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용한게릴라 Oct 24. 2019

인간관계의 미니멀리즘

찬란한 오전의 에세이

30대의 관계는 좁지만 깊고, 견고하길 바란다.


그래서 서른의 문턱에 가장 먼저 교통정리를 시작한 것은 불필요한 인간관계. 핸드폰 연락처 목록을 열어 삭제하려다 우물쭈물. 단 한 명도 삭제하지 못하고 쭈욱 보다 잠시 핸드폰을 덮고. 연락처 삭제의 기준을 먼저 정했다.

첫째, 3년 이상 연락을 한 번도 하지 않은 사람.
둘째, 3년 이상 연락을 절대 하지 않을 사람.


기준을 정하고 나니, 남겨야 할 사람과 보내야 할 사람이 뚜렷하게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과감하게 ‘삭제 버튼’을 눌려 목록의 정리정돈을 시작했다. 정리정돈을 마치고 나니, 남은 목록이 50명이 채 안 된다. 남은 50명을 카테고리로 묶어 목록을 더 단순화시키고 싶었다. 그런데 직장과 학교 이 외에 만들 수 있는 카테고리도 없을뿐더러, 50여 명의 사람들 중 2명 이상 같은 카테고리에 묶이질 않는다. 좁지만, 다양한 내 인간관계를 잘 보여주는 작업이었다.


실제로 일 이외에 공동체 활동을 스스로 많이 제한하는 편이다. 어떤 일이든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을수록 즐거움이 배가 되기도 하지만 복잡한 일들과 소음이 당연히 따를 수밖에 없다. 사람 머릿수가 많으면 그만큼 말도 많고 탈도 많다. 그래서 오는 복잡한 일들과 생각들이 그냥 싫었다. 그 모든 걸 감수할 만큼 그 모든 사람들에게 쏟을 에너지와 사랑이 부족한 것도 큰 이유 중 하나다. 오늘 삭제 목록에 오른 이들의 대부분은 이와 같은 이유로 3년 이상 연락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은 첫 번째, 삭제 대상자가 되었다.


‘최선’을 다할 수 없는 ‘애매모한 관계’와 ‘최선’을 다하지 못할 ‘불필요한 일’은 깨끗하게 ‘정리’하는 것이 ‘배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삶을 지탱하는 아주 소수의 사람들과 업무 상 연결된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에 해당된다.

반면, 딱히 폐를 입히거나, 나쁜 사람들은 절대 아니지만 반드시 정리해야 하는 사람들도 있다. 둘째, 3년 이상 연락을 절대 하지 않을 사람, ‘끝까지 무례한 사람’이다.

‘무례함’을 느끼는 이유는 자신이 가진 어떤 ‘가치관’과 ‘세계관’ 안에 ‘도덕적 기준’을 벗어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치관’과 ‘세계관’이 다를 경우, 모든 삶의 과정과 선택 기준과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잦은 오해와 다툼이 빚어지게 된다. 어느 누가 틀린 것은 아니다. 다만, 가치 기준이 다른 것이다. 하지만, 그 가치 기준이 너무 자기 편향적이라던가. 공공의 선과 보편적인 도덕의 기준에서 너무 벗어나는 등의 문제로 합일을 대화로 이끌어내기 어려운 사람들도 있다. 사실 이런 경우, 만나지 않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의 자유는 모두 존중받아야 하지만, 관계에 있어 모두 허용될 수 있는 건 아니다. 관계는 언제나 쌍방이기 때문에. 합일된 최소한의 기준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런 기준이 없는 무한의 자유는 방종이라고 생각한다. 좁혀지지 않는 잦은 오해와 다툼으로 사람을 미워하는 것보단 거리를 두는 것이 배려가 될 수 있다.      


우선은 나를 위해서.
또한 상대를 위해서.


불필요하게 많은 인연들로

내 삶이 너무 버거워지지 않게.
때론, 인간관계에도 미니멀리즘이 필요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삼릉비경, 신라의 달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