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

쓰는 나 사용기

by 허허로이

'딩동, 공동 현관문에..'

"왔네, 왔어. 내가 나갈게"


엄청난 허기, 그런 것은 없었다. 뭔가를 해 먹고픈 의지(대체로 있는 편인 나)마저 탈탈 털린.

몽땅 털어 쓴 하루였기에 퇴근길에 햄버거를 주문했었다.

주방에 있던 귤 하나를 집어 들고, 현관을 나섰다.

승강기 숫자 5, 6, 7... 을 보면서 시뮬레이션을 한다.

문이 열리면,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하고 손에 든 것을 건네는 것이 나의 루틴이다.

대체로, 열의 아홉의 경우 그러한 순서인데, 오늘이 그 아닌 하루일 줄이야.

승강기 문이 열리고, 기사님과 눈이 마주쳤다.


"어머? 나와 있었어? 땡큐!"

(MBTI 대문자 EE 레벨정도의 톤에 그만 내 순서를 놓치고 말았다.)

"?? 아, 에. 아 예. 안녕하세요, 저 이거..." 하며 귤을 건넸다.

"땡큐! 아니 뭐 이런 걸! 세상에, 땡큐! 복 받으실 거예요. 고맙습니다!"

"아, 예예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예, 예" 연신 꾸벅하는 내가, 이렇게 낯설어질 줄이야.

와중에 승강기 문이 스르르르 닫히고, 좁아지는 문틈 사이로 기사님 팔이 메트로놈처럼 움직였다.

이제는 완전히 닫힌 문과, 내려가는 8, 7, 6,... 을 물끄러미 보다가 퍼뜩, 몸을 돌렸다.


햄버거를 먹는 내내, 씨이익 하는 기분이 내 얼굴과 머릿속을 빙글빙글 돌아다녔다.

검은색 하이바, 투박한 진회색 패딩 상하의, 부르튼 손등, 발개진 볼의 깊은 입주름, 듬성듬성 흰색 섞인 검정 눈썹이 그려낸 갈매기 눈웃음, 맑은 하이톤 목소리! 나도 나름 열심히 인사를 했지만, 기사님 눈에 든 내 모습도 충분했을까? 내가 받은 에너지만큼이라도 다시 전해졌을까?


오늘 시뮬레이션 변수를 늘렸다. 열심히 연습해서 앞으로 내 순서를 놓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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