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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호 Apr 24. 2020

베트남 사람들은 페북으로 물건을 사고 현금으로 결제한다

한국 사람들은 온라인에서 물건을 사기 위해서는 보통 포털 사이트에서 물건을 검색한 뒤 쇼핑몰로 이동하거나 11번가, G마켓, 쿠팡 같은 오픈마켓을 이용한다. 외국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 사람들은 아마존이나 이베이 같은 온라인 쇼핑몰에 접속해 물건을 고르고 중국 사람들은 알리바바나 타오바오에 접속한다. 오픈마켓에 접속해 물건을 고른 뒤 카드나 간편결제를 이용해 결제를 마치고 택배로 배송을 받는 과정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흔히 거치는 온라인 구매 방식이다.


그런데 베트남에서의 온라인 쇼핑은 우리가 알던 ‘일반적인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베트남 사람들은 페이스북 라이브를 통해 판매자의 상품 소개를 시청한다. 판매자는 직접 상품을 착용해보기도 하고 시청자들이 요구하는 대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물건이 마음에 든 시청자는 판매자에게 메시지를 통해 자신의 주소 등 배달 정보를 보낸다. 판매자는 구매자가 전송한 주소를 통해 물건을 보낸다. 


앞서의 과정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온라인 쇼핑 과정과 매우 다르다. 그리고 조금 더 자세히 보면 무언가가 빠져 있기도 하다. 바로 ‘결제’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베트남에서의 온라인 결제는 ‘오토바이’를 통해 이뤄진다


베트남은 배달문화가 활성화돼 있다. 한국에는 밤 12시까지 치킨을 배달해주는 불야성 같은 배달문화가 있다면 베트남에는 고작 1500원짜리 커피를 시켜도 집까지 배달해주는 친절한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 그렇게 저렴한 물건까지 배달이 가능한 이유를 찾아내는 데는 어렵지 않다. 한번이라도 베트남 여행을 가본 사람이라면 베트남 도로 위를 활보하는 수많은 오토바이들을 기억할 것이다. 베트남의 오토바이 등록 대수는 2018년 기준 4600만대를 넘었다. 한 가정에 한대 이상의 오토바이를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베트남의 넘쳐나는 오토바이는 배달 시장의 성장을 견인했다. 2011년 ‘베트나미(Vietnammm)’를 시작으로 2012년에는 ‘나우(Now)’가 2018년 운송서비스 업체인 그랩(Grab)이 운영하는 ‘그랩 푸드’가 출시됐다. 이 배달 업체들은 대부분 오토바이를 이용해 배달한다. 배달 비용이 적고 골목 골목을 쉽게 다닐 수 있는 오토바이가 빠르고 저렴한 배달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배달 오토바이’들은 음식만 배달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트럭이 운송하는 택배를 베트남에서는 오토바이가 도맡았다. 베트남의 대표적인 온라인 커머스 업체 ‘티키’의 오토바이 택배 기사들은 하루에 100건 정도의 물건을 실어나른다. 오토바이는 베트남의 물류 최종배송을 책임지는 운송수단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이 오토바이 택배 기사들이 물건을 배달하는 모습을 가만히 살펴보면 조금 색다른 모습이 포착된다. 물건을 건낸 뒤 고객에게 돈을 받는다. 이 돈은 ‘택배비’가 아니라 물건 값이다. 이 돈은 다시 물건을 판매한 사람에게 넘어간다. 다시 앞의 이야기로 넘어가보자. 아까 페이스북으로 물건을 구입한 베트남인은 주소만 보냈을 뿐 결제는 하지 않았다. 그 결제는 오토바이 기사에게 이뤄진다. 그것도 현금으로. 바로 이게 베트남의 온라인 쇼핑몰에서 물건을 구입하고 값을 치르는 방식이다. 


COD(Cash On Delivery)라고 부르는 이 결제 방식은 베트남 전체 온라인 쇼핑의 80% 정도를 차지한다. 이제 의문이 풀린다. 어떻게 특별한 결제 시스템이 부착되어 있지 않은 페이스북에서 라이브로 물건을 홍보하고 구매할 수 있는가? 바로 이 COD라는 특이할 결제방식 때문에 가능해진 것이다. 물론 COD를 페이스북에서만 활용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대부분의 베트남 온라인 쇼핑몰은 COD를 지원한다. 



몇 개의 불신이 겹쳐 만들어 낸 특이한 결제 시스템 : COD


베트남 사람들의 현금 사랑은 유별나다. 호찌민의 길거리를 다니면 금고 가게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2017년말 기준 베트남 인구 중 은행 계좌를 보유한 사람은 34%에 불과했다.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현금을 이용해 물건을 사고 값을 지불한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불신이 꽤 오랜 기간 쌓인 결과다. 베트남 사람들은 70년대 공산화의 과정에서 사유재산을 몰수당한 경험이 있다. 자기 주머니 밖에 있는 돈은 사라질 수 있다는 기억을 갖고 있다. 은행도 문제가 많았다. 계좌에서 돈이 사라지거나 은행 직원이 돈을 빼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비교적 최근인 2017년에도 한 고객이 은행에 예치해 둔 87억동(약 4억3,000만원)이 모두 사라진 사건이 벌어졌다. 2016년에는 베트남 농산물 중개업체의 은행 계좌에서 260억동(약 12억8,700만원)이 사라지는 사건도 발생했는데 당시 은행은 관련 직원이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보상을 회피했고 사건은 그렇게 유야무야 됐다. 소액의 예금이 사라지는 사건 정도는 보도조차 되지 않는다.

베트남 사람들은 그렇게 은행을 불신했고 금고나 항아리에 돈을 보관했다. 노인들과 어린아이를 제외하면 다들 스마트폰 하나씩은 가지고 다니는 나라이며 인터넷 보급률도 60%가까이나 되는 나라이지만 거기에는 전자결제나 카드결제가 설 자리는 없었다. 결제 시스템의 기반이 되는 은행이 제대로 자리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베트남에서 핸드폰 요금, 전기세, 수도세 등 소위 ‘공과금’이라고 불리는 것들도 다 사람이 수금한다. 베트남 사람들은 별 불편없이 현금 결제에 적응해 나갔다. 


이런 불신 때문에 COD는 베트남 온라인 상거래의 가장 중요한 결제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 5년 동안 베트남의 전자상거래는 매년 20% 이상 매출이 증가하면서 급성장했는데 이 과정에서 다른 간편결제 시스템이 자리를 잡기는 커녕 오히려 COD를 통한 거래만 늘어갔다. 2013년에는 온라인 구매자의 74%가 COD를 사용했는데 이 비율은 2017년에 84%까지 증가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COD가 각광을 받은 이유를 온전히 은행 불신으로 볼 수만도 없다. 베트남에서 전자상거래가 막 도입된 된 당시, 소비자들은 상품이 배달되지 않거나 불량품을 전달받거나, 광고와는 다르게 수준이 매우 떨어지는 물건을 배달 받는 등의 피해를 겪었다. 불안한 경험이 쌓인 소비자들이 온라인 구매를 꺼리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COD는 이 불안감을 해소시킬 수 있었다. 주문은 온라인에서 편하게 할 수 있었지만 결제 여부는 물건을 직접 받아보고 결정할 수 있었다. 여기서 새로운 문제도 발생했다. 제품을 받아본 사람들이 더 쉽게 구매 의사를 철회할 수 있었다. 베트남 온라인 쇼핑몰의 반품 비율은 30%나 된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거래들, 고심하는 베트남 정부


베트남 정부는 지난 2016년, ‘현금 없는 사회’를 선포했다. 2020년까지 현금결제 비중을 전체 대비 10% 이하로 낮추고, 은행 계좌를 보유한 인구비중을 현재 30%대에서 70%대로 높이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겉으로는 ‘전자 결제 등 무현금 결제 방식이 세계적인 추세’라는 이유를 들고 있지만 속내는 다르다. 여기에는 정부의 운영과 관련된 아주 중요한 이유가 결부돼 있다. 바로 ‘세금’ 문제다.


현금으로만 이뤄지는 거래 흐름은 정부에서 파악하기 힘들다.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과세도 그만큼 누락된다. 페이스북에서 COD를 통해 물건을 팔고 있는 사업자는 대략 30만명으로 추정되는데 이들 대부분은 별도의 사업자등록을 하지 않고 영업을 영위하고 있다. 과세 범위 밖이다. 베트남 페이스북 법인 대표는 페이스북 내에서 한달에 수십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사업자가 50개를 넘어섰다고 밝혔다. 실제로 지난 2017년, 호치민시에서 페이스북으로 화장품을 판매하던 한 사업자는 세금 체납으로 벌금을 무려 91억 동(한화 약 4550만 원)이나 내면서 현지에서 화제가 됐다. 


베트남 정부 입장에서는 이 같은 음성거래를 양지로 끌어낼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현금 없는 사회로의 전환은 만만치 않은 작업일 것으로 보인다. 먼저 COD가 자리를 잘 잡았다. 초기에 발생했던 ‘배달 사고’도 이제는 거의 사라졌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제품을 ‘보고 구입’ 하는 상황에서 ‘보지 않고 구입’하는 상황으로 전환되는 것은 손해다. 게다가 금융기관에 대한 소비자의 불신은 하루 아침에 사라지지 않는다. 신뢰를 확보할만한 충분한 근거가 누적된 후에야 비로소 움직인다. ‘2020년까지 현금 결제 비중을 10% 미만으로 낮추겠다’는 베트남 정부의 목표는 달성하기 쉽지 않아보인다.


COD 말고도 개선해야 할 것들은 많이 있다. 결제 인프라가 제대로 구축되어 있지 않은 것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관광객이 많고 젊은 층이 많이 거주하는 하노이나 호치민 같은 대도시를 제외하면 카드결제가 가능한 곳이 많지 않다. 게다가 단말기도 한국처럼 통합되어 있는 게 아니라 각 카드사별로 별도로 구축되어 있어 사용에 불편하다. 휴대폰의 NFC나 QR코드 등을 이용한 페이결제도 카드결제와 마찬가지로 지원하는 단말기 보급률이 낮아 대부분의 지역에선 사용이 불가능하다. 


속도는 분명히 더디지만 변화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베트남 중앙은행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베트남의 2018년 카드 사용 금액은 전년대비 약 20% 늘어났다. 소비의 증가폭을 고려해도 유의미한 증가 추세다. 등록된 신용카드와 체크카드 숫자 또한 꾸준히 증가해 지난해 1억 4700만 개를 돌파했다. ATM과 POS기기 도입도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베트남 정부의 지원 아래 모모, 잘로페이 같은 전자결제 업체들도 힘을 얻으며 성장하고 있다. 글로벌 리서치 전문 기관 ‘스타티스타’는 2023년에 베트남 온라인 결제시장에서 전자화폐가 차지하는 비중이 43%로 늘어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베트남 진출 희망하는 기업들, 한국과 다른 시스템 유의해야


베트남은 2019년 현재 한국의 3위 수출국이다. 세계가 주목하는 성장 시장이자 동시에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소비시장이다. 한국의 수많은 기업들도 베트남으로의 사업확장을 고민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과 다른 문화들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낭패를 볼 수 있다. 


가령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의 중소기업이 별다른 고민 없이 홈페이지에 카드결제와 간편결제 시스템만 붙여둔다면 전체 고객의 80% 가까이를 놓치게 된다. COD만 이용할 수 있는 고객들은 아예 구매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별도의 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한국인이 현지 업체들을 수소문하며 안정적인 COD 시스템을 구축하기도 쉽지 않은 과제다. 현금이 오고가는 과정에서 배달사고 같은 불상사가 생길 위험 또한 여전하다. 베트남 시장 진출이 여전히 만만치 않은 이유다. 


우회로를 공략하는 방법도 있다. 비엣메이트 신덕화 대표는 3년 반 동안의 준비작업 끝에 드디어2018년, ‘잘로 숍’의 한국관 독점 운영권을 따냈다. 잘로는 베트남 사람들의 국민메신저로 이용자만 1억명이 넘는다. 잘로 숍에 입점하게 되면 별도의 영업망을 구축하지 않아도 1억명에 가까운 사람에게 도달할 수 있다. 신 대표는 “COD는 베트남의 유통산업 성장을 가로 막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이라며 “이런 특성을 모르고 베트남에 진출하면 성공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글은 Veyond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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