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동기와 처음으로 학교 앞에서 밤을 샜다. 학교를 다닐시절엔 한번도 해보지도, 시도조차 못했던 행동이었다. 그저 수업을 준비하고 학교에서 시키는것을 해내기 위해 하루하루가 바빴다. 막막한 미래를 밝히기 위해서 이유도 모른채 아등바등거렸다. 이제서야 이렇게, 이렇게까지 시간이 지나서야 함께 길바닥에서 뜨는 해를 마주한다는게, 둘다 졸업전시쯤은 끝내야 겨우 할 수 있었던 퍼포먼스처럼 느껴져 애석했다. 하지만 이내 그런 마음은 떨쳐내고 우리가 함께 있다는 사실에 자꾸만 집중하려 애를 썼다.
새벽4시에 깨어있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길을 걷는 경험은, 자유로움과 뭐든 해볼 수 있을 듯한 용기와 해방감을 선사했다. 길에서 택시를 잡거나 첫차버스를 기다리는 새벽같지 않은 인파에서, 처음으로 서울이라는 차가운 도시로부터 동질감이라는걸 느꼈다. 처음으로 서울에게서 공동체 의식을 느꼈다.
새벽4시쯤 술에 취해 집으로 데려다줄 유일한 대중교통수단을 기다리는 마음이 마치 서울의 정수인듯 했다. 서양 의례인 할로윈을 지나가고 있는 밤은 외국인들과 한국인들이 한데 이상한 복장으로 뒤섞여 편의점에 속속들이 들어가 추위를 피하거나, 유일하게 불켜진 KFC매장 1층과 2층을 모두 바글바글하게 채워 서울이라는 공간에 다함께 뒤섞여 있었다.
어디에서 왔든 어디로 가든 첫차 버스를 기다려야하는 심정만은 같았고, 택시라도 잡아서 모두가 집으로 돌아가야한다는 사실은 같았다. 각자의 서식지로 돌아가야 한다는 그런 인간 보편적인 동질감이 좋았다. 동기는 근처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타야할 첫차가 와주기를 서늘한 공기 속에 달달 떨면서, 감기는 눈을 치켜 뜨면서 함께 기다려주었다. 그런 동기에게 손사레를 치며 빨리 들어가라고 연거푸 고사했지만, 동기는 돌아가서 더 잘 수 있는 한 시간보다 평생 기억에 남을 오늘 밤을 몇분 더 연장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나는 그 말로 인해서 그 말을 하는 동기의 그 모습이 영원히 나의 기억속에 남을 것임을 직감했다.
첫차는 어김없이 도착해서, 우리는 포옹을 했고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차창속에서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며 한참 남은 종착지까지의 거리에 기절하듯 눈을 붙였다. 우리는 각자 무사히 귀가했고, 다음날까지도 너무 재미있었다며 여운을 나눴다. 우리는 또 만날 수 있겠지만, 하지만 진작 과제따위는 던져두고 이런 시간을 더 많이 보냈어야 한다고, 그때의 우리는 또 어떤 이야기를 했을지 영영 알 수 없다는 사실에 나는 슬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