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승호 Apr 27. 2020

'빵쪼가리' 사건 이후 베트남 내 혐한은 심해졌을까?


코로나19로 모두가 힘든 시기를 겪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가격리를 위해 세상과 14일간 단절에 들어갔으며 또 어떤 분들은 집밖으로 나가지 못한 채 집에서 업무를 보고 있습니다. 거리가 한산해진 탓에 소상공인들도 극심한 매출 부진으로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기록될만한 강력한 전염병 앞에서 우리 모두 몸을 움츠리며 이 사태가 진정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시민들의 활동에만 제한이 생긴 게 아닙니다. 경제, 국제교류 모두 ‘일단 멈춤’ 상태입니다. 최근 한국으로 입국한 외국인의 숫자는 1월 초 대비해서 93%나 감소했습니다. 지난 4일에는 중국에서 입국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92년, 중국과 수교한 이후 처음 있는 일입니다. 지금 입국하는 사람의 상당수가 한국인이란 점까지 고려해볼 때 현재 한국으로 들어오는 외국인은 ‘거의 없다’고 보는게 맞을 것입니다. 


한국은 코로나19 사태를 일찍 겪었습니다. 한때 중국 다음으로 많은 숫자의 확진자가 발생했습니다. 대구, 경북 지역에서 집단 감염이 진행되기도 했고 또 보건당국이 확진자 파악을 발빠르게 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만 해도 다른 나라의 한국에 대한 경계가 심한 상황이었습니다. 이 신종 전염병에 대한 정보가 적었던 탓에 코로나19를 한국과 중국 등 일부 나라의 문제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많은 나라들이 한국인들의 입국을 제한했습니다. 베트남도 그 중 하나입니다. 그러다 소동이 발생했습니다. 대구 공항에서 출발한 한국인 20명이 다낭에서 격리되었는데 이들이 열악한 상황에서 식사도 못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 겁니다. 당시 YTN은 이 내용을 단독보도하며 “우리 국민 20명이 사실상 감금된 채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다. 아무런 증상이 없는데도 자물쇠로 잠겨 있는 병동에 갇힌 채 식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게 격리된 분들의 주장”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기사 중 특히 논란이 된 부분은 한 인터뷰이가 ‘빵쪼가리’를 언급한 대목입니다. 


“저희는 지금 씻지도 못하고 있어요, 정말로. 여기 가만있다가 병 걸릴 것 같아요, 진짜로. (식사는 제대로 하고 계세요?) 아침에 빵 조각 몇 개 주네요. 한국 정부의 허락도 없이. 여권 뺏겼어요, 아무 말도 없이. 우리 영사관님한테 여권 좀 찾아달라고. 한국 정부는 뭐하는 겁니까, 지금?”


이 YTN의 보도는 베트남에도 알려졌습니다. 베트남 사람들은 크게 분노했습니다. 이 인터뷰에 나온 ‘빵쪼가리’가 바로 베트남의 전통 샌드위치인 반미(bánh mì)였기 때문입니다. 베트남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격리된 한국인들이 자국의 상징과도 같은 음식을 낮추어 부르며 불만을 터뜨렸기에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한국으로 치자면 격리된 외국인에게 비빔밥을 제공했는데 ‘풀떼기만 주더라’고 불만을 터뜨린 셈입니다. 베트남 국민들의 분노는 소셜미디어를 통해서도 드러났습니다. “베트남에게 사과하라(#Apologize To VietNam)”, “한국인들은 거짓말을 멈춰라(#Korean Stop Lying)” 같은 내용의 해시태그가 트위터에 올라왔는데 그 숫자가 무려 70만건 정도였습니다. 

물론 갑작스레 격리된 시민들은 많이 당황했을 겁니다. 게다가 격리된 병실은 자물쇠로 잠겼습니다. 낯선 나라에서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이하고 있는데 자물쇠로 출입문까지 봉쇄되니 혼란이 왔을 겁니다. 하지만 베트남의 대접이 납득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먼저, 대구에서 다낭으로 입국한 한국인 관광객 중 일부에 발열 증세가 있었기에 감염을 충분히 의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물쇠로 병원 문을 걸어 잠근 것은 한국인 관광객을 강력하게 격리하기 위한 조치가 아니라 베트남의 일반적인 병원 문화였습니다. 관광객들에게 제공된 반미 또한 시중에서 쉽게 사먹을 수 있는 것보다는 고급 제품이었습니다. 베트남 당국은 이후 “불편을 끼쳐 미안하다”는 사과 편지와 함께 한국 승객들을 위한 특식으로 1만원 상당의 순댓국을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열악한 격리시설을 대신할 4성급 호텔을 알아보기도 했습니다. 


부족했을지는 몰라도 베트남 당국의 대처가 상식 밖의 행동은 아니었습니다. 양국의 문화가 달라 생기는 오해였습니다만, 베트남 당국의 격리된 관광객 간의 오해가 풀리기도 전에 나온 보도는 양국 간의 관계에 혼선을 주었습니다. 한국발 보도만 문제가 된 것도 아닙니다. 베트남 현지 언론도 ‘한국인들은 호텔에 격리돼 좋은 대접을 받으면서도 불만을 내뱉는다’고 보도했지만 한국인 관광객들은 호텔이 아닌 병원에 격리돼 있었습니다. 다낭시 현지 호텔들이 코로나19를 우려해 한국인 관광객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은 양국 일부 언론의 보도 때문에 두 나라의 감정의 골이 더욱 깊어진 셈입니다. 


갈등을 고조시키는 보도는 이어집니다. 한국 언론사들은 ‘반미 사건’ 이후 베트남 사회에 혐한 분위기가 번져 현지 교민들이 승차거부를 당하고 시설 출입을 거부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앞다투어 전했습니다. 이런 내용의 글을 접한 몇몇의 한국인들은 다시 댓글을 달기 시작합니다. 베트남과 지속적인 경제 협력을 이어왔는데 한국인을 혐오하는 것이 못마땅하다는 식의 내용이었습니다. 일부는 인종차별적인 말을 내뱉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앞서의 ‘베트남 혐한’ 보도 역시 정확하게 맥을 짚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당시 베트남은 한국 뿐 아니라 중국 등 ‘코로나19’가 확산되는 나라들을 차례로 막았습니다. 베트남의 방역 환경은 한국과 다릅니다. 이번 국면에서 많은 국민들이 목격했듯이 한국처럼 선제적으로 진단하고 치료를 하는 방식으로 방역에 성공한 나라는 오로지 한국 뿐이었습니다. 상대적으로 방역 환경이 취약한 베트남은 봉쇄를 선택했습니다.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을 한국보다 먼저 막았습니다. 일찌감치 학교의 개교를 미뤘고 공장도 폐쇄했습니다. 


따라서 베트남 사람들이 반미 사건으로 한국인에게 불만을 품고 출입을 거부하거나 승차거부를 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바이러스 확산 초기에 한국이 중국을 경계했듯 일부 사람들이 과잉 경계하다가 나온 행동에 가깝습니다. 이를 옳지 않은 행동이라고 지적할 수는 있지만 그 원인을 ‘혐한’이라고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분석입니다.


YTN은 보도를 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해당 보도에 대해 사과했습니다. YTN은 “인터뷰 내용을 가감없이 전달해야 한다는 판단 때문에 일부 감정적인 불만과 표현이 여과 없이 방송된 것에 대해 유감을 표하다”며 “국가 간 문화적 차이로 인한 오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그 전달방법에 신중을 기하겠다”고 설명했습니다. YTN의 사과는 한국어 뿐만 아니라 베트남어로도 번역되어 게재 되었습니다. 


YTN의 사과 이후 베트남 언론은 그 내용을 앞다투어 보도했습니다. 댓글 반응은 대체로 YTN 보도가 경솔했던 것을 지적하며 베트남 사람들은 한국이들에게 호의적이니 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자는 당부의 말들이었습니다. 봉쇄정책을 취할 수밖에 없는 베트남의 방역 현실에 대해 이해를 구하는 말들도 종종 보였습니다. 

베트남 언론은 베트남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 유튜버의 영상도 소개했습니다. ‘한국 아저씨’라는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이 유튜버는 ‘YTN의 보도가 부적절했다. 여행객 일부의 부정적 코멘트를 전체의 늬앙스로 소개했다’며 ‘그들의 입장이 한국인 전체의 생각은 아니’라는 말을 덧붙이며 사과했습니다. 기사에 가장 높은 공감을 받은 댓글은 “대부분의 베트남 사람들은 한국을 혐오하지 않는다. 우리를 괄시하는 한국인들에게만 비판을 가할 뿐이며 베트남과 한국은 영원한 친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베트남 호치민에서 유통업을 하고 있는 A씨는 “베트남 사람들은 이기적일만큼 경계심이나 조심성이 크다. 한국인만 막아서는 게 아니다. 지방 사람들은 감염될까봐 도시 사람들의 출입도 막고 있다”며 그것을 “일종의 보호 본능”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베트남 전문 신문 ‘베한타임즈’는 “호치민시공안들이 한국인 거주 지역을 돌며 근래 한국 방문 여부와 건강 체크 등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알리며 “공안들은 매우 정중하고 친절했다. 베트남의 조치는 우리 한국인들에게 부당한 대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안전을 위한 조치로 이해하고 있다. 한국인들이 불쾌함을 느끼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는 것이 눈에 보인다”는 현지 교민들의 말을 실었습니다. 

양국의 언론이 일각의 자극적인 입장만을 가져와 ‘침소봉대’ 하고 있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은 한국과 베트남 간의 우호관계가 지속되길 바라며 오해를 풀고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지난 3월 24일, 베트남은 모든 외국인에 대한 입국 금지령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LG와 삼성 베트남 공장 직원 250여명의 입국을 허가했습니다. 다음달 3일에는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총리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한국의 코로나19 진단 검사가 국제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며 방역 및 임상 분야에서 협력하자”고 제안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총리님께서 우리 양국의 관계를 각별히 고려해 기업인들의 베트남 입국이 가능하도록 조치해 주신 것에 감사드린다”면서 “베트남 현지 공장의 원활한 가동을 위해 중소기업 인력도 빠른 시일 내 베트남에 입국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을 당부드린다”고 말했습니다. 삼성전자 베트남 법인은 지난 7일, 베트남의 코로나19 방역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베트남 측에 100억 동을 기부했습니다. 


한국은 베트남의 제1투자자입니다. 베트남은 한국의 제4수출국입니다. 양국의 경제적 문화적 교류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종식된 이후에도 계속됩니다. 성급하고 무리하며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작성된 보도는 감정적 갈등만 일으킬 뿐입니다. YTN이 사과문에 담았던 “국가 간 문화적 차이로 인한 오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그 전달방법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말을 다시 한번 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이 글은 Veyond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베트남 전당포가 아직도 성행 중인 이유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