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Daily Grunne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승호 Aug 10. 2017

가만 보면 한국인은 휴가가는 모습도 우울하다

한국인의 휴가는 휴가이지만 어쩌면 일이다.


제조업을 기반으로 사는 나라라서 그러는지는 몰라도 대부분 7말 8초에 휴가를 떠난다. 제조업 본사 공장이 휴가기간을 정하면 벤더가 쉬고 그 근처 식당이 쉬고 서비스업도 같이 쉬고 뭐 그런 구조 아닐까 생각한다.


숙박업체와 휴가로 먹고 사는 서비스업종은 7말 8초를 극성수기, 7~8월을 성수기로 분류한다. 요금은 최소 30%정도 할증된다. 심할 경우 두 배 이상 오르는 경우도 있다. 요새 나오는 ‘국내여행 물가와 해외여행 물가 비교’는 과장된 측면은 분명히 있지만 그렇다고 아예 이해되지 않을 것도 아니다.


이 때 움직이면 사람도 많다. 고속도로도 막히고 차편도 구하기 힘들다. 성수기 비효율은 여행을 떠나는 그 순간부터 시작된다. 북적이는 걸 끔찍이 싫어하는 나에게 성수기에 떠나는 여행은 집에 있느니만 못한 고생길이다.


관련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한 철 장사’를 해야하다보니 이 때 한 몫 두둑하게 챙긴다. 바가지요금에 몸살을 앓는다고 하지만 성수기가 끝난 후 이 사람들의 현금흐름을 생각해보면 또 그렇게 비난하기도 애매한 측면이 있다. 다른 나라 사정이야 잘 모르겠다만, 성수기가 없거나 한국만큼 극심하지 않아서 요금 변동이 크지 않은 건 아닐까. 그러니까 저런 물가비교도 가능하겠지.


그렇게 한국인이 휴가를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자면 마치 또 하나의 과업을 연장해서 치르는듯한 느낌이다. 휴가가 닥치니까, 그때 안가면 어디 갈만한 여유도 안 생기니까. 그러니까 휴가를 잡고 의무적으로 돈을 쓰고. 대충 가족과 방어전을 치른 후 또 다음 휴가 때까지 일 년을 보낸다. 휴가란 본디 좀 여유로워야 삶이 리프레시 될 것이라는 내 편견에 의하면 한국인의 휴가는 휴가이지만 어쩌면 일이다.

요새 종종 했던 생각이 왜 한국의 지자체는 일본과 같은 관광상품을 개발하지 못할까였다. 후쿠오카 밑에 있는 유후인의 료칸들이 매력적인 관광상품이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이야기라고 한다. 지자체에서 청년들을 중심으로 지역활성화를 위해 낡은 집을 개조하고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취향일수도 있겠지만, 한국에는 그렇게 잘 개발된, 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매력적인 관광상품은 내게 없었다. 순천만이나 녹차밭, 아니면 해운대나 동해. 사실 난 여기에 ‘대체 불가능한’ 그 지역만의 테마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왜 그럴까 생각하다 처음에는 지자체의 무능력을 탓했지만, 어쩌면 절대적인 수요가 부족해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성수기 때야 어디든 사람이 넘칠테고 비수기 때야 그마나 좀 더 매력적인 곳에 사람이 조금 더 들어찰지 모르지만 어쨌든 비수기 때 먹고살기 힘든 건 매한가지다. 뭐, 내수만을 기준으로는 관광이 고유한 먹거리가 되기 힘들기 때문에 굳이 발벗고 나서 개발할 동력이 안되는 거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지하철이 텅텅 비었다. 눈에 뜨일 정도다. 지하철을 타지 않은 사람들은 또 그만큼의 사람들과 어디서 몸을 부대끼고 있겠지. 나는 성수기 때 절대 움직이지 않는다. 물론 그러지 않아도 되는 직장에 계속 다녔다는 게 적당히 축복이라는 것도 안다.


한국의 생산성은 지속적으로 늘었는데, 증가된 생산성만큼 사람이 여유로워진 게 아니라 양질의 일자리를 줄이는 비용절감으로 이어져온 것 같다. 그래서 더 슬프다. 누군가가 방어전처럼 휴가를 치르는 동안 누군가에게 휴가는 꿈같은 일이 되어버렸다.

매거진의 이전글 최저임금을 받지 못해서 노동청에 간 적이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