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5월 1일은 노동절입니다. 관공서를 제외한 거의 모든 노동자들이 쉬는 날인데요. 한국만 쉬는 것이 아니라 전세계 거의 대부분의 나라들의 노동자들이 유급휴가를 받습니다. 이렇게 5월 1일이 ‘만국 공통 휴일’이 된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기원은 19세기 말 미국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의 미국 노동자들은 열악한 근무환경과 장시간 노동, 적은 급여로 큰 고통을 받고 있었습니다. 하루에 열두시간에서 많게는 열 네 시간까지 일했지만 한 명이 일해서 벌어오는 돈으로는 온 가족이 먹고 살기 어려웠습니다. 결국 온 가족이 공장에 나가 일을 해야 했죠. 열 다섯살이 채 되지 않은 청소년들이 일하는 경우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으며 심지어 대여섯 살 정도밖에 되지 않는 어린 아이들이 공장에 동원돼 좁은 방직기계 사이에 들어가 청소하는 광경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일을 하다 죽거나 다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지만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고 심지어 쫓겨나는 일도 다반사였습니다. 그야말로 ‘사람 같지 않은 대접’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죠.
혹사당하던 노동자들은 결국 행동에 나섭니다. 1886년 5월 1일, 미국의 노동자들은 "8시간 노동제를 수용할 때까지 총파업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때 파업에 동참한 사람들이 무려 50만명 가까이 됩니다. 그리고 시카고에서 일이 벌어집니다. 시위를 벌이던 노동자들에게 경찰이 총을 발사한 겁니다. 노동자들의 분노는 더욱 커졌고 시위는 더욱 거세졌습니다. 결국 그들이 요구했던 ‘일 8시간 노동’은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이후 ‘일 8시간 노동’을 쟁취하기 위해 거리로 뛰쳐나왔던 이 날을 미국뿐만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기념하기 시작합니다.
한국은 원래 대한노총(현 한국노총) 창립일인 3월 10일을 근로자의 날로 지정에 휴일로 삼았으나 1994년부터 국제적 추세를 따라 매년 5월 1일을 ‘근로자의 날’로 변경 지정하게 되었습니다. 베트남 또한 매년 5월 1일을 노동자의 날로 기념하며 휴일로 지정하고 있습니다. 베트남이 형식적으로 사회주의 국가를 표방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어쩌면 당연한 일일수도 있겠습니다.
세계 노동자의 날을 기념하며,
한국과 베트남의 노동 문화 차이를
하나씩 설명드리겠습니다
한국은 일요일을 빼고 공휴일이 15일 정도 됩니다. 설날, 추석, 광복절, 개천절, 삼일절 등이 대표적입니다. 베트남의 공휴일은 한국보다 적은 편인데요. 2020년 기준 총 10일입니다. 하나하나 살펴보면 먼저 한국과 같이 신정, 구정을 다 쉽니다. 특이한 점은 구정 연휴가 5일이라는 부분입니다. 한국처럼 추석 연휴가 길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사실상 온 가족이 만날 수 있는 1년의 중 한 번뿐인 기회이기도 합니다.
한국의 개천절과 비슷한 날도 있습니다. 바로 ‘흥왕의 날’인데요. 흥왕은 베트남의 건국 시조에 해당하는 인물로 한국으로 치면 단군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흥왕의 날을 기념해 매년 음력 3월 10일을 공휴일로 지정하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을 철수 시킨 남부 해방 기념일,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독립기념일, 그리고 앞서 말한 5월 1일 '근로자의 날'에도 쉽니다.
베트남 노동자들이 공휴일만 쉬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과 동일하게 ‘연차 휴가’를 부여받는데요. 한국은 1년 미만 노동자에 대해서는 1개월 근무 시 1일이 발생하고 1년 이상 근무한 경우 연 15일의 연차가 부여됩니다. 베트남은 어떨까요? 일단 한국보다는 연차 휴가가 적습니다. 일반 노동자의 경우 1년 이상 근무를 기준으로 12일이 부여되며 위험하거나 과중한 업무를 수행하는 2~4일 정도 더 많은 14~16일 정도를 부여받습니다.
베트남 사람들은 휴가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실제로 현지에 진출해 있는 기업인들은 베트남 명절인 뗏(Tet)을 앞두고 파업을 경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장 큰 명절이다 보니 기업들이 법정 휴가보다 더 많은 휴가 일수를 책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현지 문화를 잘 모르는 한국 기업에서 이 부분을 간과하고 휴가 일수를 딱 법정 허용 일수까지만 부여하다 보니 갈등이 생기는 경우입니다.
한국은 ‘주 40시간 근로제’가 비교적 잘 정착된 나라입니다. 하지만 또 수많은 직장인들이 정규 근로 시간이 넘은 시간까지 야근을 하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OECD 국가들 중 가장 긴 노동시간을 자랑했던 나라였고 지금도 멕시코에 이어 2위입니다. 유독 긴 한국의 노동시간문제를 해결하고자 작년부터 ‘주 52시간제’가 시행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초과근무를 포함해도 52시간 이상 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베트남은 어떨까요? 아무래도 사회주의 국가이다 보니 노동자들에 대한 배려 더 크고, 그래서 한국의 노동자들보다 더 적게 일하지는 않을까요? 겉으로 보이는 조건만 따지자면 베트남 노동자는 한국보다 더 오래 일합니다. 일단 ‘정규 근로시간’이 다릅니다. 한국이 40시간인 반면 베트남은 48시간입니다.
2019년 말, 베트남 노동자의 근로시간이 시간이 너무 길기 때문에 줄이자는 논의가 나오긴 했습니다. 하지만 베트남 당국은 나라가 발전하는 중요한 시기에 노동시간을 줄이게 되면 기업들의 반발이 너무 클 것을 염려해 노동법에 “주 40시간 근무를 실행할 것을 권장한다"라는 문구로 추가하는 정도로 마무리하며 기업인들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세부적으로 따지자면 2020년 베트남 사람들의 근로시간은 조금 더 길어진 것에 가깝습니다. 삼성 같은 외국계 회사들은 줄곧 ‘초과근로 시간의 연장’을 요구했는데 베트남 정부가 이를 들어준 것입니다. 따라서 2020년부터 베트남 노동자에게 월 40시간(기존 30시간) 연 300시간(기존 200시간)까지 초과근무를 부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를 그대로 ‘야근을 더 시켜도 되는 상황’이라고 이해하면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 있습니다. 앞서 휴가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언급했듯이 베트남은 가족을 매우 중시하는 문화가 자리 잡은 나라입니다. 한국의 노동자는 일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당장 급한 일이 있으면 야근을 해서라도 일을 마무리하는 경향이 크지만 베트남 노동자들은 보통 정해진 시간이 끝나면 하던 일을 내일로 넘기고 퇴근합니다. 그래서 야근과 회식도 적습니다. 베트남에서는 늦더라도 7시 반까지는 귀가하는 것이 보편적입니다.
“베트남은 공적 생활보다 사적 생활의 중요성이 더 큰 사회라고 본다. 회사를 다니는 것은 가정의 생계를 유지하고 가족을 보호하기 위한 보조적 수단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 베트남 진출 업체 대표의 코멘트
야근과 관련한 노사 갈등도 자주 일어나는 만큼 미리 야근에 관한 규정을 근로계약서에 기재해 놓고 야근 일정도 사전에 미리 정해 놓는 것이 좋습니다. 긴급한 야근은 최대한 지양하되 피할 수 없다면 계약에 기재된 상황임을 주지 시키며 설득하는 편이 효과적입니다.
베트남도 한국처럼 급여를 ‘월 단위’로 받는 게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조금 특이한 지점이 있습니다. 바로 월급을 12번이 아니라 13번 받는다는 점입니다. 이는 앞서 말한 베트남의 구정 문화와 관련이 있는데요. 베트남 구정 설은 한 해 동안 가장 이동이 많은 시기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베트남 사람들이 가장 돈을 많이 쓰는 때이기도 합니다.
이 시기에 베트남 사람들은 가족에게 줄 값비싼 선물을 구입하고 또 한국처럼 손아랫사람에게 세뱃돈을 주기도 합니다. 이 문화에 맞춰서 베트남 기업들은 구정 설에 맞춰 월급과 비슷한 액수를 한 번 더 지급합니다. 이 때문에 베트남은 월급을 13번 받는다는 개념이 생긴 겁니다.
대부분의 외국계 기업들도 이를 따르고 있습니다. 원칙적으로 베트남에서의 상여금 지급은 노동자와 사용자 간의 합의로 지급되어야 하지만, 베트남 정부는 가이드라인으로 성과급을 지급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때 ‘보너스 월급’을 주지 않는다면 분명 큰 저항에 맞닥뜨리게 될 것입니다.
실제로 베트남에서 가장 파업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사유는 ‘임금’ 문제인데 그중에서도 구정을 앞두고 보너스와 관련한 분쟁으로 파업이 벌어지는 경우가 흔합니다. 특히 외국계 기업들 중 베트남 문화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이 ‘보너스 월급’을 성과급으로 오인하여 기여에 따라 나누어 주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경우에도 분쟁이 발생할 수 있으니 유의해야 합니다.
급여와 관련해서 또 하나 특기해야 할 게 있습니다. 베트남 노동자들의 이직률이 꽤 높다는 점인데요. 베트남 노동자들에게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별로 없습니다. 한국 직장인들의 직장 충성도가 매우 높다는 것을 비교할 때 베트남의 직장 충성도는 비교적 낮은 편입니다. 왜냐면 직장 선택의 기준이 '급여'이기 때문입니다.
베트남 노동자들은 조금이라도 임금이 높거나 좋은 근로조건을 제시하는 기업이 있으면 쉽게 다른 회사로 이직하는 편입니다. 심지어는 A 기업에 근무하던 노동자가 임금을 더 많이 주는 B 기업으로 옮겼다가 A 기업이 더 많은 임금을 제시하자 다시 A 기업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외국계 기업에서의 이직률이 조금 더 높은 경향을 보입니다. 외국계 기업과 베트남 국내 기업 사이의 소득 격차가 줄어들고 있는 반면 노동의 강도는 국내 기업에 비해서 외국계 기업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국내 기업으로 돌아가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 한국 사회가 앉고 있는 큰 문제 중 하나를 꼽으라면 바로 저출산입니다. 2018년 합계출산율(가임 여성 1명당 기대되는 출산율)은 0.98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부부가 평생 한 명의 아이도 낳지 않음을 뜻합니다. 이 같은 상황 때문에 한국 사회는 출산율을 제고하기 위해 재원을 뿌리고 있습니다. 출산, 육아와 관련한 휴가도 잘 정비돼 있습니다. 출산하는 경우 출산 전과 후를 합쳐 총 90일을 쉴 수 있고 육아휴직도 부부에게 각각 1년씩 부여됩니다.
베트남은 어떨까요? 먼저 출산휴가와 관련해서 베트남은 한국보다 훨씬 긴 휴가를 갖습니다. 무려 6개월로 한국의 2배에 달합니다. 다태아일 경우 아이 한 명당 한 달씩 더 휴가를 가질 수 있습니다. 출산 휴가 기간, 만 한살이 되기 전인 아이를 양육하는 여성에 대해서는 해고가 금지됩니다.
하지만 베트남이 한국보다 나은 상황은 절대 아닙니다. 바로 출산 휴가는 있어도 ‘육아휴직’ 제도는 없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1년의 육아휴직 이후 보육 시설에 아이를 맡기고 맞벌이를 이어갈 수 있는데 베트남은 그게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출산휴가를 종료한 여성근로자가 필요한 경우 무급휴가를 가질 수 있지만 이 부분도 ‘고용주의 동의’가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베트남의 육아휴직 제도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것은 베트남이 아직 젊은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베트남에는 한해 130만 명 이상의 신생아가 태어납니다. 한국의 5배나 되는 수치인데, 두 나라의 인구를 고려한다 해도 상당히 많은 숫자입니다. 평균 연령 또한 적습니다. 30세 미만이 전체 인구의 50% 가까이를 차지합니다.
하지만 육아 휴직이 없다고 해서 베트남 여성 노동자의 권리가 한국보다 낮다고 해석할 수 없습니다. 베트남에 노동법은 승진 및 급여와 관련해 성 평등의 원칙을 준수해야 하고, 남녀 모두 할 수 있는 일의 경우에는 여성에게 우선권을 주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 여성근로자는 생리 기간 중 매일 30분간의 휴식을 취할 수 있으며, 12개월 미만의 아이를 양육 중인 여성근로자는 임금을 전액 지급받으면서 매일 1시간의 육아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임신 7개월 이상 된 여성 근로자의 근무 시간도 한 시간 단축됩니다.
이런 문화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 채 임신 여성에 대해 과중한 근무를 강요하거나 승진, 급여 등에서 차별적인 대우를 하는 등 성차별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행동을 하게 되면 제한을 받을 수 있으니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베트남 사람들은 가족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구정 연휴뿐만 아니라 집안의 경조사가 발생해도 반드시 참석하려고 합니다. 만약 이런 문화를 존중하지 않고 수행해야 할 업무만 강요하다 보면 큰 갈등이 생길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문화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배려해 주되, 중요한 사항은 미리 근로계약서에 기재해서 분쟁을 방지하는 것이 좋습니다.
한국과 베트남 두 나라 노동자 모두 가족을 위해 성실히 일한다는 정신적인 측면에서 공통점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서로 다른 나라이기에 세부적인 노동문화에서 차이가 납니다. 이런 차이점 때문에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인들이 종종 당황하기도 하는데요. 양국의 노동문화 차이를 미리 숙지한 뒤 함께 일하는 과정에서 이해와 배려, 약속을 먼저 해 둔다면 불필요한 갈등이 줄어들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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