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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쎄 May 31. 2021

취향 | 고통의 역치로 실험하는 시간

혜민의 취향


✨무소속 2년

✨선유도역

✨취향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월호 스님은 불교에선 속세에 있는 심신을 아바타라 칭하고 아바타를 관찰하는 진짜 ‘나’가 있다고 했다. 그 말인즉, 고통받는 건 나의 아바타이지, 진짜 나는 고통스럽지 않다는 의미였다. 짧은 시간 내 받아들이기 어려운 개념이라 가능한 일일지 의문만 남았다.


시간이 흘러 혜민을 만났을 때도 아바타를 언급했다. 평소 고통의 역치가 어느 정도인지 자신으로 실험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를 실험자이자 피실험자로 나눠 한계를 가늠하고, 고통이 클 때 나와 분리해서 바라보면 힘든 일도 제법 넘길 수 있다고 했다.


“고통도 또한 재산임을 알았다.” 좋아하는 책에서 공감하는 문장으로 꼽은 대목도 혜민다웠다. 살면서 경험하는 다양한 감정 중에 가장 큰 원동력이 되는 게 고통인 사람, 고통에 잠식될 걱정보다 그걸 넘어섰을 때 느낄 희열을 고대하는 사람, 혜민을 만났다.






프리랜서이며 주로 하는 일은 간호사인
변혜민입니다.





취향과 덕질을 어떻게 구분하세요?

덕질은 확실히 더 깊은 듯한 느낌, 취향은 더 가볍게 할 수 있는 느낌이랄까요? 어떤 논란이 생겼을 때 내가 어떻게 바라보는지로 그 둘이 갈리는 것 같아요. 저는 여행을 좋아하는데 코로나 때문에 여행을 못 가게 됐어요. 취향 정도라면, 못 갈 수도 있다고 가볍게 넘기죠. 만약 덕질이라면, 어떤 사건‧사고가 터졌을 때 꼼꼼히 찾아보고 이걸 내가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심하는 태도로 나눌 수 있는 듯해요.


좀 더 내 일로 끌어들여서 생각하게 되는 걸까요?

그렇죠.


덕질하는 게 있나요?

덕질이라고 하면 말 그대로 덕질 밖에 떠오르지 않는 덕후라 요새 활발히 활동하는 샤이니라고 답할게요! 이번 활동은 소속사에서도 엄청 힘을 쏟는 게 보이고 팬들도 응원해주는 게 눈에 보여 뿌듯하게 덕질하고 있어요.


혜민님은 샤이니 데뷔 입덕이라고 하셨죠

중학교 3학년 때 SM에서 새 보이그룹이 데뷔한다는 얘기를 들었고 뮤비 공개하는 날 몇 번이나 돌려봤어요. 그게 샤이니예요. 이전에도 아이돌에 관심을 가져왔지만, 샤이니부터는 딱 제 또래에 접어들었어요. 태민이 저와 동갑이거든요. 저와 같은 나이대 친구가 아이돌이라는 것도 한몫했고, 중학생 때가 아이돌에 관심이 높은 시기이니까 학교 친구들도 거의 덕질로 이뤄진 관계였어요. 친구들과 얘기하려고 덕질하는 건 아니라도, 얘기도 잘 통하고 같이 보는 게 좋다 보니까 헤어날 수 없는 늪에 빠지게 됐죠(웃음). 그 이후로 고등학교, 대학교, 직장에서까지 제 친구들은 거의 덕질로 이어져 오고 있답니다.

사실상 슴의 행보는 다 눈여겨보고 있어요. 엑소, 레드벨벳, 엔시티, 에스파까지 노래나 안무, 의상, 메이크업, 개개인들에 대한 이슈, 예능까지 덕질로 트렌드를 확인하는 경지가 됐죠. 특히 샤이니 데뷔 이후에 케이팝이 전성기를 맞으며 그 당시 음악방송은 다 챙겨 보고, 덕분에 다른 가수들의 무대나 노래도 쉽게 접하게 됐어요. 그게 지금 <문명특급>에 치이는 이유까지 되네요.


덕질할 때의 나는 어떤 모습이에요?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는 모습이 보여요. 뮤직비디오나 음방 하나 나오면 전체적으로 어떻게 나오는지 한 번 보고, 개인마다 한 번씩 따로 보고, 또 다른 음방에 나오면 이전에 한 무대와 어떻게 달라졌는지 봐요. 다 같이 예능이나 영상에 나오면 서로의 케미 보는 재미가 있고요. 그러면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면서 머리가 오히려 깔끔해지는 느낌이 들어요. 

주변에서는 샤이니도 샤이니지만 어떻게 그렇게 다양한 가수를 보느냐고 묻곤 해요. 친언니는 제게 아이돌 박애주의자라는 타이틀을 주기도 했죠. 노래나 무대도 좋아하고 사람을 향한 관심이 가수 쪽으로 간 것 같아요. 어릴 때는 잘생기고 멋있는 모습에 치였다면, 지금은 그에 더해 개개인을 사람으로 보게 돼요. 이 사람은 이런 성격을 가진 사람이고 이런 생각을 하고 있구나. 이런 걸 좋아하는구나 하는 정보가 늘어갈수록 이해도가 높아지고, 개인이 캐릭터처럼 그려지며 좋아하게 되는 것 같아요. 심지어 그의 생각이나 취향들이 저와 비슷하면 헤어나올 수 없게 되죠. 물론 같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러면 덕분에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가 높아진다는 느낌을 받아요. 결국 둘 다 헤어나올 수 없는 거네요.





최애의 어떤 사건이 내 인생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생각해요덕질하다 보면 아주 가볍게는 스캔들부터 법적인 문제에 휘말리기까지 어쩔 수 없이 마주하게 되는 사건사고들이 있는데요혜민님은 그런 일들을 어떤 기준으로 대하시는지 궁금해요.

온유 같은 경우에는 성추행 사건이 있었죠. 아직도 저는 그 사건으로 인해 고민한답니다. 회사가 덮은 건 아닌지, 밝혀진 일은 그때뿐이지만 다른 일은 또 없었는지,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나는 이 일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이런 생각들을 피할 수 없어요.

요새는 그런 사안을 바라보는 시각이 명확해졌잖아요. 그 일이 있고서 컴백하는 모습을 보니까 팬인 저조차 그 일이 꼬리표처럼 계속 남아있더라고요. 불편함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제 나름의 결론은 ‘그의 목소리나 능력은 인정해도 그 실수는 잘못된 것이다’예요. 하지만 여기에도 찝찝함은 남아요. ‘문학에서 논란을 일으킨 작가들은 상이 취소되기도 하는데 그가 과연 활동을 유지하며 앞으로 잘될 수 있는가?’ 하는 찝찝함이요. 이런 생각들이 앞으로 세상에 일어날 일에 대처하는 데 일조하리라 생각하며 고민을 멈추지 않으려 해요.


그렇게 정리하신 뒤로 마음이 괜찮아졌어요?

조금 편해졌어요. 완벽하게 편해지진 않았지만요.


첨부해주신 영상에서 키가 행동 경제를 얘기한 대목이 인상적이었어요

제가 행동 분석, 경제 심리 쪽에 관심이 있어서 알게 된 영상인데요. 키는 행동 경제에 대해 생각이 많은 사람이에요. 물론 덕후 렌즈를 쓰고 본 거긴 해도, 영상을 봤을 때 브랜딩, 셀링 포인트를 명확히 알고 행보를 이어나가고 있단 걸 알았어요. 똑똑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엠카운트다운> MC를 맡은 이유가 해외로 송출되는 방송이라는 이유를 듣고 놀랐거든요. 

저는 팬이기도 하지만 소비자에 더 가깝다고 여겨요요즘은 그 소비 역시 나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여기거든요. 그렇다면 ‘나의 안목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라는 생각도 들고, ‘취미든 취향이든 일이든 좋은 것과 나쁜 걸 구별할 잣대’를 가지고 싶어요. 그럴수록 내 가치 역시 높아지겠죠.


종현을 지켜보며 죽음을 대하는 태도랄까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을 때 내가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해보셨다고요

제가 2017년 7월에 간호사로 입사했고, 그 일은 12월에 일어났어요. 이전부터 정신건강에 관심이 있었어요. 정확히는 ‘내 정신은 어떤 상태일까?’ 궁금해서 정신건강의학과에 관심을 두고 간호학과에 들어갔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주변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지만, 결정적인 역할을 한 건 종현이였어요. 엄청난 충격이었죠. 아직도 ‘스스로 생의 마지막을 결정하는 것에 누가 반대할 수 있지?’라는 물음을 가지고 있는데, 그 답을 내놓지 못한 상태에서 종현의 소식을 들으니 죽음을 막지 못한 게 내 잘못인 양 느껴지더라고요. 누군가가 “나 죽을 거야”라고 말한다면 제가 할 수 있는 말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도달한 방법이 그저 옆에 있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궁금해하는 거예요. 이렇게 정리하기까지 그가 분명 큰 영향을 끼친 거죠.


저도 믿기지 않아서 그 여파가 몇 년 갔던 듯해요

한동안은 목소리도 못 듣고, 얼굴도 못 보고 그랬어요. 다행히 이제는 종현이를 언급하잖아요. 이런 일이 있었다, <view> 가사를 썼다는 식으로 다소 편하게 얘기하니까 좀 나아요. ‘이렇게 다뤄도 괜찮구나’라는 태도로 볼 수 있게 된 듯해요.


우리 사회가 죽음이 항상 멀리 있다고 느끼게 만들잖아요승화시키지 못하고 애도하지 못하고요이후에도 그 사람을 계속 추억하고 언급할 수 있을 정도가 돼야 살아있는 사람에게도 좋다고 생각해요그래서 혜민님이 그 얘기를 하셨을 때 되게 반가웠고요즘 또 그런 기류들이 보여서 다행이다 싶어요

지금까지 우리가 얘기한 것만 봐도 단순히 덕질의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고 내 삶누군가의 삶에까지 자꾸 영향을 미치는 일이 되는 거예요놀랍게도(웃음)?

세상을 바꿉니다, 덕질이! 





혹시 혜민님께도 현타가 온 시기가 있었는지있었다면 어떻게 넘기셨는지 궁금해요.

현타의 기준이 좀 궁금한데, 저라면 ‘덕질에만 내 시간을 너무 쏟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현타와,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이 사건을 일으켰다’라는 두 가지로 나뉘는 것 같아요. 그렇게 따지면 후자로 현타가 오는 일은 가끔 있죠. 하지만 전자의 현타는 없는 것 같아요(웃음). 저는 돈과 시간과 에너지세 가지가 사람의 재산이라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제가 앨범, 콘서트, 굿즈 등에 돈을 엄청나게 쓰는 편은 아니거든요. 시간 면에서 보면 덕질이 제일 효율적인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웃음)? 단시간에 내가 제일 행복해질 방법이지 않을까(웃음). 에너지는 오히려 충전되는 것 같고요.


그런 데서 현타가 안 오신다니 다행이에요거리를 잘 지켜서 좋아하시는 것 같아서.

저는 오히려 제가 너무 바쁘거나 일에 집중해야 할 때는 덕질을 좀 놓게 되는 것 같아요.


그게 맞는 것 같아요(웃음). 어떻게 모든 일에 100%씩 집중할 수 있겠어요

근데 그 후폭풍이 와요. 불현듯 못 봤던 영상들을 다 몰아보고…!


감각적인 부분으로 넘어가 볼까요촉각을 중요시하신다고요손에 감기는 무게감피부에 닿는 느낌또 맘에 들면 한 가지 물건을 계속 쓰시는 역사가 있다고요.

영화 <인셉션>의 토템 아세요? 토템처럼 나만이 아는 무게감과 피부에 닿는 느낌이 제겐 아주 중요해요. 구체적으로는 카드지갑과 작은 파우치가 이를 증명해주는 물건이죠. 다른 카드지갑을 써봐도 이 카드지갑에 못 미쳐요. 그걸 알게 된 이후로 이것만 쓰죠. 일정한 무게감을 위해 되도록 안에 넣는 카드 개수도 맞추는 편이에요. 또 작은 파우치는 언니가 방콕 공항에서 공수해 온 건데요. 4년 정도 들고 다니다 보니 죄다 해져서 똑같은 거로 언니가 새로 사줬어요. 마찬가지로 그립감과 무게감이 저를 아주 많이 안정시켜 줘요. 놀랍게도, 잃어버리면 다시 돌아오는데 그것도 너무 신기하죠.

그 외에도 옷이나 양말, 신발은 닿는 면적이 크니 감기는 느낌에 따라 사용 여부가 갈려요. 이불도 그런 유인데, 지금 사용하고 있는 이불은 고등학생 때부터 썼던 거로 기억해요. 아, 마침 이 코트도 그래요.


이 코트는 얼마나 입으셨어요?

한 4년? 하나 꽂히면 좋은 거로 오래 입는 편이에요. 평소 옷에 크게 돈을 쓰지는 않는데도 이걸 보자마자 꼭 사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입사하고 얼마 안 됐을 때라 돈이 없어서 엄마에게 연락할 정도였죠(웃음). 제가 웬만해선 이런 얘기를 안 하니까 엄마도 선뜻 보내주셨고, 산 뒤로 지금까지 정말 잘 입고 있어요. 이건 진짜 이런 컬러와 핏이 없어요. 한 벌 더 사두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예요. 제가 옷을 귀하게, 잘 보관하지 못하는 편이라 언니가 매번 드라이클리닝 맡겨준 덕에 잘 소장하고 있죠.

뭔가를 좋아하기 시작하면 꾸준히 좋아하는 성격이에요. 사람을 만나서 사귈 때도 급하게 친해지기보다 진득하게 보면서 친해지곤 하죠. 평생 갈 친구를 만드는 식이라 안정감 있게 인간관계를 쌓아가고, 그건 물건과도 마찬가지예요. 아이돌도 그런 느낌으로 파는 듯하고요.





시간장소에 구애받지 않는다면 해보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바로 생각난 건 얼마 전 트위터에서 봤던 장소에요. 베를린의 한 수영장인데요. Stadtbad Mitte이에요. 한낮에 강렬한 햇살을 맞으며 이곳에 둥둥 떠 있고 싶네요.

그리고 제 삶의 목표가 하나 있어요. 사막 마라톤이에요! 중국의 고비사막, 이집트의 사하라사막, 칠레의 아타카마 사막을 모두 종주하면 남극에서 마라톤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줘요. 제 꿈이 남극에 펭귄 보러 가는 거거든요. 관광으로도 볼 수 있다고는 하는데 그건 너무 짧고 구경하는 느낌이라 그리 끌리지 않더라고요.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걷기를 하면서 펭귄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왜 안 하죠?


사막 마라톤 얘기를 조금 더 듣고 싶어요.

저는 뭘 한다고 생각하면 하는 사람이에요. 거의 유일하게 못 한 일이 사막 마라톤이라 더 애착이 가는 건데요. 펭귄, 귀엽잖아요(웃음)? 언젠가 사막 마라톤을 알아보다 사진을 발견했어요. 마라톤 레이스를 달리는 사람과 펭귄이 같이 있는 사진이었죠. 보자마자 ‘미쳤다! 이건 가야 해!’ 싶었어요. 동물원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 펭귄이 서식하는 곳에서 오랜 시간 보고 싶은 마음이 커요. 달리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아도 걷는 건 좋아해요. 게다가 가보고 싶은 곳 중 하나가 사막이니, 제가 좋아하는 걸 다 합쳐서 누릴 수 있는 게 사막 마라톤인 거죠. 세계 3대 사막을 다 완주하면 남극에 갈 자격이 주어지는 것도 맘에 들었어요. 스탬프 다 모으면 보상해주는 것 같잖아요! 

저는 여행할 때도 한곳에 오래 머무는 게 좋아요. 여행할 때 제일 오래 있으면서 그 지역을 잘 느끼는 방법은 걷는 거로 생각해요. 마라톤은 7일간 이뤄지는 레이스이고, 각각 거리는 달라도 총 250km 정도 되니 하루에 40km가량 뛰면 완주할 수 있거든요. 그 마라톤에 참가하면 텐트 치고 밥도 해 먹는대요. 그런 거 너무 좋아요(웃음). 여행으로 가면 그렇게 오래 있을 수도 없는데 마라톤을 하면 6박 7일 동안 걷고 자고 하는 거예요. 몸은 힘들겠지만 그게 제가 잘하는 거 아니겠어요. 입사할 때 사막 마라톤에 갈 금액만 모으고 그만두려고 했는데 꽤 잘 적응하는 바람에 아직 그러지 못하고 있어요. 나이 들어서 하려고 아껴두는 중이니 그때는 코로나도 잠잠해지길 바라요.


그럼 걷거나 달리기만 하는 게 아니라 여행하듯이 가는 거네요.

그렇죠. 같이 달리는 다국적 사람들을 서로 알게 되고 친해지는 걸 상상하니 매우 좋은 거예요! 참가하기 위해 꼭 필요한 용품이 있어요. 그런 걸 알아보고 모으는 일도, 실제로 해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아요. 시도하시는 분들을 찾아봤더니 다들 체력이 좋은 듯했어요. 내심 나는 못 하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간호사로 일하다가 시도하신 분도 있어서 해볼 수 있겠단 용기를 얻었어요. 제 꿈이에요. 과정이 쉽진 않겠지만 꼭 해보고 싶어요.


설치미술 전시도 말씀하셨죠.

장기적으로는 설치미술 전시를 해보고 싶어요.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다고 하니 해외에서 열어보고 싶고요. 작년에 피크닉에서 한 <Mindfulness>라는 전시에서 <호흡>이라는 작품을 감상했어요. 그 작품은 인간이 내뱉는 호흡과 비슷한 속도로 양 벽에 있는 천이 폐처럼 부풀었다 줄어들어요. 그럼 그 사이로 걸어가는데, 어떤 생명체의 숨소리처럼 느껴지는 음악이 나와요. 그 감각이 너무 좋아서 천이 부풀었다 줄어드는 효과를 사용해 혼자 있을 때의 편안함과 여럿이 있을 때를 마주하게 하는 전시를 구상했답니다.

사실 저는 혼자 있는 게 좋은 사람인데 사회에서는 사람들과 잘 지내는 게 좋은 것처럼 말하는 게 진절머리 났어요(웃음). 혼자 있는 것도 좋은 상태라는 걸 표현해보고 싶단 마음이 들었죠. 혼자 있다 서로를 마주하는 순간이 오면 낯설기도 하면서 안도감을 느낄 거라고 예상해요. 제가 타인을 만날 때 그러하기에 전시를 통해 그런 상태를 표현하고 싶어요.





프리랜서이면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고 소개해주셨잖아요혜민님에게 무소속은 어떤 의미예요

음… 나로서 세상을 혼자 살아가는 방법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요. 무소속이라고 해서 다른 사람과 관계를 안 하는 건 아니에요. 본인을 중심으로 삶이 구성되게끔 사는 분들이 다 무소속처럼 느껴져요. 그런 의미에서 저도 프리랜서와 연결되는 것 같고요.


그러면 혜민님은 지금 소속이 없다고 느끼시나요?

대학생 때는 그래도 학생이라는 소속감이 있었던 듯한데 졸업 이후로는 계속 무소속이었다고 느껴요. 제게는 다소 낯선 경험이라서 좋은 건 아니에요. ‘왜 나는 아무 데도 속해있지 못하지?’ 이런 느낌이거든요.

작년 즈음부터 프리랜서라는 표현을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이전에는 소속감이 다소 있어서 무소속을 지금만큼 인지하지 않았어요. 이제는 진짜 그 어디에도 속해있는 것 같지 않아요. 오히려 너무 뚜렷한 직장을 갖고 있어서 더 고민이 돼요.


소속감이나 지향하는 일의 모습에 따라 무소속으로 볼 수도 있겠네요

요새 ‘나름 본업이라는 게 있는데 그에 충실하지 못한 건가?’라고 생각해보거든요. 사실 어떤 일을 하는 데 있어서 몰두하는 것도 좋지만 시선이 조금 멀리 있는 것도 좋다고 봐요. 저는 작년까지 제가 간호사라는 걸 못 받아들였어요.


그건 어떤 의미예요?

‘난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는 사람이야’라는 마음이요. 원래도 간호사로서의 저를 수시로 부정해왔어요. 초반에는 직업 특성상 관두는 사람이 많으니까 쉽게 해보고 관둘 수 있는 직업이겠다, 그냥 한번 해보자는 마음도 어느 정도 있었어요. 병동에 들어가서 2~3년 정도 일해 봤더니 생각보다 일이 저와 잘 맞고 괜찮았더라고요. 그렇지만 여전히 병원 밖의 일이 너무나 재밌어서 병원과 거리를 두고 지냈죠(웃음). 이제는 어느 정도 연차도 쌓이고 그보다는 벽이 낮아졌지만요.

작년에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너무 잘 맞고, 좋고, 잘하고 있는 것 같으면 이걸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잘하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일에 애정이 커졌어요. 그랬더니 힘들어지더라고요. 너무 좋아하는 일은 직업으로 삼으면 안 된다는 느낌. 잘하고 싶은데 그만큼 안 따라와 주니까, 성장하지 않는 것 같은 상황이 싫으니까 회피하고, 한편으로는 이 정도 하면 잘하는 것 같아 ‘대학원을 가볼까?’ 하는 생각도 해보고(웃음)….


무소속이라고 여기는 지금취향을 맘껏 누리면서 지내고 계시나요?

현생과 공존할 만큼 누리며 지내고 있어요. 무언가를 마음껏 한다는 것은 그만큼 좋아하고 집중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저한테는 책임을 버리고 그것만 한다는 의미로도 읽히거든요. 현생을 살아가는 데에 지장이 없을 범위 안에서 마음껏 누리고 있어요.





벌여본 일 덕분에 나에 관해 알게 된 모습이 있나요?

다능인, 고통의 역치가 높다는 점이요. 벌여본 일 중에 가장 큰 일이라면 아무래도 현재의 직업을 선택한 건데요. 대학에 다닐 때만 해도 전공은 기본으로 깔아놓고 다른 걸 하기 좋아하는 사람 정도로만 여겼어요. 학교에서 하는 멘토링이나 해외 가는 프로그램은 다 신청해서 갔죠. 그런 게 공부보다 재밌잖아요(웃음). 직업이 생긴 후에도 안 멈추더라고요.

<열정대학>이라는 커뮤니티에 들어가서 여러 사람을 만나 일을 벌였고, 운동에 꽂혀서 PT도 해보고, 여행도 해보고, 연애도 해보고, <빌라선샤인>도 하게 됐죠. 그러다 보니 직장에서 만난 사람이 아니면 저를 간호사로 인식하지 못한다는 걸 알았어요. 올해 제 목표는 안녕하세요프리랜서이며 주로 하는 일은 간호사입니다라고 저를 소개하는 거예요. 비교적 뚜렷한 직업이지만 제게는 그저 나의 다양함 중 하나거든요. 간호사 일만 했다면 저는 벌써 지쳤을 거예요.

루이제 린저의 저서 <생의 한 가운데>에는 “고통도 또한 재산임을 알았다”라는 문구가 나와요.  제가 좋아하는 문장이자 공감하는 문장인데요. 저는 힘든 일을 할 때 강도 높은 운동을 한 것처럼 머릿속이 맑아지는 느낌을 받아요. 운동도 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다 조금 더 강도 높게 하는 게 좋고, 하루를 촘촘히 사는 게 좋아요. 일상에서도 베짱이처럼 사는 건 저한테 안 맞아요. 오히려 무기력해지죠.


다양한 상황 속에서 불안을 경험하기도 하고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는데요그럴 때 혜민님은 어떻게 다스리시는지방법이 있으신지 궁금해요.

이 주제로 경험공유회를 열어볼까 살짝 고민하고 있어요. 저는 스트레스를 잘 다스리는 편인데 힘들어하는 분들이 너무 많은 거예요. 주변에서 공부하기 싫어, 운동하기 싫어, 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저는 ‘그런 말 할 때 그냥 하면 되잖아’ 주의예요(웃음).


마치 모범생처럼(웃음). 

그래서 고민이었어요. 내가 너무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건가 하고요(웃음). 긍정적인 천성에 더해, 스스로 선택한 걸 한다는 자부심이 높거든요. 그래서 저한테 자주 실험해보는 편이에요. 내가 이런 상황에 던져지면 어떻게 행동할까? 어떻게 생각할까? 에 관심이 많죠. 지금 하는 일은 간호사라는 힘든 환경에 놓이면 난 어떻게 할까? 하는 실험이었어요. 그러면 저를 볼 때 거리를 두고 바라보게 된달까요? 마치 피실험자처럼요. <유 퀴즈 온 더 블럭>이라는 프로그램에 한 스님이 나와서 ‘현생은 아바타’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와 비슷하죠. 병원에서 힘들었던 나는, 실제 나와 다른 존재라는 생각으로 멘탈을 잡았던 것 같아요. 힘든 순간도 잘 넘어가고 스트레스를 덜 받으면서요. 

최근에 스트레스받은 일은, 작년에 주식 300만 원 정도가 폭락한 적이 있어요. 그만한 금액을 잃어본 게 처음인 데다 한 종목이 그랬던 터라 충격이 컸어요. 생각 안 하려고 애써보고 여러 가지 방법을 써봤는데도 계속 떠오르는 거예요. ‘300만 원이면 이거도 저거도 할 텐데….’ 여기에 스트레스받는 게 싫어서 어떻게 달리 생각할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300만 원을 잃었을 때 극복한다면 다음에 더 크게 투자할 때는 300만 원을 잃어도 겁먹거나 좌절하지 않을 수 있겠다는 인사이트로 생각을 바꿨어요. 그랬더니 개의치 않게 됐어요.


내가 어떤 걸 좋아하고어떤 걸 못 견디고어떤 방향으로 살아나가고 싶은지 명확하게 알고 계신다는 느낌이 들어요우리가 도중에 그런 얘기를 나누고 있기에 혜민님의 앞날이 기대돼요

말씀하셔서 생각났는데, 한동안 ‘간호사 안 하면 뭐하지?’ 하고 고민했어요. 이 직업이 너무나 좋지만, 더 좋아하는 걸 찾아서 해야 할까? 문화예술 분야를 좋아하니 그걸 직업으로 삼을 수 있을까? 생각해보죠. 막상 그러기엔 너무 다른 세계에 있는 듯해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고 느끼나 봐요.


반대로간호사 일을 하면서도 다른 걸 할 가능성이 열려있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하신 줄 알았어요.

일단은 이 일을 유지하면서 하고 싶은 분야에 관해 차근차근 알아보는 거로 생각을 정리했어요. 아직은 어찌 될지 모르는 상태죠. 그리고 저는 기반이 잘 돼 있지 않으면 불안이 큰 편이에요. 예를 들면 게임을 할 때 아이템이 많아야 해요(웃음). 사용하려고 모으기보단 안정감을 느끼려고 모아요삶도 그래요. 내가 불안정한 삶을 살려면 직업은 안정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자유롭게 살기 위해서 구속되어야 해! 이런 마음.


혜민님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신가요

정반대의 그림이 그려지는데요. 4월에는 대학생 때 덕질하면서 사람 만나고 내 시간을 갖고 심지어 공부도 한 것처럼 해보는 중이에요. 그게 힘들다는 걸 확실히 알았기 때문에 요새는 느긋한 하루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조금 천천히 사는 삶을 바라게 됐어요. 그런데 저는 왔다 갔다 하는 게 빠르더라고요. 이렇게 살면 저게 좋아 보이고, 저렇게 살면 이게 좋아 보이고. 둘 사이에서 속도, 밸런스를 맞춘 삶을 살고 싶어요.






✨혜민님을 더 알고 싶다면

https://www.instagram.com/bye_on_hm/


인터뷰, 촬영   미란
디자인    로고블랭크
copyright ⓒ 미란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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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li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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