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트 위주의 미술과 어려운 단어들을 나열하는것을 꺼렸던 지난날들이 있었다. 예술은 삶에 분명히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느끼지만 어떻게 삶에 동화되어야 하는지 사회에서 어떤 입지를 차지하는지 혹은 내가 만들어간다면 어떻게 창작해야 좋을지 고민했던 나날들이 있었다. 그러다 붓을 놓아버렸다.
최근 발견하기도 어렵고 치료는 더더욱 어려운 췌장암 치료의 가능성을 보여준 과학자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인류의 지속이나 의학적 연구의 유의미한 성과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기사 사진 속 그의 눈에 띄는 외모에 대해 왈가왈부했다.
몇일 후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그 기사 속 얼굴을 아름답게 그려서 표현한 것을 봤다. 그리고 그 그림에 호응하는 다른 사람들을 보았고, 그제서야 내가 원했던 예술의 역할을 찾아냈다. 비판으로 사회의 문제를 꼬집어 보여주는 예술도 나쁘지 않지만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를 아름다운 방식으로 알려주는 예술에 마음이 훨씬 동했다.
미의식만 추구하는 방향은 누군가를 옥죌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그런 방향으로는 가고싶지 않지만, 이성으로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쏟아지는 현시대를 살아가기 위해 나는 예술이 삶 속에서 아름다움을 비춰주길 바란다는걸 깨달았다. 문제는 이미 너무 많으니까.
아름다움을 보여주어서, 삶을 지속해달라고 말해주길 바라는것 같기도 하다. 죽음과 끝은 평화롭지만 동시에 슬프기도 하니까. 이별은 언제나 상당히 슬픈 일이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