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정 미숙지’와 ‘실수’도 도둑질로 봐야 할까요?
뉴스타파 보도가 국회를 강타했습니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국회의원들이 하나의 영수증으로 선관위와 국회사무처 양쪽에 금액을 청구하는 방식으로 국회 예산을 ‘부당하게’ 빼돌렸으며 이는 ‘비자금 조성’이자 ‘세금 도둑질’이라는 내용인데요. 일단 뉴스타파가 공개한 사례 몇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의원은 의정보고서 발간비와 우편발송료 비용을 정치자금에서 집행한 뒤, 같은 영수증을 국회사무처에도 제출해 모두 4차례에 걸쳐 국회예산 1,936만 원을 타냈다.
○ 기동민 의원은 정치자금에서 사용한 문자 대량발송 비용영수증을 국회사무처에 다시 제출하고 2차례에 걸쳐 국회예산 1,617만 원을 받았다.
○ 유동수 의원은 의정보고서 발간비와 우편발송료를 정치자금에서 지출한 뒤 같은 영수증을 국회사무처에 제출해 국회 예산 1,550만 원을 타냈다.
○ 자유한국당 전희경 의원은 영상 의정보고 제작비를 국회 예산에서 타낸 뒤, 같은 영수증으로 정치자금 후원회 기부금 계정에서 다시 해당 제작비를 지출하는 방식으로 국회예산 1,300만 원을 받아냈다.
그림을 보시면 이해가 더 쉬울 것 같습니다. 가상의 사례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A 의원실에서 11월 한달 동안 ‘문자 발송 비용’으로 100만원을 사용했습니다. ① 한 달이 지나고 문자발송업체에서는 ‘11월 사용분’을 의원실로 청구합니다. 정확히는 세금계산서를 내보냅니다. 세금계산서를 받은 의원실은 이 돈을 정치자금으로 지출합니다. ② 정치자금으로 지출한 금액은 반드시 선관위에 그 사용내역을 통지해야 합니다. 따라서 의원실은 내용을 증빙해 통지합니다. ③ 그런데 ‘문자 발송 비용’은 국회 사무처에서 지원이 가능한 경비입니다. 의원실에서 이 돈을 받기 위해 국회 사무처에 청구하죠. 청구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내역을 증빙해야 합니다. 세금계산서를 국회 사무처에 보냅니다.
과정을 살펴보면 돈을 지출했다는 증빙은 ‘두번’입니다. 선관위에 사용내역을 보고하는 데 한번, 그리고 지출 비용을 보전받기 위해 한번. 이 부분이 뉴스타파에서 문제삼고 있는 부분입니다. 뉴스타파는 최초 보도에서 이를 ‘이중 청구’라고 했습니다. “국회사무처에도, 선관위에도 같은 영수증 제출해 국회 예산 등 받았다”며 회계사의 발언을 인용해 “영수증 이중 제출은 한번 지출된 것을 두번 지출됐다고 하는 것으로, 엄연한 허위 경비 계상이기 때문에 범죄 영역”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일단 이 부분부터 따져보자면 돈을 두 번 수령한 것은 아닙니다. 앞서 표에서 볼 수 있듯이 선관위에 제출하는 영수증은 말 그대로 ‘비용을 썼다’고 하는 일종의 보고입니다. 선관위가 별도의 자금을 지급하는 게 아니라 돈의 지출은 의원의 ‘정치자금’에서 하고 선관위에는 어떤 돈을 지출했다고 알려주기만 하는 것이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뉴스타파가 지적했던 대로, 이렇게 되면 자금의 성격이 달라지게 됩니다. 정치자금은 법의 규율을 받지만 의원실 운영 계좌는 그렇지 않습니다. 뉴스타파는 바로 이 부분을 지적하며 ‘비자금 조성’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사무실 운영계좌는 의원실 임의대로 쓸 수 있기에 이 돈을 가지고 생활비로 사용하거나 술자리에서 지출할 수도 있다는 말이죠. 앞서 언급한 내용은 정치자금법에서는 금지된 내용입니다. 따라서 ④와 같이 이 돈을 다시 정치자금 계좌로 이동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왜 의원실은 곧바로 운영계좌에서 돈을 지출하지 않고 정치자금에서 지출했을까요? 김태년 의원실은 의혹에 대해 “사적으로 사용한 것은 없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규정에 맞지 않는 회계 처리가 있었기 때문에 잘못을 인정한다. 앞으로 규정대로 회계처리를 철저하게 하고, 제도 개선도 마련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금태섭 의원실은 “돈을 다른 데 쓴 것은 아닌데, 증빙이 부주의하게 잘못 들어갔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문제가 있으면 반납 등 처리하겠다”고 해명했습니다. 애초에 의원실 운용 계좌에서 돈을 지출했다면 생길 수 없는 문제 아닐까요? 정말 뉴스타파의 말처럼 ‘횡령’의 의도가 있는 건 아닐까요?
허프포스트는 이 부분을 확인하기 위해 국회 사무처와 여러 의원실에 연락했습니다. 그리고 ‘정치자금’으로 지출될 수밖에 없는 문제가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국회의원은 국회사무처에서 세비 및 보좌진 인건비와는 별도로 의원 1인 당 매년 5000만 원이 넘는 사무실 운영 경비를 지원받고 있습니다. 사무실 운영비, 전화요금 등 공공요금 지원비, 차량유지비, 차량유류비, 사무실 소모품 지원비, 공무수행 출장비, 직원 특근매식비 등입니다. 그러면 이 항목에 따라 맞춰서 지출하면 되는데 왜 굳이 ‘정치자금’으로 지출했을까요?
이유는 이렇습니다.
앞서 잡힌 항목들은 비용만 책정된 것이고 모두 국회사무처에 ‘청구’를 해야 지급받을 수 있습니다. 의원실 통장에 ‘꽂혀 있는’ 돈이 아닙니다. 의원실 직원들은 ‘청구를 하고 돈을 지급받는’ 기간이 20일 이상 걸린다고 이야기합니다. 예를 들어 9월 초에 사용한 돈은 10월 초에 청구가 가능한데 이 돈은 매달 15일에서 20일 정도에 지급됩니다. 이렇게 되면 50일 정도도 차이가 날 수 있죠. 만약 몇 달에 거쳐 특정 행사가 진행된다면 몇 달이 될 수도 있습니다.
업체 입장에서는 돈이 늦게 입금되는 것이 부담스럽습니다. 한 의원실은 이 부분에 대해 “우리가 절차대로 하기 위해 늦게 입금하면 그것 또한 갑질 아니겠느냐”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또 사무실 운영계좌는 돈이 항상 있는 통장이 아닙니다. 아까 언급했듯 먼저 청구하고 나중에 받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치자금을 이용했다고 합니다.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운영비 계좌로 보전받을 수 있는 금액’을 ‘정치자금으로 지급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닐까요? 그게 아니면 ‘사무실 운영 계좌로 받은 돈’을 다시 ‘정치자금으로 이동하지 않은 것’만 문제인데요. 선관위는 문자 청구비나 정책홍보물 발간비 같은 경우는 정치자금으로 집행해도 문제가 없는 금액이고 따라서 ‘정치자금으로 선지급 한 뒤 국회 사무처에 청구하는 것’ 자체는 문제없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하나가 남습니다. 왜 의원실은 운영비 계좌로 들어온 돈을 정치자금으로 다시 이동하지 않았을까요?
뉴스타파가 주목한 사례는 이렇습니다.
“영수증 중복 제출로 타낸 돈은 대부분 의원 명의 통장인 의원실 운영 경비 통장에 관리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의원실은 이 돈을 식비나 야근 택시비 등 의원실 운영에 필요한 자금으로 사용한다고 밝혔다. 국회 모 의원실 보좌관 A씨는 이중 제출이 관행이었다고 말했다. A씨는 “17대를 기준으로 말씀드리면 이 돈을 생활비로 쓰는 사람도 있었고, 의원이 직접 가져가는 경우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그런데 앞선 사례들은 의원실의 해명과는 사뭇 다릅니다. 뉴스타파의 질문을 받은 의원실은 하나같이 ‘사적인 유용을 하지 않았다’ ‘혼선이 있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들은 거짓말을 하는 걸까요?
몇몇 의원실에 전화해 해명을 들어보았습니다.
대표적인 두 사례를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먼저 규정 미숙지입니다. ‘영수증 이중 지출’에 언급된 한 의원실의 회계담당자는 “몰랐다”고 이야기합니다. “정치자금법에 관련한 설명회를 매년 하고 있지만 거기서 관련 내용에 대해 한번도 안내받지 못했다”고 해명했습니다.
중앙선관위도 마찬가지 대답입니다. ‘영수증 이중 제출’에 관해 공문을 보낸 적이 있냐고 물었더니 없다고 말했습니다. 별다른 교육이 있었냐고 물었더니 “처벌기준이 없는 내용이기 때문에 중점 확인 대상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중앙선관위는 뉴스타파의 보도로 해당 내용이 문제가 되자 6일, 설명회를 열어 실무자들에게 해당 내용을 주지시켰습니다.
뉴스타파 측은 “2015년 중앙선관위 정치자금 회계실무에는 ‘①정치자금으로 지출한 내역을 국회사무처 예산으로 중복 청구하는 행위‘를 중점 조사할 방침이라고 적혀있다”고 후속보도를 하기도 했습니다. 처음 선관위와 통화할 당시에는 이런 내용이 실무 책자에 있는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7일, 선관위에 추가 질의하자 ‘뉴스타파의 보도내용을 보고 확인해 보니 내용이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선관위를 비난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선거 관련 규정, 정치자금법 규정 등은 그 내용이 방대하고 모든 것을 ‘법으로 처리’하기 보다는 선관위의 유권해석이나 가이드라인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선관위 조차도 해당 내용을 명확히 주지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실무자도 해당 내용을 ‘놓치고’ 갈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다른 사례를 더 보겠습니다. 한 의원실은 저희에게 ‘어떻게 영수증을 중복 제출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자세히 설명해주었습니다.
11/6 - 문자 메시지 발송업체에 세금계산서를 이메일로 받음. 평소에 실무담당자는 이 금액을 정치자금에서 지출했고 따로 보전받지는 않았으나 이날은 발송 금액이 많이 나왔기 때문에 사무처에 금액 보전을 신청하기로 함
11/13 - 국회 사무처에 서류 제출
11/21 - 문자메시지 발송 업체에서 요금 납부 용지를 다시 한 번 발송했고 이 금액을 정치자금에서 제출
11/26 - 국회 사무처에서 청구 금액이 들어왔으나 실무자가 후원회 영수증 처리 때문에 너무 바빠 신경 쓰지 못했다고 함. 따라서 이 금액은 다시 정치자금 계좌로 이동되지 않고 운영 계좌에 묶임.
이 의원실은 이전에도 문자메시지 비용 등을 사무처에 청구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전에는 모두 정치자금 계좌로 입금했습니다. 그러나 이날은 너무 바빠서 넘기지 못했다며 ‘실수’를 인정했습니다. 뉴스타파의 보도를 보고 해당 내용을 인지한 뒤 비로소 금액을 금액을 사무처에 반환했다고 말했습니다. 앞선 사례와는 다르게 규정 미숙지가 아니라 말 그대로 ‘실수’로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뉴스타파는 이런 내용도 보도했습니다. “유동수 의원실 소속 한 직원은 “의정보고서 발간비 명목으로 국회 예산을 (이중) 청구할 수 있다는 것은 국회 직원의 설명을 들어 이미 알고 있었다”고 털어놨다. 즉 국회 내에서 영수증 이중제출은 서로 공유하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저 괄호 안의 ‘이중’이란 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 괄호 안에 ‘이중’ 이라는 말이 들어가냐 아니냐에 따라 문장의 내용이 매우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의정보고서 발간비 명목으로 국회 예산을 이중 청구할 수 있다는 것은 국회 직원의 설명을 들어 이미 알고 있었다”
“의정보고서 발간비 명목으로 국회 예산을 청구할 수 있다는 것은 국회 직원의 설명을 들어 이미 알고 있었다”
어떠신가요? 차이가 보이시나요? 국회 예산을 청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과 이중청구라는 편법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다른 의미입니다. 그런데 저 부분을 ‘괄호’ 처리되어있습니다. 뉴스타파가 해석한 맥락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건을 취재하고 제가 확인한 사례는 ‘규정 미숙지’와 ‘실수’였습니다. 뉴스타파는 “돈을 생활비로 쓰는 사람도 있었고, 의원이 직접 가져가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한 의원실은 이번 뉴스타파의 취재로 해당 의원실 행정직원이 영수증을 이중 제출하는 수법으로 돈을 타낸 사실이 드러나자 이 직원을 면직 처분했다”고도 보도했습니다. 이 경우는 명백히 ‘공금 유용’이 맞습니다. 하지만 의원실 직원이 다른 직원과 의원실을 속이고 ‘공금을 횡령’한 것과 의원실이 조직적으로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것은 다른 성질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세 가지 사례가 한 데 섞여 있습니다. 모두가 “(이중) 청구”라는 편법을 공유했다고 곧바로 해석하기 힘들 듯 모두가 ‘정치자금을 전용해 사적으로 유용했다’고 말하기 힘든 부분입니다.
또 확인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뉴스타파는 ”영수증 이중제출은 그 자체로 도덕적 논란과 함께 법적 문제까지 야기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중앙선관위는 여러 번 “처벌 기준도 없는 내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법적인 문제는 없다는 게 중앙선관위의 설명입니다.
뉴스타파는 또 ”중앙선관위는 영수증 이중제출이 확인될 경우, 각 의원실에 해당 금액을 정치자금 계정에 입금하거나 국회사무처에 반납할 것을 요청하고 있지만, 많은 의원들은 이 권고를 무시했다. 말 그대로 권고일 뿐이었다.”고 말했지만 이 내용도 사실과 다른 측면이 많았습니다.
중앙선관위는 자신들이 사무처 경비계좌를 들여다볼 수 없기 때문에 특정 의원실을 대상으로 ‘반납을 권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전체 의원실 회계 담당자에게 ‘영수증 이중 제출‘과 관련한 내용을 따로 안내문을 내보낸 적도 없다고 했습니다. 즉 ‘중앙선관위가 특정 의원실의 위법행위를 발견하고 시정을 권고했지만 의원실에서 이를 무시했다‘는 내용과는 거리가 멀다는 게 선관위 측 설명입니다. 아울러 선관위는 해당 내용에 대해 ‘정치자금법’상 조사권이 자신들에게 있는지도 확인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중앙선관위는 “선관위는 국회사무처 등의 비협조로 의원들의 영수증 이중제출 행위를 조사할 계획만 발표했을 뿐 실행은 하지 못했다”는 뉴스타파의 보도에 대해서도 특별히 국회 사무처 등이 ‘비협조’ 적이어서 조사를 실행하지 못한 게 아니라 자기들에게 의원실 공금 계좌를 들여다볼 권한이 없기 때문에 실행하기 힘들다는 일반적인 이야기를 설명했을 뿐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유인태 국회 사무총장은 국회의원 정책자료 발간비 및 발송료의 회계처리 오류로 인한 이중청구 논란이 발생하지 않도록 회계처리 기준을 더욱 엄격히 지키도록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선관위도 국회사무처에서 지원받은 예산도 정치자금법 적용 대상에 포함하도록 관련 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정리하자면, 뉴스타파의 보도는 의미가 있습니다. 실수와 가이드라인 미숙지로 인해 정치자금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을 여지가 있습니다. 누군가는 이 편법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횡령의 마음을 품을 수도 있고요. 나쁜 관행과 불완전한 제도는 개선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들 모두를 ‘세금 도둑’으로 몰아세울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한 의원실은 제게 익명을 당부하고 아래와 같은 말을 전했습니다
“열시쯤 뉴스타파 측에서 메일이 왔습니다. 저희도 아침에 바빠서 바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이후에 문자가 계속 오고 의원에게도 문자가 갔습니다. 계속 독촉하며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해명할 시간도 제대로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얼마 후 상황을 설명하니 우리는 금액이 적고 해명도 납득 가능하다며 ‘좋은 방향으로 나가는 게 낫지 않겠냐’고 말했습니다. 보도를 위해 저희를 살살 달래고 ‘꼬시는 것’ 같았습니다. 저희는 실수한 게 맞고 그걸 인정했습니다. 그런데 보도를 보니 저희는 횡령, 사기범이 되어있었습니다. 보도 행태에 대해 참 맘이 아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