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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쎄 May 10. 2021

취향 | 예쁜 것을 추구하다 보니 다다른 곳

수희의 취향


✨무소속 3개월

✨신논현역

✨취향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단숨에 생겨나지 않는다. 본능적으로 이끌리는 듯해도 주변에서 건넨 몇 마디, 스치며 봐온 모습, 몇 번의 계기가 마음을 촉발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그걸 좋아해’라고 말하기까지 주변의 영향을 받는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셈. 다만 그 시간은 누군가에겐 찰나고 누군가에겐 몇 년에 걸쳐있기도 한다. 일종의 연이다, 덕연(-緣).


나는 ‘취향’하면 덕질이 자동연상된다. 취향을 좇아 파게 된 것들이 삶 곳곳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 아이돌이라는 뿌리는 시간과 돈, 체력을 자양분으로 무럭무럭 자라 다양한 가지를 뻗었다. 그 가지에서 맺은 열매는 바로 팬들과의 관계다. 이른바 트친(트위터친구)과 관계하면서 덕질의 모양과 두께가 아주 달라지기 시작했다. 혼자 깊게 구덩이를 파고 있다가 바로 옆에서 똑같이 구덩이를 파고 있는 사람을 발견한 기분.


이번에는 같이 덕질하는 사람들의 영향으로 좋아하는 영역을 점차 확장해가는 수희를 만났다. 한 사람이 깊게 파고 있는 무언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사람이 보인다. 어떤 성향인지, 어떤 데서 즐거움을 느끼는지, 그로써 알게 된 모습은 어떤지. 또 그 사람 주변에 머문 사람들도 보인다. 어떻게 만났고, 어떤 시간이 쌓였으며, 어떤 게 남았는지. 그와 대화하며 느꼈다. 좋아하는 마음은 힘이 세다. 그리고 그 힘은 한곳으로 결집하는 동시에 확장되기도 한다. 






덕질도 인생도 맥시멀로 사는 
‘그래픽 디자이너’ 서수희입니다.





현재 무소속으로 지내시잖아요일할 때와 비교해서 취향을 맘껏 누리면서 지내고 계시나요?

완전히요(웃음). 우선 시간이 많으니까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있어요. 매일 집에서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보고 책 읽으며 지내요. 일하면서는 책을 안 읽었는데 요즘은 조금씩 들춰보고 있어요. 또 여행을 좋아하니까 조심하며 주말마다 경기 외곽이나 인천으로 나가요(웃음). 마음 같아선 2~3달 여행 가고 싶은데 코로나19 때문에 당장은 갈 수 없잖아요.


우리 삶에 코로나19가 굉장한 변수로 작용했죠일상에서나 일에서나그걸 1년 정도 겪으니까 요령이 생기는 것 같아요

작년에는 친구들도 거의 만나지 않고 지냈는데 최근에는 조심하면서 간혹 만나요. 주로 친구들 시간에 제가 맞추죠.


취향과 덕질을 구분한다면각각 어떤 의미 또는 각각 어떤 영역인가요?

음… 취향은 감성적인 부분, 덕질은 행동적인 부분 같아요. 취향이 ‘아 이런 느낌이 좋아’라면, 덕질은 ‘아 난 이걸 해야겠어’에 가깝죠. 취향은 제 덕질의 방향을 바꿔주는 키라고 생각해요. 취향은 타고 나기도 하고 주변 환경에 의해 바뀔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니 저의 취향을 덕질하고, 덕질에 취향이 반영되는 거라고 할까요?


수희님은 덕질하는 게 있나요?

덕질하는 게 자잘하게 많아요. 워낙 좋아하는 게 많다 보니까 나중에는 이것저것 같이하게 되더라고요.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을 보고 여행을 가고 사진을 찍고 컵을 사 모으는 등 소소하게 좋아하는 걸 누리면서 지내고 있어요.

요즘 가장 관심 있는 건 조승우 배우와 카메라 아닐까 해요. 조승우 배우는 오래전부터 좋아해서 필모그래피 전부 다 봤어요. 그중 드라마 <비밀의 숲> 시즌 1을 참 재밌게 봤어요. 그때부터 다음 시즌에 기대감이 컸는데, 시즌 2를 보면서 배우에게 제대로 감겨버린 것 같아요. 필모를 재탕하고, 뮤지컬을 보고, 드라마를 챙겨보는 중이에요. 최근작인 드라마 <시지프스 : the myth> 비하인드 컷부터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을 거의 다 찾아봤죠. 다음으로 카메라를 샀어요. 큰맘 먹고 질렀는데, 매일매일 어디로든 나가고 싶을 만큼 아주 좋아요! 사진을 많이 찍어서 나중에 엽서 또는 패브릭으로 만들 거예요.


조승우 배우 필모에서 가장 좋았던 작품이 있나요

뮤지컬은 많이 못 보고 주로 영화와 드라마 위주로 봤는데요. 저는 영화 <클래식>이 좋더라고요. 제목처럼 정말 클래식하고 전형적인 내용으로, 작품 속 조승우가 정말 어려요. 연기도 탁월하게 잘하고요.      


종종 드씨 듣는다고 하시잖아요그건 뭘 얘기하는 거예요?

드라마 CD를 드씨라고 불러요(웃음). 말 그대로 글로 만들어진 상황들을 성우들이 연기하고 소리로 구현해서 CD에 담은 거예요. 화면만 없는 드라마죠.      


오디오북 같은 개념인데 드씨라고 통칭해 부르는군요.

네. 드씨가 좋은 게, 다른 일을 하면서도 계속 들을 수 있어요. 책 읽거나 영화 보는 건 동시에 못 하잖아요? 집에서 이어폰 꽂고 청소하거나 설거지하는 등 잡일 하면서 들을 수 있어서 좋아요.


숨 쉬듯이 보고 들으시네요

처음 듣기 시작할 때는 ‘책만으로 충분히 재밌는데 이렇게 듣는 게 과연 이해될까?’ 싶었어요. 막상 들어보면 이해가 잘 되고 스토리 따라가는 데 문제없어요. 알아보니 드씨는 책과 달리 대본을 각색한대요. 오디오 드라마에 맞게 재구성하는 거니까 연기와 내레이션이 잘 어우러지죠. 그 덕분에 성우들을 많이 알게 됐어요. 목소리에 매력을 느껴서 성우들의 다른 작품들도 듣거든요. KBS라디오에서 오디오 드라마로 연재하는 장편소설 역시 재밌었어요.


수희님은 좋아하는 것을 통해 알게 되는 것과 하게 되는 것이 확장되시는 편인가 봐요무언가를 알아가는 데에도 체력이그러니까 에너지가 들지 않나요?

궁금해서 들었는데 재밌으니까 계속하게 되는 점이 큰 것 같아요. 고등학생 때 책 많이 읽잖아요? 소설류를 주로 접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오디오로 넘어온 거로 생각해요. 제게 드씨나 오디오 드라마로 접근하는 데는 문턱이 전혀 높지 않았던 거죠.


시간이 흐르며 새로운 매체가 등장하고그게 덕질의 또 다른 장르가 된 셈이네요.

그런 부분도 있어요. 소비할 때 과거보다 나이 제한은 없고 금전적인 여유는 있으니까 훨씬 쉽게 시도하고 접해보곤 해요. 




사진제공 수희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예쁜 걸 좋아했다고 말씀해주셨어요수희님 취향의 뿌리라고도 볼 수 있겠죠어린아이가 접하고 누릴 수 있는 문구류나 장난감에서커가며 만화(2D), 음악 등으로 뻗어 나가다 아이돌을 만나신 흐름에서 그게 보이더라고요수희님에게 예쁘다는 건 어떤 모습인가요?

일단 시각적으로 예쁜 게 예쁜 거죠. 밸런스를 중요하게 보고 전체적인 색감도 보는 편이에요. 어릴 때 좋아한 장난감들의 공통점이 알록달록하고 아기자기하거든요. 만화책도 눈에 보이는 밸런스나 색감에 끌려서 예쁘다고 느꼈던 듯해요. 액세서리류도 마찬가지고요.


덕질할 때의 나는 어떤 모습이에요?

일단 덕질에 대한 고민도 없고 거침없어요. 가질 수 있는 건 다 가져야 해요. 사고 싶은 건 돈이 있다면 무조건 사야 하고 고민이란 걸 잘 안 하는 거 같아요. 그리고 한번 빠지면 푹 빠져있어요. 말은 안 해도 온종일 좋아하는 것만 찾아봐요. 이게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어서 말은 잘 못 하지만요. 다들 제가 말을 안 하니까 어느 정도만 좋아하는구나, 아니면 얘는 모든 것에 관심이 없다고 여기는데 사실 덕질하느라 바빠서 말도 안 하는 거예요(웃음).


수집하는 마음에 관해 듣고 싶어요.

단순해요. ‘갖고 싶다.’ 예뻐서 갖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고 좋아하는 것에 소유욕도 있어요. 사람에 소유욕은 없지만, 물건에는 있는 편이에요.     


어릴 때부터요?

그랬던 것 같아요. ‘내 거’에 집착이 좀 있어요(웃음). 내 물건, 내 공간. 그래서 사 모으는 것도 있고, 대개는 여행 가서 사 오는 경우예요. 다만 아이돌 굿즈는 그다지 소유욕이 없어요. 제 기준에서 예쁘다고 여기지 않는 거죠. 사람과 관련된 물건을 가지고 싶다는 마음은 크게 없고, 예쁜 것만 소유하고 싶어요.


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해선지돈이 없어도 계속 좋아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항상 있어요수희님은 어떻게 보세요?

제가 좋아하는 것들은 돈이 없으면 다 못하는 것들이긴 해요. 만약 단순히 사람을 좋아하는 것에 그친다면 금전적인 여유가 없어도 가능하겠죠. 그거 말고 다른 매개체들을 좋아하면 금전적인 부분을 배제하지 못할 것 같아요.


꼭 사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기 때문인가요?

그런 것도 있지만, 의외로 돈이 없으면 포기가 빠른 편이에요.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좋아하기 때문에 금전적인 여유가 있을 때라야 막 쓰죠. 엑소 덕질할 때는 계속 일하고 있어서 써도 상관없었어요.

다른 장르를 예로 들어도 마찬가지일까요?

그렇겠죠. 가령 조승우 배우의 필모를 훑을 때, 지금 방영하는 TV 프로그램은 쉽게 볼 수 있지만 놓친 것들을 다시 보려면 비용을 지불해야 해요. 그러니 돈이 없으면 덕질에 제약이 있죠. 모든 덕질이 그런 듯해요돈이 없으면 좋아하는 것도 못 하고.





음악 쪽은 어때요?

여기서 예쁘다는 건 듣는 거겠죠. 제가 시각 다음으로 청각을 중요하게 생각하거든요. 소리에 민감한데 가사보다 일렉 기타 소리나 밴드 사운드를 중요시하는 듯해요. 처음 들었을 때 사운드가 좋으면 그냥 듣는 편이에요. 가사부터 보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가사를 전혀 안 봐요. 한국 곡이야 들리니까 가사를 아는 거고, 팝송은 멜로디가 좋다는 점에서 듣죠.


구체적인 장르로는 밴드, 인디, 락, 일렉트로닉을 좋아하셨다고요. 구체적으로 이디오테잎과 글렌체크, 트웬티 원 파일럿츠를 꼽으셨죠.

보통 페스티벌에 가면 EDM, 일렉트로닉, 밴드 사운드가 기본이잖아요? 물론 잔잔한 노래를 부르는 밴드처럼 다양한 장르가 있지만요. 그때 일렉 밴드를 많이 알게 됐어요. 예능 프로그램 <더 지니어스> 오프닝 아세요? 이디오테잎 곡으로 제일 유명해서 들어보셨을 거예요. 일렉이라고 해서 마냥 시끄럽지만은 않아요, 템포 정도죠. 특히 트웬티 원 파일럿츠는 내한공연을 포함해서 3년에 5번 정도 공연했기에 기회 생기면 보러 갔죠.


어떤 포인트에서 좋으셨나요?

트웬티 원 파일럿츠에 처음 빠지게 된 계기는 <지산 락 페스티벌>이었어요. 무명이라 아무도 모르는 밴드였는데요. 노래를 시작하니까 다들 그 무대로 달려갈 정도였어요. 정말 잘 놀고 재밌어서 노래만 듣기보다 공연을 꼭 봐야 해요. 뮤직비디오나 앨범 아트는 정적인 느낌이 강한데 무대는 또 달라요. 밴드 역시 한국에서 한 공연이 인상에 남았나 봐요. 그 뒤로도 내한 공연 또는 페스티벌 라인업에 꼭 들어가곤 했어요. 심지어 가사에 한국어도 넣었고요. 그 밖에 <재즈 페스티벌>,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 <월드 디제이 페스티벌>도 다니는 걸 즐겼어요.


정말 폭넓게 축제 자체를 즐기셨네요.

축제하면 술 같은 유흥을 자연히 떠올리잖아요? 저는 술을 아예 안 마셔서 그런 유흥을 즐기진 않아요. 정말 맨정신에 놀죠. <그민페>에서는 누워있기도 하고, 분위기에 취해 생판 모르는 사람과 놀기도 했어요(웃음).


공연을 자주 찾아간 건 어떤 이유에서였나요?

현장에서의 그 분위기가 좋아요. 집에서 TV로 보고 듣는 것과 현장에서의 사운드는 다르거든요. 날씨나 상황 때문에 힘들었을 때도 있죠. 그래도 현장에서 생기는 변수들은 재밌게 놀다 보니 크게 좌우되는 요소는 아니었어요. 큰 규모 페스티벌은 3~4개 무대가 있어서 돌아가며 볼 수 있으니까요.


음, 덕질하다 보면 욕심이 날 때가 있지 않아요? 저는 노래로 시작하더라도 나중에는 그 사람으로 애정이 향하게 마련이더라고요.

사실 아이돌이든 밴드든, 좋아하긴 해도 사인받으려 노력한 편은 아니에요. 노래가 좋고 공연이 좋을 뿐이라. 기회가 된다면 무대 바로 앞에 있어서 악수한 정도랄까. (어떻게 그렇게 쿨할 수 있어요!) 지금 덕질도 그래요. 엑소 좋아할 때도 팬 사인회는 절대 가고 싶지 않았어요. 무대를 가까이서 보는 건 좋은데 개인적으로 소통하길 원하지 않아요.


적당한 거리가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인 거네요.

뮤지컬이나 콘서트 끝난 후에 퇴근길 보는 팬들이 정말 많아요. 저는 그렇게 하는 게 귀찮기도 하고, 어쨌거나 내가 좋아하는 건 무대 위에 있는 사람이니까 무대 뒤나 아래는 그리 궁금하지 않아요. 마찬가지로 사생활도 애써 찾아보지 않고요. 천성이 무관심한 편이에요. 좋아하는 것에 열성적이지만 개인에 대해서는 대개 무관심해서 사적인 영역을 배제하고 보는 듯해요.


그런 모습을 보면 덕질도 결국 본인의 성향, 기질과 맞닿아있다 싶어요. 평소 사람과 관계 맺을 때의 모습이 덕질에도 드러나는 거죠.

그런 것 같아요.





다양한 장르 중 오래 좋아해 본 대상은 엑소가 처음인가요?

처음이에요. 그래서 참 신기해요. 예전에 좋아한 것들을 지금도 물론 좋아하죠. 그렇지만 예전 같은 마음은 아니란 말이에요. 1~2년 바짝 좋아하고서 잊고 살다가 ‘나 이런 것도 좋아했지’ ‘이것도 재밌었지, 한 번 더 보자’ 하는 느낌이었고요. 수호(이하 준면), 엑소는 2015년 입덕부터 지금까지 쭉 좋아하고 있어요. 

한 번은 회사에서 준면이 인터뷰를 읽어볼 일이 생겼는데 그냥 너무 좋은 사람 같은 거예요. 뒤이어 수상 소감이나 인터뷰를 찾아보면서 자연스레 좋아하게 됐어요. 제 이상향에 가까운 사람이라 좋아했던 것 같아요. 존경할 수 있는 사람, 닮고 싶은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요? 저렇게 열심히 사는 게 부럽기도 하고 대단하기도 하고 짠하기도 해요. 처음 준면이를 좋아하게 되고 콘서트, 영화시사회, 행사, 뮤지컬 등등 직접 볼 수 있는 곳은 되도록 다 갔던 것 같아요. 몇 년은 정말 너무 좋아서 다른 덕질 안 하고 준면이만 좋아했어요.


아이돌을 처음 좋아해 보신 거잖아요기존에는 장르를 좋아하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구체적인 대상이 생겨버렸는데입덕 즈음에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궁금해요.

제가 다른 거 좋아할 때는 혼자 좋아하고 찾아보고 사는 정도의 덕질이어서 아예 아이돌 덕질 문화를 몰랐어요. 그래서 초반에는 트위터도 그렇고, 진짜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어떻게 알아가야 하는지 혼란스러웠죠. 정보가 아무것도 없으니까. 갓 입덕했을 때는 블로그로 시작했어요. 사진 올리고 사진 찾아보고… 블로그 이웃들을 통해 트위터를 시작하게 됐죠. 해보니 아이돌 팬덤은 무리가 생겨서 누군가와 같이하는 덕질이더라고요. 저와 성향이 완전 달라요. 저는 혼자서 놀고, 팬덤은 무리로 놀고.


소위 영업이라고 하죠주변의 이야기영향에 굉장히 열려있다는 인상을 받았어요그런 면 덕에 수희님의 취향이 다양한 가지를 뻗어간 건가 싶기도 해요.

음, 생각해보니 취향에 대해 딱히 배제하는 건 없는 것 같아요. 보통 취향이 맞는 친구들과만 얘기해서 그런지, 제가 쉽게 영업 당하는 장르들도 기본 베이스는 좋아하는 것에 대한 영업이에요. 제가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니까 그 맥락을 고려해서 친구가 ‘이거 새로 하니까 봐봐, 너무 재밌어’ 이렇게 권유하는 식이죠. 엑소의 경우에도 좋아하기 시작하니까 조금씩 다른 데로 관심이 이어진 거고요. 결국 좋아하는 장르와 연결되기에 자연스럽게 다른 것들도 보게 되는 듯해요(웃음).


역시 영업에는 사전 정보가 있어야 하네요(웃음)! ‘덕질하면서 이것까지 해봤다’ 하는 일이 있나요?

제 모든 덕질을 통틀어 준면이는 예외에요. 솔로 앨범부터 콘서트, 주연을 맡은 뮤지컬 <더 라스트 키스>, <웃는 남자>까지. 특히 뮤지컬은 도합 30회차 가까이 본 것 같아요. 

예쁜 물건을 사 모으는 건 꾸준히 있죠. 유럽 여행 갔을 적에 맘에 드는 걸 사다 보니 캐리어에 짐을 더 넣을 수 없더라고요. 여행 중반부터는 캐리어를 하나 더 장만해 두 배의 짐을 가지고 돌아온 기억이 있어요. 그렇지만 대개는 비싸면 고민하거든요? 준면이 관련한 데는 그런 고민 없이 한 번에 샀다는 게 충격이었어요. 내가 이렇게까지 돈을 썼다고? 싶죠.


덕질하다 보면 어느 순간 현타(현실자각타임) 오는 순간이 있잖아요수희님은 훅 몰입해서 불태우듯이 하는 편이신데현타나 탈력감이 드는 순간이 있나요?

좋아하는 것에 큰 사건이 생기면 현타가 오긴 해도, 제가 좋아서 불태우다가 현타 온 적은 없어요. 현생은 안 살 수가 없잖아요. 현생도 살고 덕질도 하니까 둘의 구분은 명확한데, 덕질하는 상황들에 대한 현타는 좀 왔어요. 엑소가 워낙 여러 사건이 있었잖아요? 외부상황에 의한 건 현타가 와요(웃음).


현타 오는 포인트는 뭘까요그러니까 외부 상황도 여러 가지가 있잖아요스캔들일 수도 있고사회에 물의를 일으킬 만한 사고일 수도 있고

사실 제 기준에선 스캔들로 현타 안 와요. 제가 사생활과 아이돌 생활은 별개라고 했잖아요? 사생활은 연예 활동하는 생활과 다른 영역이라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서 본업이나 활동에 지장을 준다던가, 도덕적인 문제로 제가 생각하는 이미지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거나 하면 현타가 오긴 하죠.


덕질에서 도덕적인 기준을 개인이 세우는 것도 어려운 일이라고 느끼곤 해요덕질하지 않는 개인으로서는 그 기준이 아주 명확하다고 느끼는데팬덤에 소속돼 팬의 하나로 그 기준을 유지하기가 참 어려워요.

저는 덕질 영역에서는 꽤 명쾌했던 반면, 친구나 개인적인 인간관계에서는 그 기준을 못 세웠어요. 나중에 ‘내 친구가 잘못을 저질렀으면 나는 바로 차단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까 아니라는 답이 나왔어요. 예를 들어 저와 알고 지낸 지 5~6년 된 친구가 잘못을 저질렀어요, 물건을 훔쳐서 범죄에 연루됐다고 해도 친구와 평생 벽을 치고 살진 않을 것 같아요. 왜 그랬냐고 묻고, 잘못했다면 네가 어떤 걸 잘못했다고 설명해주겠죠. 물론 잘못을 모르거나 강력범죄면 말이 달라지겠지만요.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나 연예인의 지인들이 그다지 좋지 않은 사람이라고 해도, 그건 그냥 그 사람의 인간관계고 다른 사람은 모르는 끊을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해요. 같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개인의 도덕적인 태도가 제겐 큰 잣대예요.





현재에 이르기까지 내 취향에 영향을 주었거나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사람이 있나요

비슷한 성향을 가진 친구들과 어울려 놀아서 그런가? 딱 누구를 꼽을 만큼 특별한 사람은 없었던 것 같아요. 대외활동으로 페스티벌에서 만난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처음 듣는 노래도, 가수도 많았거든요. 음악 취향이 훨씬 넓어지고 인디밴드를 꽤 좋아했어요. 그때그때 어울려 놀던 사람들에게 영향을 많이 받는 듯해요. 다들 저와 달리 활동적인 친구들이었어요. 

최근에는 같이 덕질하는 친구들에게 영향을 받아요. 좋아하는 게 기본적으로 같고, 제가 별로 좋아하지 않던 것도 친구가 권해서 몇 번 보고 듣다 보면 좋아지더라고요. 이 친구가 저랑 좋아하는 게 비슷하기도 해요. 저도 좋아하는 부분에 아낌없거든요? 근데 이 친구는 한번 좋아하면 저보다 더 올인하더라고요. 진짜 끝장을 보는 스타일이에요. 그게 너무 신기해요. 되게 꼼꼼하고 심도 있게 뭔가를 좋아해요. 그래서 자신이 좋아하는 걸 말할 때도 하나하나 아주 자세하게 알려주는데, 듣다 보면 재밌기도 하고 ‘나도 그거 한번 해볼까?’라고 생각해요. 그러다가 같이 덕질하는 것도 많아요.


좋아해서 만난 사람들과 지금도 인연을 이어오고 계시는 편인가요?

한창 놀러 다닐 때는 23~24살 무렵이었거든요. 저보다 나이 많은 분들도 있었고요. SNS로 연결돼있긴 해도 이제는 대화를 열심히 하거나 직접 만나진 않아요. 그때와 다른 각자의 현생이 생겼으니까.


흔히 공부에 때가 있다고들 하는데요저는 노는 데 때가 있다고 생각해요공부야말로 평생을 두고 하는 일이라면좋아하는 걸 즐길 수 있는 건 그 시기에만 가능하다고 봐요

맞아요. 그때는 밤새워 놀기 부지기수였는데 이제는 그렇게 못 놀아요(웃음).


카메라에 얽힌 기억으로 고등학생 때 친구들을 많이 찍어주셨다고요

카메라를 처음 장만해서 이것저것 찍어보는데 아무래도 친구들과 노는 시간이 많으니 자연스럽게 찍게 됐어요.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인데 주변에서 잘한다좋다는 얘기를 듣다 보면식물 자라듯 내가 이걸 좋아하는 마음이 더 무럭무럭 자라고 꾸준히 할 수 있는 동력이 된다고 믿어요기억나는 피드백이 있나요?

저는 그런 과정으로 취미생활을 해오진 않았던 것 같아요. 친구들이 제 사진을 봐도 ‘좋다, 사진 잘 나왔다’는 말 정도였고요. 다만 그림 그리는 부분에서는, 다들 잘한다고 하니까 결국 직업이 됐단 말이죠. 20살에 현타가 크게 왔어요. 그맘때 학생들의 목표는 결국 대학이잖아요? 대학 오고서 목표가 사라진 게 컸어요. 게다가 대학에서는 많은 게 달라지거든요. 친구가 늘어나고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현타가 왔던 듯해요.


더는 내가 좋아하는 걸 잘하지 못한다는 마음일까요.

‘이걸로 내가 밥 벌어 먹고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대학 가자마자 했어요. ‘이게 직업이 될 수 있을까?’ 이 생각 때문에 1학년 때 무진장 방황하고, 2~3학년 때 열심히 다녔어요(웃음).


빨리 고민했네요그 덕분에 진로를 바로 정할 수 있었던 것 같고요.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그림 그렸거든요. 화실, 학원 다니면서요. 이때 좋아하는 만화책 따라 그리기를 제일 좋아했어요. 가장 자주 그렸던 건 만화 <원피스>예요. 스프링으로 된 연습장에 맨날 만화를 따라 그리거나 친구들을 그렸어요. 밤늦게까지 미술학원에서 놀고 그랬죠.


어릴 때는 좋아하는 마음이 잘하게 만드는 동력이었다면커가면서는 입시로 인해 좋아하는 마음이 남지 않을 정도로 소진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 경우는 좋아하면서도 잘하는 건지가 중요했어요. 그림 말고는 다른 걸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전과는 다른 질문에 접어든 거죠.


그렇다면 어릴 때부터 이 분야로 일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나요?

있었어요. 고등학생 때부터 디자인과로 진학하며 진로가 명확했거든요, 편집 디자인이요. 잡지 편집디자이너, 에디터가 되면 자유롭게 디자인하고 레이아웃을 만들어나갈 거로 예상해 잡지사에서 일하고 싶었어요. 막상 일해보니 저와 그렇게 맞진 않더라고요. 한국 패션지는 기본 레이아웃이 짜여있어요. 해외 패션지 역시도 매뉴얼이 있어서 가이드에 맞춰야 하고요. 자유도가 낮다는 데서 예상만큼 재밌지 않았어요.


그 경험이 다른 데로 관심을 돌리는 데 영향을 주었나요일의 영역이든 사적 영역이든

영향을 미쳤죠. 잠깐 연예매체에서 일해봤어요. 직업 특성상 여성이 정말 많아요. 저는 꾸미는 거나 옷을 좋아함에도 서로를 비교하거나 판단하려는 분위기가 싫었어요. 굉장히 딱딱한 분위기라는 게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저와 맞지 않았죠. 오래전부터 연예 잡지사나 연예계에서 일하고 싶었는데 재미없다고 느껴진 이후로 그 분야에서는 완전히 발을 뺐어요. 남자들이 군대에서 다나 까 쓸 때 숨 막히잖아요? 저는 여성들만 있을 때도 숨 막히는 분위기를 느꼈어요. 두 기류 모두 속해있는 사람에게 힘들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어요.




사진제공 수희


존중받는다고 느끼는 태도 세 가지에 관해 얘기해볼까요이름을 불러주는 것거짓말하지 않는 것반말하지 않는 거라고 써주셨더라고요이 세 가지를 기준으로 세우신 계기가 있나요?

이름 불러주는 것과 반말하지 않는 것은 회사 다니면서 정해진 기준이에요. 거짓말하지 않는 건 인간관계에서요. 친구를 만나거나 애인이 생겼을 때 거짓말하지 않는 태도야말로 저를 가장 존중한다고 생각해요.


사회생활과 비교해보면덕질 영역은 나를 크게 드러내지 않아도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며 대화할 수 있잖아요그럴 때 내가 존중받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들도 있을 듯해요.

한 6년 정도 알고 지낸 트친(트위터 친구)들과 실친(실제 친구) 수준으로 지내거든요. 그런데 아직도 반말 안 해요. 동갑이란 것도 알고, 직업도 본명도 아는데 말이에요. (그런 거리를 유지하는 게 쉽지 않잖아요) 신기하게도 그렇게 지내요! 반말한다고 해서 친한 게 아니거든요. 오래 봤으니 존댓말에 반존대도 섞지만 기본 베이스는 존댓말이에요. 지내보면 이게 더 편해요.


무소속으로 보내는 시간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때때로 많이 불안하기도 하지만, 나에 대해서 또 앞으로의 삶에 대해서 조금 더 생각할 수 있는 시간 같아요.


수희님은 어떤 모습으로 나이 들고 싶으신가요?

저는 그 나이에 맞게 나이 들고 싶어요. (나이에 따라 정해놓은 모습이 있으세요?) 정해둔 모습은 없고 자연스럽게 나이 들었으면 해요. 젊게 살려는 사람도 존중하나, 저는 나이 들었다고 억지로 젊게 살고 싶진 않아요. 그 나이에 맞는 삶, 그 나이에 맞는 옷, 그 나이에 맞는 일을 하며 살고 싶어요. 억지로 젊은 감각을 좇을 필요는 없다고 봐요. 미적인 감각이야 유지할 테지만 그마저도 나이에 맞게 가져가고 싶어요.


지금은 어때요그 나이에 맞게 살고 계신 것 같아요?

잘 모르겠어요. 아직 철이 덜 든 느낌이라(웃음). 아주 어렸을 때 이 나이 정도면 커리어우먼이 됐을 거로 상상했어요. 막상 그 나이가 되어보니 나이가 많다거나 성숙한 나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굉장한 어른이 아니더라고요.


나이 드는 게 철드는 걸까요요즘 진짜 나이는 0.7을 곱해야 한다는 말도 있잖아요

철든다는 기준을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이 정도 나이쯤 되면 굉장히 성숙해질 줄 알았죠. 하지만 고등학생 때처럼 좋아하는 것에 미쳐있고 그때와 같은 걸 여전히 좋아하고 있는 거예요. 그 모습에서 아직 머릿속은 고등학생이라는 생각이 들곤 해요. 그 시절 아이돌 좋아하던 친구들 많잖아요? 지금도 고등학생과 똑같이 사는데, 직업이 있고 돈만 벌 뿐이라 ‘뭐가 나이 들고 뭐가 철드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어요(웃음). 저는 초등학생 때처럼 장난감 사고 있는데(웃음)?


그런 기준이라면 철든다는 건 그런 것들을 덜 좋아한다는 이미지겠네요.

그럼 영원히 철들지 못할 것 같아요(웃음). 






✨수희님을 더 알고 싶다면

https://www.instagram.com/sooxhhh



인터뷰, 촬영   미란
디자인    로고블랭크
사진 제공    수희
copyright ⓒ 미란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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