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에게 일 시키는 꼴을 한 번 보자
내 직장생활 10년의 경력은 '콘텐츠'였다. 정확히 말하면 글쓰기였다. 글로 파생되는 온갖 콘텐츠를 만들었다. 모든 예술의 근원은 문학이라 하지 않나? 글쓰기가 되면 영상 제작도 좀 되고 스토리텔링형 이미지 콘텐츠도 좀 되고 뭐 그런 것이다.
지금도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에 다니고 있다. 하지만 과거처럼 그저 생산 실무자가 아니기에(물론 여전히 실무에 투입한다), 좀 더 다른 고민을 해야 한다.
고민은 두 가지 측면이다. 첫번째는 생산효율증대다. 어떻게 하면 실무자들이 더 적은 시간을 투입해 더 많은 산출물을 만들어낼지를 고민해야 한다. 두번째는 유통효율증대다. 어떻게 하면 같은 노력으로, 같은 비용을 투입해서 더 많은 광고효과를 볼 수 있게 만들까이다.
내가 종종 주변 노인네(내 또래보다 나이 조금 많은 양반들)을 놀릴 때 '제발 AI를 심심이로 쓰지 말라'고 말한다. "성수동 맛집 알려줘", "하이브와 뉴진스 사태에 정리해줘" 같은 것들을 물어본다. 요새 LLM은 생각보다 더 빠르게 우리의 업무를 대체하고 있다. 내가 종사하는 분야가 극히 빠른데, 특히 생산분야와 관련하여서는 네이버 검색 알고리즘을 공략하는 블로그 글을 십분 안에 작성하거나, 이벤트 광고 이미지를 몇 가지 텍스트만 넣으면 뚝딱 입력하거나, 보고용 PPT 시나리오를 대충 말해도 찰떡같이 정리해주거나 하는 것이다.
그런데 AI도 결국 지시를 받는 입장이다. 개떡같은 질문에는 개떡같이 반응할 수밖에 없다. 앞서 이야기한 "하이브와 뉴진스 사태에 대해 정리해달라"는 명령만 하면 뉴스 몇개 검색해서 하이브와 뉴진스 사태는 민희진 어쩌구 하면서 촉발한 사태입니다. 이와 관련해 누구는 이런 입장을 취하고 있고 누구는 이런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어이쿠 신문 보는게 더 낫다. AI에게 제대로 답을 얻으려면 질문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 이 명확한 질문을 설계하는 것을 프롬프팅이라고 한다더라. 뭐 체인오브소트니 어쩌구니 하는데 본질은 그거다. 내가 무엇을 시키고, 어떤 과정을 통해 그 일을 수행하고, 결과물은 이런식으로 정리해라는 명령을 똑바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일반 LLM을 쓸때, 업무의 목적부터 적는다. 이 콘텐츼 목적은 무엇이고 화자와 예상독자는 누구이며 글의 형식은 어떤 것이 포맷은 어떤 것을 따를지, 이 글이 갖춰야 할 규칙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지, 주제와 전개방향은 어떤 것이며 각각의 소제목은 무엇인지, 분량은 어느정도인지, 글을 작성함에 있어서 각 분야별로 참조할 자료는 무엇인지를 적어준다. 그래도 한 번에 안나온다. 추가적인 질문을 계속 하든지, 아니면 결과값을 가지고 다른 LLM에 재정리를 요구하든지 해야 한다.
내가 이 말을 왜 하냐면, 결국 이게 협업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나는 눈치가 별로 없는 편이다. "알잘딱깔센" 같은 것을 잘 못한다. 내가 일을 잘 하려면, 내게 자유도를 많이 주거나, 아니면 명확한 디렉션을 주어야 한다. 눈치를 잘 살피고 대충 슥 밀어내는 것을 잘 못한다. 그래서 '알잘딱깔센'스타일의 업무스타일이 지배적인 곳에서는 일을 잘 못했다. 나는 AI가 아니기에 '알잘딱깔센'의 실패가 반복되면 주눅이 들어버리고 '더 창조적인' 형태가 아니라 '더 보수적인' 그러니까 욕을 안먹는 방식으로 일을 하게 된다. 그러니 엣지가 나오나. 그냥 하나마나한 이야기 하다 마는 거지.
나는 직원에게 업무를 지시하거나 협업을 할 때 가급적 AI에게 프롬프팅 하는 식으로 하려 한다. 이 일은 왜 해야 하며, 목적은 무엇이며, 결과는 어떤 식으로 나와야 하며, 내가 한눈에 보기 편한 형식을 이런 방식이며, 참조해야 할 정보는 이런 것들이다. 그래야 두번 세번 까지 않고 한번 정도 수정으로 결과물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저 사람이 내 머릿속에 들어와있는 것도 아닌데, "아 그거 알잖아"를 해봐야 무슨 소용인가. 아예 자유도를 줄 것 아니라면.
상대가 AI든 아니면 다른 직원이든 상관 없다. 명확하게 일을 시킬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모두의 능률이 오른다. 눈치를 잘 살피는 직원만이 유능한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