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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호 Jan 12. 2018

잘사는 한국인, 가난한 청년의 비트코인

나는 '한국인이 잘 산다'는 말과 '청년들이 가난하다'는 말이 양립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적당히 가난한 직장인들은 해외여행을 가는데 아주 큰 각오를 할 필요가 없다. 일본 같은데 3박4일로 가면 싸게 다녀오면 6~70이 든다. 한달에 십만 원씩 반년 정도를 모으면 아주 소박하게 해외를 다녀온다. 해외를 다녀오는 이유는 '국내여행이 해외여행만큼 비싸'서가 아니다. 해외가 아무래도 더 비싸다. 제주도를 가는 게 아닌 한 국내에서 6~70이면 그리 빈곤하게 놀 필요가 없다.  


그래도 해외를 나가는 이유는 (여기서도 다양한 분석이 있겠지만) 그냥 어느정도 사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나쁘지 않은 레져이기 때문이다. 해외에 가서 생경한 풍경도 보고 인스타에 사진 몇장 남기고,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교토 어디가 참 맛집이더라'라고 이야기 나눌수 있는, 딱 그정도의 메리트가 있다. 6~70이라는 돈은 이제 한국인에게는 그리 큰 돈이 아니다.


그런데 이렇게 무려 '해외까지 싸돌아다니는' 한국인들은 가난하다. 사회초년생이라 한달에 백오십 내지는 이백을 받는다. 월 40정도 되는 집세를 내고 한 끼에 6~7000원 하는 밥을 사먹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보험을 들고, 교통비, 전기료, 통신료 등등을 낸다. 주말에 가끔 친구들도 만나면 그것도 돈이다. 이렇게 해서 잘 남으면 한 2~30이 남는다.


한국인은 잘 살기 때문에 한국에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물가도 크가. 그냥 볼륨 자체가 다른 나라보다 크다. 여기서 '가난'이 발생한다. 물론 김생민의 열풍이 증명하듯 그거라도 아껴서 뭘 할수 있을 여지도 있을수 있다. 한 달에 20씩 저축하면 일년이면 240이다. 조금씩 늘어날 월급까지 생각하면 잘 모으면 전셋집도 얻을 수 있다.


절망은 여기서 시작된다. 아무리 계산을 굴려봐도 쉽게 집한채 장만할 '플랜'이 떠오르지 않는다. 결혼 하고 애 둘 낳고 사는게 얼마나 '어마어마한' 일인지는 이미 충분히 알고 있다. 불가능하거나 심히 어려울것 같은 미래를 소거한다. 자 그러면 한달에 20은 남는다. 이 돈으로 뭐하냐면 해외여행 간다. 아이폰 바꾼다. 나는 나에게 집을 사주고 미래를 담보해줄수는 없지만 이달에 폰을 바꿔줄 여력은 있다.


청년들이 일확천금을 노리며 코인에 투자한다 뭐 그런 말이 있다. 뭐 청년들만 그러겠냐. 지금 한 몫 챙길수 있으면 챙겨보겠다는 그런 마음 누구나 가지고 있는 거 아니겠냐. 그런데 나는 조심스럽게 청년에게는 약간의 특수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까 그 20, 모아봤자 티도 안나는 돈이다. 대충 은행에서 빌려 500정도 꼴아박은 것. 해외여행 몇번 단념하고 대충 이것저것 좀 포기하면 갚을수는 있다. 적당히 가난하기 때문이다. 그정도 리스크 감당하고 나서 만약 '대박'이 난다면? 진짜 불가능했던 꿈을 꿀 수 있다. 누군가는 몇십억을 벌었다더라, 누군가는 몇백억을 벌었다더라. 그정도는 아니어도 서울에 몸 누일 집 한 채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이런 마음이 꽤 퍼져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일본 청년 열 중 일곱이 '행복하다'고 말한 게, 이들을 사토리 세대라고 일컬었던 게 벌써 5년이나 지났다. 씁쓸하지만 사토리세대는 우리의 현재가 아닌 미래다. 우리는 행복하다고 말하기엔 너무 모자란 게 많다. 청년의 고용도, 고용된 청년의 일자리 질도, 소득도 모든게 힘들다. 그러니까 '미래'를 단념한 정도가 아니라 사실 '오늘'이 힘든 사람들도 많다. 사정이 더 나아져야 비로소 그들은 '아무 욕심도 없기에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일종의 시위처럼 읽힌다. 미래를 한 번 꿈꿔보기 위해 찾은 해법이 고작 버블에 올라타는 거다. 버블이 깨어지면, 몇몇 비극이 조명될 거다. 누군가가 투신했다, 누군가가 수 억의 빚을 지게 됐다 같은 내용들이 도배될 거다. 대다수는 몇십 내지는 몇백, 많으면 몇천 정도의 빚을 지고 살게 될 거다. 그 빚이 못내 짜증나겠지만 뭐 그정도는 견딜만하다. 한국인은 잘 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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