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휴가는 휴가이지만 어쩌면 일이다.
제조업을 기반으로 사는 나라라서 그러는지는 몰라도 대부분 7말 8초에 휴가를 떠난다. 제조업 본사 공장이 휴가기간을 정하면 벤더가 쉬고 그 근처 식당이 쉬고 서비스업도 같이 쉬고 뭐 그런 구조 아닐까 생각한다.
숙박업체와 휴가로 먹고 사는 서비스업종은 7말 8초를 극성수기, 7~8월을 성수기로 분류한다. 요금은 최소 30%정도 할증된다. 심할 경우 두 배 이상 오르는 경우도 있다. 요새 나오는 ‘국내여행 물가와 해외여행 물가 비교’는 과장된 측면은 분명히 있지만 그렇다고 아예 이해되지 않을 것도 아니다.
이 때 움직이면 사람도 많다. 고속도로도 막히고 차편도 구하기 힘들다. 성수기 비효율은 여행을 떠나는 그 순간부터 시작된다. 북적이는 걸 끔찍이 싫어하는 나에게 성수기에 떠나는 여행은 집에 있느니만 못한 고생길이다.
관련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한 철 장사’를 해야하다보니 이 때 한 몫 두둑하게 챙긴다. 바가지요금에 몸살을 앓는다고 하지만 성수기가 끝난 후 이 사람들의 현금흐름을 생각해보면 또 그렇게 비난하기도 애매한 측면이 있다. 다른 나라 사정이야 잘 모르겠다만, 성수기가 없거나 한국만큼 극심하지 않아서 요금 변동이 크지 않은 건 아닐까. 그러니까 저런 물가비교도 가능하겠지.
그렇게 한국인이 휴가를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자면 마치 또 하나의 과업을 연장해서 치르는듯한 느낌이다. 휴가가 닥치니까, 그때 안가면 어디 갈만한 여유도 안 생기니까. 그러니까 휴가를 잡고 의무적으로 돈을 쓰고. 대충 가족과 방어전을 치른 후 또 다음 휴가 때까지 일 년을 보낸다. 휴가란 본디 좀 여유로워야 삶이 리프레시 될 것이라는 내 편견에 의하면 한국인의 휴가는 휴가이지만 어쩌면 일이다.
요새 종종 했던 생각이 왜 한국의 지자체는 일본과 같은 관광상품을 개발하지 못할까였다. 후쿠오카 밑에 있는 유후인의 료칸들이 매력적인 관광상품이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이야기라고 한다. 지자체에서 청년들을 중심으로 지역활성화를 위해 낡은 집을 개조하고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취향일수도 있겠지만, 한국에는 그렇게 잘 개발된, 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매력적인 관광상품은 내게 없었다. 순천만이나 녹차밭, 아니면 해운대나 동해. 사실 난 여기에 ‘대체 불가능한’ 그 지역만의 테마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왜 그럴까 생각하다 처음에는 지자체의 무능력을 탓했지만, 어쩌면 절대적인 수요가 부족해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성수기 때야 어디든 사람이 넘칠테고 비수기 때야 그마나 좀 더 매력적인 곳에 사람이 조금 더 들어찰지 모르지만 어쨌든 비수기 때 먹고살기 힘든 건 매한가지다. 뭐, 내수만을 기준으로는 관광이 고유한 먹거리가 되기 힘들기 때문에 굳이 발벗고 나서 개발할 동력이 안되는 거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지하철이 텅텅 비었다. 눈에 뜨일 정도다. 지하철을 타지 않은 사람들은 또 그만큼의 사람들과 어디서 몸을 부대끼고 있겠지. 나는 성수기 때 절대 움직이지 않는다. 물론 그러지 않아도 되는 직장에 계속 다녔다는 게 적당히 축복이라는 것도 안다.
한국의 생산성은 지속적으로 늘었는데, 증가된 생산성만큼 사람이 여유로워진 게 아니라 양질의 일자리를 줄이는 비용절감으로 이어져온 것 같다. 그래서 더 슬프다. 누군가가 방어전처럼 휴가를 치르는 동안 누군가에게 휴가는 꿈같은 일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