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디일상㉘〉 스페어 캐디의 하루

by 최선근

〈캐디일상㉘〉 스페어 캐디의 하루



캐디는 순번제로 근무한다.
그러다 어떤 날에는 라운드 배정이 되지 않으면 우리는 ‘스페어’가 된다.
출근은 했지만 번호가 불리지 않은 채,
몇 시간씩 대기실에서 기다려야 하는 날이 있다.
배정이 끝내 잡히지 않으면 빈손으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스페어의 시간은 유난히 느리게 흐른다.
다른 캐디들이 라운드에 나가 있는 동안
남은 사람들은 각자 휴식을 취하거나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조용히 시간을 보낸다.
“오늘은 일이 되려나…”
그 불안과 기대가 뒤섞인 마음이 하루 종일 가슴을 짓누른다.


스페어는 단순한 대기가 아니다.
캐디가 다치거나, 컴플레인으로 교체되는 상황이 생기면
바로 투입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늘 준비된 자세를 유지해야 하지만,
정작 하루가 끝날 때까지 한 번도 불리지 않으면
그 모든 대기는 허무함으로 남는다.


스페어를 거듭하다 보면 알게 된다.
이 직업이 의외로 ‘운’에 좌우된다는 사실을.
오늘 라운드를 나갔느냐, 못 나갔느냐에 따라
그날 수입은 크게 달라지고
기분 역시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스페어 시간은
한편으로는 ‘숨 고르기’의 여유가 되기도 한다.
라운드에 나가면 쉴 틈 없는 5시간이 이어지지만,
스페어일 때는 모처럼 느린 호흡을 할 수 있다.
비록 수입은 없지만
오랜만에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스페어의 하루는 허무와 여유 사이에서 흔들린다.
하지만 이 불확실함 속에서도
결국 우리는 또 내일을 준비한다.
언제 호출될지 모르는 순간을 대비하는 것이,
스페어 캐디의 숙명이자 하루의 무게다.


2022_10_21_13_43_IMG_4782.JPG

“이 글은 시리즈 〈캐디일상〉 중 스물여덟 번째 이야기입니다”

작가의 이전글〈캐디일상㉗〉 무급 당번, 보이지 않는 봉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