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해봐야,

쓰는 나 사용기

by 허허로이

'영하 온도, 두 자리면 패스...' 눈 감은 채 다짐!

더듬더듬 집어든 폰, 그리고 내 나태를 시험하는 숫자.

'-9.9'

이미 한 결심을 되돌리자니 당연히 받아들 자괴감이 싫다.

이렇게가 아니라도 오늘 하루가 끝나기 전에도 분명히 한 번은 겪을 텐데.

그러니까 나서야지. 내 의지로 완벽하게 가능한 이 한가지.

올 겨울 처음 느끼는 체감온도 -15도, 바람만 덜하길. 양심상 아예 없기를 바라진 않지만.

차라리 더 부지런을 떨었으면 두 자리 영하 온도를 봤을 수 있었다.

다짐을 한 번만 하고 눈을 떴더라면,

어제 일찍 잤더라면, 면,

해가 뜨기 전이었다면, 면, 면...

갖가지 비루한 가설들을 곱씹으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다리가 그래도 움직여 주는 것은 지난 달의 나 덕분.

이 달리기로 매일 새로운 경험을 한다.

어제는 +289일 째고, 오늘은 +290일 째의 몸뚱이니까.


날씨따라, 기분따라, 언제나 반드시 몸도 기분도 달라진다.

물론, 어제 아침 메뉴도 '으응?' 더듬더듬 기억해야 하는 지경이라

사실 일주일 전 내 몸 상태와 오늘을 비교한다는 내 스스로를 나조차 믿을 수 없으나.

분명히 어제는 오른쪽 팔 뒷꿈치가 존재감을 드러냈었다.

오늘은...어디가.. 괜시리 몸 이곳 저것을 툭툭 두드려본다. 그런데,

어라, 경량 숏패딩 겉면이, 이렇게 얼기도 하네?

손으로 살짝 잡는데, 사각사삭대며 접혔다. 알루미늄 호일 같다.

와, 신기해. 사라라락. 뽁뽁이 누를 때와 같은 쾌감이 스친다.

새로운 열심의 증거, 땀의 증거, 기록의 증거, 노력의 증거.

아침 햇살이 옷에 닿는가 싶었는데 금새 그 서걱이는 소리가 없어졌다.

좀 더 뛸 걸 그랬나. 20초 정도? 있었나?

이렇게나 아쉽다니!

내일은 은색 반짝이 패딩을 입고 나서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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