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를 좋아한다.
익충이래서 좋아했고 보다보면 까맣거나 연하거나 자기네들 색을 가지고 조그맣게 움직이는 모습이 귀엽다.
논과 밭이 있는 시골에 살적 방에 거미들이 가끔 등장했었는데, 그냥 함께 살았다. 어느날은 보였다가 어느날은 안보였다가 하는 것도 나름대로 웃겼고 혼자살기 적적했던 것도 같고.
같이 살다가 내 팔에 올라온 적도 있다. 낯선 촉감에 일어난 작은 소름을 작은 거미와 함께 조심스럽게 손으로 쓸어내렸다. 언제나 마음 한켠에 시골살이를 동경으로 남겨두는 내가 벌레를 무서워한다는 모순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나중엔 집의 구석구석 XYZ축이 만나는 장소마다 작은 거미들이 자기네 집을 짓고 살았다. 그 거미들이 아기거미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엄마 거미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어느날 화장실에서 문득 천장을 보는데, 화장실 천장의 모서리에 <키다리 아저씨>의 주디가 기숙사에서 만났던, 다리가 무척이나 긴 거미와 꼭 같은 거미가 한마리 있었다. 엄마거미구나. 어쩌면 아빠거미 일지도. 거미는 혼자였다. 엄마거미의 다리는 대충봐도 몸통의 7~8배였고, 다리의 비율이 나보다 몇배는 뛰어났다. 거미는 가만히 거기 있었다. 그래서 나도 가만히 거기 두기로 했다.
저렇게 지내다가 어디론가 가겠지. 돌아가신 할아버지처럼 언젠가는 어디론가 슉 하고 사라질거다. 그럼 나는 어디선가 어떤 형태로든 어떤 형상으로든 잘 지내고 있으리라고 믿겠지. 그렇게 살아갈거다.
동경하는 학교에서 건물 귀퉁이에 거미를 지켜주는 돌멩이들이라고, 거미가 살고있는 모서리를 빙 둘러 돌멩이를 놓아둔 장면을 보았다. 나와 같은 마음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니 같은 인간으로써 안심이 되고 기뻤다.
조형물 ‘마망’을 닮은 엄마거미와 함께 살았다. 그리고 그 사실이 좋았다. 조그마한 것들은 귀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