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이유

무화과

by QUE


지방에 내려갈 일이 생겨 어김없이 기차에 올랐다.

본가보다도 더 아래에 위치한 소도시의 풍경은, 내려가던 기찻길목의 완연한 가을빛과는 다른, 무채색의 잿빛이었다.


유독 내가 갔던 장소들이 그랬는지, 아니면 원래 그 소도시의 분위기가 그런건지 역을 벗어나자 길에서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웠고, 서늘한 잿빛의 공기가 나를 감쌌다.


가야 할 곳을 갔다가 다시 기차에 오르려는데 역 앞에 세워진 리어카가 내 시선을 붙잡았다. 리어카에는 무화과들이 담겨있었고 어떤 할머니께서 무화과를 팔고 계셨다. 이 지방에서 무화과가 많이 난다고 하니 한번 사먹어봐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고, 할머니께서 팔고 계시니 하나 사드리고 싶은 약한 마음도 공존했다. 그래서 가장 작은 스티로폼 상자에 담긴 무화과 한 상자를 함께 집으로 데려왔다.


이튿날, 무화과를 먹어볼까 싶어 깨끗한 물에 잘 헹궈서 맛을 봤다. 내가 알던 달큰한 맛이 나지 않고 웬 푸릇푸릇한 풀 맛만 느껴졌다. 몇 개를 더 확인해 봐도 결과는 똑같았고, 귀퉁이가 짓무른 단 한 개의 무화과에서만 내가 먹어봤던 무화과들에게서 느낄 수 있었던 그런 단맛이 났다.


그길로 무화과는 그냥 그릇에 송이송이 담긴 채 방치되었다. 오며가며 눈에 밟히기만 했다. 써버린 돈이 아까웠고, 괜히 무겁게 들고 왔다 싶기도 했다. 하지만 어쩌겠나. 돌이킬 수 없었다. 전부 내다 버릴까 했지만 책상 위에 올려 관상용으로 삼기로 했다.


생각해 보면 무화과가 나에게 먹히기 위해서 자라온건 아니었을거다. 생명의 순환에 따라 나무에 열렸을 텐데, 누군가에 의해 꺾여져 버렸을 거다. 비도 맞았을 거고 바람에도 흔들렸을 거다. 나름대로 여러가지 고초를 겪고 어렵게 열매를 맺었을 텐데.


단맛이 없다고 효용이 사라져 내다 버려질 위기에 처했던 무화과 열매들을 바라보며, 목적과 이용가치가 사라지면 외면받는 우리들의 모습이 겹쳐보였다. 제한몸을 건사해야 한다지만, 우리는 일하기 위해서 태어난 것만은 아닌데. 모두가 하나같이 초, 중, 고, 대를 나온 뒤 취업하여 남은 여생을 직장에서 보내다가 죽기 위해서 태어난것은 아닌데, 우리는 그런 길을 걷기를 서서히 종용당한다.


일을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가만히 있어도 예뻐해 달라는 뜻도 아니다. 우리의 존재 목적과 가치를 누군가에게 종용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타인의 시선과 기대에 과중하게 영향을 받고 있는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자는 것뿐이다. 선택하기 전에, 손에 직접 그러쥐기 이전에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눈앞의 이것이 맞는지 확인해 보자는 말이다. 단지 그뿐이다.


대형마트에 나온 무화과들처럼 금방이라도 터질 듯 생기있고 예쁜 빛깔이 아니어도, 몹시 달지 않아도, 이 무화과들도 결국 마트 가판대 위 때깔좋은 무화과들과 같은 종이다. 목적과 이유가 있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우리 자체로 존재한다는 것을, 목적이 아닌 존재 자체로 우선 바라봐주길 바라는 마음을 요즘 과일들의 필수 덕목을 지니지 않은 무화과들이 어느 가을날 나에게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