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고등학교 친구 H와 제주도에 3박4일로 놀러 갔다 왔다. 나와 성향이 정반대인 친구인데, 고1때 어쩌다보니 친해져서 지금까지 20년 넘는 우정을 이어오고 있는 친구이다.
H는 그럭저럭 넉넉한 집안 살림에 전업주부인 엄마 밑에서 곱게 자란 아이였다. 부모님이 자녀를 매우 사랑하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전업주부인 엄마는 자녀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챙겨주시는 따뜻한 분이었는데, 부모님의 맞벌이로 인해 할머니 밑에서 부엌데기로 자란 나에게는 그 당시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그 부러움이 지금까지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사건이 있다.
고등학교 시절, H가 살던 아파트 앞에서 우리 엄마는 이불가게를 했었다. 고등학교 진학하고 H와 친해진 후 집이 어딘지 물었더니 엄마 이불가게가 있던 그 동네 아파트였고, 거기에 H의 엄마는 우리 엄마 가게의 단골이셨다. 어느 정도냐면 엄마에게 '뿅뿅이 엄마 알아?'라고 했더니 '아빠가 ㅇㅇ대학 나온 그 집?'이라는 대답이 나올 정도.
H와 친해지고 나서 그 친구 집에 놀러간 적이 있다. H의 엄마는 따뜻하게 맞이해 주셨고, 간식도 내 주셨다. 그리고 그 친구 방을 들어선 순간, 나는 충격에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 친구 방은 커텐, 이불, 베개, 침대커버 등이 모두 한 세트로 핑쿠핑쿠한, 내가 상상 속에서만 그리던 공주님 방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스쳐 지나간 생각은-이거 우리 엄마가 다 만들었을 거 아냐?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분식집 자녀는 싸다가 옆구리 터진 김밥만 먹게 되고, 과일가게 자녀는 멍들어서 상품가치가 없는 과일만 먹게 된다. 잘 만들어진, 좋은 물건을 팔아야 하니까. 고로 이불가게 자녀의 이불은 세트따위 감히 꿈꿀 수 없다. 이불 하나만 해도 앞면 천 다르고, 뒷면 천 다르고, 배갯잇 모양 다 다르다. 솜은 쓰다 쓰다 더 이상 팔기 힘든 정도의 솜으로 만들어진 그런 이불들이 우리 집에는 즐비했다. 그 시절 나에게 이불이란 자고로 따뜻하기만 하면 그 역할을 다 하는 그런 물건이었다.
그래도 각종 매체의 영향으로 예쁜 게 뭔지는 알았던 나에게 H의 방은 '이런 방이 실존할 수 있구나'라는 것을 알게 됨과 동시에 우리 엄마 역시도 예쁜 물건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한 충격적 공간이었다.
십 몇년 간 이불을 만들어 팔았던 엄마에게 당연히 미적 감각은 충분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장사를 했고, 수익을 냈을 테니. 그러나 그것을 자녀들에게 발휘할 정도로 우리집 살림은 넉넉하지 못했다. 늘 돈 한푼에 허덕여 가며 이불을 만들어야 했던 엄마의 모습에서 나는 절대로 티비 속 공주방 따위를 기대하지 못했다. 많은 서민들이 넉넉하지 못했던 시절이었고, 누구나 그렇게 아름다움보다 생존에 매달려 가며 그렇게 대충 살아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세계는 그 날 무너지고 말았다.
자신의 딸들에게는 대충 남은 천과 솜으로 만든 이불을 덮게 하고, 다른 집 딸들에게는 예쁜 분홍빛 세트이불을 만들어 팔았던 엄마가 어떤 감정을 가졌을 지는 모르겠다. 내가 아는 우리 엄마는 그런 쪽에 감성을 지닌 분은 아니다. 그러나 엄마 뱃속에서 나왔지만 엄마와 그런 쪽으로는 성향이 영판 다른 나는 그 방에서 인생의 쓴 맛을 느꼈다. 자본주의의 법칙 따위를 깨닫고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 정도로 생각했으면 좋았을텐데, 내가 느낀 것은 그런 발전적 방향은 분명 아니었다. 그냥, 입맛이, 썼다.
그러나 이 일로 그 친구와 사이가 어색할 일도 전혀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티내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내 감정을 잘 드러내는 편이었는데, 그래도 왠지 이 건은 티를 내면 안될 거 같은 본능적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고 그 친구가 싫어졌고 질투가 났고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 뒤에도 그 친구와 계속 친하게 지냈다. 다른 일로 투닥거린 적은 있어도, 이 일이 그 친구와의 관계에 영향을 미친 적은 없다.
차라리 티를 냈으면 그 방의 모습은 그냥 인생의 작은 해프닝으로 끝았으려나, 발산하지 못한 감정 때문인지 H의 방 전경이 뇌 속에서 잊혀지지 않고 살아있다. 지금이야 얼마든지 세트이불을 사서 덮고, 내가 딸을 낳으면 공주방으로 충분히 꾸며 줄 만한 돈 정도는 지니고 살고 있지만, 그래도 그 때 그 방의 전경은 내 인생의 한 귀퉁이에서 내 세계관을 조금은 흔들었을 그런 비중은 지닌 사건이었다.
그래도 이미 이십년이 지나니 늘 항상 떠오르는 기억은 아닌 이 일이 갑자기 생각난 것은-H와의 제주도 여행 중에서 H가 한 말 때문이다.
제주도 가기 약 2주 전, H의 집에서 하룻밤 신세진 적이 있었다. 그리고 제주도에서 H왈,
H-"너 자고 간 날 다음날에 우리 엄마에게 J(나)가 어젯밤에 와서 잤었다 했더니 엄마가 '아이고 그 집은 엄마가 이불가게를 해서 좋은 이불만 덮었을 텐데 너 이상한 이불 깔아준 거 아니니'라고 했어"
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H-"나도 너한테 들은 말이 있으니 엄마에게 '엄마 그건 아닐걸...'이라고 말했지."
나-"잘했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나는 이십 년 전 H의 방 전경이 갑자기 떠올랐고, 그때 비로소 입을 열었다.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거 같다, 나는 사실 그 때 니 방을 보고 너무 부러웠었다, 우리 엄마가 이런 걸 나한테는 안 만들어주고 너한테는 만들어 줬다는 데에서 약간 설명하기 힘든 감정도 느꼈었노라 하고.
이십 년의 세월 동안에 기억 속 전경에서 감정이 거의 빠져 그 전경은 매우 담백해져 있었다. 더 이상 멜랑꼴리한 감정을 느끼지 않으니 이런 고백이 가능했다. 흐른 세월만큼 피차 성숙해진 우리였다. H는 나의 담담한 고백을 듣고도 그냥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곧바로 다른 화제로 넘어갔었다.
내가 그 당시 느꼈던 여러 멜랑꼴리한 감정들 중 아마 엄마에 대한 서운함도 조금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제는 그 상황을 이해한다. 예전에는 그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입맛이 썼는데, 세월이 흐르고 당시 엄마의 입장에 대한 완벽한 이해가 동반되니 기억의 형태는 조금 달라졌다.
이 글을 적으며 그 기억에 감정의 마침표를 찍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