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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호 Jan 08. 2020

문제는 청년 실업이 아니라 '공채'다

한국의 청년 실업이 '심각하다'는 보도는 쉽게 접한다. 보통 어떤 수치들이 따라오곤 한다. 청년 실업이 몇프로니 OECD와 비교해서 어떻다느니.


이걸 써놓고 찾아봤는데 7일 전 연합 기사는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들의 청년고용지표를 분석한 결과 한국의 청년(15∼29세) 실업률이 지난해 9.5%로 세계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7.1%)에 비해 2.4%포인트 상승했다.OECD 회원국 36개국 가운데 한국의 청년실업률 순위는 11위에서 22위로 떨어졌다."고 보도했다.

오늘자 조선일보는 "지난해 청년층(15~29세) 체감 실업률은 23.1%(1~11월 기준)로 2015년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높았다"고 보도했다.

숫자는 뻥이 아니다. 다만 그걸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한국의 청년 실업률이 높은 것도 사실이고 과거에 비해 심각해진 것도 사실이다. 그럼 그게 왜 그러는지도 같이 살펴봐야 한다. 단순히 경제가 심각해서, 문재인이 경제를 망쳐서라는 같은 답변은 장기적인 정책을 수립하거나 방향을 고민하는 데에는 의미값이 없을 수도 있다.




첨부한 표는 "한국과 일본의 청년실업 비교분석 및 시사점"이란 페이퍼에서 나왔다. 보통 지표는 청년층을 15~29사이로 쪼개본다. 근데 이 그래프는 20대 초반, 20대 후반, 30대 초반으로 나눴다. 그래프를 보면 20대 초반 구간의 실업률은 OECD보다 크게 높지 않다. 그런데 이게 20대 후반에 확 튄다. 좀 놀라울 정도다. 그러고 나서 다시 30대 초반이 되면 실업률이 낮아진다. 오히려 OECD 평균보다 소폭 낮다.


의미를 해석하는 게 크게 어렵진 않다. 20대 후반들이 취업준비를 하고 있단 뜻이며 그 기간이 생각보다 길단 의미다. 앞서 조선일보가 말한 '체감 실업률'을 한번 뜯어보자. 체감실업률은 가장 확대된 실업지표라고 설명할 수 있다. 백과사전은 체감실업률은 ‘근로 시간이 주당 36시간 미만이면서 추가로 취업을 원하는 근로자’와 ‘비경제활동인구 중 지난 4주간 구직활동을 했지만 취업이 불가능한 경우’를 모두 실업자로 보고 계산한 것이라고 말한다. 무슨 말이냐면 알바하면서 취업준비하는 애들, 도서관에 처박혀서 스펙 쌓고 토익공부하는 애들 싹 다 실업자로 본다는 말이다.



즉 한국의 청년실업률은 일자리 수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노동공급자와 수요자의 미스매칭이 만들어 낸 취업 지연에 가깝다.


이 논문은 "최근 들어 이러한 한국과 일본간 청년실업의 차이를 상당 부분 인구구조 변화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가 제기되고 있다"면서 "한국은 청년인구가 일시적으로 증가하여 청년실업이 악화되었으나, 일본은 청년인구가 꾸준히 감소하였기 때문에 청년고용이 개선되었기 때문에 한국의 인구구조가 약 20년 차를 두고 일본을 따라가고 있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우리나라 역시 가까운 미래에 청년실업이 자연적으로 해소될 것이라는 기대"를 비판하는 내용으로 구성됐다.


(물론 이 논문의 문제의식에 전부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인구구조의 변화는 수요측과 공급측 양자간의 협상에서 누가 조금 더 우위를 가질 수 있느냐의 문제도 포함하기 때문에 전혀 설득력 없다고 보긴 어렵다)


아래는 논문이 제시한 근거다.


"한국의 50인 미만 기업체의 평균임금(238만원)은 300인 이상 기업체 근로자(432만원)의 55%에 불과하다.18) 대졸 신규 취업자를 기준으로 2015년 중소기업 정규직 초임 평균(2,532만원)은 대기업 정규직 초임 평균(4,075만원)의 62%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19) 또한, 한국의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임금 격차는 일본에 비해 지난 수년간 꾸준히 확대되어 왔다. 종업원 500인 이상 기업의 경우, 한국은 2010년에서 2015년까지 일본에 비해 평균임금이 20.7%p 더 오른 반면, 종업원 100~499인 기업의 경우에는 일본의 평균임금이 3.2%p 더 올랐다. 이러한 추세는 미국과 비교해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에서는 중소기업에 입사하는 경우 대기업 취업자에 비해 생애소득이 크게 낮을 수밖에 없는데다 점차 그 격차도 확대되고 있다. 그러므로, 한국의 청년 구직자들이 실업자로 있는 기간이 다소 길어지더라도 중소기업보다는 대기업에 가기를 원하는 것은 어쩌면 합리적 의사결정의 결과라고 볼 수도 있다.


한국은 노동자의 전반적인 임금소득이 일본보다 낮을 뿐만 아니라, 중소기업과 대기업간 임금 격차, 양질의 일자리 부족현상이 더 큰 상황이다. 반면, 한국의 25-34세 인구는 같은 연령의 일본 인구에 비해 대졸자 비중이 10% 포인트 가량 더 높다. 따라서, 한국의 청년 구직자가 일본 청년에 비해 중소기업을 회피하는 경향이 훨씬 강할 것이며, 중소기업과 대기업간 임금 격차도 더 확대되는 추세이므로 이러한 회피경향이 더 심화되고 있을 것이다."


대체로 맞는 분석이다. 내 식대로 요약하자면 이렇다. 내가 취업 했을 때도 그랬고 지금 취업하는 친구들도 그렇게 생각할 거다.


"중소기업 가면 X된다. 거기 가면 평생 중소기업맨이다. 대기업 간 친구 연봉의 반밖에 못벌고 살 거다. 2년이 걸리든 3년이 걸리든, 그보다 더 걸리든 무조건 대기업 가야 한다. 하다못해 중견기업으로 가야 한다. 그게 인생을 풀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제 연차가 조금 됐으니, 취업 시장 말고 이직 시장도 조금 보이는데. 사실 한국에서 첫 직장은 신분이다. 첫 직장으로 대기업에 입성했으면 다음 직장도 대기업으로 갈 수 있다. 물론 한 직장에 꼴아박아도 된다. 어쨌든 그가 갑자기 중소기업으로 가는 일은 잦지 않다. 보통 그건 '실패'나 '도전'의 의미다. 부장하다가 위기감 느껴서 중소기업 임원으로 가는 것처럼 '실패와 도전 사이'의 애매한 구간이거나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가는 것? 이게 되려면 대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이동하는 수평 이동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준비해야 한다. (일단 기본적으로 포폴을 쌓기도 더 빡세다) 이건 '이동'이 아니라 상위 단계로의 '진입'이다. 경계를 넘는 것이다. 그럼에도 중소기업 출신인 너를 뽑아야 하는 이유가 확실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


자 그럼 다시 보자. 이 논문이 지적한 문제, 그러니까 '중소기업이랑 대기업의 격차가 너무 크기 때문에 취업희망자들이 바로바로 취업을 못하고 있고 바로 그 구간 떄문에 청년실업률이 높아지고 있다. 따라서 중소기업과 대기업 격차를 해결해야 한다'는 건 맞다. 그런데 이 논문이 제시하고 있는 대안은 '일본 청년고용촉진종합사이트 벤치마킹, 오프라인 지원 확대 및 내실화, 이직자와 정규직 희망자를 위한 서비스 제공' 같은 거다. 약간 맥이 빠진다.


요새 매일 하는 생각은 공채를 없애야 한다는 거다. 이동경로를 만들어줘서 첫 직장을 신분으로 고착화시키지 않게끔 하는 거다. 수평이동이 아니라 수직이동이 원활하게 되게끔 파이프를 뚫어주는 거다. 여담인데 일 좀 하려고 하는 친구들, 프로젝트 따라서 대기업 여러번 왔다갔다 하는 친구들이 하는 말이 대기업에 안착하는 인간들이 너무 많다고 한다. 특히 정년 잘 보장되는 직장이 그렇다고 한다. 버티면 되니까. 자기계발같은거 등한시하고 안전지향적으로 프로젝트 운영하면서 뻐기고 앉아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고 한다. 그리고 이게 다같이 묶여서 하향 평... (이것도 기업마다 다를 것 같긴 하다만) 여튼 그러다보니 회사에 활력이 없다고 한다.


아래서 위로 치고 올라갈 수 있는 루트를 만들어주면 당장 대기업을 가지 않아도 될 유인이 생긴다. 대기업 선호도는 여전하겠지만 지금 거길 못들어간다고 남은 인생 2~30년이 폭망하는 건 아니게 된다. 이렇게 되면 중소기업 입장에서도 활력이 생긴다. 평생 직원 말고 똘똘하게 업무 수행하고 성과지표 개선하고 그거 자기 포폴로 삼고 나갈 직원들의 장을 만들어주는 것. 뭐 매일 투덜대며 이직사이트 클릭하고 있는 것보다야 차라리 이편이 낫지 않을까. 대기업은 높은 급여로 시장에서 검증된 애들 배치해서 굴릴 수 있지 않으까. 공채로 뽑아서 리스크 다 감수하고 관리하는 것보다 더 HR의 관점에서 사람을 운영할 수 있지 않을까.


사람이 그렇다. 공부만으로 안 터지는 애들이 있다. 막상 일해보니 출중한 실력이 검증된 애들이 있다. 그런데 지금 채용 시스템은 너무 신분제같다. 어쨋든 키는 여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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