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는커녕, 기록부터

쓰는 나 사용기

by 허허로이

2026년 플래너 시작 디데이 3일 전. 집보다 학교를 좋아했던 짧은 시절의 새 학기 시작일, 리츄얼이었던 새 교과서 커버 씌우기, 그 열심이던 마음, 그 기억이 용기를 줬다. 팔을 뻗어 멀치감치 둔 2025년 플래너를 펼쳤다. 더도 덜도 아닌 2025년 1월 1일부터 6월 30일까지의 기록. 그 뒤로는 생일, 만남 약속만 겨우 적힌 페이지들. 쉽게 버리자던 마음을 거두고 2026년을 위한 도우미로 삼으려, 그 다짐을 여기 적는다.


이제 알겠는 것, 기록과의 대결에서 게으름과 귀찮음이 내 실패의 이유가 아니었다.

기록 남기기도 일기와 많이 닮았다. 매일, 일주일, 한 달을 돌아볼 때마다 곱씹는 어설픈, 부족한, 자만 투성이, 못난 선택을 돌아보기 불편했다. 비슷비슷한 꾸지람을 하루, 일주일, 한 달마다 되새김질하는 기분이다. 6개월은 어떻게 버텼나 싶어 꼼꼼히 뒤져 보니, 그럼 그렇지, 좋은 것과 나빴던 것이 7:3. 정답이 없는 이 일에 자책은 과한 감정이겠지만, 12월 마지막 장 플래너를 완성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게다가 멀쩡한 2025년 플래너 12월 페이지를 저만치 밀치고 2026년 첫 장에 붙은 12월 페이지를 펼치고 앉았으니. 기록은 자신감이라는데 납득이 간다. 종이와 내 마음 거리가 고작 한 뼘이지만, 적힌 글이 드러내는 '나'는 아예 다른 세상의 존재 같기도 하다. 일단 좁혀보기부터 시작하자. 일단 가장 쉬운 방법은 잘한 일 기록하기.


칭찬은 거창하고, 그렇다고 점수 넣기를 하고 싶진 않으니. 미루던 일 또는 안하던 일 해낸 것을 적어 보자. 설마 한 가지 정도는 있겠지. 그렇다고 오늘 못했던 화장실 성공했다 같은 것은 안되지! 일단, 멀리서 본 안 좋아하는 누군가를 이번에는 피하지 않고, 먼저 인사를 건넸다 정도로 시작한다. 아무리 그대로, 조금은 애씀을 쏟아서 해낸 것이라야 성취감에 기록하기를 하루 더 할테니까.


비밀 같은 것은 안되지, 당연히. 기록하는 순간 안비밀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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