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vs 1.2%
지난 7일, 국회의원들이 자기들 연봉을 ‘셀프 인상’ 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1억 4천만원에서 1억 6천만원으로 인상액은 2천만원, 인상률은 14%가 된다는 내용입니다.
해당 보도를 접한 국민들은 화가 났습니다. 실제로 청와대 청원에도 글이 올라왔는데요. 10일 현재 15만명이 청원한 이 글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국민들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경청해야 할 봉사직인 국회의원의 연봉이 연간 1억 6천만원대입니다. 지금 경제상황은 점점 어려워지고 문닫는 자영업자가 늘어나며, 국가부채는 점점 증가하고 있습니다. 최저임금 생활비에 허덕이는 근로자와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자영업자의 시름은 깊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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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열리는 정기국회나 임시국회에 정상적으로 참여하는 의원들이 몇이나 됩니까! 서로 정치싸움에 휘말려 정상적인 국회운영도 못하면서 받아가는 돈은 그대로 입니다. 일반 회사에서 그랬다면 정상적으로 급여를 받을 수 있었을까요.. 제발 셀프인상은 그만하시길 바랍니다! 봉사직으로 모든 권위의식을 내려놓고 오직 국민을 위해 일하는 서구 선진국들의 국회의원 모습을 좀 보고 배우셨으면 합니다.”
요약하자면 일도 제대로 안하는 국회의원들이 억대 연봉을 받아 가면서 인상률도 최저임금보다 높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내용입니다.
국민이 직접 선출한, 국정을 운영하는 중책을 맡은 국회의원들이 일을 제대로 못한다는 국민들의 질책은 유의미합니다. 높아진 국민 눈높이만큼, 국민의 의사를 대변하기 위해 선출된 의원들도 열심히 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있습니다. 바로 2천만원, 14% 인상 부분인데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14% 인상이라는 근거는 아무 데서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국회의원 개인이 직접 지급받는 돈은 크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연봉 개념의 수당인데요. 2019년 예산안에서 이 부분을 올리기는 했습니다. 의원들은 공무원 공통 보수 증가율 1.8%를 적용해 2018년 1억 290만원에서 2019년 1억 472만원으로 인상했습니다.
여기에 국회의원들은 ‘의정 활동비’를 별개로 받는데요. 이 금액은 작년과 동일하게 4704만원입니다. 두 금액을 합치면 2018년 1억 4994만원에서 1억 5176만원으로 인상됐습니다. 인상률로 치면 1.2%입니다.
여기에 국회의원은 사무실 운영비, 차량 유지비, 유류대 등을 국회 사무처에서 지급받습니다. 국회사무처는 ”예산안 편성 기준에 따라 정상적으로 편성되는 관서 운영 소요 경비”라며 “의원 개인의 수입과는 관계가 없다”고 설명했는데요. 의원 개인 수입과 관계없다고 해도 만약 이 부분에서 유의미한 증액이 있다면 문제 삼고 넘어가야 합니다.
제가 확인한 내용에 따르면 국회사무처에서 국회의원들에게 지원하는 ‘입법 및 정책개발비’는 지난해보다 약 3.3% 감액됐습니다. 국회의원 1인당으로 살펴보면 2990만원에서 2890만원으로 100만원이 줄어들었죠. 즉 유의미하게 늘어난 부분은 없고 오히려 줄어들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국회사무처는 ”어떻게 14%가 나왔는지 내부에서도 확인이 안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희 또한 아무리 근거를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조심스럽게 추측하자면, 2018년 금액은 세비와 활동비만을 기준으로 계산하고 2019년 금액은 국회 사무처에서 지원이 가능한 입법지원비를 더한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 입법지원비는 앞에서 설명했듯이 2018년에도 2019년에도 지원받는 금액입니다.
한 가지 더 고려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국회의원과 선출직 공무원, 그리고 고위공무원은 국민의 봉사자인데 저렇게 높은 돈을 받아야 하냐는 질문인데요. 실제 국회 사무처도 국회의원 연봉 인상을 놓고 ”장관급은 물론 차관급보다도 상대적으로 작은 금액”이라고 해명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국회의원이나 고위 공직자들에게 급여를 지급하지 않거나 아주 적은 금액만 지급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먼저, 선출직 공무원의 경우 진입장벽이 생기게 됩니다. 돈이 많고 생계가 여유로운 사람은 연봉이 0원이라고 해도 아무 문제가 없을 겁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은 어떨까요? 아무래도 부유한 사람보다 국회의원이 되기 훨씬 힘들어지지 않을까요?
다른 문제도 생길 수 있습니다. 국회의원은 개개인은 매우 많은 권한을 갖고 있습니다. 그만큼 유혹도 많을 텐데요. 만약 국회의원 급여가 터무니없이 낮다면, 금전적인 영향에도 쉽게 흔들릴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국회의원에게는, 높은 권한을 가진 국민의 봉사자로서 평균보다 높은 연봉과 함께 그만큼 책임감을 부여합니다. 그리고 책임을 제대로 하지 않았을 때는 다음 선거에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겠죠.
국회의원들이 실제로 활동하기 위해 얼마가 적정한가에 대한 논의도 필요합니다. 국민의 세금인 만큼 허투루 쓰는 일도 없어야겠죠. 따라서 국민들은 매의 눈으로 국회의원들을 감시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비용을 적정한 선에서 보장할 필요는 있습니다. 이를테면, 국회의원들이 매 이동 때마다 KTX 특실을 이용할 필요는 없지만 더 많은 민생 현안들을 보고 파악하기 위해 최대한 빠른 이동수단을 이용하는 것은 보장할 필요가 있는 것처럼요.
국회의원은 특수한 직업입니다. 자신의 생계를 위해서 일하고 있다고 말하는 국회의원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은 ‘국민의 봉사자‘입니다. 한편으로는 그 ‘봉사’를 하기 위해서 많은 비용이 지출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국회의원들이 열심히 일할 여건을 만들어주고, 대신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국회의원들을 호되게 질책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그게 우리 정치를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끄는 길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