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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쿰쿰 Mar 25. 2021

고양이 키우고 싶어!

초보 고양이집사 이야기

일단 말해두자면, 나는 지금 초보 고양이집사가 아니다. 집사경력 5년이 넘었으니 어디 가서 꿀릴 경력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거기에 수의사 남편까지 두었으니, 이 정도면 고양이 집사로 명함 내밀기 꽤 괜찮은 조건이라고 확신한다. 


그래서 이 글은, 현재의 이야기가 아닌 과거의 이야기다. 고양이에 대해 아주 기초적인 지식밖에 없던 시절, 아무것도 모르던 내가 처음 우리 첫째와 둘째들 들였을 때의 이야기. 그리고 그렇게 나와 가족이 된 우리 엘사와 안나에 대한 이야기이다.




수의직 공무원으로 잘 근무하던 남편이 어느 날 갑자기 공무원 못해먹겠다고, 관두겠다고 선언했다. 철밥통으로 명성이 드높은, 그 경쟁률 높은 공무원을 관두겠다 했을 때 주변에서 모두 경악.........하지 않았다. 나 포함. 우리 남편은 수의직이었기 때문에 공무원을 그만 둔 이후의 플랜이 매우 확실했기 때문이다. 드디어!! 내가 그리도 바라던 임상의 길로 들어서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임상 지식은 많았지만 경험은 부족한 상황. 남편은 경험을 쌓기 위해 일단 서울로 가서 페이닥터로 근무하겠다고 했다. 서울에 가야 많은 케이스를 접할 수 있어서 꼭 서울로 가야 한다고 했다. 결혼 3년차에 졸지에 주말부부가 될 상황. 이때다 싶어 말을 꺼냈다. 고양이 키워도 되냐고.


남편은 흔쾌히 그러라고 했다. 그 전에도 내가 키우고자 했으면 남편은 반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수의사인 만큼 동물에 대한 애정도 있으니까. 다만, 그 전에는 한 생명을 책임진다는 그 상황에 대한 책무성이 나를 망설이게 했다. 그래서 항상 대화의 패턴이 '고양이 키우고 싶어(나)', '그럼 키우자(남편)', '....아니야 좀만 더 생각해보고(나)'로 끝났던 것이다. 그런데 뭔가 변화하는 상황에서 내 마음은 그 책무성을 질 수 있다는 용기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고, 남편은 나를 혼자 두고 서울을 가는 일이 마음에 걸리던 차에 고양이라도 있으면 와이프가 좀 덜외롭겠지 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렇게 고양이를 입양하자고 이야기가 되었다. 한 마리만 데려오면 외로우니 2마리를 데려오자 까지 합의가 되었다.


그렇게 결정하고 인터넷을 보던 도중 어떤 아깽이를 5마리 구조한 캣대디의 글을 읽었다. 태어난 지 3주밖에 되지 않은 아깽이 다섯마리는 각각 도~솔의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도삐삐 레삐삐 미삐삐 파삐삐 솔삐삐. 그 중 도삐삐가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고등어태비, 여자아이, 눈이 정말 얼굴의 절반 정도 되어 보일 정도로 큰 아이. 그 큰 눈망울에 사로잡힌 나는 바로 그 캣대디에게 문자를 보냈다. 도삐삐와 솔삐삐를 데려오고 싶다고. 다행히 솔삐삐는 대기자가 없는데, 도삐삐는 이미 문의를 준 사람이 꽤 된다고 했다. 역시, 내 눈에 예뻐 보이는 아이는 다른 사람 눈에도 예뻐 보이나 보다. 다른 아이를 데려와도 됐겠지만, 이미 그 눈망울에 마음을 빼앗긴 나는 치트키를 써버렸다.


'저희 남편이 수의사인데요.....'

'아! 그럼 데려가세요. 이왕이면 다섯마리 다 데려가시면 안될까요?'


다섯마리는 무리라며 정중이 사양하였고, 그렇게 도삐삐와 솔삐삐는 우리집으로 오게 되었던 것이다. 




나를 사로잡은 도삐삐 사진


입양계약서를 쓰고, 책임비를 건네고, 그렇게 우리 식구가 된 도삐삐와 솔삐삐는 각각 엘사, 안나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왜 겨울왕국을 만들었냐 묻는 사람이 많은데....그냥 그때 그 이름이 생각났을 뿐. 아무 이유가 없다ㅋㅋ


실제 데려와 보니 사진보다 눈이 더 큰 아이였다.


냥이들이 온 것과 거의 동시에 남편은 서울로 떠났다. 그리고 나는 생명을 책임지게 되었다는 그 책무성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냥이들은 정말 너무 귀여웠지만, 그와 별개로 그 아이들을 볼 때마다 가슴을 짓누르는 것은 책임감인지 후회인지 잘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아마 데려온 지 사흘쯤 됐던 날?


특히나 그 아이들이 망가뜨리는 가죽 제품들을 볼 때마다 그 정체불명의 감정은 더 커졌다. 특히 소파. 우리집에 냥이들을 데려다 준 그 구조자분은 우리집 가죽소파를 보더니 '이거 괜찮으려나요....'라고 말했었다. 고양이를 들일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큰맘 먹고 비싸게 주고 구입한 가죽소파였다. 그 때는 괜찮을 거라고 말했지만, 시사각각 망가지는 그 소파에 내 마음도 같이 스크레치가 나는 기분이었다.


남펴 발 크기와 비교. 정말 손바닥만했던 아이들이었다.


그 기분은 한두달 정도 이어졌지만, 후회는 할지언정 파양해야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들지 않았다. 이건 책임감의 문제였다. 나의 감정은 오롯히 내가 감당해야 할 나만의 문제이지, 그것이 뭔가 판단을 내릴 근거는 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다행히도 한두 달이 지나자 그 책무성인지 후회인지 모를 그 부정적 감정은 씻은 듯이 사라지고, 소파를 발톱으로 갈아대는 냥이들을 보면서도 흐뭇하게 미소지을 수 있는 경지로 돌입하게 되었다. 이제는 이 귀요미들과 행복할 일만 남은 것이다!


다이소에서 5천원 주고 쿠션을 사서 깔아주니 저렇게 둘이 누워있는 것을 좋아했다.
저 때는 쿠션이 저렇게 남아돌았었는데....



두 마리가 치대도 남아돌던 쿠션이 이제는 한 마리가 들어가도 다리가 삐져 나오는 지경이 됨

그래서 진짜 행복했냐 물어보면,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고 앞으로도 행복할 예정이다. 다만, 세상에서 내 마음대로 제일 안 되는 게 자식이라 했던가. 그 말은 고양이에게도 적용되는 것이었다.


이 아이들의 타고난 성격을 잘 모르겠지만, 어찌됐든 개냥이로 키우고 싶은 마음에 남편은 행동학에 대한 여러 연구를 해댔다. 아깽이 시절에 최대한 많은 사람들과 접촉하게 하면 개냥이로 클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 결과를 보고 정말 온갖 사람들을 다 집으로 초대했다. 오는 사람들 마다 엘사안나를 보며 귀엽다고 예쁘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고 쓰다듬어주고, 안아주었다.


그렇게 최선을 다 했건만....지금 내린 결론은-타고난 성격은 약간은 바꿀 수 있지만 완전히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 어느 순간부터인가 두마리 다 안아드는 것을 싫어하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극혐한다. 특히 안나는 안아드려는 낌새만 보여도 삼십육계 줄행랑이다. 엘사는 만지는 걸 싫어한다. 머리 외 다른 부위를 건드리면 매우 싫어하는 울음소리를 낸다. 안나는 거의 히키코모리 수준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자리에서 움직임이 없다. 


병원에 데려가면 그야말로 '호냥이'가 된다. 엘사 안나의 중성화는 남편이 경험을 쌓기 전이라 남편 선배가 운영하는 병원에 데려가서 했는데, 이 때까지만 해도 엘사같은 경우 집에서 너무나 개냥이어서 의사선생님께 순한 아이니 걱정마시라고 호기롭게 말씀드렸는데, 그 의사선생님이 엘사를 검진하고 나오시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것을 보고 매우 죄송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아프면 아빠의 병원으로 가는 이녀석들은, 거기가 아빠의 병원인지 아빠 친구의 병원인지 알 게 무엇인가. 그저 낯선 공간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 공간에서 미친듯한 히스테리를 부리며 아빠와 병원 테크니션 샘들의 진을 빼 놓는다. 

너도 부끄럽지 엘사...?




사진 제목-엘사장


그나마 교육의 효과를 본 것은 모르는 사람이 왔을 때 숨지 않는다는 것. 집에 손님이 오면 안나는 관심없이 구석에서 그냥 자던 잠을 계속 자고, 엘사는 그 사람에게 다가가서 냄새를 맡는다. 그리고 그 냄새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가차없이 냥냥펀치를 날린다. 그리고 그 냥냥펀치가 정말 하나도 안 아픈데 진짜 귀엽다.  우리집에 놀러왔던 사람들 중에 엘사의 냥냥펀치에 황홀경에 빠진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다. 엘사는 나에게는 펀치를 날리지 않지만, 한번씩 그 모습이 보고 싶어서 내가 일부러 냥냥펀치를 유도하기도 한다ㅋㅋ


그래도 집에 나나 남편만 있으면 엘사는 제법 개냥이이다. 끊임없이 우리 주변을 맴돌며 치댄다. 우리가 안방에 문 닫고 들어가 있으면 나오라고 목놓아 울기도 한다. 안나는 정말로 개냥이라고는 보기 힘든 히키코모리이지만, 궁디팡팡을 매우 좋아해서 그거 해 달라고 옆에 와서 엥기곤 한다. 그럼 또 귀여워서 열심히 궁둥이를 쳐주고, 그 때 발동되는 안나의 골골송을 즐기곤 한다. 


비록 무릎에 올라와주지는 않고 안아들면 난리가 나는 자매들이지만,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귀엽다^^ 


이럴 때 제일 귀여움♡




다른 고양이들 이야기에도 적었지만, 엘사와 안나는 자매로 태어나서 지금까지 죽 같이 지내서 그런지 다른 냥이들의 등장을 용납치 않는다. 그래서 한동안 셋째인 꿍이가 왕따처럼 지냈고, 카누가 들어왔을 때에도 카누를 끝까지 경계했다. 꿍카누와 같이 지낼 때 엘사가 어찌나 스트레스를 받았던지 구토를 계속 해 대는 것도 큰 문제였다.


물을 꼭 그리 동시에 마셔야겠니?ㅋㅋ


그래서 개원과 동시에 엘사안나/꿍카누로 분리를 결정했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금 아파트에는 엘사와 안나 두 마리만 지내고 있다. 이 자매는 요즘에도 한시간 전에 싸웠지만 한시간 후에 꼭 붙어있는 현실자매의 모습을 보여주며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엘사는 지금도 아침에 안방에서 나오면 내 다리에 얼굴을 끊임없이 비비며 나만 졸졸 따라다닌다. 남편과 내가 소파에 나란히 앉아 있으면 그 좁은 사이를 파고들어 앉는 것을 즐기기도 한다. 안나는 여전히 자신이 좋아하는 공간에서 거의 움직임 없이 늘어져 있고, 궁디팡팡을 즐긴다. 


부르면 대답하는 엘사


문제는 이 녀석들의 건강. 둘 다 신장이 좋지 않다. 남편 왈 엘사는 자칫하면 신부전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있는 단계라고 한다. 그래서 이 녀석들은 사료도 죄다 신장사료고, 간식도 일주일에 템테이션 5알정도만 준다. 이상하게 둘다 습식 사료와 간식들을 싫어해서 츄르도 안 먹는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나도 없는 주치의가 있는 녀석들이라는 것. 지속적으로 관리가 가능하니 좀 더 오래 함께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근데 다이어트는 주치의 여부와 상관없이...참 힘들다. 다이어트는 진정 평생의 숙제다 인간에게나 냥이들에게나ㅠㅠ


오래살아라 이 캣시키들!! 




�Music provided by 브금대통령 

�Track : 브금의숲 - https://youtu.be/bVMW54kAO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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