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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쎄 Jun 07. 2021

삶 | 뭉근하게 더듬어 자유를 감각하기까지

지현의 삶

✨무소속 6개월

✨종로5가역

✨삶





지현과 만나기로 한 날은 비가 내렸다. 추적추적 내리는 정도가 아니라 바람과 함께 세차게 내려서 옷이 꽤 젖었다. 좁은 입구를 통해 들어간 카페는 마음을 내어준 사람에게만 허락된 다락방 같았다. 어둡고 특유의 냄새가 나고 곳곳에 놓인 아이템을 가만히 들여다보게 하는 다락방.


소파에 나란히 바투 앉아 흘러가는 대로 얘기를 풀어놓았다. 그러다 방공호 같은 공간이 필요해서 극장을 자주 드나들었다는 말이 나왔다. 내 존재와 고민을 잠시 잊을 수 있는 어둠이 절실했던 시간. 혼자 품고 있던 ‘이 얘기를 꺼내도 괜찮을까?’ 하는 마음이 ‘이 얘기를 꺼낼 수 있다니!’로 바뀌는 순간, 다락방은 혼자만의 외로운 공간이 아니라 누군가와 나눌 수 있는 오붓한 공간으로 변모했다.


대화를 마친 뒤 일렁이는 파도의 순간을 포착한 작품들을 함께 감상했다. 그날 지현이 남긴 문장이 이야기를 갈무리할 수 있는 표현이겠다. ‘삶이라는 망망대해 위에서 필연적으로 불확실한 흐름에 몸과 마음을 자연스럽게 내맡기며 우리만의 호흡으로 흘러가다 보면, 어쩌면 우리에게 더 멋진 일이 있을지도, 아니 조금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어쩌면 우리가 더 멋진 일을 포착하게 될 수 있을지도 몰라.’ 






인간애를 동력으로 살아가고 싶은
박지현입니다.




지금의 나를 키워드 3개로 표현해볼까요?

박지현, 2021 현재 서른한 살, god의 ‘길’이요.


저희가 뉴먼소셜클럽 <로그클럽 나다운 기록나다운 길로>에서 만났어요마침 모임에서 god의 ’ 버스킹 영상을 보고 얘기 나눴죠.

맞아요. 8~90년대생이라면 이 노래가 익숙할 텐데, 곱씹을수록 명 가사예요. 인생에 대해 이만큼 설명할 수 있는 가사는 없다(웃음)! 가사가 지금 제 상황 같았어요.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지만, 오늘도 난 걸어가고 있네.’ 현재 저도 알지 못한 채 계속 걸어가고 있는 상태거든요. 과거에도 그랬고 아마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까요. 그래서 이제는 명확함을 자꾸 바라는 건 불가능한 걸 바라는 일이겠다고 자주 생각해요. 그러니 불확실함을 받아들이자!


우리가 방향 없이 걷고 있다고 생각해도 되돌아보면 올곧은 방향으로 걷고 있었겠다 싶어요.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걸어가긴 했고, 뒤돌아보면 길이 그려져 있는 거니까요.


어렸을 때 멋모르고 따라부르던 가사들이 이런 내용이었다는 걸 커서 절절하게 느끼는 것도 있어요어릴 때와 달라졌지만 그 뿌리는 그대로인 느낌이랄까요?

어쩔 수 없죠. 나이 먹어도 나는 나인 거예요. 그 모습을 내가 받아들이는 수밖에요. 생각해보면 저는 일단 좋고, 납득해야 움직이는 사람이에요. 그러니 다음 스텝을 결정할 때도 내가 원하는 걸 찾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고요. 내가 그렇게 움직이는 사람이라는 걸 알아가면서 점차 받아들이게 돼요.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여기는 게 있나요

FM 적 모범생으로 오랜 시간을 살아오며 억지로라도 체화된 근면 성실의 태도요. 엉덩이가 무거운 것이 고리타분하기도 하고 노잼인데다가, 때론 자신을 지독히 옭아맨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하지만 그간 저의 삶을 이끌어온 힘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네요. 

2021년 3월에 숨 쉬고 있는 저를 만들고 있는 건 2년 전에 취미로 시작하여 인생 처음으로 꾸준히 하는 운동이자 수련, 요가예요. 숨을 쉬고 있나요? 힘을 빼고 있나요? 힘을 엉뚱한 곳에 쓰고 있지 않나요? 라고 저 자신에게 물어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죠.


FM 적인 모습으로 살아왔던 시간이 길다고 하셨잖아요진득하게 하고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이 지현님을 이끌어가는 강한 힘이겠다고 생각했어요.

FM 적 성향이 저의 큰 원동력이긴 해요. 지각도 안 하고, 주말 아침에도 일찍 일어나서 준비할 만큼 부지런함이 몸에 배어있어요. 또 숙제나 미션 등 뭐 하나 주어지면 어떻게든 기한 내에 해내야 하는 성미거든요. 좋게 얘기하면 성실함이라고 볼 수 있을 거예요. ‘아무리 내가 앞구르기를 못 하고 몸을 못 써도 어떻게든 어느 수준만큼은 해야 한다.’ 100번 연습해서라도 해내는 애였던 게 큰 장점이 되긴 했으니까요.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스스로 질리고 저를 괴롭히는 부분이기도 했어요. 

저는 엄마 아빠가 간절히 원했으나 늦게 본 아이였어요. 그러니 얼마나 귀했겠어요? 원하는 대로 예쁘게 크길 바라는 마음이 컸던 거죠. 그게 제게 일종의 틀처럼 느껴졌어요. 중‧고등학생이 되자 이 틀이 너무 답답한 거예요. 나는 항상 공부하고 있는데 왜 공부해야 하는지는 아무도 안 알려주지? 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물어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지? 왜 다들 나와 경쟁하려고만 하지? 하는 물음들이 많은데 답은 구할 수 없어 방황하던 시기에 뮤지컬이라는 장르에 끌렸어요. 제 안에 자유에의 갈망 같은 게 있었나 봐요. 그동안 ‘너는 이렇게 해야 해, 너는 공부를 잘해야 해, 엄마 아빠 눈에 바르게 커야 해’ 같은 당위에만 갇혀있다가 드디어 ‘네가 하고 싶은 게 뭐야?’라는 질문을 받은 거죠. 





여기서 벗어나 좀 더 자유로워지고 싶어라는 방향으로 계속 가셨던 거네요구체적으로 뮤지컬 <렌트>에 영향을 받으셨다고요

처음 접하게 된 뮤지컬이 <렌트>예요. 이제는 잘 기억도 나지 않는데, 고등학생 때 화면으로 보여줬을 거예요. 반 친구들은 관심이 떠난 지 오래고, 저 혼자 이걸 보고 감동해 울고 있더라고요. ‘어, 이게 뭐지?’ 아마도 제 마음 한구석의 갈망을 가시적으로 보여줬기에 그에 감명받았던 듯해요.

뮤지컬에 완전히 매료된 후로 20대 때는 심리적인 문제들을 고민하고 분투하면서 극장을 도피처처럼 다녔던 것 같아요. 드라마 <런온>에서 주인공이 극장을 두고 방공호라고 표현하거든요. 저 역시 암전 속에 나와 화면만 존재하는 방공호 같은 공간이 필요했던 듯해요. 습관적으로 공연장을 드나들었고, 그 시간을 좋아했어요. 그러면서 공연업계에 들어가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죠.


어떤 마음인지 자세히 알려주실래요?

공연업계로 직업을 가져야겠다고 결심하는 데는 이상적인 가치가 강하게 작용했어요. 많은 스태프와 배우들, 그걸 보러 온 관객들이 한 시간, 한 공간에 모여서는,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역할을 하며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어내요. 그 결과물이란 사람이 모이고 연대해야만 만들어질 수 있는 작품이죠. 그 점에 홀딱 반했어요. 극이라는 하나의 완성체를 현장에서 경험해보고 싶고, 그 언저리라도 좋으니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해보고 싶다는 강렬한 끌림이 있었죠. 대외활동하면서 PR 업무를 지켜봤더니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사람과 콘텐츠를 연결하는 일, 저건 할 수 있겠더라고요. 운 좋게 대외활동하던 컴퍼니에서 PR 보직에 TO가 났는데 입사 지원서를 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아서 일한 게 시작이었어요.


꿈꿨다고 해서 당장 해볼 수 있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잖아요그런 건 앙금처럼 남아있다가 기회를 만나면 수면 위로 떠 오른다고 생각해요지현님의 자유를 향한 갈망이 자연스럽게 떠올라서 선택한 것처럼요.

모르고 있었지만 나를 자극하는 촉이잖아요. ‘저거야!’ 내가 이걸 할 수 있는지 없는지가 아니라, 저걸 꼭 해야 할 것 같다는 운명! 어디서 누군가가 나에게 주는 메시지 같은 순간 말이에요. 그게 사람에게도 있고 일에도 있는 것 같아요. 

그땐 그랬는데 지금은 미련이 없어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하고 싶은 걸 해봤고, 설령 남은 게 없다고 하더라도 해봤다는 자체로 제겐 의미가 있는 거니까. 거기서부터 다음 뭔가가 있겠죠수면 밑에 있지만다시 만나게 되는 순간그러니 조급해하지 않고 불안해하지 말고 기다리는 게 좋지 않을까라고 제게 말하고 있어요.


요즘 내 삶의 만족도는 어느 정도예요?

아주 만족도 아니고, 아주 불만족도 아닌 미적지근한 온도에 있어요. 좋다는 말은 아니지만 나쁘지도 않아요. 점수로 말하면 50점과 60점 사이요. 우선 쉽게 만족하지 못하는 성향이 한몫하는 것 같고요. 최근에는 이 또한 자의식 과잉이 아닐까 싶어서 생각을 전환하기 위해 의식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해요.

지난겨울부터 일터에 불안이 습격하더니, 최근에는 2주에 1번꼴로 벼락이 내리꽂혀서 제가 품어온 상식의 세계가 쪼개지고 있어요. 원래 조직이, 회사가 다 그렇지, 라고 체념하기에는 이곳에서만 행할 수 있는 가치가 있었기에 고통스럽기도 해요. 그간 쌓아온 것들이 한순간에 사라질 위기에 처했는데 제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 무기력하기도 하고요. 조직 내에서는 당장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고, 조직 밖으로 나온다면 어떤 방향으로 다음 스텝을 밟아나가야 하나, 이런 생각을 이어가다 보면 눈을 뜨고 있어도 캄캄한 기분이 들고, 불안감에 울렁임을 호소하게 되기도 해요.

그런데도 불만족스럽다고 단언하지 않는 이유는 현재라는 시간 위에 존재하기 위해 기울이고 있는 몇 가지 노력 때문인 듯해요. ‘일터에서의 나’가 삶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기는 하지만 나라는 존재의 전부라고 할 순 없을 테니까요. 회사와 일에 매몰되어 지냈던 2n 살에 이 상황을 맞닥뜨렸다면 아마 지금보다 더 무너져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일비일비 하지 말고 일희일비하자, 기쁨에 모험을 걸자(루이스 글릭, <눈풀꽃>)’, ‘다가오는 것들을 겪어내자’고 수없이 되뇔 수 있게 돼서, 일상의 기둥을 튼튼히 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게 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나이를 먹어가는 보람이 이런 걸까 싶기도 하고요.





운동이자 수련인 요가를 선택하신 점도 궁금해요.

이 요가원에 다니게 된 건 우연이에요. 회사에서 안정기에 접어들었을 즈음 몸을 움직여 봐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친구로부터 근처 요가원에 같이 가보자는 제안을 받았어요. 저는 몸 쓰는 걸 정말 안 좋아하고 심지어 못 써요. 제게 운동이란 괴로운 모멘트거든요. 그래서 센터에서 요가나 PT, 스피닝도 해봤는데 대체로 기간이 짧았어요. 요가원에도 아무 생각 없이 갔는데 다행히 요가를 수련의 도구로 보는 선생님이어서 저와 잘 맞았어요. 꾸준하게 다닐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예요. 

저는 요가가 정적이니까 내가 좋아하겠다 정도였지 열렬히 해야겠다는 마음은 없었어요. 해보면서 내가 정말 무감각이라는 바닥에 잠겨 있었다는 걸 포함해, 저 스스로 발견하게 되는 것들이 많았죠. 요가는 내가 발을 땅에 딛고 있는 느낌을 바라볼 시간을 주거든요. 평생 처음 느껴봤어요.


너무 익숙해서 발을 땅에 딛는 걸 감각하는 순간은 거의 없죠

그래서 처음에는 근육을 내 회전으로 쓰고 외 회전으로 쓴다는 말을 듣고서 ‘저게 무슨 말이지?’ 싶었어요. 뭔지 모르지만, 그에 집중해보면서 이제는 ‘이런 느낌이구나’ 하고 점점 알아가는 단계예요. 바라보고 인지하면서 감각을 수면 위로 계속 올리는 거죠. 모르면 영영 몰라도, 알면 감각이 올라온다는 것, 일종의 진리를 알게 된 듯해요. 더욱이 내가 어떤 상황인지 제3의 눈으로 바라보고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게 바뀔 수 있음을 깨달았거든요. 요가를 하며 배운 가장 큰 깨달음이에요.


요가를 수련이라고 표현하신 게 그런 의미였군요.

요가 하면 스트레칭 정도겠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아주 깊은 접근법이더라고요. 과묵한 와중에 마음과 몸을 정화하고 치유할 수 있는 수련인 거죠. 요가를 하면 할수록 정신집중 에너지라고 해야 할까요? 한 동작을 오래 유지하는 순간에도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계속 내가 알아차리려고 해요. 에너지를 굉장히 많이 쓰죠. 겉보기엔 정적일지라도 해보면 동적이라, 되게 신기했어요. 마치 잽을 100번 날리는 것과 다름없어요. 

요가가 사람을 가볍게 해주고 생각을 완전히 단절 시켜 주듯, 명상도 제3의 눈으로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바라보는 게 메인이더라고요. 생각을 없애서 아예 0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지금 내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멀리서 바라보는 거예요. 매몰되어 있으면 계속 맴돌지만 바라보고 있으면 금방 지나가거든요. 그래서 명상이 마음수련 할 수 있는 토대라는 말을 이해하겠더라고요.


살면서 그런 게 정말 필요하다고 느껴요.

머리로는 알아도 몸 움직이기가 쉽지 않죠. 그래서 저는 무작정 요가원에 가요. 아무 생각 없이 몸을 먼저 움직이는 거죠. 그냥 하자, 가는 날이니까 하자, 이렇게요. 뭘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집에 가고 싶어지니까요.


시간이 쌓여 가면서 그 감각들이 점점 몸에 익을 거잖아요지현님이 지금을 잘 버티고 계시는 데 도움이 되나요?

덕분에 숨통이 트이고 있죠. 어떻게 보면 이것도 자유를 원하는 면과 맞닿아 있는 것 같아요. 평소 몸이 자유롭다는 개념에 대해서 자주 생각하는데요. 중심 에너지가 강해지면 내 몸의 가용범위가 넓어지게 되거든요. 가용범위를 좀 더 유연하게 넓히는 일이 자유를 갈망하는 마음과 닿아있을 수 있겠다 싶어요그런 점에서 요가는 자유를 향해서 가는 행위죠명상도 그렇고요.


연결돼 있다는 감각을 자꾸 잊어가는 환경 속에서 단절된 것들을 연결 지어 본다는 점이 돋보여요연결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도내 몸과 머리를 연결 짓는 면도 있잖아요

사실은 몸과 머리를 연결 짓는 일이 선행되어야 타인과의 관계도 그렇게 되는 건데 말이에요. 어떻게 삶이 균형적이기만 하겠어요. 저는 노력파라 균형을 잡으려 노력하는 거지 잘하는 건 아니에요. 이렇게 쏠리면 다시 해보고, 반대로 쏠리면 또다시 해보는 상황의 반복이죠.





첫 회사에서 번아웃을 경험하셨다고요.

그 감각 아세요? 회사에서 뭘 하든 읽히는 글자가 아무것도 없는 거. 내가 해온 일임에도 어떻게 뭘 해야 할지 판단이 안 서고 멍한 상태였어요. 그래서 두 번째 회사에 들어온 지 일주일 만에 퇴사를 결심했죠. 제 인생에서 금방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서 혼란스러웠어요.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몰라 매일 밤잠을 설쳤고 결국 ‘퇴사해야겠다, 나는 못 다닐 것 같다, 죽을 것 같으니 나가야겠다’ 하고서 나왔어요. 살려고 도망간 거죠. 

첫 회사에서 굉장히 심한 번아웃과 우울이 있었음을 뒤늦게 깨닫고 ‘온 세상이 날 속였다!’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충격이었어요. 쉬는 기간 내 불안했고, 따져보니 번아웃 때문이더라고요. 그간 쉬지 않고 엔진을 돌려왔으니 관성이 작용해 쉬는 게 편치 않았던 거죠. 번아웃 상태가 일종의 디폴트값이 되어버려서요(웃음).


몸이 본능적으로 알았겠죠여기서는 절대 안 되겠다고.

그간 나에게 틈을 준 시간이 없었던 거예요. 어렸을 때부터 대학까지 줄곧 공부하다가 갑자기 뮤지컬 하겠다며 폭주하듯이 일했고 지금까지 온 거죠. 중간에 퇴사 기간 잠깐 빼고는 계속 뭔가를 하면서 쉴 새 없이 살아왔구나. 만약 지금 일을 관두게 되더라도 내 인생의 1년 정도는 쉬는 시간을 주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었어요.


그러면 느슨하게는 어떻게 지내세요?

제가 그걸 진짜 못해요. 퇴사하고 여행을 떠났는데 행위에 집중하지 못하고, 이곳에서 저곳으로 가기 전에 텀이 생기면 불안해지는 거예요. 계속 뭔가 해야 할 것 같은 강박에 사로잡혀서. 제가 쉬어본 적이 없어서 그렇다는 걸 그때 알았어요. 지금도 일상에서 그냥 쉰다고 하면 뭔가 하고 있긴 해요.


예를 들면요?

책을 읽거나 뭔가를 보고 있죠. 그래서 더더욱 요가의 시간이 필요해요. 요가란 행위이지만 제게 있어서는 쉬는 시간이거든요. 외부 환경을 최대한 차단하고 현재 내가 서 있는 순간에 몰입하는 시간을 보내다 보면 에너지가 생겨요. 다음 퇴사 기간 이후에는 이전 퇴사 기간보다 잘 보냈으면 좋겠어요. 그 부분에서는 약간 욕심이 생겨요.


그것도 잘 보내야 한다는 강박 아닐까요(웃음).

그 외에는 경험해보지 않아서 계속 다음 스텝이 있어야 할 것만 같아요. 강박일 수 있는데, 그래도 이전보다는 덜 불안하면 좋겠어요.


제가 한때 오뚜기처럼 살고 싶다고 바란 적이 있어요쓰러졌다가도 다시 서는 모습 때문이었는데그걸 회복 탄력성이라고 부르더라고요

저는 회복 탄력성이 진짜 부족해요. 타격을 받으면 주저앉아 있는 스타일이거든요. 그래서 자주 내가 왜 이렇게 주저앉아 있고, 좌절하고, 왜 이렇게 깊이 빠져드는지 고민하곤 해요.


결국에는 살면서 터득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지금의 결론은 그것도 자의식 과잉이라는 거예요. 제게 말하죠. 얼마나 잘나서 그런 생각을 하는 거냐고. 네가 뭘 그렇게 잘해야 하니. 왜 그렇게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왜 이렇게 비장하게 살려고 해, 이게 뭐라고. 당장 내일 죽을 수도 있어.


그러면 도움이 돼요?

잠깐 됐다가 또다시 좌절하는 과정의 반복이에요(웃음). 그래도 해보면 점점 근육이 생기지 않을까요.


저는 내가 귀여운가 보다’ 하면서 자꾸 최면을 걸어요(웃음). 

그 방법도 좋죠. 한 번은 명상하다가 연민이란 단어를 들었어요. 마침 키워드가 자기 연민이었거든요. 그때 내가 연민이란 단어를 긍정적으로 생각한 적이 없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아마 자기 연민을 해선 안 되는 거라고 무의식중에 생각했던 모양이에요. 타인에게 연민을 보내기만 하고 나 자신을 연민하지 못했던 거죠. 너무 가혹했다 싶었어요. 그때부터 연민이란 단어를 자주 읊었어요.


남이 해준 좋은 말응원의 말들을 수집해놓는 방법도 좋더라고요.

저도 쓰는 방법인데 정말 도움 돼요. 남의 눈으로 보는 게 오히려 객관적일 수 있거든요. 설령 그 모습이 전체가 아닌 일부라 하더라도, 객관적인 눈으로 봐준 내 모습을 되새기다 보면 주저앉았을 때 용기를 얻는 듯해요. 





자주 사용하거나 좋아하는 단어에는 뭐가 있나요?

‘사랑’이라는 단어를 사랑하고 싶어 하고, 사랑 타령도 좋아해요. ‘존중’과 ‘태도’라는 단어도 자주 사용해요. 최근에는 ‘관성’, ‘질문’, ‘연민’, ‘상식’이라는 단어를 자주 떠올리며 품고 지냈어요. 그런 의미에서 미란님 프로젝트 제목이 와닿았어요. 질문 너머로 뭔가를 찾는 행위가 인터뷰인 거잖아요. 특히 ‘질문’이라는 키워드가 지금 제게 중요하고 오랫동안 갈구해온 것이기도 해서 프로젝트 제목이 참 좋더라고요.


감사합니다(웃음).

요즘 친구들과 대화할 때도 그래요. ‘우리가 너무 질문이 없다, 대화가 통하는 사람은 정말 소수이고, 그간 친하다고 여겨왔지만, 대화가 통하지 않고 질문이 나오지 않는 관계가 많다’는 얘기요. 서로에게 자주 질문하면서 궁금해하고 살아야 하는데 그런 행위에 게으르긴 했구나 싶더라고요.


거리가 없으면 당연히 궁금한 게 없잖아요너무 가까우니까.

재밌는 건 아주 가깝다고 여기는데도 모르는 게 많더라고요. 그렇겠거니 하면서 넘기는데 속으로는 다들 문드러지고 있고, 만나면 요만한 조각 하나 얘기하고 즐거웠다면서, 맛있는 거 먹고 사진 찍고 헤어지는 게 참 허한 거죠.


혹시 이슬아 작가 글 좋아하세요? <깨끗한 존경>이라는 인터뷰집이 있어요제목이 묘한 표현인데 책을 한번 읽어보시면 존중태도에 관해서 좋은 단서를 얻으실 것 같아요

한 번 읽어볼게요. 이슬아 작가님을 보며 참 대단하다고 느끼곤 해요. 자기 이야기를 끊임없이 풀어냄에도 불구하고 남의 이야기를 들을 줄 아는 사람이라는 점에서요. 나뿐만 아니라 남에게도 질문할 줄 아는 사람인 거죠. 정말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웃음). 

그러고 보면 저는 노동자라고 생각하는 예술가를 좋아하나 봐요. 예술이 별건가. 똑같이 먹고 살고 꾸준히 수련해서 만드는 게 예술이지, 라고 여기는 태도가 멋있어요.


좋아하는 뮤지션도 바로 그 태도 때문에 영감받으신다고요.

오랫동안 제 주머니에 들어와 계신 뮤지션으로 박효신과 정재일이 있어요. 대중적으로도 잘 알려진 예술성이나 테크닉 면에서 좋아하고 늘 감동하면서도, 오랫동안 애정을 품을 수 있었던 이유는 역시나 그들의 태도 때문이에요. 이를테면, 음악 여정을 거쳐오며 그간 쌓아온 명예나 인지도에 매여있거나 고여있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와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아 전하고자 하는 태도(박효신), 음악이라는 거대한 틀 안에서 무한한 아름다움을 경계 없이 펼쳐내면서, 한자 닦을 수(修)를 몸에 새기고 본인을 ‘조용하게 돈 벌어 훌륭한 예술을 소비하는 노동자’라고 칭하는 태도(정재일) 같은 거요. 저와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지만, 제가 아는 데 한해 그들의 태도는 늘 영감이 되곤 해요.


스스로 적당한 거리오랜 시간을 두고 좋아하는 재주가 있다며 장거리 달리기에 비유하신 게 인상적이었어요.

거리 두는 게 익숙한 사람이라 그래요. 저는 하나에 푹 빠져서 불태우는 모습을 보면 부럽거든요. 그래서 이런 말을 꺼내면 다들 “거리 두는 게 좋아”라고 말해요. 제가 볼 때 연소하듯이 좋아해 보는 감정이 되게 귀하거든요. 원래 사랑의 본질은 고통이라잖아요(웃음). 나는 사랑이 많이 없는 것 같아, 고통스러운 걸 감수하기 싫어서 거리 두는 게 아닐까? 라고 되묻곤 해요.


저는 5년 뒤의 제 모습이나 5년 뒤에 뭘 좋아할지 가늠할 수 없는데지현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는 5년 뒤에도 이걸 좋아하고 계시겠다는 예상이 됐어요

현재 상태로는 열렬하게 좋아하는 게 없고 다 뭉근하게 좋아하는 중이에요. 한 치 앞도 모르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걸 잃지 않고 지내는 건 참 근사할 것 같아요. 앞으로도 계속 좋아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무소속으로 보내는 시간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마주하고, 화해하고, 수용하는 시간이요.


어른이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나요?

삶의 핸들을 쥐고 자신만의 속도와 방향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아닐까요? 최근에는 넷플릭스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의 안은영과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의 찬실을 보면서 제가 생각하는, 되고 싶은 어른의 모습이 화면 안에 그려졌다고 생각했어요. 

안은영은 젤리를 보는 운명을 타고난 사람이죠. 학생을 위해서 혹은 세계평화를 위해서 젤리를 향해 비비탄 총과 장난감 칼을 드는 인물은 아니에요. 하염없이 울면서, 하기 싫어하면서, 욕하면서도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해요. 옴잡이 혜민의 마음을 정확히 읽고,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이에게 듣고 싶었던 말을 건넬 줄 알죠. 잊지 않아야 하는 이를 기억할 줄 알고, 위기에 처한 사람의 손을 잡을 줄 아는 다정한 인물이고요.

찬실은 마흔 살의 영화 프로듀서예요. 일에 온몸과 마음을 바치고 살았는데, 갑작스럽게 생계를 잃게 돼요. 그런 막막한 상황에서 찬실은 지나친 자기연민에 빠져있지 않아요. 고무장갑을 끼고서 청소하고, 음식을 만들고, 공원을 걷고, 산책하고, 주변 사람들을 챙기고, 그들의 뒤에 서서 랜턴을 비출 줄 아는 씩씩하고 따뜻한 사람이죠.


그 둘의 공통점을 찾자면 여성 캐릭터이고 현실이 아닌 작품 속에 있다는 거예요.

어떤 콘텐츠를 봤을 때 가상 인물들이 제 현실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몰랐는데 캐릭터의 태도를 되게 중요하게 보더라고요. 물론 주변 사람들도 분명히 영향을 주죠. 롤모델이라는 건 지향점이니까 이상적인 모습을 떠올렸을 때 ‘이런 삶의 태도를 가져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작품 속 캐릭터를 꼽았나 봐요. 이런 점을 발견해 주신 게 신기하네요.


롤모델인 동시에 이미 지현님이 가진 모습도 있지 않을까요비슷한 면이 있기에 끌리는 부분도 있을 듯해요.

원하는 모습이어서 그런 거 같아요. 찬실은 꿈을 향해 달리던 사람이 외부 요인으로 인해 새로 시작하는데도 정말 꿋꿋하고, 씩씩해요. 부럽더라고요. 저였다면 회복 탄력성이 부족해서 주저앉아 좌절하고 있었을 텐데. 내 힘으로 생계를 유지해야겠다는 마음부터 계속 남에게 뭔가를 주고 싶어 하는 마음마저, 소위 오뚜기 같은 사람인 거죠. 지나치게 그 상황에 빠져있지 않고 수면 위로 올라오려고 하는 힘. 안은영도 마찬가지예요. 지나치게 비장해지지 않으면서 꿋꿋이 해나가는 마음.


제가 볼 때 지현님은 타인에게 다정한 말을 건넬 줄 알고또 힘든 순간에도 타인을 따뜻한 시선으로 봐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좋겠어요. 제 삶에는 이 가치가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다 같이 잘 됐으면 좋겠고 힘든 순간에는 그냥 서로 의지하고 지냈으면 좋겠어요. 너무 고립되지 않고요. 이 마음을 잃지 않았으면 하는데, 구렁텅이에 빠지면 내가 제일 소중하니까 어떻게든 일으키려고 하고 있겠죠.


그럴 땐 다른 사람들이 손을 뻗어줄 거예요.

그렇겠죠? 그런 것들을 잘 주고받으며 살면 좋겠다고 자주 생각해요.






✨지현님을 더 알고 싶다면

https://www.instagram.com/jyonie_/


인터뷰, 촬영   미란
디자인    로고블랭크
copyright ⓒ 미란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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