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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호 Aug 18. 2016

우리에겐 여전히 '역차별'이 필요하다

형식의 평등을 넘어 내용의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도입된 아주 중요한 장치

미국 농장에서 일하던 흑인 노예들





합법의 변천사


"흑인노예는 미국 시민으로 볼 수 없고 연방 법원에 제소할 자격 또한 없다." 
- Dred Scott vs. Sandford Case


미국에 노예제도가 남아있던 1857년, 일신의 자유를 요구했던 노예 드레드 스콧에게 내려진 판결이다. 이 판결이 나오기 이전, 미국 헌법의 기초가 되었던 독립선언문(1776)에는 자연법사상에 의거한 평등권(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합의는 흑인 노예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다수의견을 작성한 연방 대법원의 로저 타니는 "미국 헌법 수정 제5조는 정부가 개인의 생명, 자유 및 자산을 적절한 법의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박탈하지 못하게 하는 것인데 노예는 명백히 '자산'이므로 이 법의 대상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노예제도는 남북전쟁이 끝난 뒤에야 비로소 폐지된다. 그리고 노예제 폐지의 내용을 담은 수정헌법이 공포되는데, 수정헌법에 추가된 미 헌법 제14조에는 흑인도 '평등권'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기술되어 있다.


미국에서 태어나거나, 귀화한 자 및 그 사법권에 속하게 된 사람 모두가 미국 시민이며 사는 주 시민이다. 어떤 주도 미국 시민의 특권 또는 면책 권한을 제한하는 법을 만들거나 강제해서는 안 된다. 또한 어떤 주에도 법의 적정 절차 없이 개인의 생명, 자유 또는 재산을 빼앗아서는 안 되며, 그 사법권 범위에서 개인에 대한 법의 동등한 보호를 거부하지 못한다. - 미국 수정 헌법 제14조-


이 수정헌법의 공포로, 흑인은 겨우 '인간-미국시민'에 포함될 수 있었다. 그러나 흑인에 대한 평등이 완전히 실현된 것은 아니었다. 1883년 미 대법원은 수정헌법 제14조의 취지를 완전히 파기하는 판결을 내놓는다. 남부 주에서 흑인들에게 백인이 이용하는 공공시설을 이용할 수 없도록 규정하는 ‘Jim Crow 법률’을 통과시켰는데 이 법에 대한 문제제기가 잇따르자 미 대법원은 '수정헌법 제14조는 오직 정부 활동에만 적용'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판결했다. 인종분리정책을 옹호한 처사였다. 이후 미 대법원은 혼혈인이었던 플레시가 백인 열차칸에 앉아 있다가 적발된 사건(Plessy v. Ferguson Case)에 대해 '분리하되 평등하다(Separate but Equal)’고 판시하며 인종 간 분리정책을 공고히 했다. 물론 이 또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헌법의 명령을 어긴 건 아니었다.


1939년 미국의 한 화장실 풍경



이후 '고작' 버스 좌석 때문에 몇 번의 법적 공방이 더 이뤄진다. 1955년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이었던 로자파크스는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라는 운전사의 명령을 거부했다. '흑인 칸으로 가라'는 운전사의 명령에 파크스는 '나는 일어날 필요가 없다'고 답했고 그는 인종분리법 위반으로 기소되었다가 풀려났다. 파크스는 이 사건을 계기로 '좌석 투쟁'을 시작한다. 다수의 흑인들이 이 투쟁에 참여했고 파크스는 '시끄럽게 굴었다'는 이유로 다시금 기소되어 10달러의 벌금형에 처하게 된다. 이 소란은 결국 마틴 루터 킹까지 참여한 대규모 저항운동으로 발전했고 이는 결국 대법원의 전향적 판결을 이끌어낸다. 1956년, 연방대법원은 "흑인과 백인을 차별하는 인종분리법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리고,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내용의 의미는 또 한번 바뀌게 된다. 비로소 형식적으로나마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되었다.


연방대법원 판결에 따라 '흑백통합버스 제도'가 시행된 첫날(1956. 12. 21.). 로자 파크스는 그제야 버스 앞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또 다른 한계에 직면한 평등권


헌법은 기본권 쟁취 투쟁의 역사이자 산물이다. 각 나라의 헌법이 자연권이라는 다소 선언적인 개념을 그대로 이식한 것은 무엇이 헌법의 목적과 방향을 이끄는가를 그대로 보여준다. 헌법은 우리가 알고 있는 민주주의를 위한 것도 법치주의를 위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런 것들은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부차적인 개념이다. 즉, 개인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각종의 장치와 내용들이 담겨 있는 것이 헌법이다.


헌법은 오랜 시간 동안 논의를 통해 합의되었으며 쉽게 바뀌기 힘든 가치를 담고 있다. 때문에 매우 보수적이어야 하며 쉽게 고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사실 헌법은 동시대 사람들 인식의 진보를 담고 있기 때문에 시사각각 변하기도 한다. 앞서 언급한 평등의 '내용'이 변화해 온 것도, 헌법재판소에 올라간 각종 사건들에 대한 판결이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것도 그때문이다.


로자 파크스 투쟁 이후, 형식적 평등을 명령한 헌법은 또 다른 한계에 부딪히며 변화를 요구 받았다. '동등한 기회를 부여'하며 '정당한 이유 없이 차별하지 않는다’는 선언이 평등의 내용을 제대로 실현시키지 못함이 드러났다. 여전히 '비백인'은 노동시장에서 '덜 선호'되고 있음이 지표로 드러났고, 백인에 비해 평균적으로 더 적은 소득을 벌어들이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이런 차별이 인종 간에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었다. 미국에서 흑인 남성의 참정권보다 여성의 참정권이 50년이나 늦게 도입된 것은 인종차별만큼이나 심각한 '젠더차별'이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평등권은 헌법 안에 존재했지만 여전히 그 법에 의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차별 당사자인 소수자들은 지속적으로 '평등권을 실현하라'고 요구했고 투쟁했다. 그리고 그 요구에 대한 결과물 중 하나로 '적극적 우대조치'의 개념이 등장한다.




적극적 우대조치, 혹은 역차별의 등장


적극적 우대조치는 형식적으로 제공되는 기회의 평등만으로는 해소되지 않는 차별에 대해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구조적 차별이 사라질 때까지 취업이나 교육 등의 영역에서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소수자를 우대하는 정책을 의미한다.


존 F. 케네디 미국 제35대 대통령. 당시 대통령 행정명령 10952호를 통해 평등고용기회위원회의 수립을 지시하며 적극적 우대조치가 필요함을 역설했다. 적극적 우대조치가 고용부문에서 최초로 시행된 것은 1965년 린든 존슨 미국 제36대 대통령이 행정명령 11246호를 공표하면서부터였다.


1961년, 미국 케네디 대통령은 앞서와 같은 '적극적 우대조치'의 필요성을 거론하였고 1964년 미국 민권법 제7조에 명시적으로 규정된다. 최초에는 징벌적 조치에 가까웠다. 사용자가 '인종, 종교, 성별 또는 출신국가를 이유로 개인의 고용기회를 박탈하거나 노동에 불이익을 주는 행위'를 할 경우 이 사용자에 대해'위법행위 금지'를 명령하는 동시에 그 차별대상들을 '적극적으로 고용'할 것을 명하였다. 2000년, 유럽연합은 조금 더 구체화된 독립 법안인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데 이는 인종, 종교, 성별과 관련한 법적 제도적인 각종의 우대조치들을 명령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는 1989년에 남녀고용펑등법이 개정되면서 "구조적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잠정적 조치로서의 여성우대조치는 차별로 보지 않는다"고 하였고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 제4항에서는 "현존하는 차별을 해소하기 위하여 특정한 사람(특정한 집단을 포함한다)을 잠정적으로 우대하는 행위와 이를 내용으로 하는 법령의 제·ž개정 및 정책의 수립·ž집행은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로 보지 아니한다"는 내용으로 적극적 우대조치를 법률에서 규정했다. 1996년부터는 공무원채용목표제를 도입했으며 이는 2004년부터 공기업과 정부투자기관에 확장되었다.


지난 2007년, 일부 국회의원은 평등권의 내용을 더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개별법령인 <차별금지법>을 발의했지만 종교단체 등과 일부 시민단체의 반발로 무산되었고, 이후 몇 번의 시도에도 통과되지 않고 있다.


물론, 이러한 적극적 우대조치에 대한 반발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미국은 주기적으로 이런 조치들에 대한 소송이 잇따른다. 한국도 많은 사람들(특히 온라인을 중심으로 한 남성들)이 '이러한 조치는 역차별이며 부당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헌법은 이러한 역차별의 호소에 대해 "여성과 장애인은 유형ž·무형의 성적 차별 내지 사회적 편견ž·냉대로 능력에 맞는 직업을 구하기가 지극히 어려운 것이 현실"이며 "종래부터 차별을 받아 왔고 그 결과 현재 불리한 처지에 있는 집단을 유리한 처지에 있는 집단과 동등한 처지에까지 끌어 올리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은 차별이 아니"기 때문에 합당하다고 이야기한다.(98헌마363)


  

“채용목표제는 이른바 잠정적 우대조치의 일환으로 시행되는 제도이다. 잠정적 우대조치라 함은, 종래 사회로부터 차별을 받아 온 일정집단에 대해 그 동안의 불이익을 보상하여 주기 위하여 그 집단의 구성원이라는 이유로 취업이나 입학 등의 영역에서 직·간접적으로 이익을 부여하는 조치를 말한다. 잠정적 우대조치의 특징으로는 이러한 정책이 개인의 자격이나 실적보다는 집단의 일원이라는 것을 근거로 하여 혜택을 준다는 점, 기회의 평등보다는 결과의 평등을 추구한다는 점, 항구적 정책이 아니라 구제목적이 실현되면 종료하는 임시적 조치라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채용목표제는 종래부터 차별을 받아 왔고 그 결과 현재 불리한 처지에 있는 여성을 유리한 처지에 있는 남성과 동등한 처지에까지 끌어 올리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제도이다. 이에 반하여 가산점제도는 공직사회에서의 남녀비율에 관계없이 무제한적으로 적용되 는 것으로서, 우월한 처지에 있는 남성의 기득권을 직·간접적으로 유지·고착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는 제도이다.” 

헌재 1999. 12. 23. 98헌마363


더욱이 우리 헌법은 제32조에 '여성'과 '연소자'의 노동에 대해 '특별히 더 보호할 것'을 명령하고 있다.




역차별? 그건 한참 뒤에나 나올 이야기다


평등이라는 선언, 혹은 헌법적인 가치는 다소 기만적으로 이야기되어 왔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과거 주류 백인들은 흑인을 '인간이 아님'으로 분류하였고, 이후에는 흑인을 격리시키고 한정된 공간에서만 제공되는 것들을 평등이라고 이야기해 왔다.


'보기 싫으니 다른 데 가서 해라'라는 격리 조치는 여전히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배려 혹은 역차별이라고 이야기한다.



역차별이라는 것, 혹은 적극적 우대조치라고 불리는 것은 형식의 평등을 넘어 내용의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도입된 아주 중요한 장치다. 낙인 찍히고 배제된 자들이 실제로는 다른 집단과 아무것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특정 제도가 개입해야만 했고 이는 '적극적 우대조치'라는 이름으로 헌법차원에서 승인되었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화를 낼 수도 있다. 자신이 누리는 무형적 이득은 사실 쉽게 체감하기 어렵다. 이를테면 여성고용할당이 역차별적 정책이라고 화를 내면서, 그 자리를 채우기 위해 동원된 계약직 여직원에 대해서는 그의 능력이 부족해서 그 자리에 있다고 혀를 차는 것처럼.


엄밀히 말하면 역차별이라는 것도 사실 근시안적인 관점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다. 사회적 자원을 과점하는 집단이 그 과점을 통해 더 나은 결과를 얻었다면 그 결과만 가지고 능력을 평가를 하는 게 과연 정당한가. 역차별이라는 이야기는 특정 집단에 의한 사회적 자원의 과점이 어느 정도 해소된 상태에서야 비로소 나올 수 있는 이야기다. 그래서 지금 우리 사회에서 논의되는 많은 차별시정조치들은 '역차별'이라고 부를 것이 아니라 차별을 개선하기 위한 '잠정적인 조치'라고 불러야 함이 마땅하다.


물론 이런 가시적인 조치들에 의해서 누군가가 희생당할 수는 있다. 그러나 적극적 우대조치는 그 희생 너머의, 비가시적이며 일상적인 희생들과의 이익형량을 통해서 정당성을 획득한다. 누군가에게 손해가 갈 수 있으니 이런 우대조치들을 금해야 한다는 '불평등의 비당사자'들의 주장은 그래서 때로는 한가해 보이며, '불평등'을 완화하려는 헌법의 결단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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