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나 사용기
'버린다'가 아닌 '버려 본다'라고 생각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여전히 결단하지 못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버렸다'까지 가기 위해서 거쳐야 할 단계라고 생각하고 있다. 급하게 서두르면 후회가 따를 것이고 대체할 다른 것을 다시, 여럿을 사게 될 것이 뻔하다. 주방 프라이팬 1개로 살아보기를 도전했다가, 자그마치 다섯 개를 쌓아놓고 있는 지금처럼.
퇴직을 앞둔 언니가 살림을 줄이고 있다길래, 이사 계획 중인지를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어느 순간 갑자기 떠나더라도 깔끔한 모습이고 싶어'였다. 가슴 어딘가 쿵, 하는 바람에 뒷 말을 이어내지 못했다. 그런 생각을 해야 하는 시기가 따로 있는 것인가. 나 떠난 뒤의 모습이 중요한가, 어차피 나는 없는데 그것까지 고려하며 살아야 하나 물었더니 '가족이든 혹은 남이든 감당할 내 짐이 부담이 아니었으면 해서"라는 대답을 들었다. 고개 끄덕이기를 두어 번, 하는 둥 마는 둥 그 시간을 지났다. 이후로 여러 날을 문득 튀어나오는 그 말을 다시 가라앉히느라 애쓰며 보냈다. 사는 동안 미리 생각해야 할 것들과 아닌 것들은 무엇이 있나? 아니, 애초에 그런 구분하기가 가능한 것인가?
나는 고작 프라이팬 하나 쓰기 조차도 미리 생각하기가 안되던데. 생각만으로야 프라이팬 하나로 끼니 해결하는 것이 문제일 리가 없다. 다만, 커다란 프라이팬 하나에 계란프라이 하나를 하자니 낭비인 것 같고, 설거지 하느라 손목이 뻐근하고, 그래서 소형 원형을 샀는데, 계란말이를 하자니 둥근 것으로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모양이 안 예뻐서, 결국 사각 프라이팬을 샀다. 그랬는데 유해물질을 피하려면 스테인리스를 써야 한다길래, 중간 크기 원형 프라이팬을 샀지만, 도무지 그걸 매끈하게 쓰기가 어렵고, 볶음밥이라도 하려니 깊은 것이 필요해서.... 이것이 내가 다섯 개의 프라이팬을 갖게 된 사연이다.
나이가 더 들면, 훨씬 많은 것들이 명확해질 거라는 기대는 예전에 버렸다. 그건 내게 이미 거의 사실처럼 굳어 있다. 다만, 예전에 명확하다고 믿었던 것들 위에 다른 명확함이 덧씌워지고, 그것들이 얽히고 설키면서 결국은 모두 ‘그럴 수도 있지’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버리지 못한다. 아니, 정확히는 버리지 못하는 나를 조금씩 인정해 본다. 언니처럼 어느 순간을 대비해 단정히 정리해 두는 삶도 있고, 나는 여전히 프라이팬 하나를 두고도 머뭇거리는 삶을 산다. 명확해지지 않는 것들 사이에서, 적어도 지금은 급히 ‘버렸다’라고 말하지 않기로 한다. 다섯 개의 프라이팬이 내 결단의 미숙함이라기보다, 아직은 그렇게 살아가는 나의 방식이라고 생각해 보려 한다.
어쩌면 ‘버려 본다’는 말은 물건을 향한 다짐이 아니라 나 자신을 조금 덜 몰아세우겠다는 고백이었는지도 모른다.