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지 않는 나라가
노벨문학상을 바란다

우리나라의 안타까운 현실

by optimist

1. 나의 이야기.

나는 어렸을 때부터 꽤 많은 책을 읽었다. 부모님의 지인이 출판사를 다니시기도 했고 아래 위로 6명이나 되는 이모들이 있었기 때문에 책을 공짜로 많이 받았다. 부모님은 내가 책을 읽는 것을 좋게 보셨다. 그래서 중학교 입학하기 전까지는 책이 내 두 번째 취미생활이었다.(첫 번째는 단연 컴퓨터 게임이었다.)


중학교 입학 후에는 그야말로 책 읽을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했다. 부모님은 내 학교 성적이 최상위권으로 올라가지 못하자 학원을 보내시기로 작정하셨고, 나는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은 별로 없었다. 그 날의 공부 할당량을 다 마친 뒤 또는 시험기간이 끝난 후 며칠의 시간이었다. 그래도 부모님이 책을 읽는 건 뭐라고 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그 시절 나는 수많은 판타지 소설들을 섭렵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에는 책 읽는 시간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누가 뭐라 하지 않았지만, 책 읽는 시간에 공부나 더하자라는 분위기가 내 주변엔 가득했다. "대학교 가면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라는.. 대학 가면 모든 것이 해결되리라는 환상을 심어주는 어른들 사이에서 나는 어느새 책을 읽는 즐거움을 상실해버렸다. 그래도 완전히 상실한 것은 아니었는지 관심분야에 대한 책은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구해다 읽었다. 특히 경제에 관심이 많았다. 그 영향 때문인지 나는 다른 과는 지원도 하지 않고 모든 학교에 경제학과를 지원했다.


몇 년 간 이렇게 살아오다 보니, 그리 바쁘지 않았던 대학생활이었음에도 책은 취미생활의 후순위에 자리 잡게 되었다. 꾸준한 노력으로 독서량은 많이 늘어났지만 내 인식마저 바꾸지는 못했다. 책 읽기는 시간낭비라는 인식. 하릴없이 앉아서 책을 읽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며 순간 흠칫할 때. 나는 내 깊은 내면에 아직도 책에 대한 좋지 않은 인식이 자리 잡고 있구나를 느낀다.



2. 뉴요커 르포.

어느 날 트위터에서 눈길을 끄는 글을 발견했다.

"한국 문학을 위해서라면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빨리 나오지 않는 게 낫다. 국민은 읽기에 무관심; 우울하기만 한 작품들; 한국문학번역원의 묻지 마 지원; 밀어내기식 해외 홍보. 이런 상황이라면. 뉴요커의 통렬한 르포."

글과 함께 링크도 달려있었다. Can a Big Government Push Bring the Nobel Prize in Literature to South Korea?라는 기사였다.


이 기사를 읽으면서 내 가슴을 콕콕 찌르는 문장이 있었다. 책 읽기를 장려하는 많은 캠페인, 축제들을 벌이고 있지만 정작 고등학교 진학 시기에는 문학을 본업 이외의 것으로 치부하는 우리나라의 상황을 고발하는 장면이었다. 그 기사는 한 사람의 예를 들어 중, 고등학생들이 책 읽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설명한다.

네가 만약에 소설을 읽는 다면, 그것은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다. 차라리 너는 수능을 위한 모의고사 혹은 수학 문제를 풀어야 한다.

이 상황은 한 사람의 예에 불과하기 때문에 '모든 학생들은 책 읽기를 핍박받는다'라고 규정할 수는 없다.(그렇다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저지르는 것이므로) 다만 이 기사를 읽으면서 우리는 우리의 현 상황을 다시 성찰해볼 필요는 있다.



3. 우리나라의 이야기.


2015년 국민 독서실태조사 보고서에 보면 우리나라는 성인 65.3%, 학생 94.9%가 1년에 1권 이상 책을 읽는다고 나와있다. 다른 말로 하면 성인은 34.7%가 1년에 1권의 책도 읽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학생은 94.9%인데, 생각보다 높은 것 아닌가? 라며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뒤에 '학생은 학교급이 낮을수록 독서활동 활발'이라는 문구는 우리의 현상황이 그렇게 나아지고 있지 않음을 알려준다.


성인의 독서실태는 예상보다 훨씬 심각하다. 성인의 독서를 방해하는 요소를 묻는 질문에 2번째로 많은 사람들(23.2%)이 '책 읽는 것이 싫고 습관 들지 않아서'라고 답했다. (책 읽는 것이 싫으면 당연히 습관 들지 않겠지만) 나는 이 현상 이면에 '책 읽는 것은 시간낭비다'라는 인식이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중, 고등학교 때 책을 읽고 있노라면 "공부는 안 하고 딴짓하느냐?"라는 핀잔을 듣기 일수인 우리나라에서 독서를 장려한다고 사람들이 책을 많이 볼까? 어불성설이다.


그럼에도 희한한 점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리나라가 노벨문학상을 타기 원한다는 사실이다. 책은 읽지 않은 사회에서 노벨문학상이 나올 수 있을까? 나는 회의적이다. 우리나라 노벨문학상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 고은 시인이다. 그러나 나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은 시인에 대해 잘 모른다. 그가 무슨 시를 썼는지, 독자들이 느끼는 고은 시인만의 멋은 무엇인지는 뒷전이고 그냥 '노벨문학상 탔으면 좋겠다'로 귀결된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 사회 풍토와도 연결된다. 머리가 뛰어난 최상위권 학생을 둔 부모들은 자식들이 기초학문이 아닌 의대, 한의대에 진학하기를 희망한다. 그러면서도 노벨 화학, 물리학상을 받기를 희망한다. 정부도 이 흐름에 반기를 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옹호한다. 정부가 진행 중인 사회 수요 맞춤형 인력양성 사업, 이른바 프라임 사업은 사회 수요에 맞추어 학과별 인원을 조정하라는 것이 골자다. 대학들은 정부 사업을 '기초 학문을 통폐합하고 취업이 용의 한 이공계의 인원을 늘리라'는 취지로 받아들이고 있다. 교육이 기초가 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수요가 대학 인원의 기초가 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기초 학문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기초 학문을 토대로 하여 노벨상에도 근접할 수가 있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진행 중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아이러니한 상황에 대해 살펴보았다. 노벨상을 바라는 사회. 노벨상을 받을 수 없게 만드는 현실. 무엇이 옳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다만 모순된 사회 현실에서 모순된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꺼내는 지금의 현 상황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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