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나 사용기
어린 나이라서 '못함' 당하는 것들은 당연히 존재했다. 당한다는 기분을 이기려는 마음만큼 갖고픈 갈망이 커졌지만, 그 크기와 무관하게 그저 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 덜 자란 다리로 큰 바퀴 자전거를 타고 싶었고, 덜 여문 머리로 세상을 내 편, 아니면 적으로 나눴다. 오직 나만이 우유빛깔 순수였고, 주변은 온통 불타는 욕심, 이기심, 시기, 질투 덩어리였다. 시커먼 세상에서 순수한 나를 지키는 일이 너무나 고됐다. 이토록 정의로운 나를 불편하게 한다면 그건 불의였다. 정의니까 힘이 커야 하는데, 큰 목소리만으로 거둬지는 승리를 이해할 수 없었다. 남겨진 이에게 초라함을 덧씌우는 행위에 소름이 끼쳤다. 그럴 수는 없다는 말을 아홉 번쯤 외치고 나서, 이해하기를 그만뒀다. 틀린 것을 이해하기란 어차피 불가능하므로.
이제 '못함' 대신 '안함' 횟수가 늘어난 나이가 되어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고 가끔 생각한다. 덜 자란 다리 때문이 아니라, 애초에 내게 맞지 않는 바퀴였음을 이제는 안다. 내 마음 해한 이들을 향한 복수를 다짐할 시간에 내 세상 울타리 보수에 힘을 쏟는 것이 나았다. 그들이 도무지 짐작할 턱 없는 내 안의 상처를, 내가 후벼내어 전시하는 대신, 글 한 줄을 더 읽어야 했다. 오직 나에게만 유효한 '용서할 기회'를 기다리는 대신, 경계선을 만드는 데에 집중하자. 앞으로는 그들이 내게 닿으려면 내 허락이 먼저 필요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