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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호 Jan 22. 2020

글 잘쓰는 당신의 자소서가 매번 광탈하는 이유

자소서를 써내려가는 순간보다 쓰기 전이 훨씬 중요하다


언론사에 다닌다는 이유로, 단지 글을 쓰는 일을 한단 이유로 적잖은 자소서 첨삭 요청을 받았다. 물론 언론사에 다니거나 글을 잘 쓴다고 자소서 첨삭을 잘하는 건 아니다. 솔직히, 분야가 다르다. 자소서는 미문을 만들어내는 게 목적이 아니다. 그래서 "끝내주는 문장으로 저 심사관들을 감동시켜서 합격을 이뤄내야지" 라는 접근은 별로 유효하지 않다. 


자소서는 기본적으로 '마케팅' 과정의 일환이다. 그러니까, 상품을 팔기 위해서 '제품 소개서'를 보내는 것과 같다. 


상품이란 게 그렇다. A라는 상품에 포함된 요소는 여러가지다. 디자인이 있을 수가 있고 스펙이 있을 수가 있고 부가된 기능 같은 게 있을 수가 있다. 그리고 꽂히는 부분은 손님마다 다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자소서에 상품 소개를 안한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고객님 사랑합니다! 꼭 고객님께 물건을 팔고 싶습니다"
"이 상품은 대단히 노력을 기울여 만들었습니다. 잘 만들었다고 보증합니다."


상품 소개를 한다고 해도 핀트가 어긋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중년남성이 여성 속옷가게를 찾았다고 하자. 그 손님은 왜 여성 속옷가게를 갔을까?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보통 선물을 하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그 손님에게 '당신의 체형이 이렇고 요새 트렌드가 이러니 이런 제품이 좋을 것 같다. 한번 착용해보시라'고 말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 누구에게 선물할 건지 대상자의 연령은 어떤지를 물어보고 판매할 물건을 소개해야 한다. 


취업이 어렵다고 한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러나 채용도 쉬운 일은 아니다. 기업이 사람 한명을 고용하는 데 드는 비용은 어느정도일까? 대충 연봉 4000으로 10년 정도 일한다고 해보자. 그러면 4억이다. 여기에 퇴직적립금, 국민연금 등등 제반비용을 합치면 5억을 훌쩍 넘어간다. 근속연수가 길어져도 그렇다. 취업자와 채용자는 그정도 규모의 계약을 맺는 거다. 당연히 서로가 신중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 


요새 자소서는 그래도 '엄부자모'로 시작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그 상투적인 말은 종종 보인다. 예를 들면 "저는 아버지로부터 근면함을, 어머니로부터 소통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같은 말. 


이건 물건을 사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 물건은요~~ 청주 공장에서 만들어져서 한진 택배로 배달됐습니다" 같은 소개다. 굳이 의미가 없단 말이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취업준비생 혹은 이직자들은 자기소개서에 뭘 담아낼지 몰라 어려워한다. 그냥 좋아보이는 말을 다 갖다 붙인다. 그러면서 정작 '물건을 사는 사람'이 뭐가 필요한지는 고려하지 않는다. 


나는 자기소개서를 쓰는 사람들이 회사와 '거래'를 준비하는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회사와 장사를 하는 것이고 자기라는 물건을 팔아야 한다.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풀린다. 일단 컴퓨터 앞에서 워드를 켜고 무얼 써야 하는지 몸을 배배꼬고 머리를 쥐어짜고 고생해서 써낸 그 자소서가 힘이 빠지는 이유다. 


나는 한창 취업준비하던 당시 자소서를 못썻다. 다시 꺼내 보면 글을 못써서 그런게 아니다. 나는 내가 앞서 놀려먹었던 그런 자소서를 써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고객님 사랑합니다! 꼭 고객님께 저라는 물건을 팔고 싶습니다. 끝"이다. 일을 하면서 비로소 보였다. 그런 자소서가 왜 실패했는지를. 


지금 누군가의 자소서를 도와줄때 내가 하는 일, 혹은 쓰는 사람에게 당부하는 일들이 있다. 도움이 될까 싶어 나눠보고자 한다.


첫번째. 작성하기 전에 해당 기업의 기사를 백개 읽어라


앞전에 자소서는 '마케팅'의 일환이라고 했다. 당신이 영업직이라면, 바이어를 만난다면 그 사람에 맞는 마케팅 포인트를 뽑아내야 한다. 그러면 사전 조사는 필수다. 취할 수 있는 정보는 다 취해본다. 이 회사가 요새 무슨 사업을 하나. 최근 어려움은 없었나. 앞으로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하나. 기업 가치는 어떤가. 뭐 그런 것들을 알아내야 한다. 특히 CEO 인터뷰는 필수다. 이 사람의 말에 회사의 방향이 담겨있다. 보통 CEO 인터뷰는 투자자 혹은 잠재투자자에게 닿을 것을 고려하고 내뱉기 때문에 기업의 핵심가치 내지는 방향이 잘 담겨있다. 

물론 CEO가 내뱉은 말대로 회사가 돌아가지 않을 가능성은 있다. 다른 기사들도 홍보팀이 뿌린 보도자료일 가능성이 높다. 모두 아름답게 포장됐을 것이다. 그런데 상관 없다. 사람을 뽑는다는 건 보통회사의 현재와 미래를 함께하기 위함이지 어두움과 나쁜 관행을 공유하기 위함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사실상 신입 공채 폐지 수순으로 들어간) 현대자동차를 보자. 요새 엄청 시끄럽다. 정의선 부회장이 의욕넘치게 일하고 있다. 그래서 무슨 모빌리티 이야기도 나오고 드론 이야기도 나오고 자율주행 이야기도 나온다. 


보통 자소서를 쓰는 사람은 기업의 채용사이트에 있는 인재상 내지는 방향 같은 것만 보고 거기서 키워드만 따다와서 녹인다. '꼭 창의적인 사람이 되어서 회사에 부합하는 인재가 되겠습니다' 같은. 


조금 더 성실한 사람들은 기사들을 몇개 보고 거기서 공통의 키워드를 뽑아낸다. 'XX사가 꿈꾸는 차세대 기술을 발전시켜 회사의 미래 먹거리로 만들겠습니다'


당신이 요리사고 회사가 손님이라면 당신은 요리를 내놓아야지 재료만 내놓으면 안된다. 키워드를 뽑아내는 게 아니라 회사가 하고싶어하는, 움직이고 있는 동선을 파악해야 한다. 기사를 계속 읽고 고민을 계속 하다보면 보인다. 왜 현대차는 한화와 손을 잡는가, 왜 현대차는 모빌리티 사업에 손을 대는가, 왜 현대차는 스타트업에 투자하는가, 왜 현대차는 반대에도 무릅쓰고 수소차에 투자를 하는가, 정의선 부회장이 선대 회장과 차별점을 두고자 하는 방향은 무엇인가, 요새 자동차 시장의 트렌드는 어떠한가. 여기까지 읽게되면 대충 이들이 말하는 '모빌리티 플랫폼'이 보인다. 이들이 하고자 하는 사업의 큰 줄기와 지류들이 보인다. 


여기까지 오면 절반은 온 거다. 나는 자소서를 '쓰는' 시간보다 '사전 정보를 취합'하는 시간이 더 길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줄기와 지류들이 파악됐다면 다음 단계에 돌입한다. 



두번째 이 회사는 무슨 물건을 사고 싶어하는가?


얼마 전 후배에게 카톡이 왔다. 모 투신사 채용이 열려서 거길 지원하고 싶다고 자소서를 봐달라고 했다. 후배를 좀 혼냈다. 이렇게 쓰면 안된다고 말했다. 후배가 쓴 내용은 대충 이랬다. 자기는 학교생활도 열심히 하고 교우관계도 좋고 인턴 하면서 버거운 일도 잘 견디며 수행했고 수업도 열심히 들어서 수익성 계산도 잘 한다는 내용. 


이 친구는 지원동기를 이렇게 썻다. 


‘XX투자사는 가장 큰 규모로 올해 중점적인 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핀테크와 P2P 투자로 젊은 층을 끌어들일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후략)'


그 친구에게 물어봤다. 이 투신사가 왜 핀테크나 P2P 이야길 꺼냈는지 아냐고. 당연히 잘 모르고 있었다. 

이 회사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자면 이렇다. 이 회사는 금융위에 사업허가를 내면서 부동산 P2P 투자 같은 걸 중점적으로 어필했다. 사실 금융위에서 P2P투자는 골치아픈 문제다. 무작정 규제하기도 어렵지만 그렇다고 그대로 방치하자니 업체들이 리스크관리를 잘 못한다. 금융위 입장에서는 자본규모가 크고 비교적 관리가 잘 되는 대기업이 부동산 P2P를 하면 모범안을 찾을 수 있고 시장도 안정화시킬 수 있다. 이것만 있는 게 아니다. 이 회사의 지주사는 잘나가는 인터넷은행에 지분을 갖고 있고 온라인 부동산 중개 플랫폼도 인수했다. 


사실 한국에서 부동산 간접투자 시장이 그렇게 보편화된 것은 아니다. 진입장벽이 높다. 근데 이걸 P2P로 돌려버리면 진입장벽을 낮춰 시장을 확대할 수 있다. 거기다 이 회사는 거대 플랫폼 회사에도 지분이 있다. 거길 잘 활용하면 P2P 투자는 물론 주식시장, 보험 등 다양한 금융플랫폼 시스템을 구현할 수 있다. 아마 내가 보기에 이 회사는 전반적으로 그런 사업방향을 고민하고 있었을 거다. 


이정도 정보를 확보했다면 “저는 XX 회사의 혁신적인 사업 방향에 매료되었습니다. 업계 1위이자 산업을 선도해나가는 XX 회사의 일원이 되고 싶습니다”같은 내용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 



셋째. 자소서의 틀에 갇히지 말고 틀을 활용해라


요샌 자유 형식으로 제출하는 곳도 많아졌지만 아직도 상당수의 기업은 특정 항목을 제공하고 거기에 맞춰 자소서를 쓰도록 한다. 성장과정, 지원동기, 대학생활, 그밖에 사회생활, 장점, 단점 극복 뭐 이런 것들.


보통 이런 항목을 맞이하면 그 항목 안에서 자기가 쓸 수 있는 걸 고민한다. 그리고 그중 가장 나은걸 골라서 쓴다. 그러면 성장과정 항목에서는 근면, 성실, 사교성 이런 키워드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방향을 바꿔야 한다. 자소서 항목에 맞춰 무엇을 쓸까 고민하는 게 아니라 내가 어필하고 싶은 것들을 어느 항목에 녹일까를 고민해야 한다. 


다시 앞선 이야기들을 떠올려보자. 우리는 지원할 회사의 정보를 수집했고 그에 맞춰서 구체적인 회사의 니즈를 추렸다. 이제는 이 니즈에 맞춰 상품소개서를 작성해야 한다. 보통의 상품소개서라면 내가 구성을 맞추면 된다. 그러나 자기소개서는 그렇지 않다. 이미 구성이 정해져있다. 그러면 이 항목들을 '어떤 구색'에 맞출 지를 고민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은행에 지원한다고 해보자. 금융사는 보수성도 갖춰야 하고 영업직이기 때문에 영업력도 필요하다. 최근에는 (무늬만) IT친화적인 것들을 표방하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인사이트도 보여주는 것이 좋다. 또 특정 회사에서 원하는 인재상 같은 게 있을 수도 있다. 이런 항목들을 쭉 나열해놓고 항목들을 보자. 성장과정에서 쓸 수 있는 에피소드, 대학생활에서 쓸 수 있는 에피소드, 단점 극복사례에서 쓸 수 있는 에피소드. 이 에피소드가 어떤 포인트와 잘 들어맞는지 살펴보자. 


그냥 항목에만 맞춰서 쓸 때는 대학생활에서 쓸수 있는 요건들, 성장과정에서 쓸수 있는 포인트들이 한정적이었다. 그런데 키워드를 들고 에피소드들을 살펴보면 그 에피소드를 다른 결론에 이르게 할 여지가 보인다. 가령 '보수성'에 대한 언급을 할 때에는 자신의 장점, 성장과정, 대학생활 등 여러 곳에 녹여볼 수 있다. 솔직히 MSG만 잘 첨가하면 한 키워드를 거의 모든 항목에 녹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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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길어졌는데, 각론의 노하우는 개인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총론은 꼭 유념했으면 한다. 제일 중요한 것은 채용을 하나의 '거래'로 보고 자기소개서를 '상품소개서' 차원으로 접근했으면 한다는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 말고, 상대가 필요한 말을 해주는 것이 중요하단 것이다. 


그래서 얼마나 성공했냐고 물으면, 뭐 내가 전문 업자는 아니라서 잘은 말 못하겠다. 다만, 성공률은 꽤 높았다. 도움을 친구들은 공기업, 대기업, S대 로스쿨, 언론사 등등 다양한 곳에서 합격했다. 원래 잘 해서 최소한의 도움만 줬던 친구도 있었고 계속 떨어지다가 나랑 같이 머리 싸매고 써서 붙은 친구도 있었다.


도움이 될 정보만 취해갔으면 좋겠다. 더 나은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면 이 글에 휘둘리고 일희일비하지 말고 그 방법을 밀고 나가는 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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