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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쿰쿰 Jun 06. 2020

햇살 좋은 날 고양이

오래살아 요 캣시키

카누는 남편이 일하는 동물병원에 턱뼈가 부서진 채로 들어온 유기묘였다. 남편은 턱뼈의 상태를 보더니 누군가에게 차인게 아닌가 하는 추측을 했고, 나는 사람을 너무나 좋아하는 카누의 성격을 비추어 보건대 평소처럼 지나가던 사람에게 들이댔는데 하필 그 사람이 냥이를 싫어해서 냅다 차는 바람에 턱이 이렇게 된 게 아닌가 라는 스토리가 떠올랐다. 진실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이 녀석이 타고난 개냥이라는 것. 턱뼈가 아작나고 입 안이 피투성이가 된 상태에서도 사람이 좋다고 들이대는 이 녀석을 우리 남편은 차마 외면하지 못했고, 페이닥터로 일하던 동물병원에 약값과 입원비를 자비로 내고 자기가 직접 치료해서 우리집에 데려왔다. 그리고 카누는 우리집 넷째 냥이가 되었다.


그런 이 녀석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악동이 머리가 좋으니 미치겠구리'

.....


밤새 정수기물을 틀어놔서 온 거실을 물바다로 만든 적도 있고, 큰누나인 엘사를 매일 괴롭혀서 엘사의 비명소리가 하루가 멀다하고 울려퍼졌다. 사람이고 고양이고 하도 물어대서 사람의 비명소리도 같이 울려퍼지고...나나 남편이 화장실에 들어가 있으면 화장실 불을 끈다. 불을 끄면 사람이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듯 했다. 불을 끌 수 있다는 사실도 놀라운데 사람 나오라는 의도가 보이는것도 더 놀라웠다. 그렇다, 우리 카누는 천재인 것이다! 그러나 그 천재성이 전혀 반갑지 않은 상황ㅠㅠ


사실 각종 사고들어야 그러려니 하며 키울 수 있지만, 엘사를 괴롭히는 건 좀 심각한 문제였다. 카누 본묘야 놀자고 덤비는 것이지만, 예민한 여자아이인 엘사는 그 장난을 거의 폭력에 가깝게 느끼는 듯 했다. 카누가 덤빌 때마다 내지르는 엘사의 비명소리는 진짜 좀 많이 심각했기에ㅠㅠ 그래서 엘사와 카누의 분리를 결정했고, 남편의 개원과 더불어 카누를 데려가게 되었다.


그리고 분리 한달째.

처음 데려왔을 때 딱 이틀간만 침대 밑과 구석을 오가며 탐색전을 펼치던 녀석은

이제는 다른 고양이가 없는 자기만의 공간에 완벽하게 적응하면서

돼지가 되어 가고 있다ㅋㅋㅋ

누나2 형1이 있었을 때 설쳐대던 그 똥꼬발랄 냥이가 맞나 의심될 정도로

움직임도 없고, 매일 편안하게 늘어져서 잠을 잔다.

자기만을 위한 밥그릇, 물그릇, 화장실을 만끽해 가며.

자기만을 위한 TV(창밖풍경)을 편안하게 감상하라며 창틀에 깔아준 이불 위에서 햇살을 받으며.


병원의 마스코트냥이로 만들겠다는 야심은 버렸다. 카누를 위해 하등 좋을 것이 없다는 남편님의 의견에 따라.

그래서 카누는 직원실 안에서만 오가고, 환자가 없을 때만 가끔 대기실로 나간다.

답답해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그 걱정은 나만의 기우인 듯 하다.

정말, 진정, 이보다 더 평온하고 행복해 보이는 고양이는 없었다...ㅋ


그런 카누에게 딱 한 가지만 의무를 부여하고 싶다.

아픈 건 괜찮다. 사는 곳이 동물병원이니 얼마든지 치료 가능.

불치병만 안 걸리면 된다. 오래 살아 주는 것이 카누의 의무이다.

왜냐하면 고양이는 존재 자체로 가치있기 때문에.

오래만 살아주면 된다!!알겠냐 요 캣시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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