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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쎄 May 03. 2021

일 | 변화가 필요한 때에 무소속을 선택할 용기

경의 일


✨무소속 8개월

✨광화문역

✨일





초행길을 갈 때면 나는 지도 앱부터 확인한다. 어떤 길로 가는 게 가장 최적이며 소요 시간은 어느 정도고, 가는 도중에는 어떤 이정표가 있는지 알아본다. 다행히 지도는 십중팔구 맞는 길을 알려주곤 한다. 아주 드물게 길을 잃는다면 근처에 있는 사람에게 묻거나 도로 표지판을 살피면 된다. 이 과정은 일의 행로(커리어 패스)와도 엇비슷하다. 지도 앱이 없다는 것만 제외하면 말이다.


경의 길 찾는 방식은 자신의 발이 어떤 모양인지 간파하는 게 먼저다. 그런 뒤에 앞서간 사람의 흔적, 그중에서도 자신과 비슷한 발자국을 찾는다. 혼잡한 발자국들 가운데 그걸 찾아내려면 한참 서 있을 수밖에 없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그 길은 과연 맞을지 두려울 법도 하다. 두려움이 일 때 경은 움츠리기보다 다른 위치에 선 사람들로 시야를 넓히며 나아갈 동력을 찾는다.


경과 나는 <빌라선샤인>이라는 접점에서 만났다. 각자 발 모양도, 가던 길도, 심지어 구사하는 언어도 달랐지만, 무소속인 서로를 궁금해했다. 다르기 때문에 전에 없는 자극을 받았다는 게 정확할 테다. 그로부터 3개월 뒤, 일의 범위도, 공간의 범위도 내부에만 가두지 않고 ‘외부로 웹으로’ 확장하고 싶은 사람, 경을 만났다.






공간의 의미를 바탕으로, 기획과 디자인을 하나로 연결할 수 있는
‘공간 커넥터’ 신경입니다.





일하는 나를 키워드로 표현해볼까요?

헤르미온느가 되고 싶은 다능인이요. 욕심이 많고 완벽주의적인 성향이 있어요. 꼼꼼하고 디테일한 편이에요.


저희가 빌라선샤인 시즌6 때 처음 만났어요. <내 일 스스로 인터뷰> 프로그램부터 본인의 언어로 자신의 이야기를 잘 풀어내는 분이라고 느껴왔어요. 이번 인터뷰 역시 ‘일’을 주제로 고르셔서 경님답다는 생각이 들었고요(웃음). 경님의 삶에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듣고 싶어요.

‘일’은 제게 애증 관계 같아요. 돈, 성장, 좌절, 기쁨, 슬픔, 가능성, 재미, 인간관계, 의미 등 일을 통해 모든 걸 얻었어요. 제 삶에 일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가 없어요.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일의 범주와 제 범주가 달라서인 것 같기도 해요. 한국에서 흔히 말하는 일은, 회사 또는 수익성이 기준이에요. 그러니까 일은 당연히 재미없는 것, 괴로운 것, 그리고 회사 얘기가 되는 식이죠.

작년 연말에 SEESO 박병규 대표님이 KT&G 상상플래닛 <제3회 상상 Summit–사회혁신가를 위한 도시> 강연에서 하신 말씀 덕분이었어요. ‘일’이라고 정의하는 범주에 대한 제 생각은 넓었는데, 말로 풀어내는 데 큰 역할을 했죠. 강연 내용과 제 생각이 버무려지며 내린 결론은 이거예요. 일을 회사라고 생각하지 말고 프로젝트라고 생각하면, 회사 밖에서 하는 모든 것이 다 일이 될 수 있다는 거죠. 집안일도 일이라고 부를 수 있고, 내 삶을 구성하는 모든 행위가 일이에요. 단지 수익이 발생하느냐‧하지 않느냐, 재미를 얻느냐‧얻지 못하느냐, 성장하느냐‧하지 못하느냐, 루틴한 일이냐‧스페셜한 일이냐는 차이가 있을 뿐이죠. 그러니까 저는 모든 것이 다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일을 통해 얻는 것으로 꼽아주신 가치 중에 성장, 재미, 의미가 경님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초년생 때부터 일에서 얻고 싶다고 쭉 생각한 건 성장이에요. 일을 알아가고 경력이 쌓이기 시작하면서는 의미와 재미의 비중이 커졌고요. 김나이님의 《당신은 더 좋은 회사를 다닐 자격이 있다》라는 책에 6가지(성장, 보상, 워라밸, 의미, 재미, 인간관계)가 나오는데 그걸 본 후로 항상 이를 기준으로 생각해보게 돼요. 여기서 보상은 보수가 아닌 종합적인 것을 뜻하고, 워라밸은 자율도의 개념으로 보시면 돼요. 저는 돈 때문에 일을 선택한 기억이 그다지 없어요. 다만 노력한 만큼의 보상이 없으면 고민하기 시작하죠. 성장하지 않고, 재미가 없고, 의미도 없는데 보상마저 크게 없는 것 같네. 그렇게 정이 떨어질 즈음이 그만둬야 하는 타이밍이에요.


그럼 선택의 첫 기준은 재미인가요?

음, 재미가 먼저 같아요. 그리고 재미를 좇기 위해 이를 보충할 만한 다른 근거들을 수집해요. (예를 들면요?) 이걸 선택하면 내가 어떤 면에서 성장할 수 있겠다, 어떤 부분을 배울 수 있겠다, 돈은 어느 정도 되니까 그 부분은 어떻게 할 수 있겠다, 인력 풀을 전보다 얻을 수 있겠다… 같은 부분을 생각해봐요.


선택 이후에 얻게 될 것들을 전방위적으로 보시네요.

오래 일해야 하는 거라면요. 이전에는 하나의 일에서 여러 가지를 얻고 싶었는데, 요즘은 마음을 내려놓고 하나의 일에서 하나만 얻어도 되는 게 아닐까로 달라졌어요.






여태 어떤 일을 해오셨나요?

2014년부터 공간디자이너로 일했어요. 14년부터 18년까지 대학원 석사 과정에 있었는데, 지원금을 받아 해외 전시 프로젝트들에 참여했어요. 동시에 연구원이기도 했죠. 공간의 방향성을 담은 제안서와 프로젝트 계획서, 보고서를 작성했어요.

또 회사 두 군데에서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의뢰받은 공간의 배치와 콘셉트를 제안하고, 디자인하고, 협의해서 조율하고, 마감재를 고르고, 시공하기 위한 이미지와 도면을 작성해서 제출했죠. S.I.(Space Identity) 매뉴얼 북을 만들기도 했고, 시공 현장에서 디자인 의도에 맞게 시공되고 있는지 감리하기도 했어요.

공간과 무관한 일로는 수학 과외나 수학학원 보조 강사가 있겠네요. 그래픽 작업, 로고 디자인, 제품 사진 촬영 및 엽서 제작, 매듭 팔찌를 만들기도 했고요.


지금은 어떤 분야에서 어떤 업무를 하고 있나요? 이 일을 선택한 이유가 있을까요?

공간의 가치를 나눌 다양한 방법을 찾고 있어요. 제 커리어 키워드가 뭔지 고민해봤더니 ‘공간’이 가장 중요하더라고요. 다만 더 중요한 지향점이 있는지는 탐색 중이에요. <비전문가를 위한 공간 워크숍 시리즈>를 구상하면서 이 시리즈는 비전문가‧전문가 모두에게 필요하다는 판단이 들었어요. 얼마 전에 뉴먼소셜클럽 <공간 구상 클럽>으로 첫 시도를 시작했고요.

좋은 공간이 만들어지려면 좋은 디자이너가 필요하지만, 그전에 좋은 디자인과 전문가를 알아볼 수 있는 고객이 필요하잖아요? 고객 입장에서도 더 좋은 공간을 얻기 위해서는 공간에 대한 자신의 취향, 공간에 필요한 기능을 알아야 해요. 그래서 <공구클>에서는 실습을 해 자신의 공간 취향을 알아가고, 필요한 것을 명확하게 아는 힘을 기르는 것이 목표예요. 저는 공간에 관해 다양한 대화를 나눠보면서 숨은 니즈를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요. 최소한 커뮤니케이션 스킬이라도 좋아지겠지 하면서요(웃음).

또 삶과 일의 방향을 찾고 지금을 기록하고 싶어 글을 쓰고 있어요. 이 글들이 퍼스널 브랜딩의 시작점이자, 제 일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닿기 위한 점이 될 거로 예상해요. 기회가 된다면 책을 내거나 다른 일로도 연결되지 않을까 싶어요. ‘엄마 브랜딩’도 있어요. 엄마를 인터뷰하며 이야기를 발굴하고, 사진이나 영상 촬영한 걸 편집해서 블로그에 쓰고, 서류 작업 및 시도해볼 새로운 채널을 찾는 일까지 다양하죠. 저희 엄마가 하시는 일의 가치와 지향점을 언어로 표현해서 사람들이 공감할 이야기로 만들고, 오프라인 매장과 온라인을 연결해보려 해요. 궁극적으로 제 일과 연결될 고리를 매번 고민하고 있어요. 무소속이 된 김에 마음의 짐도 덜 겸 시작했더니, 숨어 있던 엄마의 일 이야기를 알게 되면서 정말 잘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커져요. 엄마의 삶과 일이 튼튼해져야 제 삶과 일에도 힘이 될 거로 생각해요.


나다운 삶을 위해 일은 어느 정도 비중을 차지하면 좋을까요?

제겐 이게 고정돼있지 않아요. 컨디션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 달라요. 제 소개를 ‘헤르미온느가 되고 싶은 다능인’이라고 했듯 하나만 붙잡고 뭔가를 해온 기간이 그리 길지 않아요. 더욱이 하나만 하면 150~200%를 쏟기 때문에 위험해져요. 앞선 경험으로 변하는 것들 속에서 변하지 않는 최소한의 시간을 확보해두되, 나머지는 다양하게 변동을 주며 살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어요. 애초에 여러 갈래로 일을 분산시켜야 하고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구성해가면서 지내야 하는 사람이었던 거예요.

그러면서 수익이 0인 건 별로예요. 꼭 돈이 아니더라도 어떤 형태로든 내가 일한 만큼의 보상이 없다면 그 일을 지속할 에너지가 떨어져요. 나를 계속 발전시키고, 미래에 다른 방향을 꿈꿀 수 있는 일이 필요해요.


경님은 안정을 먼저 추구하시는 편은 아니신가 봐요.

최근에 한 DISK 검사 결과가 떠오르네요(웃음). 선택하는 행동 유형을 알려주는 검산데, D가 주도형, I가 사교형, C가 신중형, S가 안정형이에요. 저는 주도가 제일 많이 나왔고 사교와 신중이 비슷하게, 안정이 제일 낮게 나왔어요. 제 나름대로는 안정적이라 여겼는데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나 봐요. 해설로는, 제가 두려워하는 것 중 하나가 지루함이라고 하더라고요. 안정되면 지루해지겠죠. 아이러니하게도 저는 큰 변화를 바라지 않았어요. 회사 두 곳 모두 오래 다닐 거로 예상했는데 안 그랬던 걸 돌이켜보니, 내가 더는 배우지 않고 정체된다는 느낌이 들면 오히려 불안했더라고요.


일 영역에서 그 부분이 명확하게 드러났네요.

저는 현재의 역량으로 가능한 일보다 조금 어려울 때 제일 성취감이 큰 사람이에요. 부족한 갭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보이니까 이걸 배워야겠다 마음먹고, 이걸 채워서 해냈을 때 성취감이 들죠. 갭이 너무 크면 시작도 하기 전에 지쳐버리니까 안 되고요. 갭이 어느 정도 있을 때 비로소 움직이는 동력이 돼요.


일할 때 성장을 중요시하는 부분도 이에 기반하지 않았을까요.

맞아요. 바로 해낼 수 있거나 목표가 능력보다 조금 낮다면 ‘이거 아무나 다 할 수 있는 건가?’ 하는 의심이 들어요. 환경은 그대로더라도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계속 바뀌는 걸 원하는 것 같아요. 일하는 데 있어서 계속 배우고 싶은 욕구가 있죠.


내가 보는 나의 강점과 약점을 알려주실래요? 일과 접목하면 어떻게 드러나나요?

여러 항목을 고려한 ‘종합적 사고’와 일하며 만들어가고 있는 ‘공간감’이 강점이라고 생각해요. 거기다 체계적으로 정리해 잘 보이게끔 작업하는 부분까지요. 종합적 사고, 공간감은 공간디자이너에게 필수적이에요. 여러 기능과 심미성, 다양한 사용자를 고려해야 하니까요. 정리하고 체계화하는 면모는 ‘S.I. 매뉴얼 북’ 작업을 잘 할 수 있다는 거죠. 공모 제안서를 작성할 때도 도움이 되고요.

약점은 제 몸에 둔해요. 힘든 강도를 넘어선 고통이 와야 알아차리는 것 같아요. 건강이 한번 훅 꺾이고 나니 이제 전보다는 알아차리지만요. 이 점이 완벽주의 성향과 만나면 저를 혹사하는 상황이 벌어지죠. 시간이 부족하면 필요한 것을 우선 하고 다른 건 넘어가야 하는데, 성에 차지 않는 부분을 챙겨보겠다고 밤새거든요.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제가 어려워하는 부분인데요. 처음 보는 분과 곧잘 대화하는 편임에도 일하다 부딪치는 일이 생길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소위 유하게 넘어가는 법이나 상대방의 감정이 상하지 않게 말하는 법이 제겐 어려워요. 어떤 그룹에 속했느냐에 따라 그 문화에 녹아들다 보니 유할 때도 있고, 직설적이고 목소리가 잘 커질 때도 있어요. 제 기준에서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고, 마음에 걸리면 안 하는 타입이라 일할 때 괴로운 상황들이 있었어요.






저희가 만날 곳을 정할 때 장소뿐 아니라 그 장소가 있는 지역에 대한 설명도 곁들여주셨잖아요. 경님이 공간에 대해 처음 관심 두고 인지하게 된 순간이 궁금하더라고요.

사실 어렸을 때 기억이 잘 안 나서 첫 시점이 어땠는지는 모르겠어요. ‘나는 공간에 대해 이런 기억이 있구나’ 정도로 남아있는데, 대학교 첫 설계 수업을 계기로 공간에 관심이 커진 건 확실해요.

2학년 1학기 때 첫 설계 수업으로 만난 교수님이 공간감이 있다며 저를 무척 칭찬해 주셨어요, 그때 인정욕구가 발동했죠. 가족들은 몰랐지만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 이 일을 해도 되나보다 하는 생각이요(웃음). 그때부터 공간에 관해 생각해보는 재미를 알아갔어요. 


공간감이란 건 후천적으로 만들 수 있는 걸까요? 타고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제가 학생 때는 그렇게 칭찬받았는데 막상 그 교수님이 디렉터인 첫 회사에 들어가고서 잔뜩 주눅 들었어요. 저보다 난다긴다하는 선배가 가득했거든요. 그리고 사회에는 디렉션을 명확하게 주려고 ‘이렇게 바꿔볼까? 이렇게도 그려봐’라고 가이드를 해주는 사람과, ‘뭔지 모르겠는데 뭔가 이상해’라는 식으로 설명을 못 하는 사람이 있어요. 후자일 때 그 ‘뭔지’는 스스로 찾아가야 하고요. ‘뭔가’를 찾아가는 게 힘들지만, 그보다 분하고 자존심 상해서 울고 그랬어요.

공간감은 사실 치수에 대한 감이기도 해요. 지금 있는 공간을 실측하면서 익혀가는 거죠. 내 앞에 책상이 있다면 줄자로 바로 재보는 식으로요. 이외에도 선배들의 파일, 사진 등을 보면서 눈대중과 실측 사이의 감을 자꾸 익혀갔어요. 사진은 광각이라 더 넓어 보이는 걸 고려해가면서요. 결국에는 공간을 많이 그려보고 많이 보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좋다고 하는 공간을 자주 찾아가 보고, 실제로 돌아다니면서 느껴보고.


인상적인 대목은 실측이에요. 많이 보고 느끼는 건 결국 주관적으로 받아들이는 건데 실측은 객관적인 거고, 이 감각을 몸으로 익히기까지 계속해본다는 거잖아요.

트레이닝이죠. 가끔 공간감이 타고난 것 같다고 느끼는 분도 있어요. 아티스틱한 디자인을 뽑아내시는 분을 볼 때 그래요. 불규칙적인데 예쁜 것! 제가 못하는 영역이거든요. 감, 정확히는 자라온 환경이나 경험, 세월을 무시할 수 없는 거겠죠. 그들은 그 모든 것이 쌓여온 거고, 제 환경에서는 그런 디자인보다는 데이터로 뽑고 쌓아온 감이 더 크고요. 일하면서 이런 것들을 배워왔다고 생각해요.


전공하신 실내건축디자인과 주 업무인 공간디자인은 자연스러운 연결처럼 보여요.

첫 회사에서 저를 공간디자이너라고 소개하는 게 맞는지 자주 고민했어요. 왜냐면 공간 기획, 디자인, 연구, 해외 전시 등 공간을 키워드로 뒀을 뿐이지 할 수 있는 다양한 일을 해왔거든요. 디자인만 하는 건 제게 재미없는 일이었고요. 첫 회사에서는 기획, 디자인, 시공 체크까지 전 과정에 참여할 수 있었고, 두 번째 회사에서는 후반 작업의 비중이 컸어요. 각기 다른 경험을 통해 후반 작업만 하는 건 나와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어요.

최근에는 공간디자이너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늘었어요. 대체로 공간 코디네이션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아, 저를 표현하는 단어로 부족하다고 느껴서 다른 말을 찾았어요. 현재는 ‘공간의 의미를 바탕으로, 기획과 디자인을 하나로 연결할 수 있는 공간 커넥터’라고 저를 소개해요. 이게 저를 잘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단순히 누군가 기획해둔 것을 도면으로 그리는 역할만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어떤 공간이 필요하고, 어떤 프로그램을 넣어서 운영해야 하는지 짜고, 공간디자인은 어떤 방향이고, 콘셉트는 어때야 하고, 배치는 어떤 식이어야 하는지 리드하고 기획하는 일을 하고 싶어요.


대중적으로 통용되는 공간디자이너의 모습이 아니라 자신을 담은 새로운 이름을 만들어 가시는 게 멋져요.

공간디자이너를 전문가로 안 느끼시는 분들이 많다는 느낌이 들곤 해요. 언론에서 자꾸 공간디자인을 코디네이션의 개념으로 비추고, 뭐든 다 쉽게 생각하는 풍조가 이에 작용하는 듯해요. 공간디자이너도 쉽게 해볼 수 있는 산업군이라고 말이죠. 물론 주거공간은 그렇게 접근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공간디자인은 건축과 실내건축 사이에요. 반면 공간 코디네이션은 마지막에 데코레이션하는 거고요. 통틀어보면 같은 범주의 일이지만 오피스나 프로그램을 가진 공간은 전문가가 필요하잖아요. 그에 필요한 전문가가 바로 공간디자이너예요.

요즘은 자신의 취향을 아는 게 중요한 시대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자신의 공간 취향을 알기보다 브랜드에 휩쓸려가는 느낌이랄까요? 사람들이 공간을 보는 눈높이가 높아져야 공간디자이너도 더 좋은 공간을 제안할 수 있어요. 좋은 디자인이 나오려면 좋은 디자이너가 필요하고, 그에 앞서 그 디자인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거든요.





취향의 공간을 스스로 알아갈 수 있게끔 <공간구상클럽>을 진행하시잖아요.

어떤 스타일의 카페가 붐이 일었다가 가라앉고, 다시 다른 스타일의 카페가 붐이 이는 식으로 반복되는 패턴이 보여요. 또 나는 이런 공간이 좋은데, 늘 찾아가야 하고 실제 내가 머무는 공간, 즉 집이나 작업공간, 사무실 등은 그렇지 않다는 갭이 생겨요. 그게 괜찮을까요? 그럴 때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건 뭐가 있는지 생각해볼 수 있는 워크숍이 있다면 유용하겠죠. 내 취향 공간을 알아가는 데에 도움 주는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결론으로 시작하게 됐어요.


어떤 내용인지 알려주실래요?

최근에는 ‘어떤 가구를 버려야 될까? 누가 어느 방을 써야 할까?’를 주제로 진행했어요. 한국은 집 구조부터 방을 사용하는 사람이 구분되어 있어요. 선택권이 보통 보호자(부모님)에게 있거든요. 근데 가족 구성원에 따라서는 그게 최적이 아닐 수 있어요. 안방이라고 무조건 부부가 사용해야 하는 게 아니고, 내가 쓰는 방이 나를 위한 방이 아닐 수도 있으니까요.

그리 접근해본다면, 가장 먼저 사용자인 나에 관해 생각해봐야 해요. 만약 같이 사는 가족이 있으면 가족과 같이 봐야죠. 나와 가족에 관해 생각해본 뒤에 각자 공간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 알아보고, 핵심 문제가 뭔지 파악해서 가구 배치를 달리 해보는 거예요.


마치 집이란 공간을 누구 기준으로, 어떻게 바라볼지 질문하는 과정 같네요.

워크숍의 커리큘럼이 설계수업과 비슷해요. 궁극적인 목표는 전문가에게 찾아가서 뚜렷하게 내 취향을 요구할 수 있는 사람이거든요. 대화할 정도의 용어는 알려드리되 전문용어나 툴을 많이 언급하진 않아요. 배운 내용을 자신의 공간에 적용하고, 전문용어를 모두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쉽게 바꾼 것뿐이에요. 그보다 내 공간을 생각해보는 시간이 더 중요하죠. 저는 그저 제안할 따름이에요. 이렇게 저렇게 할 수 있고, 이렇게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그러면 팀원들은 자기 생각을 숙성해보는 거죠. 진짜 그런지, 또 다른 발견이 있는지. 기본적으로 내 삶을 위해서 공간을 달리 보는 과정이 필요한 거예요.

설령 전문가를 찾더라도 공간의 요구사항이 명확할 때 더 유용해요. ‘저는 이러이러한 게 공간 만족도가 높아요, 이런 건 공간 만족도가 떨어져요, 이건 꼭 필요해요’ 같은 부분이 뚜렷해야 전문가도 이해가 빨라요. 반대 상황도 그래요. 전문가가 좋은 예시를 보여줘도 선택하지 못하거나 만족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죠. 자기 취향을 모르니까요.





영향받은 사람이 있으신가요.

있죠. 같이 일한 사람들로부터 받은 좋은 거, 나쁜 거 다 있는 거 같아요. 특히 졸작 지도교수님과 석사 지도교수님께 받은 영향이 커요. 석사 지도교수님은 공간감이 좋다고 칭찬해 주신 분이자, 첫 회사의 디렉터이기도 한데요. 두 분은 공통으로 “넌 너무 욕심이 많아. 모든 일에 100%로 전력투구하면 금방 지친다”라고 말씀하셨어요. 저는 항상 일을 우선순위로 두고 제 에너지를 최대치로 쏟는 편이에요. 일할 때 전투적으로 팀 프로젝트에 임하니까 모든 일에 전력으로 덤벼들고, 잘 안되면 분하다고 느꼈어요. 그러다 지치기도 했고요. 이런 부분이 저를 성장시키기도 하지만, 과한 정도를 넘어 자신을 힘들게 하기도 해요. 그런 제 모습을 알고 나니 저를 정말 잘 파악하고 해주신 말씀이라는 걸 알았어요. 항상 일이 막히거나 일 환경에 전환이 생길 때 두 교수님을 찾아뵙고 말씀드리곤 해요.

최근에는 빌라선샤인에서 만난 뉴먼들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아요. 이 그룹의 분위기, 공유하는 생각들이 제게 영향을 준 거예요. 그 덕분에 제 자리로 다시 올 수 있었어요. 뉴먼분이 제게 해준 인상적인 말이 있어요. “기본적인 룰이 있는 판 위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걸 꿈꾸시는군요.” 그게 모든 일에 다 적용되는 것 같아요. 기본적인 룰이 없으면 아주 힘들어하고, 자율성이 보장돼있지 않으면 무척 힘들어해요.


한 번 다치시면서 몸의 언어를 인지하기 시작하셨다고요.

발목을 몇 번 다쳤어요. 쉬는 시기를 놓쳐서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고 불편한 감이 남았죠. 도수치료를 받는 도중에 제대로 걷지 못하니까 살이 찌고, 호르몬 불균형인 와중에 일은 또 미친 듯이 하니 딱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20대 때는 호르몬 불균형도 몸이 버텼던 건데, 이제는 그렇게 깨진 게 원래대로 돌아오기 힘들어요(웃음). 생리통도 없었는데 생기고, 불순도 점점 심해져요. 그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해서 내가 일에서도 스트레스받는데 건강 때문에도 스트레스를 받아야 해? 이건 노력하면 나을 수 있으니까 이걸 먼저 다스리자 하고 마음먹었어요. 그게 작년의 큰 보상이었어요. 이게 없었다면 작년을 버텨내지 못했을 거예요. 왜냐면 작년은 코로나를 비롯해 다른 문제들이 겹쳐서 일에서 보상이 있어도 소모됐다는 느낌이 컸거든요. 이런 보상마저 없었다면 무너졌을지도 몰라요.


경님은 마음가짐에 따라 모든 게 일이 될 수 있다고 하셨잖아요. 일과 취미가 구분되나요?

시기마다 취미가 다른 것 같아요. 일단 접근할 때는 취민데 거기서 일에 인사이트를 얻으면 일이 되는 거라고 봐요. 그런 점에서 내가 어떤 모드인지가 취미냐, 일이냐를 가르는 경계 아닐까요? 활동으로 구분하는 건 의미 없다고 생각해요. 친구랑 전시를 보러 갔다가 나중에라도 일에 쓸 수 있는 아이디어가 생각난다면 일로 넘어가는 것처럼요.

내가 지금 당장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 연결하지 않는다면 그 활동은 취미인 거죠. 전시를 보든, 티브이를 보든, 콘텐츠를 접하든 다. 마찬가지로 글 쓰는 것도 누군가에겐 취미가 될 수도, 일이 될 수도 있어요. 내가 이 글을 어떤 마음으로 쓰고 있는지, 어떤 마음으로 쓰기 시작했는지 자문해보면 알잖아요. 내 얘기가 하고 싶어서 쓰는 글이면 취미에 가까운데, 돈을 받고 쓰는 글이면 일의 마인드로 임하는 거예요. 내 얘기를 풀어낸 글이 나중에 출판으로 이어진다면 곧 일로 전환이 되는 거지만, 글을 쓰던 순간에 내가 무슨 마음으로 썼는지 더듬어 보면 반대겠죠. 결국 어떤 마음으로 접근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봐요.


그럼 쉰다고 느끼는 순간이 언제예요?

여행 갈 때가 가장 쉬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고, 다음으로는 예능 프로그램을 볼 때요. 쉼에 가깝기는 한데, 둘 다 새로운 걸 본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어요.


무소속으로 보내는 시간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진로 탐색기요! 속한 조직에서 오너십과 소속감, 책임감으로 150% 이상 과도하게 쏟았기 때문인지, 회사 다닐 땐 현재에 충실했어요. 지금은 과거 행적을 돌아본 뒤에 현재 나의 상태를 파악하고, 다음 방향을 재조정하는 기간이랄까요. 있어 보이게 말하자면 이런데, 사실은 회사 다니면서 다른 방향 탐색을 못 하니까 변화가 필요한 시점에 무소속 시간을 보내며 탐색한 것에 가깝죠.






✨경님을 더 알고 싶다면

spacetraveler.oopy.io

https://blog.naver.com/kukugia

https://brunch.co.kr/@spacetraveller



인터뷰, 촬영   미란
디자인    로고블랭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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