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민주당의 필리버스터는 실패했지만 성공했다. 당시 새누리당 출신 정의화 국회의장은 ‘국가 비상사태‘라는 납득하기 힘든 이유로 ‘직권상정‘이라는 꼼수를 발동했다. 국회선진화법이 도입된 이후였기에 민주당 등 야당은 물리력으로 저지할 수 없었다. 이들은 직권상정에 대응하기 위해 국회법에 명시된 ‘합법적’ 수단을 꺼냈다. 192시간 동안 연설을 했다. 누군가는 눈물을 흘렸고 누군가는 헌법을 읽었다. 이들은 법안 저지에 실패했다. 하지만 뭇 사람들은 그 장면을 야당의 ‘품격 있는 반대’로 기억하고 있다. 나는 이제 국회에는 폭력이 사라진 줄 알았다.
아니었다. 필리버스터 투쟁 3년이 지난 2019년 국회에는 수준 낮은 공작과 감금, 점거와 폭력이 등장했다. 국회의장에게 집단 항의하며 여성 의원을 앞세워 ‘만지면 성추행‘이라고 외쳤고 실제로 ‘성추행범’으로 몰고 갔다. 그때 충격으로 문희상 의장은 병원에 입원했고 현재 수술을 앞두고 있다. 국회 의안과(의원들이 법률안을 접수하는 곳)는 봉쇄됐고 직원들은 출근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한다. 사개특위 위원으로 보임된 채이배 위원은 사무실에 감금되어 한동안 나오질 못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사개특위와 정개특위가 열리지 못하게 의원실을 막아섰고 민주당 등은 26일 새벽, 결국 회의 개최를 보류하고 철수했다.
내가 가장 이해 안되는 부분은 지금 여야4당이 추진하고 있는 것이 ‘직권상정‘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금 여야 4당이 추진하는 것은 법안을 ‘신속하게’ 처리하자는 패스트트랙 지정이다. 이는 날치기가 아니다. 오히려 날치기를 막기 위해 직권상정을 제한함에 따라 법안이 지지부진하게 처리될 수 있을 것을 우려해 도입된 국회선진화법의 주요 취지다.
선거법 등이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다고 해서 바로 법안이 통과되는 게 아니다. 자유한국당이 논의에서 배제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여야4당은 지난 22일 합의문을 발표하며 ”이들 법안들의 신속처리안건 지정 후 4당은 즉시 자유한국당과 성실히 협상에 임하고, 자유한국당을 포함한 여야 합의처리를 위해 끝까지 노력한다”고 적어 두었다.
″이게 이렇게까지 해야할 일인지 모르겠네요”
국회에 난리가 난 25일부터 오늘 점심을 먹을 때까지 이틀간 네번을 들었던 말이다. 그 말을 한 사람 중엔 동료 기자들도 있었고 정치에 큰 관심이 없던 친구들도 있었다. 나도 어리둥절하다. 마치 곧 날치기로 법안을 통과시킬것인냥 위급하게 돌아가고 있는데. 아니 그냥 ‘패스트트랙’을 지정하자고 하는 것 아닌가. 지정이 되고도 330일이나 남지 않는가. 그동안 서로 논의를 진행하면 될 것 아닌가.
패스트트랙을 지정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민주당과 바른미래당 찬성파의 행동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보임에 위법은 없었다지만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는 과정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걸 국회법을 위반하고 공작과 감금, 점거와 폭력을 써가면서 막아야 할 일인지도 모르겠다. 국회에서 회의장을 가로막고 폭력을 행사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국회법 위반으로 5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의 선고를 받고 그 형이 확정된 자는 5년간 피선거권을 박탈당한다. 김정재 자유한국당 의원은 채이배 의원을 감금하며 ”저희 다 감옥 갈 거예요”라고 말했다.
이게 감옥 갈 각오까지 해야 할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