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이 없다

by QUE


이사를 앞두고 적지않은 나의 부동산인 서가에 꽂힌 책들을 바라봤다. 소설이 한권밖에 없었다. 썩 서글펐다.


여태까지는 소설을 찾지 않았기에 슬프지도 않았다. 슬픈일인 줄도 몰랐다. 하지만 돌아보니 어쩐지 내가 나에게 다른 삶을 살아볼 마음과 기회와 자유를 주지 못했던 것 같아 꽤 애석해졌다.


고등학교땐 남이 뜯어말려도 책속으로 달려갔다. 박완서, 신경숙, 무라카미 하루키, 히가시노 게이고, 요네자와 호노부가 만들어낸 세계의 수면 위로 몇 번이고 뛰어들었다. 책 속에만 있고 싶었다. 수업도 듣지 않고 책만 읽었다. 책가방은 안들고 다녔어도 책상밑엔 늘 고봉밥처럼 두둑한 책한권만은 존재했다. 그 든든함이 언제나 나를 위로했다. 내가 살아낼 수 있는 세상은 차디찬 현실이 아니라 따뜻한 피가 흐르고 있는 소설 속 세상이었다. 당장 책을 펼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도 책상아래로 손을 뻗어 교과서나 구겨진 유인물을 찾다가 손끝에 스치는 부드러운 소설 겉표지에 마음을 안심하곤 했다.


이후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현실에 착륙했다. 삶에 끝이 있음을 목격하고 입시에 올라타며 책을 놓았다. 언어영역의 문학 작품은 너덜너덜하게 조각내어 해부하기 바빴고 입시 이후에는 자기계발서에 편승했다. 이렇게 하십시오, 저렇게 하십시오, 할 수 있습니다, 하는말들에 의지했다. 누구도 노골적인 결과없이는 칭찬도 격려도 쉽게 건네지 않는 세상 속에서 자기계발서의 저자들은 늘 본인들의 방식대로라면 ‘할 수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믿고 싶었다.


오로지 쓸모를 가진 책들만 골랐다.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지 않고도 나다움을 이해받고 싶을 때는 에세이를 집어들었고 내가 서있는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문학 도서를 쥐었다. 허구의 세상에 빠져 내가 여지껏 겪어보지 못했던 다른 감정들을 느낄 새가 없었다. 이성만을 놓칠새라 붙잡고 두발 붙인 현실을 살아가야만 했다.


정말이지 몇년만에 서가에 하나 남은 소설을 집어들었다. 소설은 읽히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읽혔다. 고등학교때 읽었던 소설을 다시 집어들었다. 이해하지 못해 어름어름 잡았던 장면이나 묘사를 이제는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내킨 김에 그땐 첫장부터 읽히지 않아서 내려놓았던 소설도 구태여 다시 찾아 펼쳐봤다. 어쩐지 읽히기 시작했다. 설레는 마음이 들었다. 소설을 열면 그자리서 끝까지 달리고 싶어졌다.


반가운 신호였다. 드디어 내가 다른 삶, 다른 세계에 가 볼 마음이 드는가 싶어 숨통이 트였다. 물론 지금 나한테 필요한 것이 소설일지도 모르지만, 현실 이외의 것을 내가 받아들일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쁘다. 새로운 일들을 겪을 수 있다는 사실이, 그 여력이 반갑기 그지없다. 책꽂이에 소설을 꽂을 공간을 마련할 것이다. 현실이라는 핑계대며 다시 놓지 않아야지. 늘 새로운 세계를 받아들일 여지를 남겨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