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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쎄 Jun 10. 2021

취향 | 태풍이 지나간 뒤 건져 올린 명쾌함

여운의 취향


✨무소속 4개월

✨남영역

✨취향





태풍의 눈에 있는 때는 주변의 비바람이 느껴지지 않는다. 설령 저 멀리서 요동치는 태풍이 보이더라도 내 일로 여기기 어렵다. 내가 선 곳이 맑고 고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순간은 오래 가지 않는다. 태풍의 눈은 빠르게 이동하고 머물던 자리는 비바람이 세차게 몰아치기 시작한다.


덕질의 모습도 그렇다. 푹 빠져있을 때는 태풍의 눈에 든 것 같다가, 점차 태풍이 지나가는 순간을 마주한다. 속수무책으로 그 상황을 견뎌야 하니 힘겨울 수밖에 없다. 여운은 그 태풍이 외부 요인에 의한 것이자 자신에 의한 것이란 걸 알고 있다.


태풍이 지나간 뒤에는 잔해가 남는다. 부서지고 깨져 더는 쓸 수 없는 것들을 제 손으로 하나둘 치우다 보면 한탄스럽고 화가 치밀기도 한다. 그러나 마음을 가다듬고 부지런히 분류하다 보면 안다. 그 태풍이 적재적소에 불어 닥친 것임을, 어지럽던 자리가 재 정렬되었음을 말이다. 협소하게 여기던 취향이란 말을 넓혀서 이제는 다양하게 해석하고 싶다는 여운을 만났다.






재미있고 맛있는 걸 좋아하는
기여운입니다.





덕질하는 게 있나요?

요즘 푹 빠져있다고 할 만한 건 없어요. 덕질하는 장르에 관해 할 말이 너무 많아서 말을 고른 적은 있어도 당장 떠오르는 게 없었던 적은 드물어서 지금이 참 낯선데요(웃음). 사실 이 질문을 받고 어떻게 말을 꺼낼까 고민했어요. 요즘 저는 취향과 덕질을 동일 선상에 두지 않아서요. 적당히 좋아하기를 연습하고 있거든요. 자의든 타의든 한 곳에 똬리를 틀지 않아도 금방 맘에 들어왔다가 금방 시들해지곤 해요. 저에게 있어 취향과 덕질을 분리하기 시작한, 의미 있는 지점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계기로 취향과 덕질을 분리하게 되었나요?

취향과 덕질을 똑같다고 생각해온 기간이 길었어요. 내 취향이다 싶으면 무조건 덕질하는 식이었죠. 소위 아이돌 판이든 배우 판이든 ‘덕후’라고 불리려면 깊게 들어가야 하잖아요. 모든 스케줄, tmi까지 꿰고 있어야 해요. 아니면 ‘라이트’한 팬으로 구분되는데, 저는 ‘라이트’에 머무는 걸 못 참았어요. 덕질을 할 거라면 판 안에 들어가야 했던 것 같아요.

노래를 들을 때도 최애가 좋아하는 노래로 트랙 리스트를 꾸리고, 최애가 입은 옷을 따라 사고, 최애가 간 곳을 00투어라고 부르며 다니다 보니 어느 순간 내 취향이 없어진 것 같았어요. 한창 열심히 덕질한 2016~2019년까지를 돌이켜보면 다 그런 거로 채워져 있더라고요. 페미니즘을 본격적으로 접하면서 제 안에서 충돌이 있었어요. 그 뒤로는 한동안 덕질보다 ‘나’를 탐구하는 데에 재미를 붙였고요.


그렇다면 여운님은 그 둘을 어떻게 구분하시나요?

덕질이 더 뾰족한 단어고 취향은 모호하게 쓰이는 단어라고 생각해요. 누군가에게 ‘이 사람 내 취향이다’라고 할 수도 있고, 음식을 두고 ‘이런 맛 내 취향이다’ 할 수 있듯 지금은 취향이란 말을 넓은 채로 두고 싶은 마음이에요. 어디에나 쓰이는 단어로. 반면 덕질이라고 하면 내가 파는 것을 속속들이 다 아는 모습을 예상하게 되죠.


덕질할 때의 나는 어떤 모습이에요?

덕질이란 표현 대신 무언가를 좋아할 때로 바꾸어서 답해볼게요(웃음). 저는 꽂히면 그것만 질릴 때까지 파는 편이에요. 그게 무엇이든…. 과자도, 사람도, 영화도, 일도 소위 여럿을 한 번에 좋아하지 못해요. 하나를 단숨에 파고들고 여러 번 반복하면서 푹 빠져야 하죠. 그간은 성질이 급한 탓이라고 밋밋하게 생각해왔는데, 그래야 직성이 풀리는 성향이란 걸 최근에야 깨달았어요.


13살 무렵의 내가 재밌어하던 일은 무엇이었나요?

이 질문 신선해요! 13살의 저는 신화를 좋아했어요. 12살 때 친했던 친구를 따라 좋아하기 시작해서 아마 그 무렵에 가장 열심히 좋아했을 거예요. 엄마 졸라서 테이프 사고, 처음 CD를 사고, <미스터 케이(엠알케이)>랑 <wawa109>라는 잡지를 잘라서 파일에 보관했죠. 나중에 생각해보니 콘텐츠 자체보다는 또래문화를 재미있어 한 것 같기도 해요.

그보다 어릴 땐 낙서를 좋아했어요. 패러디하거나 친구의 특징을 잡아서 웃긴 상황을 묘사하는 낙서 형태의 그림으로 소수의 마니아층이 있었어요. 나중에는 더 활동적인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은 마음에 그 취미를 창피하다고 느끼며 숨겼는데, 지금 보면 어릴 때부터 계속 남아있는 성향이었네요.





내 취향에 영향을 준 사람을 여럿 꼽아주시면서 앞에 키워드도 같이 적어주셨어요. ‘코미디’가 눈에 띄더라고요.

웃긴 것과 이야기, 시트콤, 블랙코미디 장르를 좋아한다는 말 말고 구체적인 언어를 찾지 못했어요. 그러다가 <빌라선샤인>을 통해 여러 여성과 대화하며 시야가 확장되기 시작했어요. 현직 콘텐츠 제작자로 일하시는 분께 구상하고 있는 코미디 프로그램에 대해 들었어요. 더불어 ‘여성주의 코미디’라는 개념과 그걸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죠. 여성이 디폴트인 코미디, 여성주의는 당연하고 대중을 만족시키는, 맥락 없이 웃긴 것으로 이야기가 모였고요. 여성 미디어 그룹 ‘소그노’가 만든 예능 <뉴토피아>가 그런 콘텐츠예요. 최근에 코미디 영화만을 파고드는 <희극지왕>이란 팟캐스트를 듣기 시작했어요. 코미디에 관해 더 다양하게 듣고 생각을 확장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여운님의 유머 코드는 어떤 식이에요?

진지해지는 걸 스스로 못 견뎌요. 진지하게 말하고 있다고 느껴지면 상대가 받기 전에 제가 먼저 엉클어버리곤 해요. 힘 빼고 툭 던지는 유머가 웃기기도 하고요.

저는 어릴 때부터 웃긴다는 칭찬을 제일 좋아했어요. 지금도 그렇고요. 1순위 칭찬이 ‘웃기다’, 2순위가 ‘똑똑하다’예요. 즉 제가 추구하는 모습이 웃기고 똑똑한 사람이니까, 글을 잘 쓰는 사람이나 영화 잘 만든 사람 중에서 웃긴 사람을 항상 좋아했던 듯해요.


그 둘이 겹치는 거로 코미디언을 바로 떠올릴 수 있지 않을까 싶거든요.

코미디라고 하면 흔히 떠올리는 게 <개그콘서트>나 <코미디빅리그> 같은 모습이잖아요. 이런 공개 코미디는 제 기준에서 너무 외향적이라고 해야 할까요? 저는 눈 10개가 쳐다보면 말을 못 했어요. 1대1에 강하니까 항상 주변에 2명, 3명 정도만 두고 광대처럼 계속 웃겼죠. 코미디언과는 다른 부류라고 판단해 꿈꾼 적은 없어요. 오히려 놀랍게도 MC가 꿈이었어요(웃음).


MC가 되고 싶다는 건 흥미로운 포인트예요.

의외죠? 저조차 그때의 제가 조금 낯설기는 한데요(웃음).

그때 꿈꾼 MC의 모습을 지금으로 따지면 재재님에 가까워요. 물론 제가 그렇게 극적으로 까불 수는 없죠. 춤추고 노래 부르는 거 말고, 구사하는 개그가 딱 제가 바라는 스타일이에요. 잘 보면 재재님은 사람들을 가볍게 조롱하면서 기분 나쁘지 않게끔 선을 잘 지켜요(웃음). 신기한 건 어린이부터 할아버지까지 그렇게 놀릴 수 있는 부분이죠.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능력이 대단해요. 재재님은 균형 잡는 감각을 타고난 것 같아요. 쉽지 않잖아요. 만약 제가 같은 상황이었다면 과해서 말실수하거나 조심하다가 노잼이 될 거예요.


본인을 ‘샤이 관종’이라고 소개해주시기도 했죠.

최근에야 깨달은 건데요. 트위터를 할 땐 팔로워가 50이 넘어가면 바로 비공개 계정으로 돌렸어요. 사람들이 제 말에 웃는 건 좋은데 일정 숫자가 넘어가면 무서웠거든요. 이름이 알려지는 게 싫어서 알티 스타는 될 수 없는데, 관종이긴 해서 내 트친 중에서는 내가 제일 웃겨야 하는 거예요. 이 안에서만 알티 스타다!

스스로 명예욕이 있다는 걸 알고 있어요.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굉장히 강한데 앞에 나서지를 못하는 편이죠. 샤이 관종이라는 말이 안 좋게도 쓰이지만, 실제로 저는 샤이 관종이 맞아요.





여운님에게 중요한 키워드로 ‘멋’이 있더라고요. 멋있다는 건 여운님에게 어떤 이미지예요?

‘멋’이라는 건 유행이나 힙한 거 보다, 줏대 같아요. 그래서 확고한 취향을 멋과 동일 선상에 두는 것 같기도 해요. 줏대가 없는 게 제 콤플렉스라고 여겼거든요. 좋아하는 거, 스타일이 명확하지 않고 누군가를 따라 하는 팔랑귀예요. 또래문화에 잘 흡수되고요. 그래서 ‘나는 나만의 길을 간다’ 모드의 사람을 선망해요. 그게 잘못된 길만 아니라면 말이죠.


또래 문화, 주변 사람에게 영향을 크게 받으신다고요.

자아가 자꾸 급변해서 1기 여운~5기 여운으로 대략 나뉘어요(웃음). 굉장히 많이 변하는 한편 본질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걸 사람 덕질을 그만두고 나에게 관심 가지기 시작한 뒤로 알게 됐죠. 예상보다 코어가 있긴 하구나.

예전에는 코어를 알고 있으면서도 제 마음에 안 들었어요. 내심 멋있지 않다고 생각했죠. 남들을 웃기려 하고 실없는 소리 하는 내 모습을 알아챌 때면 ‘내 고유의 멋이 없다’ 싶었어요. 시간이 흐르며 싫어서 안 썼던 능력을 가끔 내보이자 반응이 달라졌어요. 저만의 캐릭터가 있다는 사람이 1명에서 2~3명으로 점점 늘어갔죠. 그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처음에는 당황했는데 이제는 내게도 뭔가 있나 보다 해요. 싫어한 능력조차 내 강점임을 알고 써보려는 출발 지점에 다다른 거예요.


해나가시는 자체가 본인을 변화시킨다는 게 뚜렷이 보여요.

내 약점을 강점으로 쓴다는 개념을 많이 들어왔지만 이제야 실감 난다고 해야 할까요? 글을 쓰면서 찾은 또 다른 약점은 문어체를 못 쓴다는 거예요. 말할 때는 문어체로 말하고 글은 구어체로 쓰게 되거든요. 떠올려보면 예전부터 싸이월드나 페이스북에 쓴 글을 두고 말하는 것처럼 읽힌다는 얘기를 자주 들었어요. 단지 제가 키보드 워리어라서(웃음) 글로 말하는 게 편하다고 여겨왔죠.

이제는 편향되고 주변의 영향을 곧잘 받는 제 모습을 아니까, 일부러 영향받고 싶은 사람을 주변에 두려고 해요. 그러면 자연스레 좋은 쪽으로 가겠죠. 좋게 보면 유연하게 흡수하는 거잖아요. 이러면서 점점 취향을 찾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에세이나 영화 관련 글도 쓰시죠. 최근에는 <취향의 오작동>이라는 에세이 메일링도 시작하셨잖아요.

제 삶에 글쓰기가 들어올 줄 꿈에도 몰랐어요. 글을 맺어본 적이 한 번도 없었거든요. 영상 만드는 걸 좋아할 때도 라이브는 절대 못 하고 오랫동안 편집해서 올렸어요. 버벅거리는 걸 보이기 싫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일단 최대한 찍어놓고 내가 보여주고 싶은 방향으로 편집하는 걸 즐기더라고요.

글도 그게 가능하잖아요. 생각을 있는 대로 써놓고 순서를 바꾸거나 어느 부분만 발췌해서 여러 관점으로 쓸 수 있으니까요. 반대로 말은 뱉어버리면 끝나버려서 외국어 하듯 버퍼링이 생길 때가 있어요. 어순이라든지 표현을 다듬고 싶은 걸 머릿속에서 재 정렬하느라 그래요.


여운님의 글을 읽으면 너무 재밌어서 계속 읽고 싶어요(웃음).

신기한 게 미란님이 그런 것처럼, ‘그렇게’ 안 쓰는 분들이 더 재밌어하더라고요. 어쩌면 본인도 그렇게 웃기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사회적 체면이라든지 태생이 진지한 분들이라 대리만족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 부분이 재밌어요.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이게 좋다고 해주는 사람들이 생기면서예요. 만약 그런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제가 글을 그만 썼거나, 작문 책을 읽으면서 고치려고 하고 애써 어려운 말을 썼다가 나중에 창피해하거나 했을 거예요.


저는 정말 중요한 글이 아니면 퇴고를 많이 하지 않거든요. 여운님은 글 쓰실 때도 일주일 전에 써놓고 조금씩 고치시고 나중에 공개하시는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독자를 많이 의식해서 그런 것 같아요. 의식하지 않고 짧고 빠르게 글을 쳐내 보고 싶어서 ‘30일 글쓰기’에 도전해 봤어요. 1일 차엔 그렇게 썼거든요. 뒤로 갈수록 분량이 길어지고 재미를 추구하고 있더라고요, 제가. 심지어 인스타그램 게시물로 올리려니 결국 잘 읽히고 재밌는 글을 써야 한다고 의식해버려서 시간이 좀 걸렸어요. 쓸 만한 결과물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계속 편집하는 걸지도 몰라요.


그 과정 덕분에 여운님스러운 글이 나온 거죠.

그런가 봐요(웃음). 작년 6월에 처음 글을 썼으니 쓴지 딱 1년 됐거든요. 처음에는 색깔이 없다가 점차 읽히는 걸 의식하며 썼어요. 읽었을 때 재밌어지고 싶으니까, 웃기고 싶으니까. 솔직함을 전략적인 느낌으로 이용했던 거죠. 대신 글을 감정 쓰레기통으로 쓰지 않아요. 애초에 내가 편하려고 쓴 글이 아니니까 쓰고 난 뒤에 내 마음에 들어서 혹은 후련해서 좋은 게 아니라 하트가 찍혔을 때, 대박 나라고 소액이나마 후원해줬을 때 좋은 거예요. 그때 이게 내 원동력임을 알았어요.





또 ‘이야기’도 중요한 키워드예요.

이야기를 좋아해 소설만 읽던 아이는 드라마와 시트콤을 좋아하는 어른이 됐어요. 영화도 남들 보는 만큼 봤는데, 2015년에 본격적으로 독립영화 배우에 빠지면서 독립‧예술영화, 작가주의 영화를 보러 다녔어요. 그즈음이 무대 인사나 GV 열풍으로 독립영화가 관객들에게 가까워진 시기이기도 하고, 서울의 문화 인프라가 크게 한몫했죠. 어릴 때 ‘인 서울’을 열망했던 이유거든요. 서울엔 다 있으니까. 아트나인이라는 예술영화관 근처에 3년 동안 살면서 거의 매주 갔었어요. 영화 보는 건 현재진행형으로 가장 오래 좋아하고 있는 일이기도 해요.


이야기를 향한 관심이 영화로 갖춰지게 된 거군요.

그게 정확한 것 같아요. 웃기는 걸 좋아하는 만큼 이야기를 진짜 좋아해요. 어렸을 땐 이야기책, 그러니까 소설책만 읽고 다른 책을 아예 안 읽었어요. 그만큼 책을 좋아하다가 영화로 바뀐 것 같아요.


두 매체가 명확하게 다르다고 생각하거든요. 영화의 어떤 포인트가 여운님을 끌었을까요?

말로 하면 쉽지 않아 고민을 많이 했던 지점이었어요. 왜냐면 영화를 그렇게나 많이 보는 동안에도 영화에 관한 글은 못 썼거든요. 이 영화가 왜 좋았는지 쓰려면 매번 ‘쩐다, 짱이다, 너무 좋다’는 표현뿐이었어요. 왜 좋은지 저도 잘 몰라서. 영화 리뷰 또한 전문적이지 못할 테니 영화를 소재로 한 에세이로 방향을 틀어봤어요. 리뷰보다는 내 얘기 하는 게 아직은 더 쉬우니까요. 내가 아는 단어 아니면 쓰기 무서운 것처럼 내가 잘 모르는 분야에 말을 얹기가 어렵기도 하고, 재미도 없고, 남들이 읽었을 때도 재미가 없을 것 같으니까 굳이 써야 하나 싶은 거죠.

어쨌든 책과 영화가 판이한 점이라면, 영화는 온몸으로 이야기를 즐기는 거잖아요. 이야기도 보지만 음악이랑 화면, 배우 연기까지 망라한 통에다가 나를 넣어놓은 것처럼! 특히 그 모든 게 다 내 마음에 드는, 소위 말해 ‘내 취향’인 것들이면 너무 좋죠. 모든 감각으로 느끼는 덩어리 같은 감각을 좋아했어요. 제가 좋아한 영화들을 추려보면 주로 한국 영화이고 특히 독립영화가 제일 많더라고요.


요즘은 독립영화를 다양성 영화라고 부르더라고요. 그만큼 뻔하지 않은 이야기를 다루어서 아닐까요?

독립영화의 매력으로 다양한 소재라든지 비주류성이 꼽히기도 해요. 저도 ‘남들과 다른’ 점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그게 주된 이유는 아니었어요. ‘날것성’이라고 할까요. 독립영화는 항상 8평 자취방 같은 데서 찍고(웃음) 배경음악보다 생활 소음이 들어가요. 때때로 익숙한 배경에서 별안간 만화적인 사건이 엉성하게 일어나기도 하고요. 소자본으로 만들기 때문에 나오는 날것의 느낌을 좋아해요. 그러니 다양성보다 독립에 방점이 찍혀 있는 것 같아요. 반대로 케이팝은 돈 냄새가 짙을수록 좋아하는데 말이에요.


다양성 영화로 명칭이 달라지는 부분이라든지 영화를 향유하는 방식, 제작진 등 영화 자체에서 영화를 둘러싼 것들이 바뀌는 게 보여서 흥미롭더라고요.

영화는 시대 아카이브잖아요. 드라마처럼 템포가 빠르진 않지만, 그 시대에 유행했던 것들, 당연시됐던 것들은 다 들어가 있어요. 가령 요즘 2000년대 초반 영화에 꽂혔는데 반 접어서 탁 닫는 폴더폰이라든지 투박한 네이버 화면, 전성기의 던킨도너츠 같은 시대상이 나와요. 삽입곡은 인디 밴드 노래고요. 어른들이 트로트와 홍콩 영화를 좋아하는 것처럼 저도 익숙한 것이 편하게 느껴지더라고요. 반면 불편한 부분도 많아요. 특히 멜로, 로맨틱 코미디는 대부분 폭력적이에요.


그때는 당연했는데 지금은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어서 ‘그때는 어떻게 괜찮았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불편함을 견디면서 감상할 땐 어디가 어떻게 틀렸는지 불평하면서 봐요. 그러고 나면 정형화된 스토리라인이 없는 영화를 보기도 해요.


그런 게 뭐가 있어요?

예를 들어 ‘미란은 마감 기한이 하루 남은 때에 영화제 시나리오를 제출한다.’라는 시놉시스 한 줄이 내용의 전부인 거예요. 어떤 상황에서 일어난 일을 소재로 30~40분짜리 영화로 만드는 거죠.

이런 영화는 상황이나 감독의 연출을 주로 보는 것 같아요. 편집점이나 자막이 글씨나 소품을 활용하는 등 감독 색깔이 많이 묻어나니까 재밌거든요. 그래서 이것도 재밌고 저것도 재밌어서 제 취향이 이거라고 정하기 어렵지만 싫어하는 건 또 명확히 있어요. 재미가 없는 거.





무소속으로 지내며 나에 관해 알게 된 점 있으신가요?

일단 무소속이라는 게 익숙해지기 전에 정치판에서 후보를 얘기할 때를 보면, 정당에 소속되지 않고 혼자 나온 걸 얘기하죠. 저는 여태 말했듯 소속감이 중요한 사람이고 또래나 옆에 있는 사람들한테 많이 휘둘리기 때문에 소속이 필요하더라고요. 맨날 사람들과 부대끼는 거 싫으니까 회사 싫고 조직이 싫고 나는 혼자 일해야 하는 거 아닐까? 하고 생각해왔는데, 무소속이라는 모임에라도 소속돼 있는 게 중요해요.

이전에 무소속 기간이 몇 번 있었어요. 16년에 3개월을 쉬었고, 18년에 5개월 정도 쉬었어요. 그 기간을 당연히 백수라고 칭했고 생애 통틀어 아마 영화를 제일 많이 본 기간일 거예요. 시간이 많으니까 하루에 3편씩 봤거든요. 그저 자유라고 생각했고 소속감 없이 하다 보니 뭘 해도 시간 때우는 종류에 지나지 않았어요. 내 돈이 다 떨어질 때까지, 아니면 다음 직장을 구할 때까지 노는 기간이자 남은 기간이었죠. 그래서 그 시간이 떠 있다고 할까요? 킬링타임처럼 시간을 계속 보냈다면 지금은 달라요.

일단 여러 모임을 통해 소속감을 느끼고 있으니까 거기서 해야 할 일들을 만들어가고요. 현재 청년수당을 받으니 6개월 이상 이 상태를 지속할 수 있는 돈이 있어요. 하지만 저는 무소속이거나 독립하고 싶어서 나온 게 아니거든요. 다른 조직에 들어가고 싶어서, 이직하고 싶어서 나온 거예요. 그래서 공백기가 길어질수록 불안해요. 물론 요즘은 내가 뭘 했는지 증명할 수 있으면 공백기도 내세울 수 있는 무언가가 된다고 말하지만, 제가 겪어온 취업 시장에서는 그렇지 않았거든요.


저도 소속감이 중요하다는 걸 나와서야 깨달았어요.

비록 지금 회사에 소속되어 있지는 않지만, 여성 모임인 <와우! 글쓰기 교실>, <그레타 기획 클럽>, <번역으로 만나는 세상>, <마케터블>에 각각 소속되어 일하는 걸로 나를 정의하는 요즘이에요. 각 클럽에서 해야 할 일들이 있거든요. 하다 보면 하루가 다 가요. 시간이 왜 이렇게 없지, 왜 이렇게 바쁘지 하고 느끼는 게 예전 무소속 기간과는 달라요.

재밌는 점은 회사에서 일하는 감각을 좋아하는 편인 데다 일을 곧잘 해서 보람을 느끼거든요. 무소속으로 시간과 장소를 내 의지대로 운용하며 일을 해 보니까 이 생활이 꽤 잘 맞아요. 그래서 지금 굉장히 혼란스러운 상태예요(웃음).


구체적으로 어떤 상태예요?

회사 다닐 때는 9 to 6가 안 맞는 사람이었는데 막상 무소속이 되니까 9 to 6 사람이 됐어요. 일과를 보면 아침 8시 반쯤 일어나 요가를 하고 9시부터 제가 꾸린 일을 한 뒤에 밥을 먹어요. 이건 회사에서 ‘뭘 하다가 시간이 다 갔지?’ 하는 감각과는 차원이 다른 거예요. 일과를 제 마음대로 꾸릴 수 있다는 점, 스케줄을 유동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는 점, 싫은 사람과 만나지 않는다는 점 등이 가장 좋죠. 그래서 혼란보다는 갈등이라고 할까요? 이래도 되나….


과도기 아닐까요? 여운님께 맞는 방식을 계속 찾아 나가시는 과정 같아요.

그러게요, 과도기 같아요. 제가 알고, 그게 정상이라고 생각했던 커리어와 지금 막 논의되고 있는 커리어 사이에 괴리감이 있잖아요. 그래서 우리 세대 같은 경우는 고민이 많은 듯해요. 옳다고 배운 영역에서 떨어져 나왔으면 옳지 않은 건데 이 시대는 그것도 맞대요. 끼어있어서 되게 힘든 것 같아요. 만약 제가 10년 늦게 태어났으면 유튜브 할 수도 있고 팟캐스트 할 수도 있고, 이렇게 저렇게 모아서 300만 원 만드는 방식이 당연할 수도 있겠죠. 많이들 당연하다고 하는데 검증해 본 적이 없으니 잘 모르고 믿지 못하겠어요. 그래서 사람들 만나면 맨날 일 얘기, 사회 비판적인 얘기를 꺼내고 토로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저는 ‘프리랜서로서 일을 잘한다는 걸 스스로 인지하면서 밥 먹고 살 궁리를 하고 싶다’ ‘앞으로 미래는 점점 프리랜서화될 것이다’를 자주 굴려봐요.

그러니까 필요에 따라서 일하는 형태를 내가 선택할 수 있으면 좋겠거든요. 모두가 다 회사에서 독립해서 일할 수는 없잖아요. 지금은 무소속이되, 어떨 때는 조직에 들어가서 좋은 부품으로 일하는 것도 괜찮다고 봐요. 하고 싶은 기획이 있고 먹고살 돈이 있으면 한 6개월에서 1년 정도는 이걸 하고, 1년 뒤에는 내가 소속되어 일하고 싶으니까 조직에 들어갈 수 있는 모습이요. 근데 그게 안 될 것 같고 불안하니까 이 시기에 전전긍긍하는 거죠.

제가 분명히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뭔가를 하고 있는데도 남들이 보면 어차피 백수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어요. 왜냐면 1년 뒤에 내가 일하고 하고 싶다고 바로 일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사람들이 반년 정도는 쉰다고 말해도 마냥 웃을 수가 없는 거예요. 그게 내 자의가 아니니까. 만약 프리랜서가 주류인 사회가 오려면 이게 먼저 성립돼야 하겠죠. 자의로 쉴 수 있는 사회(웃음).


그런 점에서 봤을 때 여운님한테 무소속이라는 기간은 아직도 혼란스럽고 불안한 거네요.

네. 좋긴 한데 이래도 되나? 싶어요. 약 5년을 회사에서 일하고 이제 가속도가 붙어야 할 시점에 회사를 그만두어 버렸다는 불안감이 컸거든요. 주변에서 퇴사를 많이 하는 만큼 입사도 많이 해요. 이직하는 모습을 보면 부러운 거예요. 그렇다고 ‘너도 여기에서 일하게 해줄게’라고 하면 기쁘진 않은데 말이에요. 사람이 못나지는 시기 같아요.





하나만 딱 좋은 스타일이 아닌가 봐요. 여기서 이런 점도 좋고, 저기서 이런 점도 좋고.

제가 회색을 좋아해요. 검은색과 흰색이 섞인 걸 좋아하는 거죠. 만약 여러 패턴의 카드 중에 고르라고 하면, 저는 각각의 색이나 한 가지 패턴이 있는 것보다는 4분할로 다 들어 있는 카드를 고를 거예요. 이것저것 섞인 걸 좋아하는 게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어서 그런 건지, 내가 뭘 좋아하는지 정확히 몰라서 그런 건지 모르겠어요. 어쨌든 고를 때마다 항상 여러 가지가 다 들어간 조잡한 걸 고르게 되더라고요(웃음).


스펙트럼이 넓다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 자체가 줏대인 거죠.

그런 식으로 정의를 좋게 바꿔나가는 단계겠네요.


무소속이라고 여기는 지금, 취향을 맘껏 누리면서 지내고 계시나요?

‘지금 버전의 나’가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가고 있어요. 어떤 생각이 떠올랐을 때 몸이 근질거리는지, 어떤 경험을 했을 때 마스크 뒤로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지 같은걸요.


무소속으로 보내는 시간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갓 무소속이 되었을 때 직업을 적어야 할 일이 생겼는데, 백수라고 쓰기 억울해서 ‘자율 노동자’라고 적었어요. 월급을 받진 않지만 매일 ‘일’을 하고 있었거든요. 회사에 다닐 때 퇴근 후부터 새벽까지 하고 싶었던 ‘놀이’가 지금은 해가 떠 있을 때 하는 ‘일’이 되었어요. 그래서 하루는 행복하고 하루는 불안해요. 놀이 같은 일을 매일 하니까 한참 즐겁다가, 어느새 일처럼 ‘잘’ 하려니 지치기도 해요. 그럼 일이 된 놀이를 미뤄두고 또 어떤 걸 해야 내가 재밌어할지 찾아 나서요. 나를 달래주느라 진땀 빼는 건 똑같지만 소속일 땐 퇴사하지 않게 하려고 커피를 사 먹이고 옷을 사 주며 달랬다면, 무소속인 지금은 더 재밌게 살려면 어떻게 해 주면 좋겠니? 물으며 달래는 것 같아요. 목표가 더 커지고 지속 가능해졌다고 할까요.

어릴 때는 50살이 넘어도 일을 하고 싶다고 했었는데, 지금은 50살 넘어서 일 하는 게 당연한 시대잖아요. 앞으로 몇십 년을 계속 일하려면 지금 전력 질주하는 건 전략적으로 손해다. 그런 생각으로 불안을 가라앉히려 해요.


돈, 시간,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다면 해보고 싶은 일이 있나요?

오랫동안 이 질문을 받으면 영화 만들기라고 했는데 오늘 다시 생각해보니 영화를 보는 게 좋지 만들 생각이 없네요. 여러 나라에 오래 머물면서 글 쓰는 생활이 궁금하긴 해요. 여행을 좋아하기보단 낯선 곳에서 머무는 걸 좋아했던 터라 코로나19가 없었으면 지금 딱 실험해볼 수 있었는데 아쉬워요. 또 집을 제 맘에 꼭 들게 최적화된 상태로 꾸려놓고 내내 집에서 지내는 일도 있어요. 돈, 시간, 장소 제약이 없는 상태치고 너무 소박하지만 ‘왕이 되고 싶다! 달에 가고 싶다!’ 이런 욕망이 솔직히 없어요.


여운님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나요?

누군가를 동경하는 이유는 제가 그렇게 되고 싶다는 점이 커요. ‘멋’이라는 말에는 반반의 의미가 있거든요. 제가 말하는 멋은 줏대의 의미도 있고 약간의 허영심도 담겨 있어요.

질투에 관해 다시 생각해봤어요. 멋있다고 생각하는 걸 누군가 하면 그 사람을 좋아할 때도 있고 질투할 때도 있어요. 누군가를 보며 희미한 질투를 하는 이유는 아마 내심 그렇게 되고 싶다는 마음이 있나 봐요. 유명세에 대한 열망(웃음)? 과거에 흔히 떠올리던 질투처럼 상대를 끌어내리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저런 모습이 되고 싶은 거예요. 어떤 분야냐에 따라서 그게 자격지심이 될 때도 있고 긍정적인 의미의 동기부여가 되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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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님을 더 알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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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촬영   미란
디자인    로고블랭크
copyright ⓒ 미란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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