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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호 Jun 25. 2020

'인천국제공항'이라는 신분은 얼마나 공정한가?

오만 알바를 다 해보았다. 스물 한살 때 였을까, 나는 학교를 잠시 휴학하고 알바를 구했다. 나름 틈틈히 공부도 해야겠단 생각에 고른 곳은 '보안 근무'였다.


그떄가 2004년 쯤이었는데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대략 140정도의 월급을 손에 쥐어준 것 같다. 당시로 치면 많이 쳐준 액수였지만 따지고 보면 많지는 않았다. 일 하는 시간이 워낙 길었기 떄문이다. 당시 근무는 '주주야야휴'로 돌아갔다. 5일에 한번씩 쉬니까 많이 쉰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오전 8시까지의 야간 근무를 마치고 9시쯤 몸을 누이고 일어나면 보통 4~5시가 되었다. 다음날 아침 8시 근무를 생각하면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사실 쉬는 날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따금 '주주야야휴휴'같은 날이 돌아온 적도 있었는데 그것도 고참들에게 우선 배정되었고 신입 알바생에겐 꿈같은 거였다. 휴가도 쉽게 쓸수 없었다. 빽빽한 스케쥴 속에서 내 일정을 맘대로 바꾸면 다른 근무자들도 다 조정해야 한다. 신참이 용기를 내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인국공(그냥 인천공항이라고 하면 되는데 왜 이렇게 줄이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보안 근무자들의 정규직 전환 문제로 시끄럽더라. 일에 치여 관심을 두지 않다가 찾아보니 연봉 3800정도 된다더라. 많으면 많다고 볼 수 있는데 아까 말했든 보안 근무자는 절대 근무시간이 길다. 야간 근무도 전체 근무의 절반가까이는 할 거다. 야간 수당에 주말근무 수당 이런거 저런거, 요새의 최저임금까지 다 고민하면 아마 저게 '최저선'이긴 할 거다. 저 이하로 주게 되면 법에 뭔가 걸릴 거다. 인천공항 보안 근무자들이 '노력도 안 하고 저 돈을 받는다'(는 말이 옳은 지는 차치하고)고 하기에는 그들이 대단히 큰 돈을 받는 건 아니라는 거다. 


나는 안전망 구축을 전제로 한 고용유연화를 지지한다. 소위 한국에서 통용되는 '진보적 가치', 모두가 정규직이 되고 모두가 동일 임금을 받는 것 같은 이야기들은 별로 솔깃해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를 비정규직으로 만들고 기업에게 언제든 해고할 수 있도록 하자고 말하는 건 아니다. 안전 관련 업무는 계약을 어느정도 강제하고 책임 소재를 회사측에 두게 하자는 주장에도 역시 동의한다. '하도급 업체에 모든 책임을 전가 해서 발생하는 사고들'이 구조적 문제라는 주장에도 동의한다. 그래서 안전 관련 업무들을 직고용으로 전환한 게 나름의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판단했다. 


20대들의 '공정론'을 마냥 질타할 생각은 없다. '저들이 내 신분와 같아지면 안된다'는 생각을 마냥 천박하다고 말하기도 힘들다. 그런데 진짜 천박하게 생각해보자. 정말 저들이 '대학 가고 공부하고 시험 치고 들어 온, 혹은 그러려고 하는 당신'과 같은가. 아마 저들은 평생 '보안 및 안전' 직렬을 벗어날 수 없을 거다. 


공채로 당당히 입사한 누군가는 고객관리 직렬에 있다가 갑자기 인사직렬로 가는 게 가능하겠지만 저들이 갑자기 인사 부서로 발령 날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누군가는 '저들이 내 신분와 같아지면 안된다'는 생각으로 화를 내겠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들과 당신은 '고용이 보장되었다'는 측면만 제외하면 같은 회사에서 꽤나 다른 삶을 살 것이다. 무엇을 서운해 하는지 알겠지만 따지고 보면 그렇게 서운해 할 일도 아니란 이야기다. 


나는 몇 해 전부터 공채를 없애야 한다고 생각 했다. 마치 과거 시험처럼, 신분 결정 시험처럼 대기업 입사자와 중소기업 입사자가 한 번 결정되면 거의 그대로 가는 건 한국 사회 전체의 측면에서도, 기업의 측면에서도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 측면에서도 대부분 좋지 못하다고 생각했다(물론 대기업 입사자들에겐 좋을 수 있지만...)


수직 이동, 그러니까 중소기업서 대기업으로 치고 올라갈 수 있는 루트를 만들어주면 당장 대기업을 가지 않아도 될 유인이 생긴다. 대기업 선호도는 여전하겠지만 지금 거길 못들어간다고 남은 인생 2~30년이 폭망하는 건 아니게 된다. 이렇게 되면 중소기업 입장에서도 활력이 생긴다. 맥 없이 신세 한탄하는 중소기업 평생 직원 말고, 똘똘하게 업무 수행하고 성과지표 개선하고 그거 자기 포트폴리오로 삼고 나갈 직원들을 통해 성장 동력을 만들 수 있다. 대기업은 높은 급여로 시장에서 검증된 인력들 유인해서 활용할 수 있다. 공채로 뽑아서 리스크 관리를 하는 것보다 이 편이 회사 입장에서는 더 나을 수도 있다. 


여기에 대한 문제는 아래 글에 간단히 담았다

https://brunch.co.kr/@quidlesf/213


그러니까 이 난리가 나고 있는 건 아마 '공사 직원'이라는 신분 때문일 거다. 어떻게 저들이 힘들게 쟁취할 수 있는 '공사 직원'이라는 신분을 쉽게 딸 수 있냐는 항의일 것이다. 근데 사실 그 '신분'을 한꺼풀 벗겨놓고 보면 대단히 이상한 일도 아니다. 보안 업무의 숙련도를 높인 사람들이 보안 업계에서 받는 일반적인 임금보다 조금 더 나은 임금을 받고 좋은 직장에서 일 한다고 한다면 그게 무슨 큰 문제일까. 실력 없는 자들이 누군가의 청탁으로 움직였다면 모를까. 심지어 급여도 직무마다 다르다. 이 정부는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직무급제를 도입하려 하고 있다. 나는 이 직무급제에 대해서도 찬성한다.


뭐가 공정인지 좀 다시 한번 생각을 해볼 필요는 있다는 거다. 정말 공정이 필요하다는 내 생각에는 19살때의 수능 점수로, 직무와 무관하게 쌓은 20대 중후반의 스펙으로 모든 신분이 결정되는 게 썩 그리 공정해보이지 않다. 당신이 아무리 관련 실력을 쌓았어도, 맨 처음에 입사했던게 중소기업이었기 때문에 그 이후에는 '인천공항공사 입사'는 꿈도 꿀 수 없다는 그 고착된 신분이 더 불공정해 보인다. 대기업 다니는 당신의 무능한 동료를 과연 어디다 갖다 꽂어야 그나마 '돈 값' 할까 고민하는 회사의 걱정이 더 불공정해 보인다. 인천국제공항에서 보안 업무를 하다가 우연히 정규직 된 안전 업무 종사자가 정규직이 되었단 이유로 근무를 매우 불성실하게 해도 해고되지 않는 게 더 불공정해 보인다. 


신분이 아니라 실력에 가치를 매기는 게 진짜 공정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할 수 없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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