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담았습니다
지금 정치권은 선거제도 개편을 위해 날 선 공방을 벌이고 있습니다. 정의당 이정미 대표와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는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 위한 결단해야” 한다며 단식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야당의 요구에 여당이 일단 답을 내놨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12일 선거제도 개편에 대해 “민주당은 그간 여야 간 논의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등 선거제 개혁 기본 방안에 동의하며 여야 5당이 이러한 기본방향에 합의하고, 구체적인 방안을 정개특위에서 논의할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습니다.
그간 잡음 많았던 선거제도 개혁에 관해 여당이 큰 틀을 제안하며 논의 테이블을 꾸린 것인데요.
여당은 구체적인 시기도 못 박았습니다.
“정치개혁특별위원회 활동시한을 연장하고 내년 1월 중 정개특위내에서 선거제도 개혁에 합의해 2월 임시국회에서 최종 의결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신의 저서에 ”국회의원 선거구제를 바꾸는 것이 권력을 한 번 잡는 것보다 큰 정치 발전을 가져온다고 믿는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만큼 선거제도 개혁이 중요하다는 의미인데요.
한국 정치지형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선거제도, 지금 정치권은 어떤 구체적으로 어떤 논의를 벌이고 있을까요? 그리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그 구체적인 내용을 담아보았습니다.
연동형 비례 대표제란 무엇일까요?
지금 선거제도 개혁에서 핵심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내용은 바로 연동형 비례대표제입니다. 사전적 의미는 ‘정당의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는 제도로 비례대표 의석수를 조정하는 방식’입니다.
구체적인 내용을 설명하기에 앞서 일단 먼저 한국의 국회의원 선거방식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한국은 좁은 규모의 한 지역구에서 가장 많이 득표한 후보가 당선되는 소선거구(단순다수다표)제와 정당득표율에 따라 배분되는 비례대표제를 같이 운영하고 있습니다. 현재 국회의원 총 의석수는 300석으로 지역구 의석은 246석, 비례대표는 54석입니다.
이중 지역구 의석은 최다득표자로 뽑습니다. 득표율과 상관없이 출마한 후보자 중 가장 높은 표를 받은 사람이 당선됩니다. 그리고 나머지 54석은 유권자들이 별도로 투표한 정당투표 결과대로 배분합니다(총 투표율 3% 미만은 의석수 배정에서 제외됩니다). 유권자는 후보자에게 한표, 정당에 한표, 총 두표를 행사합니다.
현재의 투표방식을 예로 들어볼까요? A당은 평균 50%의 득표율로 지역구 246석중 150석을 가져갑니다. 정당투표도 마찬가지로 50%를 득표한 경우 나머지 지역구 54석 중 절반인 27석을 가져갑니다. 이렇게 되면 A당은 50%의 득표율로 177석을 확보하게 됩니다. 전체의 60%가량이죠.
그런데 이렇게 되면 유권자의 민의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게 됩니다. 유권자들은 분명 A당에 50%만 투표했는데 결과적으로는 60%를 가져가게 되는 거죠. 게다가 이런 투표방식은 거대정당에 유리하고 소수정당에게 불리하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지역구 의원을 투표하는 유권자의 경우 아무래도 ‘사표’를 방지하기 위해 경쟁력 있는 후보에게 표를 던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영향력이 낮은 소수정당은 지역구에서 당선되기 힘들죠.
실제로 지난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비례대표 정당투표에서는 33.5%를 득표했지만 전체 의석수 비율은 이보다 많은 40.7%를 차지했습니다(300석 중 122석, 비례대표 의원 17석 포함).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25.54%를 득표했지만 전체 의석수 비율은 41%을 차지했고요(123석, 비례대표 의원 13석 포함).
바로 이 부분을 보정하기 위해 등장한 게 연동형 비례대표제입니다. 예를 먼저 들어 보겠습니다. 전체 의석수가 200석이고 이중 지역구가 100석, 연동형 비례대표가 100석입니다. A 정당은 정당득표율 35%에 지역구 50석을 가져갔습니다. B 정당은 정당득표율 10%에 지역구를 2석 가져갔습니다.
기존 계산대로라면 A정당은 지역구 50석에 비례대표 35석을 포함해 85석을 가져야 합니다. 하지만 연동형 비례대표제하에서는 A정당이 가져갈 수 있는 총 의석수는 전체 의석에서 정당 지지율 수를 곱한 70석입니다. A정당은 지역구에서 50석을 챙겼으니 비례대표로는 20석을 할당받게 됩니다. 반면 B 정당은 기존대로라면 지역구 2석에 비례대표 10석으로 총 12석에 불과했지만 연동형 비례대표제하에서는 총 20석이 할당됩니다. 그래서 지역구 2석에 비례대표 18을 추가해 20석을 보장받게 됩니다.
이제 다시 정리해보겠습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할 경우 지역구에서 몇 석이 당선되었는지보다는 정당득표율을 얼마만큼 획득했는지가 중요합니다. 지역구에서 적은 득표율로 많은 의석을 차지했다고 하더라도 결국 비례대표 배분에서 보정되기 때문이죠. 이렇게 되면 결국 정당 지지율 10%를 얻은 정당은 전체 의석의 10%를, 30%를 얻은 정당은 30%를 획득하게 됩니다. 이것이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중요한 특징입니다.
이정미, 손학규 대표는 왜 단식을 하고 있을까요?
국회는 지난 7월,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 구성안을 통과시켰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회의가 시작된 것은 10월 24일이었습니다. 국회 내부에서 특별 위원회 인원 구성을 놓고 다툼을 벌였기 때문입니다.
너무 늦은 시작이었는데 중간에 국정감사까지 끼어있었습니다. 논의할 시간이 거의 없었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합의는커녕, 각 당은 선거제도에 관한 명확한 당론조차도 내세우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해찬 당대표는 다소 의아한 발언을 내뱉었습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 현재 지지율로 볼 때 민주당이 지역구 의석을 확보해 비례대표 의석을 많이 얻기 어렵다. 그러면 직능성, 전문성을 가진 비례대표 영입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제1당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 11월 16일
소수정당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정치제도 개혁이 거대양당(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위주로 흘러갈까 조바심을 내는 상황일 텐데 이해찬 대표가 기름을 부은 셈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또 한번의 아쉬운 상황이 벌어집니다.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가 25일, ‘선거제도 개혁 없이는 예산안 협조도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 제안을 손학규 대표가 받습니다. 손 대표는 지난 4일 의원 총회에서 “선거제 개편은 우리나라 정치사상 아주 중요한, 민주주의를 제대로 자리 잡게 하는 절차와 제도의 완성으로 단지 야당의 이익만 추구하는 게 아니다. 야당이 예산안 처리와 선거제 개혁을 연계시키는 것은 당연한 전략”이라고 못박았습니다. 이정미 대표와 손학규 대표는 예산안 처리를 위한 본회의 하루 전부터 선거제도 개혁 없이는 예산안 처리도 없다는 입장을 밝히며 무기한 단식에 돌입했습니다. 예산안은 지난 7일, 야 3당의 보이콧 속에 통과됐습니다.
이해찬 대표의 발언도 문제였지만 여기에 대한 야당의 반응도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이정미 대표는 이해찬 대표에게 ”선거제도, 이렇게 바꾸기로 합의하기 전에는 여기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던대로 지금 정개특위는 구체적인 안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바꾼다’고 결정하기엔 절대적인 논의 시간이 부족한 상황이었죠.
그런데 야당은 이 사안을 예산안과 결부시킵니다. 예산안은 당장 내년도 초부터 시행되어야 하는 다소 급한 사안입니다. 따라서 국회는 지난 2014년에 국회선진화법을 통과시키며 예산안을 11월 30일에 자동으로 부의하게끔 했습니다. 야당의 보이콧이 별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몇몇 정치권 인사들은 야당의 ‘예산안과 선거제도 개혁의 연계‘를 ‘전략적 실패’라고 설명합니다. 아직 정개특위 논의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만큼 예산안은 그대로 두되 여당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개혁법안(예:공수처 설치)들과 연동해 협상을 진행하는 방향이 더 나았다는 것이죠. 이렇게 되면 선거제도의 전선은 여당 + 소수정당 vs 자유한국당 구도로 펼쳐지게 됩니다.
12일, 더불어민주당은 야당이 요구하는 선거개혁의 방향에 대해 큰 틀에서 동의한다고 말했습니다. 다시 공은 소수 야당에게 돌아갔습니다. 야당 대표들의 단식을 풀만한 명분이 쥐어졌습니다. 정개특위는 원래 올 연말까지가 기한이었지만 활동기간 연장은 피치못할 것 같습니다. 이제 진짜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왜 구체적인 합의가 나오지 않았을까요?
다시 연동형 비례대표제 이야기로 돌아가 봅니다. 이 사안을 ‘거대양당과 소수정당의 밥그릇 싸움’이라고 일축하기엔 복잡한 감이 있습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제대로 굴러가려면 비례대표의 숫자가 넉넉해야 합니다. 그래야지 ‘정당득표율’과 가깝게 보정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의석 비율을 살펴보면 지역구 246석에 비례대표는 54석밖에 되지 않습니다. 지난 총선을 기준으로 25%를 득표한 더불어민주당은 비례대표를 제외하고도 110석입니다. 전체의석수의 37%로, 이미 보정가능성이 사라집니다.
그렇다면 해결방법은 두가지가 있습니다. 첫번째로 의원 수를 현재 300명에서 더 늘려 비례대표 숫자를 확보하는 방법. 두번째로 지역구 의원을 줄여서 비례대표 숫자를 확보하는 방법.
그런데 두 가지 방안 모두 실현하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습니다. 첫번째로 국회의원 수를 늘리는 데 국민 여론이 호의적이지 않다는 점입니다. 당장 최근 국회의원의 수당 인상에 대한 반응에서도 볼 수 있듯 국민의 국회를 향한 불신은 매우 큰 상태입니다. 여기에 정치개혁을 위해 국회의원 수를 큰 폭으로 늘려야 한다고 하면 당장 국민들의 반발에 부딪힐 가능성이 큽니다.
지역구를 축소하는 것도 만만찮은 작업입니다. 이는 기존 지역구 의원들의 기득권을 빼앗는 작업이기에 반발에 부딪힐 가능성이 큽니다. 선거제도 개혁이라는 대의에 모든 의원들이 동의하면 좋겠지만 아마 상당수의 의원은 자신이 활동했던 지역구 터전을 빼앗기는 것으로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한 의원 상당수가 ‘선거제도 개혁’을 반대하면 통과 자체가 난항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이번 선거제도 개편이 목표하는 바에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정치권은 한국 정치 특유의 짙은 지역주의를 극복하는 작업을 같이 고민 중입니다. 지금 논의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또한 그런 차원에서 ‘권역별’로 운영하는 것에 무게가 실리고 있습니다.
선관위가 든 예시를 따르면 전국은 △서울 △인천·경기·강원 △부산·울산·경남 △대구·경북 △광주·전북·전남제주 △대전·세종·충북·충남 총 6개의 권역으로 묶이게 됩니다. 그리고 각 권역별 총 의석수가 정해지는데요. 다시 설명하지면 ‘각 권역별’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실시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렇게 되면 권역별로 선출된 비례대표 의원들도 어느 정도 지역대표성을 가질수 있게 되며 동시에 경북에서 민주당 의원이, 전남에서 자유한국당 의원이 당선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그렇습니다.
그래서 정치권은, 1)최대한 의석수의 변동을 줄이면서도 2)기존 지역구를 많이 손대지 않으며 3)지역주의를 줄이기 위해 다양한 보완책(도농복합형 선거구제, 석패율제 등)을 거론하며 논의를 이어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반드시‘만큼 중요한 것은 ‘충분히’
선거제도 개편은 각 정당의 ‘이해득실’에 대한 차이 때문에 오랜 시간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이번 정개특위에서 큰 틀의 합의가 모이고 있는 만큼 내년 2월 전까지 반드시 통과되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번 기회를 놓친다면 또 몇년을 기다려야 할지 모르니까요.
하지만 그만큼 ‘오래 갈 제도‘이기 때문에 숙의를 모으는 것도 중요합니다. ‘당장 누구에게 더 이득이 될지’의 계산보다는 건전한 정치 토양 만들 수 있는 제도 설계가 필요한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