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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용한게릴라 Nov 04. 2019

삼릉비경, 신라의 달밤

찬란한 오전의 에세이

경주 솔거 미술관에 들어서자마자 전시실 1층 정면을 가득 메웠던 박대성의 삼릉 비경.

자신이 직접 체험한 ‘신라’의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고 싶어 경주로 내려와 살면서, 수 없는 습작을 했다는 소산, 박대성 작가. 신라시대의 화가, 솔거가 그랬듯이 소산의 그림에도 소나무는 아주 중요한 모티브가 된다. 이제 백 발 노인이 된 이 원로의 화가의 작업실도 소나무가 즐비하게 우거진 솔밭. 3개의 왕릉이 우람하게 서 있는 경주, ‘삼릉’에 있다고 한다. 작가는 처음 경주로 내려왔을 때, 1년을 불국사에 자리를 틀고 앉아 그림만 그렸다. 하지만 오랫동안 ‘불국사’ 안에서 모티브를 찾지 못했다.

‘신라’를 제대로 구현해내지 못하고 근심만 쌓여가던 어느 날, 답답한 마음에 삼릉의 작업실 문을 활짝 열고, 걸어 나왔다. 솔밭으로 걸어 나오니 소나무 사이사이를 비추이는 달빛이 삼릉을 감싸고, 소산의 몸을 휘감았다고 한다. “이게 진짜 ‘신라’였구나!” 작가가 진짜 ‘신라의 비경’과 처음 만나는 순간이었다.


그 비경을 옮겨 담은 그림,

삼릉 비경은 그렇게 탄생했다.

솔거의 소나무와 소산의 달
매서운 바람이 불어도 푸르른 상록수처럼.
따뜻한 모성으로 영혼을 감싸는 달빛처럼.
영롱하게 빛나던 신라.

뒤안길로 사라져 가던 한 시대의 찬란한 역사는 이렇게 한 낱 ‘젊음의 패기’가 아닌 원로 한 화공의 노련한 붓질과 따뜻한 감성으로 가장 원초적인 언어로 돌아와 ‘신라의 달밤’이 되었다.

찬란했던 나의 20대도 이제 끝을 향해 달리고, 깊어가는 가을과 함께 이렇게 저물어가지만, 달밤의 기억은 더 완연해지고 오래도록 추억으로 남아 영글어져 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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