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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호 Apr 29. 2024

우리는 보았다. 참다 참은 직장인의 한 풀이를...

하지만 민희진이 뉴진스를 키우는 동안, 누군가는 골프를 치러 나가야 한다

통쾌했다. 차장급 되는 직장인의 한풀이를 보는 것 같았다. '기자회견'을 빙자한 원맨쇼에 대한 감상이다. 



물론 그는 평범한 직장(부터 출발해 그 자리에 올랐지만)은 아니다. 돈도 우리네 평범한 직장인 보다 훨씬 많다. 그래도 많은 직장인들이 그에게 열광한 것은, 그와 그의 모기입 간의 갈등이 우리가 일 하면서 평범하게 겪었고 분통터져했던 일들이기 때문이다.



한의 민족, 그 방점은 참는 것이 아니라 선을 넘는 것에 찍혀 있다


잠깐 '한(恨)' 이야기를 해 보자. 이 한이라는 게 되게 구닥다리 말 같지만 난 여전히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주요 정서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한은 억울함, 슬픔, 응어리진 마음이다. 그런데 한국인을 설명하는 이 한은 그게 다가 아니다. 일종의 임계점이다. 억울함과 분노가 임계점을 넘을랑 말랑 하는 단계를 설명하는 것이 바로 '한'이며 그 수준을 넘어 서면 폭발한다. 그 한을 다 채우고 폭발했을 때 사람들은 비로소 그 폭발한 사람들에게 공감한다. 그러니까 한은 '더 참으면 폭발하니 적당히 해라'는 경고이자 동시에 '이정도 채웠으면 저렇게 분노해도 되지'라는 공감대의 기준선이다. 


역사를 한 번 보자. 6공화국이 언제 수립되었는가? 신군부의 전횡이 극에 달하고 수준을 넘어서 불만 있다는 대학생을 패죽이고도 거짓을 말 했을 때, 사람들은 선을 넘었다고 생각했다. 한풀이가 시작되고 거리로 뛰쳐나왔다. 그게 바로 6월 항쟁이다. 이 선을 관리 못하는 정치는 파국에 직면한다. 정치 못하는 것은 참았지만 비선을 시켜 국정을 보았던, 선을 넘었던 정치인은 임기를 못 채우고 물러나야 했다. 


직장 생활이라고 다를까? 직장 내 위계가 순전히 '갑과 을'의 수직적인 관계로만 이뤄졌다고 보는 것은 반만 보는 것이다. 부당한 지시든 제대로 된 지시든, 부당하진 않지만 방식이 틀려먹은 지시든 뭐든 일단 참고 잘 이행하며 미덕을 쌓고 인정을 받는다. 그게 쌓이면 임계치에 도달하고 어느날 술자리에서 "에이 씨 뭐 같아서 못해먹겠네, 선배는 부장님은 잘한게 뭐요. 나 더러워서 이 회사 안다닐라오" 라고 한풀이를 한다. 그리고 다음날 아무말 없이 조금 민망해하며 자리 앉는다. 회사는 아무일 없다. 그정도 잘 참았으면 그렇게 난리 한 번 칠 때 됐다. 아 맞다 내가 좀 심하게 했지? 어이 김대리 커피 한잔 하자. 이 과정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상사가 제대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어느 순간부터 일이 작동되지 않을 것이다. 하극상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하극상을 비난할 명분은 이미 다 소진한 상태다.


https://youtu.be/4gIIInvqTlc?si=Ee8AM35CWkHLBtpR


그날 기자회견은 그런 게 아니었다. 경영권이 어떻고, 콜옵션이 어떻고, 무당이 어떻고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그냥 평범한 직장인의 참다 참다 쏟아내는 한풀이었다. 메시지는 분명했다. '저들이 선을 넘어서 내가 이러고 있다'고. 술자리에서나 나올법한 하소연을 쏟아내고 있다. 옳고 그름 같은 건 둘째치고 그 한풀이의 '정서'에는 수 많은 직장인들이 공감했다. 쌓이면 저럴 수 있지. 모두들 쌓고 있거든.



그럼에도... 민희진이 뉴진스를 키우는 동안, 누군가는 골프를 치러 나가야 한다


하지만 한 가지는 좀 딴지를 걸고 싶다. '기사 데리고 술 마시고 골프치는 개저씨들'도 애환은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골프 접대 문화는 나쁘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동의하는 내용일 것이다. 왜 검은 양복 입은 남정네들은 굳이 골프를 치며 접대를 하고 사바사바를 하고 다니는 것인가? 꼭 그렇게 해야 하는가? 구리다. 없애야 한다. 나는 이 모든 말에 죄다 동의하고 그렇게 나아가야 우리 사회가 바람직하다는 점까지도 동의한다.


그런데 어떤 중소기업 영업이사에게 포커스를 잡으면 좀 서글프다. 한창 커가는 자식새끼들 보는 것 포기하고 주말에 비위맞추며 골프치는 일. 아침마다 속을 게워내면서 또 술약 하나 먹고 저녁 술자리로 향하는 일. 그게 아무리 술이고 골프라도 즐거울까? 집에서 배 긁으며 티비 보는게 더 힐링이지. 


미생이 한창 방영될 땐 공감하지 못하다가  나중에 알게된 게 있다. 오 차장이 한참 영업자리 끝나고 '자기만의 술'을 먹으로 또 가는 그 장면. 영업용 술자리에서는 항상 긴장을 하고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한다. 술은 취하는데 취하면서 일을 계속 하고 비위를 맞추고 있으니 서글프다. 하소연 하고 싶다. 에휴 일하기 뭣같다. 돈 벌기 뭣같다.



손쉽게 '골프치는 문화'를 비난할 수 있다. 그런데 '주말에 골프 치러 다니면서 어떻게든 영업을 따내려는 그 노력' 자체까지 폄훼되어야 할까? 그렇게 해서 따오는 영업 성과들은. 그렇게 해서 만든 MOU는. 그렇게 해서 구두로 진행하기로 했던 여러 이야기들은. 그 문화가 나쁜 것과는 별개로, 방식을 제외하자면 다 '영업적 노력'인 것이다. (물론 이 문화를 바꿔나가야 한다. 그런데 그 윤리적 책임을 온전히 개인에게 부과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가 전체적으로 노력해야지)


영업은 AI가 대신 못한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정서를 '파인튜닝' 하는 것인데. 인간이란 존재는 N이든 T든 기본적으로 감정적인 동물이다. 그런 동물이 결정권을 행사하는 한 영업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영업은 여전히 인간만이 해야 할 것이다. 


골프는 나쁘다. 하지만 누군가는(모두가 그렇단 이야기가 절대 아니다) 영업을 위해서 주말 골프를 뛰러 나가야 한다. 그 한심해 보이는 인간들이 해야 할 몫도 있다. 그리고 회사의 성과란 이런 저런 기반이 모여야 종국적으로 결실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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