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던 어느날, 할머니집에서 넘어온 김장 김치가 담긴 반찬통 뚜껑을 열고 향기를 맡았다. 그순간 어쩐지 내가 방황하던 19살 시절, 김장 김치 한포기를 가지고 숙모집에 올라갔던, 여태껏 나에게서 아주 멀리 있었던 어떤 날이 떠올랐다.
그땐 안양의 숙모집이 내가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이라 생각했다. 그때의 나는 숙모가 서울에 산다고 생각했다. 숙모집이 서울이 아니라 안양이라는 사실은 나이가 훨씬 들고 나서 알게 된 일이다. 그땐 그런걸 알지도 못할 만큼 사리분별을 할 수 없었고, 최대한 머나먼 곳으로 떠나고 싶은 마음만이 가득했다. 내가 있는 곳에서는 숨을 쉬기가 어려웠고, 도망쳐온 나를 받아줄 수 있을 법한 사람으로 우리 식구 중 제일 부드러운 성격으로 보였던 숙모에게 그 역할을 기대하고 싶었다.
숙모집에 가기로 결정하고 어째서였는지 그때 부엌한켠에 자리했던 현금이 담긴 커다란 병에서 만원짜리 지폐 몇장을 꺼내쥐고, 빈손으로 갈 수는 없다고 생각해서 집안을 두리번거리다가 삼촌은 멀리 있으니까, 할머니의 김장김치를 못먹으니까 이거라도 챙겨야 되겠다는 생각에 김장김치 뚜껑을 열어 한포기만 락앤락의 유리용기에 담아 그외에는 아무것도 챙기지 않고 부산에서 서울로 가는 고속버스가 있는 터미널로 갔다. 집에서는 아주 멀었고, 터미널에서 어찌저찌 티켓을 한장 사서 버스를 탔다. 기사 아저씨는 별다른 의심없이 나를 버스에 태웠고, 그렇게 인생 첫 밤버스가 출발했다.
밤에 달리는 고속버스는 위험하지 않을까 하고 걱정하는 마음과 동시에 그래도 이곳을 떠나 어쨌든 여기가 아닌 다른 어디론가로 가고있다는 사실에 안심했던 기억이 난다. 차창밖으로 그날따라 커다랗고 노란 보름달이 나를 쫓아오는 모습을 구경했고 버스는 휴게소를 한번 들렀던 것 같다. 너무 밤이 되어버리기 전에 사촌동생에게 ‘지금 너네 집에 가고있다. 가도 되느냐‘ 하는 식의 연락을 보냈고 사촌동생은 ‘지금 오고있다고 오바야!’ 라고 했지만 고맙게도 이내 순순이 숙모에게 내가 가고 있다는 사실을 전달해주었고, 사촌동생은 나에게 지하철을 타고 오는 방법을 알려주고는 역까지 마중도 나와주었다.
숙모집에 도착해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나를 본 숙모가 어서오라는 말과 함께 내뱉은 첫마디는 ‘다른 곳이 아니라 숙모집으로 와주어서 고맙다’는 말이었다. 잊고 있었던 말이었는데 글을 쓰다보니 문득 기억이 돌아왔다. 그말을 듣고 아무리 가출을 했어도 우는 모습은 보일 수 없다는 생각에 눈물을 꾹 참았던 기억과 동시에 절반은 그런 말을 들어본 건 처음이라 그게 무슨 뜻일지 잠시 생각했던 기억도 난다.
‘당장 내려보내라‘는 엄마의 전화에도 불구하고 숙모는 몇일만 잘 데리고 있다가 보내겠다고 말해주었고, 전화를 끊고 나서는 나에게 바로 가지 않아도 된다고 안심까지 시켜주었다. 다음날 나는 숙모가 나에게 잘 잤는지, 사촌동생들이 좋아하는 집 근처의 돈가스를 먹으러 갈지, 아니면 또 다른 메뉴는 어떤지 물어봐주는 숙모와 그렇게 물어봐주는 것에 대해 의아함이 들었지만 이내 숙모니까 그런가보다- 하고선 내가 밥을 먹을 염치는 있나싶어 아무거나 다 좋다고 했다. 숙모는 나를 차에 태워 ‘홍익돈가스’ 집에 데려가서 맛있는 돈가스를 사주었다. 운전하는 숙모의 모습을 보며 멋있다고 생각했고, 그리고선 먼저 캐물어 오지 않는 숙모와 꽤 조용히 돈가스를 먹었던 것 같다.
다음날은 사촌동생의 옷을 빌려입고 지하철을 타고 홍대로 갔다. 애니메이션 원피스에 등장하는 해적선 고잉메리호의 커다란 모형도 지나치고, 빵집에도 들렀다가 점심시간이라 회사에서 잠깐 외출한 삼촌을 만나 같이 라멘을 먹고서 다시 숙모집으로 돌아왔던 기억이 난다. 그 라멘 가게가 호미화방의 바로 뒷 편이라는것도 아주아주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숙모는 동대문도 데려가줬다. 여러가지 옷감, 바느질거리가 있는 시장도 구경시켜주고, 내가 전부 괜찮다고 손사레를 쳤지만 자꾸자꾸 옷까지 사주려고 했던 기억도 난다.
그렇게 몇일을 있다가 숙모와 삼촌은 가지고 있던 적립 포인트였는지 쿠폰인지까지 써서, KTX 특실의 좌석을 예매해서 나를 집으로 태워보냈다. 초등학생이었던 막둥이 사촌동생이 특실은 타본 적이 없다고 부러워했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삼촌과 숙모는 타기 직전 마지막까지도 내손에 롯데리아 세트까지 들려보냈다. 기차를 탄 이후로 집에 어떻게 돌아갔는지는 전혀 기억이 없다.
수년이 지난 지금, 숙모는 여전히 내가 놀러가면 어떤 걸 먹고 싶은지, 먹고 싶은게 있는지 물어봐준다. 이제는 숙모가 그때 보여주었던 놀란 마음을 드러내지 않으려 보여주었던 담담한 모습이, 시댁의 형님되는 사람에게 그렇게 의견을 피력한다는 것이 어떤 행동인지 안다. 이제는 숙모가 빵을 좋아한다는 것도 알고, 숙모가 그때 날 어떻게해서 이해해주었는지도 안다. 시간이 흘러 언젠가 숙모도 고등학교 시절이 쉽지 않았었다고 했다.
이것도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그때 엄마가 친구들에게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자 친구들은 김장김치를 들고 간 내가 착하다고들 했다고 말했다. 그러고보니 마음에 여유가 한톨도 없어 가출하는 주제에 빈손으로 갈 수 없다는 생각으로, 엄마의 음식을 오래토록 못먹었을 삼촌을 위해 할머니의 김장김치를 한포기 챙긴다는게 ‘착하다’는건지도 그때서야, 나를 잘 알지도 못하는 남들의 말을 전해듣고 나서야 알았다. 그때, 나 스스로 나를 그렇게 생각해주었다면 좋았을텐데. 그럼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을텐데. 그땐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죄인같은 나를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로 스스로가 미웠지만, 지금은 누군가의 인정을 받지않아도 스스로가 좋은 내가 있다.
최근 연예인 김나영의 결혼식에서 그녀의 시아버지가 하신 축사를 듣게 되었는데, ‘나영이가 처음 집에 인사하러 온날, 눈과 그 마음을 어디다 둘지 몰라서 주변을 맴도는 그 모습이 안쓰러워 “괜찮다”고 말해주셨다는 부분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차올랐다. 눈과 마음을 어디다 둬야할지 몰랐던 그 모습도, 그걸 알아채고 ‘괜찮다’는 말 한마디를 건네는 그 마음도 이제는 모두 이해하고 눈물 흘릴 수 있게 되었다.
’다른 곳이 아니라 여기로 와주어서 고맙다‘는 숙모의 말에 이제는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릴 수 있는 내가 있다. 어떤 안쓰러운 마음들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내가 있다. 그래서 나는 시간이 가는게 좋다. 얼마만큼 더 많은 것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될런지, 나는 세상의 어떤 것들을 숙모가 보여준 모습처럼 사려깊게 반겨줄 수 있을지, 그렇게 해서 나에게 문을 열어준 세상에게 내가 어떻게 갚아나아갈 수 있을지 기대가 되곤 한다.
오늘의 김장김치에서 19살 가출했던 하루로 훌쩍 갔다가 돌아왔다. 알게 된 마음들을 이야기 보따리 위에 풀어 쓸고 닦고 광내어 다시 가득 짊어지고, 앞으로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