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을 친 겨울날, 고3시절 담임선생님의 부고를 전해 들었다. 놀라움만이 존재했고, 슬픔은 없었다. 장례식장은 고사하고 같은 반이었던 친구와 편의점 앞에서 맥주를 한캔씩 따서 우리 나름대로의 정리와 이별을 했다.
고3때 담임은 나와 잘 맞지 않는 쌤이었다. 이해하기 힘든 사람이었다. 힘든시절 기억이라 다 지워버렸지만 내 친구와 나에게 번갈아가며 “쟤보다는 너가 낫다.“ 는 말을 하던 사람이라는 기억은 존재한다. 그런 문장은 우리를 더욱 끈끈하게 했다. 우리가 함께하는 모습을 보고 항상 너희는 함께라며 괜히입대던 사람이었다. 우리가 부러웠던걸까. 하지만 우리는 그저 우리의 나름대로 단체생활이라는 것에서 살아남기 위해 뭉친거였다.
우리반 담임쌤 말고도 고3때 유독 이상하다고 느낀 선생님들이 많았다. 애들은 애들대로 예민해져서 분위기가 좋지도 않은데 쌤들은 쌤대로 각자의 수업에서 수업대신 히스테리를 부렸다. 이해가 안됐다. 어른들에게 우릴 이해하길 바라지도 못했다. 수업시간에 본인들의 히스테리를 해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냥 수업만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인자하신 선생님들의 수업 시간에 기대어 학교를 다녔다. 애들은 그런 쌤들을 보고 이상한 쌤이라고들 했다. 이해가 안갔다. 마음이 따뜻하고 유쾌한 선생님이셨는데. 세상이 이해가 안갔다. 지금이라고 이해가 가는것도 아니지만.
남자고 여자고 할 것 없이 중년의 쌤들은 대체로 히스토릭칼했다. 담임과 나와 친구는 사이가 썩 좋지않았고, 담임때문에학교생활에 넌더리가 난 친구는 졸업식도 참석하지 않았다. 난 담임은 모르겠고 내 인생에서 고등학교 졸업이라는 사건에는 점을 찍고 끝내야겠다는 생각으로 졸업식에 갔고, 친구의 졸업장까지 대신 받아왔다.
이후로는 연락이 닿지도 않았고 반에서도 어울린 사람이 없어 아무런 소식도 전해듣지 못했는데, 친한 친구들에게서 전달 전달되어서 수능을 치고 집으로 온날 담임이 병으로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고3때는 담임을 미워하고 저주까지 했었는데. 돌아가셨다니, 그것도 내가 처음으로 수능을 친 날.
나의 10대 챕터에 온점이 찍히는 기분이 들었다. 어떤 시절이 끝났구나 하는 직감이 들었다. 아마도 괴로웠던 시절과 죽을때까지 이해할 수 있을까 싶은 평범함을 위해 고군분투하던 10대 시절이 끝났다는걸 머리 대신 몸의 세포가 알았던 것 같다.
담임쌤한테는 초등학생 아들이 있었는데, 시간이 해결해준 기억상실 덕분에 그제서는 그 애를 안타까워 할 수 있었다. 그뿐이었다. 아직까지도 그저 지나가버린 어떤 사건이라고 여기며 슬픈 마음은 없다. 세상엔 그렇게까지 청소년들이 괴로워야할 이유가 없다. 이래나 저래나 처절한 인생이지만 어떤 사람의 죽음은 나에게서 너무나 멀리 있기도 하는구나. 언제까지고 그때를, 그리고 그사람을 이해할 수 없을것만 같다. 그저 누군가를 미워하는 일은 나를 소모시키는 일일 뿐이라는 사실만을 나에게 남겨두었다. 왜 하필 그날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아직도 이해할 수 없어 나는 그저 온점을 찍고 마침표를 내릴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