씩 나아진다. 단종의 곁에는 그를 지키는 엄흥도와 마을 사람들이 있었다. 그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곁에는 누가 있었을까. 그가 떨어질 때 손을 잡아줄 단 한 명만 있었어도 살았을 텐데.


비극적으로, 백성이 지켜낸 단종의 삶도 오래 이어지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순간을 끝까지 곁을 지킨 사람들이 있었다. 역모죄로 사약으로 죽임을 당할 위기에 그는, 엄흥도에 의한 존엄사를 선택한다. 그리고 역적들에 의해서가 아닌 울부짖는 백성들에 의해 그의 마지막은 지켜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장면은 대통령 국민장에서의 울부짖는 국민들의 모습과 겹쳐보였다.

왕사8.jpeg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서


우리는 재현된 영화를 통해 비극적인 역사의 반복을 지켜본다. 영화를 통해 지키고 싶은 걸 끝내 지켜내지 못한 역사의 반복과 반목들을 지겹도록 보아왔다. 이제는 지키고 싶은 것을 끝까지 지켜내는 역사의 재현을 보고 싶은데. 하지만 그 희망은 바람일 뿐,


막연 하기만 하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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