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디일상㉗〉 무급 당번, 보이지 않는 봉사

by 최선근

〈캐디일상㉗〉 무급 당번, 보이지 않는 봉사



골프장에는 ‘당번제’라는 제도가 있다.
라운드가 없는 날에도 캐디들은 새벽 5시에 출근해 돌아가며 9시간씩 근무를 한다.
경기과 대기실 정리, 캐디 대기실 청소, 조인 관리, 안개등 설치, 골프백 전달, 시설 관리까지…
잡다한 일들을 무급으로 맡는 것이다.


당번 근무는 새벽부터 오후까지 이어지기도 하고,
오후에 시작해 저녁 늦게 끝나기도 한다.
라운드와 달리 캐디피가 나오지 않지만
골프장 운영에는 꼭 필요한 일이기에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다.
“돈도 안 받는데 일이 너무 많다”는 푸념이 나와도
결국 묵묵히 감당한다.


문제는 이 제도가 너무 오래 당연시되어 왔다는 점이다.
일한 만큼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기본 원칙이
여기서는 종종 예외로 취급된다.
여름엔 땡볕, 겨울엔 칼바람 속에서
잡일을 해야 할 때면
몸의 피로와 함께 마음의 허탈감도 깊어진다.


그러나 당번 근무를 하며
우리는 골프장의 또 다른 얼굴을 마주한다.
카트 한 대, 벙커의 모래,
곧게 뻗은 페어웨이 잔디에도
누군가의 손길이 닿아 있음을 깨닫는다.
고객이 티오프하기 전 이미 정리된 모든 흔적에는
묵묵히 일하는 당번 캐디들의 노고가 숨어 있다.


이 무급 노동은 결국 누군가의 골프가 원활히 진행되기 위한
보이지 않는 밑바탕이 된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골프장의 질서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손길인 셈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이 문화도 바뀌어야 한다.
노동의 가치를 존중받는 사회라면
골프장 역시 예외일 수 없다.
보이지 않는 봉사가 아니라,
정당한 노동으로 대우받을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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