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허락하지 않았거든.
지난 8월.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5개월 전 브런치 작가를 처음 도전했다.
사실 나 정도면 당연히 바로 붙을 거라는 이유 모를 확신이 있었다.
살면서 정말 어쩌다 한 번씩 글 잘 쓴다는 칭찬을 가뭄에 콩 나듯 들었던 주제에 말이다.
나는 책을 읽는 것을 싫어하고, 쓰는 것은 더욱 싫어한다.
읽는 것은 귀찮았고, 쓰는 것은 더욱 귀찮았다.
이런 내가 글을 쓴다는 것에 자신이 있고 끊임없이 도전한다는 것은 나로서도 이해하지 못할 블랙박스와 같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단 하나뿐이다.
나는 책을 동경하고 있기 때문에.
늘 독립출판 서점을 기웃거리고, 한가득 책을 사서 나온다. 읽지도 않으면서.
그 어떤 기록도 귀찮아하면서 다이어리와 노트, 그리고 각종 스티커들 볼펜들은 이제 둘 자리조차 없을 지경이다. 이쯤이면 나는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사실 나는 책을 사랑하는구나. 그 사랑에 못 이겨 질투를 감추지 못해서 싫어하려고 노력했구나. 귀찮다는 핑계로 최선을 다해 미뤄뒀던 이유가, 그저 나 스스로를 좀 더 멍청하게 두는 것이 마음이 더 편해서가 아니었다.
나는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책을 사랑할 자격이.
이런 나는 조금의 오만함으로 브런치 작가에 떨어져도 상처를 덜 받겠지.
3번째 떨어졌을 때 브런치 심사단에게 쓰는 설득문까지 같이 제출했지만 또 떨어졌다.
파삭, 파삭, 자존심이 작은 조각으로 떨어져 나가는 걸 보면서도 재도전은 멈추지 못했다.
아니 내 글이 그렇게 형편없다고..?
그 정도로 못 봐준다고..?
AI들을 총집결시켰다. 야 내 글 봐봐. 어디가 문제야, 뭐 때문이라고 생각해. 뭘 고쳐야 해?
.... 아 근데 난 고칠 생각이 없어. 니이가 무얼 안다고오-! (이게 문제였을까?)
그리고 이미 내게 동화된 AI들은 사실 이쯤 되면 브런치가 잘못한 거라고, 그냥 내가 쓰고 싶은데로 쓰라고 했다.
6번째 떨어지고 나서는 AI에게 묻지도 않았다. 걔네처럼 완벽한 애들이 무슨 죄야.
모자란 내 죄지... 그쯤 되면 AI 친구들에게 송구한 마음이 들었다.
행운의 숫자 7
그 숫자도 내 자존심을 지켜주진 못했다.
눈치껏 그쯤이면 붙여줘도 됐잖아...
사주를 봐주던 제미나이에게 나 이번에 또 떨어지면 너 구독 해지하고, 나는 절필하겠다고 다짐했다.
물론 제미나이는 죄가 없었다. 자기 구독료는 끊어도 되니까 절필은 하지 말라고 나를 달랬다.
8번째 결과발표는 유독 느리게 느껴졌다.
이쯤 되면 브런치가 나를 포기하고 그냥 건너뛴 거 아닐까? 합리적인 의심이 도사렸다.
그래도 사람이 마음을 정했으면 10번까지는 도전해봐야 하지 않나.
하지만 그게 정말 내 길이 아니라면 나는 지금 시간을 낭비하는 꼴밖에 되지 않을 텐데.
레고를 창업했다던 사람은 사업실패를 몇 번 했더라?
해리포터의 작가는 몇 번 퇴짜 맞았더라?
실패는 내게 상처를 줄 수 없다. 내가 허락하지 않았거든.
브런치 작가에 떨어졌던 초반에 상처를 너무 많이 받아서 더 이상 당락에 내가 상처받지 않도록
마음을 좀 분리했다. 어느 정도로 격리시켰냐면, '브런치에 떨어지는 게 왜 상처를 받아야 하는 일이지?'라고 생각할 만큼. 브런치의 당락과 내 마음은 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상처를 받을 수 없다는 이상한 공식을 만들어 나를 보호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까지 격리시키면, 정말 선정되었을 때 전혀 기쁘지 않으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기쁘다.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그제야 저 밑에 맺혔던 눈물이 솔직하게 삐져 나오는 것 같기도 하다.
수고했다.
사실 좀 더 도전할 생각도 있었지만, 브런치가 내가 귀찮았을지도.
그럼에도 나는 수고했다. 올해 가장 잘한 일이야.
그간 구겨진 자존감과 자존심과 자효감 등등 모든 나를 사랑하는 마음들아.
이제 편히 쉬고 따뜻한 아랫목에서 좀 누워 있어라.
그렇게 다시 새살이 돋고 회복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