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쿰쿰 Oct 18. 2021

연극이 끝난 뒤

내 인생 가장 강렬한 경험

내가 살고 있는 시에서는 5년 전부터 매년 '국민배우'를 모집한다. 이게 뭣인고 하니 시민들 중 희망자를 받아서 연극배우를 시켜주는 것이다. 대여섯달 간 그 사람들을 훈련시켜서 한 편의 연극을 만드는 그런 프로젝트였다. 올해 5기차를 맞이하는 나름의 역사를 쌓아가고 있는 프로젝트이다.


올 봄에 그 모집 공문을 보았을 때를 떠올려 본다. 아...그걸 보지 말았어야 했는데ㅠㅠ




재미삼아 지원한 프로젝트는 나름 신청서를 받고 면접까지 보는 절차를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이 면접, 이것이 1차 걸림돌이 되었다.


면접이란 두 종류가 있다. 떨어트리기 위한 면접과 붙이기 위한 면접. 긴장으로 인해 감각이 최대치로 살아있는 면접 당사자는 그게 어떤 면접인지 한두마디 나누다 보면 알게 된다. 이 사람들이 날 떨어트릴 건지, 붙일 건지.


이 프로젝트는 모집인원보다 지원인원이 적었다. 당연히 면접은 형식적일거라고 예상했고, 나와 같이 지원한 동료샘은 둘다 붙이기 위한 면접을 예상했다. 그러나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이 면접은 나에게는 약간은 무례하다고 느껴질 정도의 강도를 가진 그런 면접이었다. 딱딱하고, 단도직입적이었으며, 훈계조였다. 그 면접을 마치고 나오며 씩씩댔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붙여줘도 안하고 싶은데. 이걸 해, 말아.


다행히 합격 문자는 왔지만, 그때부터 첫 모임까지 엄청 고민했었다. 할건지 말건지.

하.... 그때 하지 말았어야 했다.....




연극에 예전부터 관심이 있었다. 감정의 스펙트럼이 다양하고 표출에 능한(이라기보단 숨기지를 못하는) 내 성격이 연극에 잘 맞을 거 같다는 희미한 추측도 있었다. 국민배우 첫 과정은 A4 한 장 정도의 대본과 30분 정도의 연습시간을 주고 즉석에서 바로 2인극을 꾸며보는 거였는데, 그 과정에서는 긍정적 피드백을 받기도 했다. 난 역시 연극에 재능이 있었어! 라며 의기양양하게 우쭐대는 시간은 아마도....한 이주?


본격적으로 극 연습에 들어가면서 시작된 좌절은... 오랫만에 이 이모티콘을 쓰고 싶다. OTL


내가 맡은 역할은 남자주인공에게 계속 깐족대는 남자주인공의 친구였다. 그러니까, 남자 역할을 맡게 되었다는 뜻이다. 참고로 내 성별은 여자. 처음에는 이 성별의 체인지가 걸림돌이 될 거라고 예상했지만, 사실 이건 큰 문제가 아니었다.


정말 엄청나게 크고 작은 문제들이 많았다. 대사를 외우는 것부터 시작해서 걷는 것, 자세를 잡는 것, 감정을 적당하게 표현하는 것, 그 과정에서 호흡을 유지하는 것, 딕션 등등 뭐 하나 쉬이 넘어가는 것이 없었다. 하루 연습이 끝날 때마다 디렉션(이라고 쓰고 지적이라고 읽는다..)이 한가득 들어왔고, 그것들을 소화시키는 것도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힘든 건 그 수많은 지적들 속에서 작아지는 내 모습을 다독이는 것이었다. 칭찬 한마디 없이 들어오는 수많은 지적들은 내 자존감을 끊임없이 깎아내렸다.


그 뿐인가. 조연의 비애도 서러웠다. 주연들은 각 막마다 등장인물이 달라졌지만 조연들은 전 막에 참여해야 했기 때문에 연습 참여 시간이 너무 길었다. 그리고 늘 연습 때마다 대기는 길고 등장은 짧았다. 주연 배우가 앞에서 버벅대면 나는 등장조차 못 해보고 연습이 종료되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럴 때는 어찌나 화가 나던지.. 나에게 전혀 미안해하지 않는 그 주연 배우를 보며 혼자 속으로 욕을 퍼붓기도 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모이던 연습은 어느 순간 일주일에 두 번이 되었고, 공연을 이주 앞두고서는 매일 모이게 되었다. 주말은 아침 일찍부터 저녁때까지 강행군이 이어지기도 했다.


연습을 거듭할수록 문제점이 줄어들기는 커녕 더 많아졌다. 오늘 연습에서 나온 10가지 디렉션을 수용하고 나면 내일 연습에서 또 다른 디렉션이 10개씩 나오는 나날들이 이어졌다. 끝끝내 고쳐지지 않는 디렉션들도 있었다. '말할 때 입을 많이 벌리지 않아서 대사들이 입 안에서만 맴돈다'라는 지적은 결국 공연날까지 고치지 못했다. 3X 년을 그렇게 살아온 버릇을 하루아침에 고치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었다.


공연 전 날에도 밤 11시 반까지 연습하는 강행군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 순간까지 단 한번도, 완성이다! 는 고사하고 이 정도면 됐다!라는 느낌조차 받지 못한 채 공연날이 밝았다.




걱정 때문이었을까 기대 때문이었을까. 전날 연습을 마치고 집에 와서 씻고 잠든 시간이 새벽 1시였는데 6시반에 눈이 떠졌다. 더 자려고 아무리 애써도 잠이 오지 않았다. 피곤에 쩐 상태로 공연장으로 갔더니 나 외에도 많은 배우들이 나와 비슷한 상태였다.


옷을 갈아입고, 분장을 받고, 테크니컬 리허설을 했다. 그리고 이어진 최종 리허설. 리허설은 무대에서 연기를 하는 배우들조차 밀도있게 느낄 정도로, 망했다. 아주 와장창. 딱히 뭔가의 실수가 있었다기 보다는 그냥 전반적을 늘어졌다. 배우들이 느끼기에도 지루했고, 앞에서 본 감독님과 연출님도 지루했다고 콕 집어 지적을 했다. 그리고 이어진 한마디.

'잘 됐어요. 리허설이 망해야 본 공연이 살아나요. 그게 불문율이에요.'

그리고 말씀하셨다. 너무 잘하려 애쓰지 말라고. 대충 하라고. 몸이 기억하고 있는 대로 하시라고.


넘어가지도 않는 저녁밥을 억지로 삼키며 본 공연을 대비했다. 연습 과정에 단 한번의 성공 경험도 없는 상황에서 성공적인 공연이 가능한지 숱한 의심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카이사르가 루비콘 강을 건널 때 그의 머리속에 던져진 주사위는 어떤 색깔이었을까. 밝고 희망적인 색이었겠지? 우리 역시 주사위는 던져졌지만, 우리의 주사위는 채도가 매우 낮은 불안의 주사위였다.


공연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관객들이 속속 입장했고, 드디어 극이 시작되는 첫 음악이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극의 첫 대사와 마지막 대사는 모두 나의 것이었다. 첫 대사를 치러 나가기 위해 무대 뒤에서 대기하는 동안 미친듯이 떨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대사 첫 마디를 머리속으로 끊임없이 되뇌었다. 그리고 때가 왔고, 나는 연습한 대로 나가서 대사를 쳤다.


첫 대사는 성공적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배우들의 열연. 이후부터 극은 관객과의 호흡 속에서 배우들의 통제를 벗어나 그 자체의 의지를 가지고 흘러가기 시작했다.




마지막 대사 역시 나의 것. 그 대사를 마치고 무대 뒤로 들어왔고, 무대에 남은 배우들의 제스쳐에 의한 연기가 일분 정도 더 이어지다가 암전. 그리고 커튼콜. 모든 연기를 마치고 무대 뒤로 돌아온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뭔지 모를 감정이 내 눈물샘을 자극했다. 극이 끝나면 울 거라고 예상되던 배우가 따로 있었지만, 정작 그 분은 그렇게 많이 울지 않았다. 그날 대성통곡의 주인공은 나였다.


정말 엉엉 소리를 내며 울었다. 고생한 건 모두가 매한가지였을 텐데, 나 혼자 뭐가 그리 복받쳤는지 모르겠다. 동료 배우들이 달래주어 겨우겨우 울음을 진정시킨 후 로비로 나갔는데, 눈 앞에 있는 남편 얼굴을 보고 진정된 울음이 다시 터져 나왔다. 남편을 껴안고 엉엉 울었다.


대체 그 울음의 정체가 무엇인지 지금까지 계속 생각해 보지만, 여전히 답은 모르겠다. 서러움? 감동? 힘듦? 안도? 긴장의 해소? 이 감정을 설명할 딱 맞는 단어가 한국어에는 없는 것 같다. 카타르시스,가 그나마 가까운 단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 역시도 그 감정을 100퍼센트 설명하는 단어는 아닌 것이다.




그래서 공연이 성공적이었냐고?


솔직히 잘 모르겠다. 성공과 실패를 가늠하는 기준이 무엇이냐에 따라 다를 것 같다. 관객들의 반응이 성공과 실패를 가늠하는 가장 1차원적인 기준이라고 가정한다면, 우리 공연은 꽤나 성공적이었다. 관객들은 우리가 생각치도 못한 의외의 포인트에서 빵빵 터졌다(감독님은 예상했다고 하셨다..역시 프로는 다르다!). 그 즐거움의 에너지를 받아 배우들은 평소와 다른 열연을 펼치기 시작했다. 연습 내내 러닝타임이 너무 늘어지는 것이 문제였는데, 공연 때 처음으로 늘어지지 않는 알찬 러닝타임이 나왔다. 관객들이 즐거워했으니 우리 공연의 1차적 목적은 달성한 셈이었다.


그러나 나는 개인적으로 아쉬웠다. 내가 펼칠 수 있는 최고의 연기를 펼치지 못했다. 사실 연습 과정을 통틀어서 내 연기의 베스트는 모두가 망했다고 느꼈던 리허설에서 나왔다. 리허설이 끝나고 '망했어..어떡해..'의 분위기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감독님께 칭찬을 들었다. 퇴장하는 나를 붙잡으시더니 작은 목소리로 '방금 연기 좋았어요. 본 공연때 이렇게만 해줘요.'라고 말씀하셨다. 안 그래도 리허설 때 스스로 '방금 나 좀 잘한거 같은데?' 라고 처음으로! 느끼고 있던 차였으므로 그 칭찬이 너무 반가웠다.


그러나 본 공연때는 그 연기가 나오지 않았다. 리허설 때의 약 80퍼센트 정도? 펼치지 못한 20퍼센트에 대한 아쉬움이 아마 그 눈물 속에 섞여 나온 것 같다. 그 아쉬움이 나로 하여금 이 공연의 성공을 100% 자신있게 말하지 못하는 요인이 되었다.


물론, 이건 철저하게 나의 개인적인 아쉬움이다. 우리 팀은 어느 누구 하나 빼놓지 않고 모두가 즐겼고, 우리의 성공을 자축했으며, 지금까지도 그 여운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그래, 그 여운. 그 여운이 참으로 끈질기다. 공연이 끝난 날 밤, 그 전날의 불면으로 인해 곯아떨어질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잠을 이루지 못했다. 과다분비된 아드레날린이 도저히 진정되지 아니하여 밤새 몇 번을 깼는지 모른다. 6시에 완전히 떠져 버린 눈은 더 이상의 수면을 거부했고, 같이 연극한 H선생님을 우리집에 초대해 떡볶이를 해 먹으며 어제의 연극에 대해 계속해서 되뇌었다. 그 선생님 역시 진한 여운 속에서 허우적대며 빠져나오기 힘들어했다.  끝끝내 하나의 단어로 규정하지 못한, 연극이 끝난 후에 느낀 그 감정의 여파는 다음날, 다다음날을 지나 오늘까지도 내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 경험을 내 인생의 가장 강렬한 경험 중 하나로 지정하고자 한다. 과거의 경험 중 분명히 이 정도의 강렬함을 지닌 것이 있었겠지만, 이보다 더 크게 강렬했던 적은 없었을 것이라 확신한다.


의식주의 충족은 사람을 살게 하는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없다. 사람마다 각자 다를 충분조건, 나는  조건  하나를 연극에서 찾은  같다. 삶의 서랍 속에 이제  추가된 카테고리에나만의 카타르시스를 추구해 보련다. 분명  다른 작품을 연습하며 깨지고, 구르고, 울고, 작아지는  모습에 안쓰러워 하겠지만- 끝에 찾아올 달콤한 마약에 젖어보려 한다.




그리하여 과거의 나에게 한마디-면접을 보고 난 후, 그리고 연습과정의 자괴감 속에서 그만둘까 고민하던 나, 잘 버텨줘서 고마워!

작가의 이전글 엄마의 이불가게와 친구의 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