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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쎄 May 13. 2021

일 | 반경을 좁혀 확인한 자기장의 방향

슬기의 일


✨무소속 1년 3개월

✨안국역

✨일





지구자기장은 지구 내부의 원인에 의해 나타나는 자기장으로, 지표면으로부터 상당히 먼 우주 공간까지 뻗쳐있다고 한다. (출처:한국물리학회) 나는 사람에게도 고유한 자기장이 있어서 사람과의 관계부터 일, 삶의 모습에서 그 모양과 방향이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어떤 상황과 공간에서 자연히 인력과 척력을 느끼는 순간이 오는 셈이다.


커피 관련으로 일하며 인력보다 척력을 더 경험했다는 슬기는, 영어 교육으로 환경을 바꿔 인력과 척력을 다시 가늠해보고 있었다. 자침이 쉼 없이 요동치니 갈피를 잡지 못해 혼란스러웠다고 덧붙였다. 그럴 때는 반경을 좁혀 나에 집중하고 외부와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식으로 불안을 줄여갔다고 한다. 즉 감당할 수 있는 진폭이 될 때까지 나를 믿고 기다렸다는 것.


종종 움직이는 것만이 궤적을 그릴 수 있다고, 그렇지 않은 순간은 지워지거나 희미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가만히 있는 자체로도 궤적은 그려지며, 희미한 것이 오히려 갈망하던 것에 가까울지 모른다. 내 자침을 강하게 흔드는 건 내부의 힘보다는 외부의 힘인 경우가 많으니까 말이다.






고양이와 커피를 좋아하고 정돈된 삶을 지향하는
이슬기입니다.





일하는 나를 키워드로 표현해볼까요?

성실한, 믿음직스러운, 꼼꼼한 사람이요.


어릴 때는 커서 어떤 일을 하고 싶었어요?

해외에 나가고 싶어서 국제변호사나 원조 기관에서 일하는 모습을 그렸어요. 또 교수나 선생님이 되고 싶었어요. 선생님을 좋아해서 영향을 많이 받거든요. 둘 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은 똑같았던 것 같아요. 이제라도 다시 마음을 회복해 근처에 온 것 같아 다행이란 생각이 들어요.


슬기님에겐 누군가를 가르치고, 이를 통해서 회복의 시간을 가진다는 게 중요한 키라고 여겼어요. 그 시절의 마음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던 셈이잖아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첫 마음은 어디에 기인할까요?

최근에서야 깨달은 거지, 이 마음을 회복한 지는 얼마 안 됐어요. 인턴 하러 외국에 나갔을 때만 해도 한동안 ‘이제 내게 그런 마음은 없구나, 나는 누군가를 도울 처지가 아니야’라고 생각했어요.

얼마 전에 친구들과 주고받던 편지들을 정리했는데요. 선생님과 주고받은 편지도 꽤 되더라고요. 어린 시절 선생님들을 좋아해서 배우는 일 자체에 흥미가 있었어요. 중고등학교 선생님들을 통해 내 선한 마음을 줄 수 있으면 하고 막연히 품어왔던 것 같아요. 눈에 보이는 사람이 우선 선생님이었고, 대학 가서는 전공을 선택하면서 자연히 바뀌었어요. 교대나 사대에 가야 하는데 제가 공무원 생활에 맞지 않을 거라는 판단이 들었거든요. 자유 전공을 선택하고서 꼭 내가 가르치는 수단이 아니어도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할 방법이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교수를 떠올린 건 제2 전공에 문학 교수님이 계셨어요. 교수님 수업을 들을 때면 ‘교수가 된다는 건 학생들에게 이런 식으로 영향을 미치는 거구나’를 몸소 느낄 수 있었어요. 보통 문학을 접할 때 각각의 의미가 무엇인지 파고드는 식으로 배우는데, 교수님은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하게끔 도구를 알려주는 분이셨죠. 인상적이었어요. 저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면서 어떤 과목이건 교수 또는 가르칠 수 있는 자리에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고등학생 때 다들 힘들어하잖아요. 내가 대학에서 배운 방식으로 문학을 좀 더 일찍 적극적으로 수용할 수 있었다면 덜 외로웠겠다, 내가 필요로 했던 부분과 역할을 청소년에게 해주고 싶다고 생각했죠. 그러면서 꼭 학교가 아니라 다양한 위치로 생각해보게 됐고요. 해외, 특히 빈곤 국가에는 선생님 자체를 못 만나는 등 기회가 적으니까 존재만으로도 영향을 줄 수 있겠다고 여겼어요.


지금은 어떤 분야에서 어떤 업무를 하고 있나요? 이 일을 선택한 이유가 있을까요?

영어 교사로 교육에 종사하고 있어요. 업종을 변경하고 싶었는데 전공밖에 남지 않았더라고요. 그래서 시작한 일로, 지금은 아주 만족하고 있어요.


이 일은 온라인으로 진행하시나요?

맞아요. 온라인으로 1대1 진행해요.


코로나 시대에 교육하는 건 어때요?

그간은 직접 만나고 그룹 짓는 등 보이는 것 위주로 사회가 돌아갔다면, 이제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수면 위로 드러나고 개인으로 분리된 사람들을 중심으로 사회가 돌아가기 시작하잖아요. 이제야 좀 상식적으로 돌아가는 게 아닌가 싶어요. 자연히 거리를 둬야 하는 환경이다 보니까 불편한 점이 있지만, 역설적으로 저는 다소 안정적인 마음으로 일할 수 있게 된 면이 있어요.





일이 내게 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자립심이요. 일해냈을 때 느끼는 자기 효능감, 더는 어디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책임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선택의 자유의 폭을 넓혀주는 것. 자립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경제적 자립일 거예요. 다양한 분야에서 자립이 필요한데, 제가 필드에 나갔을 때 제일 큰 자립은 경제적 자립이었어요.


교육에 앞서 자립의 중요성을 느낀 게 공교롭게 해외 인턴 때였다고요.

해외로 인턴 가기 전에는 교육의 힘으로 모든 걸 다 할 수 있다고 여겼어요. 생각이 트여야 다른 걸 시도해볼 수 있을 테니까요. 그렇지만 교육조차 환경이 받쳐줘야 하더라고요. 실제로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이혼당하면 쫓아내기 때문에 길에서 생활하는 여성과 아이들이 많아요. 그들을 학교에서 가르치는 일이야 물론 의미 있지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밥벌이를 할 수 있는 게 먼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은 공부를 안 해서 모르겠지만, 당시 아프리카는 원조에 의존하게 되는 면이 컸어요. 원조하는 사람에게 종속되어야 경제적으로 유리하니까 그 시스템이 공고화된다고 느꼈죠. 특히 누군가의 가난이 나의 일자리가 되는 상황이 참 모순적이었어요. 그때부터 이들이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시도해볼 수 있게끔 살짝 거리 두는 원조 방식이 맞겠다고, 자립이 우선이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그즈음에 선배들이 빈곤국 경제적 자립을 위해 해외에 카페를 열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현지 직원을 채용하고, 점점 자립도를 높여가는 방향으로 운영했다더라고요. 여유가 생기면 더 나은 걸 생각해볼 수 있잖아요? 그렇게 자립한 사람들이 또 주변 사람들을 이끌어줄 수도 있고요. 이런 선순환이 이뤄지려면 기저에 자립이 필요하다, 그리고 기꺼이 자원을 내주는 게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죠. 하지만 그런 국가는 없어요, 사실.


들으면서 경제적 자립, 그러니까 돈을 계속 생각해봤어요. 우리 삶에 돈은 필수적이고 돈을 비롯한 많은 것과 관계를 고려할 수밖에 없는 듯해요. 슬기님은 자립과 어떤 관계를 저울질하는 원칙이 있나요?

나를 먹이기 위해 벌어 먹고사는 건 엄청나게 큰일이잖아요. 그걸 처음 해보면서 많은 부분 가정에 의지해온 사실을 깨달았어요. 아이러니하게도 가정을 떼어내면서 저다워졌다고 느꼈고요. 관계가 중요하긴 한데 가깝게 맺는 사람은 아니에요. 이전에는 상대와 거리를 좁히기 위한 노력만 무던히 해왔죠. 아빠든 엄마든 친구든…. 그런 저를 보며 사람들은 ‘우와 너 되게 착하다’라고 말했어요. 상대의 필요를 그때그때 알고서 챙겨주었으니까요. 곁에 있는 사람의 상태에 따라 제 기분이 자주 달라지곤 했는데, 성인이 되고 한참 후에야 깨달았죠. 내 공간이 널찍해야 하고 거리감이 중요한 사람이란 걸. 그런 제 모습을 안 뒤로 거리를 두려 의식적으로 노력했더니 이제는 상대의 필요가 보이지 않아요. 참 쾌적하더라고요. 지금은 제 공간을 확보하면서 친밀함을 느끼는 방식을 찾아가고 있어요. 이제야 한 단계 자립했다고 느껴요.


그럼 슬기님에겐 경제적 자립이 1차, 심리적인 자립이 2차인 거네요. 이렇게까지 다 한 뒤에 최종적인 자립이라는 게 있을까요? 아니면 지금 상태가 유지되는 걸까요?

서울살이를 7~8년, 넓게는 10년간 고군분투하며 보냈어요. 이제는 거리를 넓히기도 좁히기도 해보면서 내 마음 상태가 좋았을 때 사람을 향하는 본래 마음이 서서히 드러나요. 다른 사람이 어떻든지 간에 나를 똑바로 잡을 수 있는 상태가 최종적인 자립이지 않을까 해요. 그런 때에는 나를 해치지 않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적절히 도움을 줄 수 있겠죠. 제 능력을 썩힐 필요가 없으며 그 행위로 저도 보람을 느끼니까요. 그 도구를 잘 쓸 수 있는 단계에 다다라, 나를 해치지 않고 바로 설 수 있는 모습이 최종적 자립일 것 같아요.


타인을 외면하지 않고 어떤 거리를 유지하며 지낼 것인가가 중요하겠죠.

대학생 때 기숙사 생활을 했기 때문에 계속 누군가와 같이 살아왔거든요. 한국 사회는 유달리 공동체 생활을 중요시하잖아요. 내가 원하는 거리감을 생각해본 적도 없고, 내가 선택해서 거리감을 조절하기보다 상대방에게 맞추는 형태였어요. 지금은 의도적으로 거리를 떼어놓은 상태니까 선택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기더라고요. 조율할 수 있는 상태가.

예전이라면 일할 때나 사람을 만날 때 오프라인 만남이 ‘절대 선’이었다면, 이제는 코로나 상황이기에 어쩔 수 없이 만남을 자제하는 분위기예요. 덕분에 저와 같은 사람도 관계를 맺고 적정 거리에서 느끼는 친밀감을 더욱 긍정하는 계기를 맞은 것 같아요.





내가 보는 나의 강점과 약점은 뭐예요? 일과 접목하면 어떻게 드러나나요?

강점은, 성실하고 꼼꼼해서 타임라인 관리를 잘하고 중간 관리자 역할을 잘 수행한다는 점이에요. 함께 하는 사람의 성장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지 1:1 맞춤으로 고민하고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죠.

약점은, 틀에 맞추길 어려워하며 다른 사람과 있으면 에너지를 많이 빼앗기는 편이에요. 불특정 다수를 대하는 서비스직의 경우 금방 소진되어 긍정적 에너지를 내기가 어렵고, 룰에 따르기보다는 만드는 편이 더 잘 맞아요. 공기관 같은 타이트한 조직에선 업무 효율성이 떨어져요.


강점과 약점이 일로써 어떻게 드러나는지 명확하게 파악하고 계신 점이 놀라워요.

잘하는 걸 더 잘하는 게 여러모로 선순환이지 않나 하고 자주 생각했어요. 이전에 커피를 다루는 일을 했는데, 이 분야는 예술가로 따지면 외골수적인 면이 필요했어요. 저는 그런 편은 아니라 제너럴 하죠. 나만의 독특한 레시피, 무언가를 만들어내야 하는 일이 언뜻 들으면 재밌어 보이지만 제겐 무거웠어요.

오히려 저는 일하면서 제 기준과 가치에 맞게끔 재배열해서 발전시키는 게 중요하고, 잘하는 부분이에요. 제 안에서 이 부분이 조율되면 상대와 일할 때는 어렵지 않잖아요? 제 타임라인이 중요한 만큼 상대의 타임라인도 고려하는 게 자연스럽죠. 기계가 아닌 사람과 일하는 것이다 보니 변수가 많잖아요. 개개인에 관심을 두고 맞추는 거예요. 이해도가 높을수록 저도 덜 당황하고 대처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 걸 보면 사람들과 맞춰가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겼던 것 같아요.

그리고 에너지가 별로 없는 사람이라, 적은 에너지로 최대 효율을 내기 위해서 일정이나 업무가 어그러지지 않게끔 구현해내요. 하기로 했으면 해야 한다는 마인드. 어중되게 할 바에는 안 하는 게 낫다는 식이에요. 많은 걸 하지 않으니 그만큼 확률을 높여야 하거든요.


1대1 맞춤 프로그램을 짜는 데 능숙하다고 하신 대목이 인상적이에요. 어떤 분야에서든 그런 게 필요하잖아요. 나 혼자 일할 게 아니라면 동료 또는 후임에게 가르쳐줘야 할 일이 생기는데, 갖춰진 매뉴얼만 전달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에 맞춰 알려준다는 게 쉽지 않아요.

사실 커피는 그런 프로세스기도 했어요. 기본적으로 커피는 맛있어야 하는 게 당연한데, 누가 만드느냐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로 달라지잖아요. 직원 모두를 제가 핸들링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매뉴얼대로 알려주자니 일이 안 되고, 각자가 그 기준점을 찾아야 했어요. 그러니 한 사람 한 사람, 내가 느끼는 맛과 그 사람이 느끼는 맛의 기준점을 맞춰가기 시작했죠. 같은 커피를 가지고서도 사람마다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고, 내가 탄 맛이라 느끼는 걸 상대는 고소한 맛이라 느끼는 등 차이가 있어요. 커피를 다루는 입장에서는 그 차이가 아주 크거든요. 손님이 누구건 직원이 누구건 한 메뉴는 동일한 맛으로 나가야 하니까요. 그게 1대1 맞춤으로 교육하게 된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어요. 80점짜리 아웃풋을 만들자는 목표를 세우고 한 명 한 명 교육한 일은 제가 봐도 잘한 것 같아요(웃음). 또 단골분들의 입맛을 알게 되면 그에 맞춰 잘 내고 싶은 마음이 생기니까 개인에게 맞추는 일이 익숙해졌죠. 실제로 제가 그렇게 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어요.


슬기님은 서비스직과 안 맞는 것 같다고 여기시잖아요. 어떤 점 때문이에요?

사람을 대하는 건 고민이 많아도 기꺼이 할 수 있는 일이었어요. 하지만 저는 혼자 있는 시간이 아주 많이 필요한 사람이거든요. 서비스직에서는 아무리 용을 써봐도 혼자 있는 시간을 연속으로 갖기가 참 어렵더라고요. 직책이 올라가고 책임이 늘어날수록 더더욱. 그때 알게 됐죠.


아무리 짧은 기간 일했다 하더라도 거쳐오면서 뭔가가 남더라고요. 사람이라거나 그 업무가 나랑 맞지 않는다는 것조차.

커피를 선택할 때만 해도 아예 새로운 분야라고 여겼어요. 선택에 서슴없었던 걸 보아 그 순간에 ‘이거다!’ 싶으면 선택할 용기가 있는 사람이었다 싶어요. 당시에는 저를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했던 것 같아요. 주어진 일을 끝까지 해냈고요. 직무적으로 볼 때는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이건 못하겠다’ 하는 부분을 더 많이 알게 된 것만은 뚜렷해요.


일하며 만난 사람에게서 받은 영향이 있나요?

현재 담당 매니저님으로부터 긍정적인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이전 직장에서는 조금만 실수해도 불안하고 저를 다그치기 일쑤였는데, 매니저님은 실수를 개선할 기회를 주고 마음을 편하게 해주세요. 일 관계에서 늘 좋은 얘기만 할 수 없지 않냐고들 하지만, 매니저님은 항상 저희를 긍정적으로 봐주세요. 그래서 큰 힘이 되고 더 잘하고 싶어져요. 이 경험으로 저 역시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동료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확고해졌어요. 피드백이란 명목으로 다른 사람의 성장을 막고 있지 않았나 많이 반성했죠.





빌라선샤인에서 시작한 뉴먼소셜클럽 <번역으로 만나는 세상>을 운영하고, 태국어를 공부하고 계신다고요. 언어를 좋아하는 데다 일로써 하고 계신다는 게 결이 비슷해요. 비슷하면서도 다른 일을 하시면서 느끼는 점이 있을까요?

음, 저의 수준 차이죠.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지식은 부족하지 않아요. 하지만 성인을 가르치기엔 부족하죠. 그런 점에서 <번만세> 팀원들이 채워주는 부분이 아주 많아요. 저는 모임을 세팅하고 발언권을 나눠주는 정도의 역할이에요. 그러면서 계속 부족함을 느끼죠. ‘영어를 하는 데 이런 부분이 부족하구나, 이런 걸 채워야겠다’ 하고. 그 부분이 채워지고 능숙해지면 그게 일할 소스가 될 테니까 <번만세>는 제게 좋은 실험실이라고 생각해요. 기존 수업이 과제를 내주는 형식이라면, 제가 할 수 있는 수업 형태는 소수 인원과 문학, 언어를 가지고 얘기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거겠죠.


언어로 이야기하는 감각을 계속 발견하고 싶다는 바람을 써주셨더라고요. 단순히 공부하고 외우기 위한 언어가 아니라 감각한다는 게 어떤 것일지 더듬어 보게 돼요.

저도 최근에 더 체감했어요. 이번 모임에서 이런 얘기를 나눴거든요. 영어로 ‘escape’를 우리말로 어떻게 번역하시겠어요? (탈출?) 그렇죠. 백이면 백 다 탈출이라고 생각한단 말이에요. 그게 틀린 건 아니지만 왜 탈출인지에 대한 나의 감정이나 상황이 이어져 있진 않아요. 예를 들어 영화관에 불이 나서 탈출할 수도 있고 지하철에서 탈출하는 등 다양한 맥락이 연상되지만, 단어에는 그런 맥락이 없단 말이죠. 문학작품을 보면 그 맥락이 잘 드러나요. ‘escape가 물리적인 탈출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에서부터, 그러니까 내 생각으로부터 탈출하는 것 같아요’처럼 문학의 맥락을 통해 느끼는 거죠. 그 과정에서 훨씬 더 나의 언어가 된다고 생각해요.

그럼 하나 더. ‘escape’와 ‘run away’에는 어떤 차이가 느껴지세요? 탈출하다와 도망치다.


도망치는 건 수동적이고, 탈출은 자발적일까요? 맞아요?

맞는진 몰라요. 사전을 찾아보면 정의는 그래요. 모임에서도 비슷한 얘기를 나눴거든요. 도망친다고 하면 쫓아오는 대상이 있는 것 같다고. 그런 식으로 자신의 감각을 계속 덧붙여 나가는 작업이에요. 이후에는 그 둘을 도망친다고 번역하더라도 선택한 이유가 다를 수 있겠죠.


이게 문학을 텍스트로 삼기 때문에 가능한 건가요?

아마 그런 것 같아요. 에세이나 사설이라면 맥락이 정해져 있잖아요. 그래도 문학은 해석할 공간이 넓어지니까. 사실은 여백을 주기 위한 거예요. 그 여백 안에서 각자가 생각하는 걸 얘기하게 되거든요. 다면적으로 접근하고 고민해볼 수 있어서 문학 텍스트를 고집해요.


들어보니 더 멋있어요!

이런 건 제가 단어의 정의를 잘 알아서 되는 게 아니에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툭 던지면 팀원들이 알아서 다 얘기를 해줘요. 서로 채워주는 게 아닐까 해요. 제가 선생님이나 원어민은 아닌지라 ‘run away는 이런 맥락입니다’ 하고 설명할 능력은 안 돼요.


오히려 이렇게 이끌어주시니까 상상할 게 더 많아져요. 그게 선생님의 역할이 아닐까요. 스스로 고민해보게 만드니까요.

영어는 유독 다른 언어보다 의심하거나 내가 틀렸다고 생각하기 쉽잖아요. 모임에서 느낀 점은, ‘우리가 이 두 단어를 가지고 열심히 토의했는데 그걸 틀리다고 얘기할 수 있나?’ 에요. 번역이 아예 틀린 게 아니라 미묘한 뉘앙스 차이가 있는 건데…. 원어민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영어는 전 세계 사람들이 사용하는 건데 세계적인 맥락이 조명돼야 하지 않나? 싶어요. 아예 생뚱맞은 게 아니라면 말이죠. 그리 볼 때 휴대폰을 핸드폰이라고 말하는 게 틀렸나? 하는 의문도 들어요. 한국어 화자에 대입해서 핸드폰이라는 말을 가져온 거지만, 외국인이 듣기에 그렇게까지 이질감이 있을까? 그들의 표현인 셀룰러폰이 아닐 뿐, 핸드폰이라고 말하면 뭔지는 알 거 아니에요. '그게 그렇게 틀렸나?' 하는 생각들을 해봐요.


만약 영어를 내 기준에서 접근한다면 어렵다기보다는 더 알고 싶다는 마음이 들 거로 생각해요.

감상을 기반으로 하는 거니까 문화를 개인화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텍스트 고를 때 최대한 백인 화자는 배제하려고 해요. 다양한 화자, 다양한 배경, 다양한 출신을 고려하죠. 흑인이 쓰는 영어는 또 다르다고 하잖아요? 각각의 화자가 얼마나 브로큰 잉글리시를 쓰는지 모르지만, 그게 틀린 건 아니라고 봐요. <번만세>를 하면서 ‘틀릴까?’ 하는 마음에서 더 자유로워진 것 같아요.

모임에서는 영어를 읽을 수만 있으면 돼요. 기본적인 이해, 그러니까 사전을 찾을 때 이해하는 정도면 가능하죠. 공교육 받았으면 사실 다 괜찮은 셈이에요. 모임을 2회에 걸쳐 한 적 있거든요. 엄청 어려운 텍스트를 고르면 문장이 어려운 것도 물론 있겠지만, 어렵다는 내 마음이 가장 걸림돌이 돼요. 보기도 전에 힘들어서 포기하는 거죠. 그렇지만 10년 이상 공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깊은 의미까지는 파악하지 못해도 ‘I run, 나는 뛰었다’ 정도는 이해할 수 있잖아요? 거기서 출발하는 거예요. 사전도 찾아보고, 구글링으로 이미지도 찾아보는 식으로요.


조금씩 용기가 솟아나고 있어요(웃음)!

저도 그랬거든요. 그 감각 때문에 이 모임을 시작한 거예요. 실용 영어를 원하는 분들에겐 안 맞는 방식이에요. 여기선 문장을 외우지 않고 단기간에 효과를 볼 수도 없으니까요. 언젠가는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건지 고민해본 적도 있는데, 하면 할수록 내가 원하는 방향이 실용 언어 쪽은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어요. 이제는 감상을 베이스로 가는 게 나와 맞겠다고 정리했죠.





무소속으로 보내는 시간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시간의 주도권을 회복하는 시기예요.


현재 슬기님의 자립도는 어느 정도예요? 일을 통해 자립도가 높아지나요?

일로써 자립하는 데는 다양한 기준이 있겠지만 냉정하게 얘기하면, 일단 얼마나 독립적으로 일을 따낼 수 있느냐가 저만의 기준이 될 거예요. 왜냐면 계속 회사에서 일할 건 아니니까요. 그렇다면 현재는 20%(웃음)? 20%도 안 될 것 같으니 그 정도의 가능성으로 할게요. 나의 가능성을 믿는 상태예요. 실제로 독립해서 일을 굴려보진 않았으니까 시작이 반이라는 마음으로 20%로 잡아봤어요. 너무 낙관적일지 모르겠지만… 그런 거 있죠, 어떤 일을 생각하면 그다음에 뭘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히는 거. 반대로 어떤 일은 다음에 뭘 해야 할지 바로바로 떠오르기도 해요. 저는 오리무중을 택하기보다 제가 잘 보이는 부분으로 가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 구상하는 프리랜서 계획은 실체가 없지만, 다음에 뭘 해야 할지는 생각이 뻗어 나가는 편이에요. 그래서 별로 무섭지 않고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준비하는 시간조차 괴롭지 않죠. 지금 나에게 맞는 방향으로 잘 가고 있다고 느껴요. 하지만 자립도는 아직 시작 단계죠.


써주신 표현 중에 인상 깊었던 게 ‘1인분의 삶’이었어요. 슬기님에게 1인분의 삶은 어떤 의미인가요?

1이라는 숫자를 세세하게 나누면 0.5도 있고 0.7도 있을 텐데요. 인턴 할 때부터 서울에서 산 시간은 너무나 불안했어요. 그 불안감이 저를 0.5인분으로 느끼게 했죠.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매 순간 나 당장 길바닥에 나앉으면 어떡하지? 하고 걱정해왔거든요. 아무래도 서울에 연고가 없으니까요. 지금은 그렇게까지 나를 좀먹지 않고 덜 발가벗었다고 해야 하나?

1인분의 삶은 내가 돈을 많이 벌어서 경제적으로 안정을 이루면 1인분 몫을 하는 거로 생각해왔던 듯해요. 물론 그것도 맞지만 한 번에 이룰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불안감이 덜한 지금이 1인분에 가까운 삶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봐요. 어떻게든 먹고살고 있고 나앉지도 않잖아요.


디지털 노마드로 겨울에는 태국 방콕에서 지내는 게 꿈이시라고요. 우선 코로나만 종식되면 가능성이 있을 텐데요. 언제쯤 갔으면 좋겠다고 꿈꾸세요?

이른 시일 내에 이뤄지진 않을 거예요. 그리 가깝게 보지는 않고, 최소 10년은 걸리겠죠. 일단은 일로써 자립도를 80%는 채워야 영역을 넓힐 수 있을 거로 생각해요. 요즘은 방콕에 바로 못 가더라도 조금씩 연습해보면 좋겠다고 생각 중이에요. 구체적으로는 부산에서 1달 살아보기, 제주에서 1달 살아보며 일을 해보는 식으로 자리 옮기는 연습이요. 다만 고양이와 살고 있어서 제일 마음이 쓰여요. 베트남에 1달 머무른 적이 있거든요. 친구가 말하길 고양이가 저와 떨어져 있는 것에 힘들어했다고 하더라고요. 예전 같았다면 ‘데리고 가면 되지!’ 했을 텐데 고양이와 살아보니 영역 동물이라 공간을 수시로 바꾸는 건 안 돼요. 이제는 저 혼자만 잠깐씩, 길어야 1주일 왔다 갔다 할 수 있을 정도만 돼도 성공일 것 같아요. 제가 지향하는 삶에서는 아마 마지막 동물이지 않을까요.


해외로 나가고 싶다고 생각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언어적인 걸 제외하고요.

아직 뚜렷하게 어떤 이유라고 설명하지 못하지만, 주민처럼 한곳에 오래 있는 걸 좋아하면서도 꾸준히 다른 나라 환경, 문화를 경험하고 싶은 욕구가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선지 외국인을 만났을 때 대화 나누는 과정이 더 즐겁다고 느끼곤 해요. 성향도 덩달아 외향적으로 변하는 듯하고요. 특히 방콕은 문화적 자원이 풍부한 지역이에요. 다양한 나라 사람을 보는 재미도 있고요. 사실 친구와 이 동네로 이사 온 이유도 비슷한 맥락이에요. 친구는 궁을, 저는 그림을 좋아해요. 이 동네에서는 도보로 갤러리나 미술관을 다 볼 수 있는 환경이거든요. 이제는 서울에도 정들었어요.

물론 해외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살면 힘들겠죠. 그래서 한국 베이스를 포기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을 거예요. 여성이긴 해도 모국어를 쓴다는 건 굉장한 지위를 획득하는 거니까요. 오늘 얘기를 토대로 생각해보면, 문화적 차이가 주는 거리감 때문에 해외가 한국보다 더 자유롭다고 느끼는 듯해요. 한국은 물리적으로도 바투 붙어있고, 가족 간의 관계도 가깝고, 소셜네트워킹도 그러니까 내가 궁금하지 않아도 소식을 알거나 접할 수밖에 없는 구조예요. 외국은 모르는 게 많아서 궁금할 여지가 많은 측면이 있어요.


멀어졌을 때 궁금해지고, 가까우면 정말 궁금한 게 없어지죠(웃음).

너무 잔인한 말이었나요? 제 얘기를 되도록 꺼내지 않으려 했던 게 ‘안 궁금할 것 같은데?’라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가급적 말하지 않으려 하는 편이고요. 평소였다면 누가 나를 집중해서 보고 얘기하는 일이 부담스러웠을 거예요. 그런데 오늘은 흔쾌히 내 얘기를 해도 되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하게 됐네요. 부담스럽지 않고, 기대되고, 만나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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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촬영   미란
디자인    로고블랭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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