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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용한게릴라 11시간전

그림집 사는 아이

자전거 타는 서울오빠_1화

 무르익은 초록이 반짝거리는 여름. 옆 동네 부산에는 무더위로 해운대 해수욕장을 찾는 인파가 역대 최고라는데. 부산의 작은 위성도시 양산에 있는 작은 마을. 교리는 향교와 학교, 강과 산, 노인과 학생들만 있을 뿐. 사시사철 타지인 없이 한산하다.      


 교리라는 지명이 의미하듯, 이 작은 마을에는 큰 향교와 학교가 3개나 있었다. 하지만 근처에 마땅한 편의시설과 아파트 주거 단지가 하나도 없다. 마을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강 건너 신도시에 살고 있었다. 나와 옥정이를 제외하고.           

 교리에 사는 사람들은 오랫동안 마을을 떠나지 않고 살아온 터줏대감이었다. 단층 또는 2층으로 지어진 오래된 마을 주택들은 저마다의 특징과 역사를 가지고 있다.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집은 동사무소 맞은편에 위치한 기와집이다. 그 기와집에는 20년 차, 만년 마을의 이장인 옥미 할머니가 산다. 옥미 할머니는 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많다. 옥미 할머니의 기와집 바로 뒤에는 빨간 별 돌로 지어진 양옥집이 하나 있는데, 그 집에 옥정이가 산다.


- 너는 저기 빨간 양옥집 사는 이장집 손녀 아닌가베.  

 옥미 할머니는 옥정이의 친할머니였다. 옥정이는 그 양옥집에서 태어나고 쭉 자랐다고 했다. 마을에서도, 학교에서도 옥정이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간혹 옥정이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옥정이가 사는 양옥집과, 이장 할머니 손녀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 너는 저기 그림집 사는 아이 아니가.

 옥정처럼 나에게도 학교 친구들과 마을 어르신들 사이에서 불리는 별칭이 있었다. 그림집 사는 아이. 옥정이의 집 바로 옆에는 그림집이라고 불리는 우리 집이 있다. 빨간 지붕에 하얀 벽돌로 쌓아 올린 집 거실에는 커다란 통창이 나 있는 집. 그리고 그 통창 앞에 심긴 빨간 장미덩굴이 낮은 담벼락의 철근을 타고 올라가 있다. 동화 속 그림에 나올 것 같은 집이다.


- 초록지붕 빨간 머리 앤 집보다 더 예쁜 집으로 가는 거야.

 이 그림 같은 집을 지은 사람은 우리 아빠였다. 유난히 감수성이 예민했던 내가 중학생 때, 자주 왕따를 당하자. 고민하던 아빠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살던 마을 집을 다시 증축 리모델링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우리 가족은 그림집에 살게 되었다.

- 엄마, 다시 부산으로 돌아가자! ? , 심심해 죽겠단 말이야.

 교리로 이사를 오고, 집처럼 드나들던 PC방과 오락실이 사라진 남동생 재우는 자주 투정을 부렸다. 하지만 나는 교리가 더 좋았다. 이유 없이 나를 괴롭히던 친구들이 사라졌고, 동네에 단짝 친구가 생겼기 때문이다. 작은 마을에 우리 집 바로 옆에 사는 옥정이는 내 또래 유일한 친구였다. 단짝 친구가 된 우리는 교리에서 같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고등학교에 입학을 했다.   

- 재희야, 시험 끝나고 춘추원 입구 앞서 만나자.

 부산에서는 기말고사가 끝날 때마다, 영화관에 갔다. 영화 한 편을 보고 나와, 사과잼과 생크림을 듬뿍 발라 접은 와플 하나 먹는 것이 큰 기쁨이었다. 하지만 이제 막 개발되는 양산에는 신도시에도 그 흔한 영화관 하나 없었다. 그나마 신도시 아파트마다 단지에 놀이터가 있었지만, 아파트가 없는 교리에는 시소와 그네 하나조차 설치된 곳이 없었다. 옥정이와 나의 교리 아지트는 춘추원으로 불리는 공원뿐이었다.

 춘추원은 마을 끝자락에 낫게 봉긋 속은 동산만 한 작은 공원이었다. 공원의 초입에는 노랫말이 새겨진 커다란 비석이 하나가 서 있다.

- 옥정아, 그거 알아? 이원수 선생님이 여기 춘추원에서 고향의 봄을 지었대.

- 흠흠, 흐으음, 흐으음, , , , , 으음.

-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내가 콧노래를 흥얼대자, 옥정이가 노랫말을 따라 불렀다.

- 옥정아, 난 네 노래가 정말 좋아. 같은 가사를 읊어도 네가 부르면, 노래가 더 아름다워.

- 뭐 이 정도 가지고, 감동하고 그러냐. , 재희야. 내가 유튜브 보고 연습한 곡이 있는데. 볼래?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흥이 난 옥정이는 비석 옆에 있는 나무벤치 위로 올라갔다.  

- 북두칠성 빛나는 밤에. 하늘을 봐 황금별이 떨어질 거야. 황금별을 찾기 원하면, 인생은 너에게 배움터. 그 별을 찾아 떠나야만 해.

  옥정이의 노래는 숲 속에 깊고 청아하게 울려 퍼졌다. 한껏 목소리의 성량을 올리며 옥정이는 자신 꿈을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하늘을 바라보는 옥정이의 눈빛은 황금별처럼 반짝반짝 빛났다.

- 어때, ‘황금별이라는 뮤지컬 곡이야. 뮤지컬 모차르트에서 김수현이 불렀어.

- 가사도 좋고, 목소리도 좋고. 최고야. 

- 가사 좋지? 가사가 내 맘과 같다. 황금별을 찾아서, 내 인생을 찾으려면, 떠나야만 해.

 옥정이는 한숨을 연달아 내리 쉬었다. 옥정이의 꿈은 ‘뮤지컬 가수였다.

- 나는 조수미처럼 최고의 성악가가 될 거야.

 중학교 때까지 옥정이의 꿈은 소프라노였다. 옥정이는 초등학교 때부터 합창부에서 오랫동안 소프라노로 활동했다. 몇몇 시대회와 전국대회에서 일찍이 실력을 인정받은 옥정이는 음악 선생님으로부터 예술고등학교 진학을 권유받았다. 하지만 예술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위한 실기를 치르는데 교습비부터 부담이 되었다. 일반 고등학교에 비해 턱없이 비싼 학비도 문제였다. 양산에서는 이후, 성악을 계속 배우기 위한 인프라나 정보도 없었다. 부산에 있는 예술고등학교를 매일 양산에서 오가는 일상도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 말이 좋아. 성악 가수지. 옛날로 치면, 다 딴따라 아닌가베. 마 공부나 해라, 가시나야.

- 조수미처럼 우리나라 1등이 되지 않는 이상, 그런 거 해갖고 밥벌이하기 힘들다.

 더불어 부모님의 반대가 꿈을 포기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 모두 고리타분한 이야기라 생각을 하면서 현실적인 제약에 옥정이는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꿈을 포기했던, 옥정이에게 새로운 꿈이 생겼다. ‘슈퍼스타 더블 캐스팅’으로 유명했던 TV 프로그램을 보면서. 조금 더 정확한 시점을 말하자면, 뮤지컬 <노트르담의 파리>에 나온 ‘대성당의 시대’를 부른 마이클리를 보고 나서다.

- 마이클리의 연기와 노래에서는, 저 사람이 가진 열정과 사랑이 진짜 느껴져.

- 그런데 저 사람 원래 직업이 의사였대. 성악이나 극 연극 전공자가 아닌데, 뮤지컬 배우로 대비를 하게 된 거야. ‘슈퍼스타를 통해서. 옥주현도 아이돌 핑클로 활동하다 지금은 자신의 이름으로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고 있어.

 이 후,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뮤지컬 공연을 본 적이 없는 옥정이의 꿈은 뮤지컬 배우가 되었다. 옥정이는 화려한 의상과 무대에서 표정과 몸짓으로 자유롭게 부르는 뮤지컬이 더 좋다고 했다. 꼭 성악이나 연극과 같이 관련 전공을 하지 않아도, 동아리나 학원을 통해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려 있는 것도 큰 장점이었다.

- 난 서울로 대학을 갈 거야. 

 옥정이는 목적은 확고해졌다. 어느 전공으로 어느 학과를 들어가냐는 상관이 없었다. 인 서울 대학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공부를 하는데 크나큰 목적으로 작용했다. 옥정이는 내신 관리를 아주 열심히 해왔다.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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