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 음식을 먹으며 사는것에 즐거움을 느낀다. 도심에서의 얼마 남지 않아보이는 자연을 느끼면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라고 여긴다.
제철을 맞이한 대방어를 먹으러 가자는 동료의 제안은 반가웠고, 그렇게 생전 처음 노량진 수산시장에 발을 들였다. 사람보다 해산물이 몇배는 더 많았고 그런의미에서 바닷속에 있는 것과 동일한듯 보였다. 아무래도 깊은 바닷속을 사람들이 어망으로 긁어온듯 했다.
어쨌든 철두철미한 또 다른 동료가 미리 예약해둔 가게로 찾아가는 길목에서, 통로의 수조 속에서 뒤집혀있는 커다란 방어를 보았다.
물고기가 뒤집혀있다는건 죽었다는 의미다. 초등학교때 물고기를 잠깐 키워본 적이 있어서 알고 있다. 살아있는 물고기가 유영하는 모습은 예쁘고 신기하지만 아래와 위가 뒤집혀 직관적으로 생명을 잃은 모습을 하고 있는 물고기의 모습은 언제봐도 께림칙했다. 그 방어는 홀로 수조 1조를 다 채우듯커다랬고, 그렇게 큰 생명체가 죽어있는걸 그렇게나 가까이서 본 건 처음이어서였는지 그 모습이 마음의 한 자락을 차지해버렸다.
갓 생명에서 죽음으로 이동된 식탁 위의 생선 회는 신선했다. 함께 노량진을 처음 온 다른 동료는 회가 이렇게 맛있는 건지 처음 알았다고 했다. 애정하는 동료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덩달아 기뻤고 우리는 즐거운 식사를 마쳤다.
이후에는 주변 사람들에게 올해 첫 대방어 섭취에 대한 자랑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죽어있던 커다란 방어가 뒤집혀 떠올라 있는 모습이 한동안 나를 따라왔다. 그 뒤집힌 방어를 생각하다 보면 더 넓은 곳으로 가지 못하고 갇혀있는 수족관의 생명체들과, 혼획 그물망에 같이 올려져 질식사 하지만 멸종위기종이라 사고 팔리지도 못해 항구에서 폐사한다는 어느 다큐멘터리 속 제주 상괭이들의 나열된 시체 모습이 함께 따라왔다.
인간이 살기 위해 삼시세번마다 여느 생명을 빼앗아가는 행위에 대해 생각한다. 처절한 약육강식의 세계에 대해, 물위에 떠오른 커다란 고기의 모습을 잊지 못해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