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요
마음이 무너졌을 때, 주변 사람들은 조언한다.
"긍정적으로 생각해 봐." "네 안에 있는 힘을 찾아봐." "감사할 것들을 떠올려봐."
틀린 말은 아니다. 정말로.
하지만 이 조언들에는 하나의 전제가 있다.
"이미 있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것.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할 재료가 있어야 한다.
내 안의 힘을 찾으라고? 찾을 힘이 남아있어야 한다.
감사한 것을 떠올리라고? 감사함을 느낄 수 있는 상태여야 한다.
난 당장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대부분의 심리치료법, 자기 계발서, 주변의 따뜻한 조언들은 이 전제 위에 서 있다.
당신 안에 뭔가가 있고, 그걸 발견하고, 표현하고, 재조합하면 된다고.
기존의 감정을 찾아내라. 숨어있는 강점을 발굴하라. 과거의 좋았던 기억을 소환하라.
발견하기. 받아들이기. 재조합하기.
모두 "있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런데 정말로 아무것도 없으면?
우울증이 깊어서 모든 감정이 무의미해진 사람.
트라우마로 마음 전체가 마비된 사람. 절망 속에서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사람.
이런 사람에게 "있는 것을 활용하라"는 조언은 공허하다. 아니, 잔인하다.
빈 주머니를 뒤져서 동전을 찾으라는 말과 같다. 텅 빈 냉장고를 열어서 요리를 하라는 말과 같다.
있던 것도 모두 썩고, 가려진 채 무엇을 찾고 무엇을 쥐어야 하는가.
없는데 어떻게 찾아? 없는데 어떻게 활용해.
그래서 그 조언들을 듣고 나면 더 무너진다.
"나는 찾을 것도 없는 사람인가." "나는 활용할 것도 없는 사람인가."
선의로 건넨 말들이 또 하나의 상처가 된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
발견이 아니라 창조. 있는 것을 찾는 게 아니라, 없는 데서 만들어내는 것.
점묘화를 생각해 보자.
화가가 캔버스에 첫 점을 찍을 때, 그 점 자체는 아무 의미가 없다. 그냥 점이다.
하지만 두 번째 점, 세 번째 점, 수천 개의 점들이 모이면 비로소 하나의 그림이 된다.
마음도 그렇게 다시 지을 수 있다.
완전히 무의미한 점 하나에서 시작해서.
다음 이야기에서는 그 점을 어떻게 찍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