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1 돌아온 까치발의 추억
까치는 길조. 행운의 상징이다. 성인이 되고 처음 까치발로 걸었던 때를 기억한다. 이른 새벽 교내 편의점 오픈을 담당했던 아르바이트생 시절. 수업 준비보다 먼저 했던 건 까치발로 기숙사 방을 돌아다니며 출근 준비를 하는 거였다. 생각해보면 그때만큼 그렇게 꾸준하게 출근에 진심이었던 적이 있었나 싶다.
얼마 전 나는 다시 까치발로 걷기 시작했다. 손가락 열 개를 접고 다시 펴 세도 모자란 내 밥줄의 행선지. 이번에는 에이전시다. 출근 준비가 아닌 출근을 해서 퇴근할 때까지, 입사 후 나흘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까치발로 걸어 다녔다. 백여 명이 근무하는 직장인데도 타자 소리, 한숨 소리만 타닥타닥 하아하아 울려 퍼지는 이곳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이전 직장을 그만두며 발이 맞지 않는 서울을 떠나 살아보려고 했지만 코로나19를 앓은 3월 이후 좀처럼 어떤 의욕도 나지 않았다. 이 생각 저 생각 들쳐업고 방 안에 드러눕는 날들이 지속됐다. 휴식의 효과도 잃어버린 채 반년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주머니 사정에 떠밀리듯 답을 구하기 시작했다. 그 답은 역시나 출근이었고, 이번엔 이곳으로 흘러 들어온 것이다.
입사 소식을 듣고 새 학기 증후군을 앓는 아이처럼 2주를 지냈다. 낮에는 매미들이 울고 저녁에는 귀뚜라미가 울기 시작한 시기. 출근을 앞두고 청귤 10kg를 받아 한 알 한 알 정성껏 닦고 썰고 설탕에 재워 두었고, 나만 알 정도로 거주 공간 내부에 약간의 변화를 주었다. 출근 전날까지 치우고 또 치우고 마침내 위치를 바꾼 침대에서 머리 방향을 바꾸고 누워 자고 일어났다.
다음 날, 아무리 좋은 구두를 신어도 구둣발에 어울리지 않은 나의 걸음걸이가 양발에 큰 물집을 만들어 터뜨리는 내내 까치발을 멈추진 못했다. 까치가 길조이자 행운의 상징이라면 내 두 발에 실린 마음도 잘해보자는 다짐일 텐데. 다년간 무기력하게 지내며 체중만 늘어난 탓에 하루하루 중심잡기가 참 어려운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이럴 땐 과거의 경험에서 힌트를 구한다. 좋았든 싫었든 그 경험이 지금의 파장을 만들었으니까.
긴장과 걱정으로 심신이 피폐해질 때면 점심시간에 밥을 거르고 낙산공원과 창경궁에 걸어갔던 첫 직장 시절. 그날은 여름 지나 막 가을이었고, 창경궁 벤치에 앉아 나무 주변을 걷던 까치 한 마리와 마주했다. 나무와 나무 사이로 들어온 볕을 받아 한층 더 깊고 푸른빛을 띠게 된 까치의 날개를 기억한다. 쪽빛에 가까운 날개를 퍼덕이며 까치가 나무에 오를 때까지 모든 생각에 힘을 풀던 그 순간처럼. 열심히 살아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미리 치이지 않고 나는 내가 아주 잠깐의 고요를 소중히 대하길 바랄 뿐이다.
추신, 안녕하세요. 만물박사 김민지입니다. 부지런히 시를 써야만 시인이라고 생각하는데 레터를 못 보내고 있던 사이 저 자신 시인과 라임만 같은 에이전시인이 되고 말았네요. 앞으로는 주 1회 에이전시인이 된 시인 이야기를 연재하려고 해요. 달고 짜고 매운 음식들을 즐겨 찾으면서 이제라도 건강한 음식을 먹어야겠다 하고 오래 못 가 다시 굴레로 돌아오는 현대인이라면 공감할 만한 수기들이 모이지 않을까 싶어요.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는 시트콤 같을 때가 많을 거예요. 기대해주시고, 틈틈이 언제든 어딘가에 발표할 작품들도 열심히 쓰겠습니다. 구독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